글 수 166

untitled.png

잠잠했던 비염인데 알레르기가 다시 들끓어 올랐다. 가려운 눈을 비비니 열이 나고, 흐르는 콧물을 연신 닦아내느라 코밑이 허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절이 바뀌거나 기온차가 갑자기 커질 때면 으레 겪는 통과의례 같은 현상이다. 하늘이 높아졌고, 내가 사는 동네 근처 안양천의 코스모스들은 자신들이 안양천의 주인인 것 마냥 자리를 잡고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옷장을 열어 연분홍 가디건을 꺼내 긴긴 여름 내내 고단했던 시간들을 가만히 덮는다. 사뭇 다른 날씨 덕에 자연스레 달력을 보게 된다. 달력을 한 장 더 넘길  때가 되었고, 그렇게 한 장을 넘겨보니 1의 자릿수를 벗어난 10의 자리 숫자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10월. 코 끝을 간지럽히는 비염과 함께 한 해의 2/3가 지났음을 알려준다.


내년이면 대학교 4학년이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벗기에 앞서 주위 친구들은 취업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펙을 쌓느라 바쁘다. 많은 친구들이 등 떠밀려 사회에 나오긴 했으나 아직 준비를 채 끝마치지 못해 취업의 문 앞에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졸업을 앞두고 마치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때 수능을 코앞에 두고 전전긍긍했던 그 시절의 압박감과 같은 비슷한 긴장감에 휩싸여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천국 가는 날짜를 안다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아마도 나는 그때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 안에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세상 떠날 때에 가지고 갈 수 없는, 돈, 명예 같은 것들에만 너무 목을 매고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과연 나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때에 준비가 되어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처럼, 야곱처럼, 사무엘처럼,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즉각적으로 응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게도 이러한 의문에 '그렇다'는 답이 당장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강제일교회 설립자이자 구속사시리즈 저자이신 박윤식 원로목사님은 저자 서문 마지막에 항상 "천국 가는 나그네길에서"라는 어구를 넣으셨다. "우리의 인생은 길어야 7-80년이다, 그 나라 갈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이 세상은 그저 잠시 들렸다가는 여정이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나그네이다"라는 말씀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보고 들으면서도 나는 그저 천국을 머나먼 남의 일처럼 여기곤 했다. 헵시바에 해외에서 온 새친구가 있었다. 해외 지교회를 다닌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 교회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뿐인 그 친구는 "평강제일교회에서 이런 말씀을 받고 자란 너희는 정말 행복자야."라고 말했고 너무나도 안일하게 살아왔던 내 삶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귀한 말씀을 받고도 나는 더 깨어 살지 못하고 그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말씀 받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남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똑같이 살아가고 있었구나'라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에 앞서 연말정산을 하고, 대학교 4년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회에 진출하기에 앞서 여러 가지의 스펙을 쌓는다. 이렇듯 천국 가는 여정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살다가는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지도, 마지막 나팔 불 때 내 이름이 불리지도 않을 것이다. 10월, 가을 곡식이 익어가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의 삶도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아버지 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다. 마지막 추수 때에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계14:13-20)라는 음성에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없는 이때에 누가 가서 거둘까, 내가 어찌 게을러서 앉아 있을까 어서 가자 밭으로! 보내주소서! 제단 숯불 내 입술에 대니 어찌 주저할까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찬송가 271장의 가사처럼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이것이 하나님께서 작정하셔서 부르신 사람들 모두의 대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f02b36e98f5e5d990e99a45d19784bba.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06

#144. +1_ 홍명진 file

1을 더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일이다. 단순히 수 계산에서의 1을 더하는 것 말고도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오려면 24시간이 필요하고, 1월에서 2월로 넘어가려면 3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오는데도 12...

 
2018-01-24 523
105

#84. 회고록 _ 송인호 file

회고록의 뜻이 궁금하여 검색해 보았다. 사전적 의미로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기록”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전적 의미에 앞서 파워링크라고 나오는 수많은 회고록 대행업체(작가)들의 명단이다. 전문가의 손길을 빌어 쓰...

 
2016-10-23 526
104

#104.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하는 사람 _ 박남선 file

얼어붙었던 하늘과 땅이 어느새 온기를 만나 봄의 길과 마주한 계절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삶도 항상 따뜻한 날들만 가득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혹한의 겨울을, 서늘한 가을을 또 뜨거운 여름과 온화한 봄을 느끼곤 합니다. 통상 우리...

 
2017-03-15 526
103

#96. 유난스런 고민 끝내고 오로지 전진만 _ 정유진 file

처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항상 두려움 반 설렘 반입니다. ‘처음’이라는 그 공간만큼 무한한 가능성이 압축된 곳이 또 있을까싶습니다. 시작할 때의 포부와 앞날을 기대하는 마음, 잘 해보겠다는 다짐과 단단한 의지가 담긴 초심만으로 훗날 ...

 
2017-01-21 528
102

#34. D-30! 이제 겨우 남은 30일 _ 송현석 file

한국의 독특한 교육열과 입시문화,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지 않는 속성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천국 입시의 아주 확실한 샘플이기도 하다. 강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를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으니, 이 글을 작성하는 '수능 D-30'의 시점에서 이에 대해 ...

 
2015-10-17 530
101

#150. 부끄럽지 않은 등재 file

어느 날 갑자기 영문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Congratulations on Your Acceptance into Who's Who in the World'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마르퀴즈 후즈 후’라는 곳인데, 나를 2018년도 인명사전에 등재하고자 노미네이트 했고 인명사전에 올리기 전...

 
2018-02-14 530
100

#82. 은혜와 율법주의 _ 김형주 file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집에 가전제품이 저절로 작동하는가 하면, 사람도 없는 엘리베이터가 층층마다 멈추면서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계속합니다. 이런 진풍경이 꼬박 일주일에 한 번씩 하루 동안 세계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얼핏 들으면 괴담에나...

 
2016-10-09 532
99

#128.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_ 홍명진 file

일본의 소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앤드] 1995년판이 집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렇다 못해 아주 진한 갈색 페이지들과 광택은 이미 온데간데없는 탁한 표지였다. 책을 펼치면 딱 '오래된' 종...

 
2017-09-11 533
98

#98. 소통하는 삶 _ 김신웅 file

2017년, 한 해를 새롭게 맞이했다. 회사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익명 게시판을 오픈했다. 한두 사람 용기 내서 말을 꺼내 놓더니, 이제는 제법 탄력이 붙어 거침이 없다. 내용을 읽어보니, 올해는...

 
2017-02-02 534
97

#44. 작심삼일(作心三日) _ 박승현 file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자책도 하고, 2016년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한다. 교육생들의 다짐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 금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최고의 선물. - 王(왕) 복근 만들기. 몸은 40이지만 마음...

 
2016-01-03 539
96

#120. 아직도 꿈이 뭐냐고 묻는 당신에게 _ 강명선 file

최근 들어 가장 당황했던 순간이었다. 남편이 나에게 너는 꿈이 뭐냐고 물었다. 20대 초반에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 기간이 20년이 넘은 시점에 그런 질문을 하다니. 그는 내 꿈이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새로운 꿈을 자랑...

 
2017-07-05 542
95

#132. 다음주에 또 보자 _ 이장식 file

어느덧 하늘은 높아지고 시원해진 가을바람이 분다. 그루터기 쉼터 앞 벤치에 앉아 문득 파란 가을 하늘을 보고 있자니 눈길을 끄는 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올해도 꽃이 피더니 이렇게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구나. 그 과...

 
2017-10-10 544
94

#91. 너무 어려웠던 범사의 감사 _ 김진영 file

 감사는 사전적으로는 ‘①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②고맙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신앙생활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봉사, 찬양 등 다양한 행위로 표현되는 것 같다. 그런데 평강제일교회는 다른 어떤 교...

 
2016-12-15 545
93

#13. 불멸 _ 최주영 file

5월입니다. 영어 이름인 ‘May’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부의 수호신, 봄과 성장의 신, 모든 식물의 성장을 담당하는 여신 마이아(Maia)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피천득은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습니다. 괴...

 
2015-05-09 547
92

#23. 위인전(偉人傳) _ 송현석 file

요즘은 나름 착하게 살아봐야겠노라 스스로 다짐하면서, 누렇게 색이 변하기 시작한 옛날 말씀 노트를 자주 뒤적이게 된다. 이것 또한 작은 습관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니, 괜히 작은 뿌듯함의 스타카토 화음이 귓가에 자주 울린다. 사실 우리가 '빛바랜 ...

 
2015-07-18 548
91

#68. 살아있는 그를 만나는 방법 _ 홍미례 file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합니다. 중학생 때 TV를 통해 ‘죄와 벌’이라는 흑백영화를 보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저는 그를 ‘도선생’이라고 부릅니다. 100년도 훨씬 전인 사람, 눈빛 한 번 교환해보지 못한 사람을 지금도 좋아하는 것은 그가 기...

 
2016-06-26 549
90

#146. 하나님의 나라 file

“2018년은 별로예요. 왜냐하면 18이 있잖아요.” 새 해 첫 어린이예배에 참가한 꼬마가 선생님에게 한 말이었다. 지나가다가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럴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도 올 한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다들 같은 핑계를 대겠구나. 나 역시 17이...

 
2018-01-30 551
89

#18. 유작(遺作) _ 원재웅 file

1. 1685년 독일 중부 아이제나흐에 사는 요한 암브로지우스의 집안에 여덟 번째 아들이 태어난다. 아버지 요한은 거리의 악사였기에 이 아이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우며 자라난다. 아홉 살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가난한 큰형의 집에 얹혀살며 음악 공부...

 
2015-06-13 553
88

#58.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_ 박승현 file

 모든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97년 IBM에서 개발한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꺾었을 때 <뉴욕 타임스>는 ‘바둑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고 ...

 
2016-04-17 557
87

#28. 끝이 곧 시작이라는 말 _ 맹지애 file

헵시바에서의 첫 임원생활이 끝났습니다. 부족한 자녀를 불러주시고, 1년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을 허락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임기가 끝나고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모든 게 다 끝난 것 같고, ...

 
2015-08-29 563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