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6
나라사랑의 달을 앞두고 참평안 1982년 6월호 권두언을 다시 싣습니다.
아침이 오리니 밤도 오리라
여러분, 주 안에서 안녕하십니까?
6월입니다. 6·25의 비극, 한 맺힌 현충일이 있어 피 흐르는 6월, 여러분은 그 나라가 눈에 보입니까?
열일곱, 열여덟, 어쨌거나 서른 안짝 나이에 꽃다운 젊음들이 말없이 숨져갔고, 그들이 뿌린 피는 이 조국 산하를 적셨습니다.
아직 그 피가 채 잦아들기도 전인데 계절의 수레바퀴는 어김없이 제 궤도를 돌아, 6월의 햇살이 다시 뜨겁고 모란이 붉게 핀 것을 보십니까? 계절 속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섭리, 말 못하는 자연이 큰 소리로 사람을 깨우쳐 주고 있으니 잠자던 우리도 문득 깨어 “이미 있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했던 한 지혜자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어제를 까맣게 잊고, 내일을 도무지 내다보지 못하여 온갖 추태를 연출하는 오늘의 군상, 제궤도를 잃어버리고 정신없이 비틀거리는 것은 사람뿐인 것만 같습니다.
불과 30년 전, 이 땅을 피로 물들였던 동족상잔의 비극, 왜 일어났던 것입니까?
그리고 그날에 나의 아버지와 남편, 아이들은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슬기로웠고 얼마나 참되고 용감하였습니까? 그들은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말없이 죽어 그 피로써 그 몸으로써 이 조국 산하를 감싸 지켜주었는데, 우리는 이토록 쉽게 그 피 흘림을 잊었습니다.
6월의 하늘 아래서 오늘의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봅니다.
온갖 간계로써 호국영령들의 그 거룩한 피를 마구 짓밟고 있었으니 피 흘린 영령들의 후손의 모습이 이럴 수는 없습니다. 하늘을 무서워할 줄 모르고 나대기 전에, 붉게 피어 6월의 의미를 가르치는 모란꽃 앞에 부끄러워할 수 있는 겸손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어제 일이 또 내일에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순국선열, 전몰용사, 수많은 호국의 영령들이 차마 잠들 수 없는 이 땅 위에 평안이 깃들일 수는 없습니다. 어서 정신을 차려야만 되겠습니다. 일제 36년과 6·25의 참극이 결코 슬픈 유산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기어코 이 민족을 쳐서 깨우치는 섭리자의 복된 매질이 되어 밝은 내일을 여는 역사가 되어야겠다고, 우리의 선열들은 정성을 다해 살다가 목숨조차 아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분들이 평안히 잠들 수 없도록 자신과 나라를 좀먹는 군상들은 아직도 거룩한 선열들의 피를 마구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빚어내는 민족적 슬픔과 고통은 배도의 역사를 응징하는 섭리자의 손길 같기만 하여 우리의 가슴은 떨립니다. 제2의 6·25의 환상이 어른거립니다.
개인의 출세나 치부와는 전연 아랑곳 없었던 그 거룩한 죽음, 그 충성, 그 정신 앞에 내 가슴을 맞대어 볼 때 후손된 우리의 자세와 할 일이 비로소 분명하여집니다.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군상들이 빚어내는 추악한 일들이 우리를 기죽게 하고 착하게 살아보려는 몸부림에 찬물을 끼얹어도 우리에겐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생명이 있습니다. 선열들의 희생과 전몰용사들의 애끓는 피 흘림이 우리들 가슴에 얼룩져 있는 그것입니다.
더 이상 세태를 핑계 삼아 자기를 잃고 비틀거릴 수는 없습니다. 나약한 자의 가치 없는 회한에만 젖어 있을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역사는 더 이상 선열들의 피의 호소를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을 것도 같습니다.
보십시오. 세계 도처의 사정이 지금 어떠합니까? 전쟁의 불길이 지구의 곳곳에서 치솟고 굶주림과 자원난에 허덕이는 오늘의 세계 형편은 한없이 어둡기만 합니다.
저질러진 전쟁은 극을 향해 달리고 예기치 않은 곳에서 전쟁의 불이 치솟는 오늘인데, 이 땅의 북녘에는 30년 동안 칼을 갈아온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고 그들의 존재를 심상히 여긴다면 그보다 더한 자살행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전쟁은 자고로 외침(外侵)이 아니라, 스스로 불러들이는 재난이었습니다. 북한 공산주의는 세계 어디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잔악한 무리인데 30년 세월 칼을 못다 갈아 남침을 하지 않은 것입니까?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 잘 지켰습니다. 호국영령들의 핏소리 들리는 6월의 대지 위에 옷깃을 여미고 보니 그분들의 넋이, 그분들의 충혼이 이 나라 백성들의 가슴 속에 현현되어 그것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30년 역사를 지켜온 것입니다.
겨울이 가면 여름 오고 여름 가면 겨울 오는 계절의 의미! 역사 속에서 세계를 제패했던 강국들이 정신이 해이해져 음란과 사치를 자제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역사의 겨울을 만나 맥없이 쓰러져버린 역사의 현장, 이것은 곧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말 많고 어지러운 오늘을 사는 우리, 귀 기울일 곳은 오직 6월의 하늘가에 울려오는 선열들의 핏소리뿐입니다.
‘단 하나뿐인 생명 바쳐 내 너를 아껴 지켰노라’ 하시는 거룩한 이 나라의 아버지, 우리의 남편, 나의 아들들의 음성을 듣고, 그 거룩한 뜻에 닿아 가슴이 뜨거워지는 자리, 그곳이 우리가 참으로 다시 사는 자리입니다. 거기엔 나라가 보이고 그 나라의 아들 된 나의 참모습이 보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스며든 선열들의 핏소리를 듣게 될 때에 나라는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 눈을 열어 보게 할 사람, 그 귀를 열어 역사의 소리 듣게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 지금 순교자의 핏소리 듣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피에 영과 혼과 육이 적시어져 있습니까?
이 땅 위의 아우성, 기갈 들려 부르짖는 탄식소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다 까먹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십자가 피의 배도자였던 우리 믿는 사람들의 죗값은 아닌지요!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마 23:35)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책망을 듣지 못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왜 못 봅니까?
저들은 자기네들이 기다려온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마침내 나라를 잃고 2,000년 동안 온갖 수난을 당하면서 6백만 유대인이 학살당하는가 하면 지금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주여 언제 오십니까!” 탄식하며 울부짖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과연 우연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참담한 역사, 그것은 선열들이 흘린 피가 호소하는 역사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한 죄의 댓가 입니다.
지금도 순교자들의 피의 호소가 이 땅 위에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계 6:9-10) 신원하여 주기를 호소하는 순교자의 핏소리가 들립니까?
오늘의 역사, 온 세계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헐떡거리고 혹독한 어둠이 인간의 숨통을 막아 질식시키는 이 현실, 이것 또한 인류가 순교자의 핏소리를 외면해 버렸던 2,000년 역사의 업보(業報)는 아닐는지요.
역사는 깊은 밤을 만났습니다. 인간의 영육이 질식해 버릴 수밖에 없는 어둠의 때입니다.
그러나 이 어둠의 의미! 그것은 아침 해가 동터오기 직전 새벽 미명의 어둠입니다. 역사는 해산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 그 주권을 새역사의 주역, 성도들에게 인수인계 하려 합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사 21:11)하고 부르짖는 온 지구상의 거민들의 절규가 우리의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아침이 오리니 밤도 오리라!”(사 21:12)라고 대답하는 파수꾼의 음성도 들려옵니다.
동터오는 새 아침, 그것은 역사의 밤을 건넌자에게만 밝아오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 밤을 깨어 사는 여러분, 하나님이 6월 속에 찾아 오셔서 묻고 계십니다.
“호국영령들의 핏소리 듣고 있는가?”
“순교자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에 적시어진 가슴인가?”
우리의 가슴 가슴 속에 순교자의 피의 호소 소리 들려오고, 호국영령들의 피 묻은 뜻이 닿아올 때엔, 거기서 그 나라는 개국(開國) 되고, 살고 죽는 것이 없는 우리들은 밤을 능히 이기고 역사의 새 아침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의 눈을 열어 호국영령의 피흘림을 보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눈 못 감고 호소하는 고혼들의 넋을 속히 신원하여 주옵소서.
휘선 박윤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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