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귀가 되자
2025.06.27
시 78:1
(제25-26호)
복된 귀가 되자
시 78:1
성경에서 첫 사람이었던 아담이 죄를 짓게 된 통로는 눈이나 입이 아니라 귀였습니다. 모든 죄는 귀로 들어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나무 열매를 따 먹을 때, 뱀의 말을 귀로 들어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본연의 세계는 복된 귀인데,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들으므로 인류의 귀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독사의 귀’가 되었습니다(시 58:4).
1. ‘복된 귀’는 말씀을 듣는 하나님 백성의 ‘귀’입니다.
시 78:1을 볼 때,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78:1을 원어로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말씀을 듣는 ‘귀’가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날 우리는 ‘복된 귀’가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귀’에 대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만큼 말씀을 잘 깨닫기 위해서는 ‘귀’가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둔다’고 할 만큼 세상이 악합니다(딤후 4:3).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마다 ‘복된 귀’로 말씀을 척척 알아듣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복된 귀’가 되지 못하면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시 58:4). 성경에서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귀머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마 23:33-34). 오늘 본문을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을 잘 듣는 ‘귀’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우리의 ‘귀’는 은혜 받지 못한 ‘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라고(마 11:15, 13:9, 13:43)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겠습니다.
2. ‘복된 귀’는 말씀을 담아 두는 ‘귀’입니다.
눅 9:44을 볼 때,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하시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릇에 아무리 많은 것을 담더라도 바닥이 터져 있는 그릇에는 내용물을 담아 둘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었어도 말씀을 담아 둘 ‘귀’가 없다면 은혜가 남아 있지 못합니다. 이처럼 말씀을 담아 두지 못한 귀는 ‘터진 귀’입니다. ‘터진 귀’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은혜를 담아 두지 못하는 귀입니다(눅 8:13). 제자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따라다녔어도 말씀을 귀에 담아 두지 못해서, 결국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마 26:56). 말씀을 귀에 담아 두지 못하면, 끝날에 마지막으로 선포되는 말씀에 대해서, 스쳐 지나가는 내용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스쳐 지나가는 내용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서, 말씀을 담아 두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믿는 자 앞에는 말씀이 정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를 찾아 달려갑니다(살후 3:1). 초대교회 때, 유대인들이 말씀을 믿지 못하므로 이방인들에게 말씀이 달려갔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이 달려와서 나를 깨우치게 하였으니, 말씀을 담아 둘 수 있는 ‘복된 귀’가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3. ‘복된 귀’는 성경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귀’입니다.
성경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귀는 세상 조건에 대해서는 조금도 듣지 않는 귀입니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세상 조건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성경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귀’는, 말씀을 들을 때 풍성한 은혜가 함께 하는 ‘귀’입니다. 풍성한 은혜 가운데 말씀을 듣는 ‘귀’가 성경의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의 ‘귀’입니다. 또한, 성경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귀’는 명령 전달에 초점이 있습니다. 명령 전달에 초점이 있는 ‘귀’는, 말씀에 대해 은혜 받고 끝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달을 잘 합니다. 또한, 명령 전달에 초점이 있는 ‘귀’는 어떤 핍박과 어려움도 이겨 냅니다. 막 10:29-30을 볼 때,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어떤 어려움 가운데에도 말씀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믿음으로 성경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귀’가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결론. ‘복된 귀’는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노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창 6:5). 그러나 죄악이 관영하여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도 노아는 은혜를 입었습니다(창 6:8).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는 말씀을 원어로 보면, 노아의 ‘귀’가 하늘을 향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대로 찾아옵니까? 말씀을 들을 때, ‘귀’가 하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삼상 3:4-10에서,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엘리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무엘의 ‘귀’는 하늘로 향해 있었지만, 엘리 제사장의 ‘귀’는 하늘을 향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귀’가 하늘로 향해 있는 축복을 받아야겠습니다. 귀가 하늘로 향해 있는 사람의 ‘귀’는 무슨 말씀이든지 척척 알아듣는 ‘귀의 공장’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가운데 우리는 말씀을 척척 알아듣는 ‘귀 공장’이 있을 정도로, 각자의 ‘귀’가 하늘로 향해 있는 축복을 받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