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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상을 받지 못하는 달음질을 하려느냐?

2020.06.15 09:08
본문
삼하 18:19-33

제 20-24호
상을 받지 못하는 달음질을 하려느냐?

삼하 18:19-33


  구스 사람과 아히마아스, 두 경주자의 달음질은 우리 인생이 살아온 삶의 두 유형이고, 두 가지 신앙의 방식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일찌기 사도 바울은 우리의 인생과 신앙의 과정을 ‘달음질’(고전 9:24)로 비유하여 말씀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상을 받는 달음질과 그렇지 못한 달음질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달음질을 통해 깨달아서, 상을 받는 달음질을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아히마아스는 빨리 달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제사장 사독의 아들인 아히마아스는, 일찌기 다윗왕이 압살롬으로 인해 피난 가는 중에, 후새의 모략을 전하여 위기에서 구하는 좋은 일을 했었습니다(삼하 17:17). 그런 아히마아스가 이제 요압 장군에게 부탁하여 전쟁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결코 상을 받을 수 없는 소식이라며 말렸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히마아스는 요압을 설득하여 지름길로 달려가서, 다윗왕 앞에 서긴 섰으나 왕이 원하는 메시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책망만 받고 말았습니다. 

아히마아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속에는 늘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메시지가 살아 움직여야 할 텐데, 오직 빨리 달리는 데만 신경 쓰고 내용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히마아스와 같이 자기의 명예, 자기 욕심, 자기 의지를 가지고 달려가는 사람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 철두철미하게 회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소위 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속도에만 관심을 쏟는 시대입니다. 남보다 빨리 가고, 남보다 먼저 성취해야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세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의 길이보다 그 내용을 보십니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그가 달려온 시간의 길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까?(고전 3:12-15)  

구스 사람은 발걸음은 늦었지만 메시지는 가지고 달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스피드는 있었으나 메시지를 바로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 상관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부끄러운 경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아히마아스는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한 달음질을 하였습니다. 


  구스 사람은 요압 장군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자기의 명예와 이익과 영달을 위해 달음질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은 아히마아스와 같이, 자기만이 알고 남은 다 모르는 줄 압니다. 하지만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 감찰하고 계시는 분입니다(대하 16:9). 아무도 보지 않는 줄 알고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벌거벗은 것이 드러나게 될 때 후회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성도들은 늘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야만 합니다(계 3:18).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을 입지 않고 ‘자기 옷’, ‘자기 생각의 옷’을 입고 마음대로 율례와 법도를 무시하면서 사는 자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마 22:1-14의 혼인 잔치의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결혼 잔치에 초대받아 참석은 했으나 예복을 입지 않아서 쫓겨나고 마는 현실! 예수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였으면 당연히 구속 받은 피의 옷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예복을 갖추지 않은 이 무례한 사람은 자기 멋대로, 자기 본위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는 자”(빌 2:21) 입니다. 바로 아히마아스가 그러한 자였던 것입니다. 자기의 영광과 자기의 기쁨과 만족, 스스로 벌거벗은 부끄러움은 모르고 달려간 사람입니다.


3. 아히마아스는 앞에 있는 고통스러운 일은 생각지 않고, 자기 기쁨만 바라보고 달려왔습니다. 


  아들이 죽었다면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왕에게 소식을 전하는 전령으로서 눈앞에 벌어진 슬픈 현실을 짊어지고자 하는 자세는 없고 그 와중에 자기의 기쁨만 생각한다면, 아히마아스와 같이 책망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1세기의 인물인 사도 바울과 네로 황제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바라보다가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네로 황제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이 땅의 모든 기쁨과 쾌락, 모든 영광을 다 받은 사람입니다. 네로 황제는 자기의 기쁨을 바라보고 달려와, 결국 실망을 발견했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괴로움과 슬픔과 아픔을 뚫고 승리를 찾은 사람입니다. 네로 황제는 쾌락을 거쳐 실패를 맛본 사람입니다. 

후에 바울은 기독교 신학이란 위대한 유산을 남겼지만, 네로 황제는 무엇을 남겼습니까? 흑암과 파괴, 자기 가문과 조국에 슬픔과 죽음만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고통의 십자가를 넘은 자에게만 참기쁨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다운 승리와 기쁨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겠습니다. 


결 론 : 성도 여러분, 나의 경주는 아히마아스와 같은 부끄러운 경주입니까? 아니면 구스 사람처럼 분명한 내용을 가지고 칭찬받는 경주입니까? 빨리 달리는 것보다, 우리 마음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즉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달음질함으로써, 누구한테도 적절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소개하고 증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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