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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

박물관과 나_ 도장

2014.05.03 02:14

박물관과 나_ 도장

고대의 도장들은 대부분 축축한 진흙 덩어리에 눌러 찍어서 그 자국을 남기는 봉인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대의 도장들은 지역에 따라 메소포타미아의 통 도장(cylinder seal), 이집트의 스캐럽 도장(scarab), 그리고 기타 지역의 단순 도장 등으로 분류된다. 납작한 진흙 판에 갈대 펜으로 글씨를 썼던 메소포타미아의 경우,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영수증을 발급할 때 원통형 모양의 인장을 진흙 판 위에 굴려서 연속으로 이어지는 무늬와 글귀가 나타나는 통 도장을 고안하여 사용하였는데 몸통 가운데에 세로로 길게 구멍을 뚫어 목걸이의 펜던트로 사용하거나 반지에 끼워 항상 몸에 소지하였다.  

집안 어딘가에 사용하지 않고 굴러다니는 도장들이 종종 눈에 띄곤 하는데, 싸구려 ‘막도장’부터 고급 상아를 사용한 인감도장까지 종류도 가지가지다. 내 것도 있고, 어머니, 아버지의 것, 심지어는 해외에 나가 있는 동생의 목도장도 있다. 그 가운데 어딘가 낯익은 흰 플라스틱 재질의 도장이 손에 잡혔다. 간편하게 서명으로 통장을 발급받는 요즘과는 달리, 오래 전 통장을 만들기 위해 초등학교 때 만든 나의 첫 도장이었다. 처음 도장을 받아 들고 호기심에 쿡쿡 인주를 묻혀 공책 빈칸에, 지난 달력 위에 그리고 조간신문 밑단 여기저기에 연신 찍어보던 기억이 나는가 싶더니, 이내 나는 그때 그 시절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슬그머니 도장을 찍고 있었다.

하얀 종이위의 빨간 내 이름, 몇십 년간의 긴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선명하게 찍힌 내 이름을 확인하며 첨단 디지털 기기가 넘쳐나는 요즈음 원초적이지만 불멸의 아날로그적인 힘에 내심 감탄하며 도장머리를 쓱쓱 닦았다.

인을 새긴다는 것은 이러한 것이 아닐까? 단단한 어떠한 것에 흔적을 남기는 것, 혼을 다해 새기고 깎으며 없어지지 않도록 남기고 보존하는 것. 새길 때는 분명 쉽지 않고 수고도 많지만 정성껏 공을 들여 꼼꼼히 새기면 이토록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변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남아 절대 소멸되지 않는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딱딱하고 강퍅한 내 마음에 무언가를 새기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영영히 간직하고 보존하기 위해, 그 무엇에도 빼앗기지 않고 지키며 간수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육(肉)의 심비(心碑)에 새길 것을 마음먹는다. 쉬지 않고 마음에 깎고 새겨서 훗날 열방에게 보이고 당당히 증거하여 제자 삼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동안 전혀 관심 없었던 손 때 묻은 나의 첫 도장이 문득 달리 보이는 것은 내 굳은 결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글_ 하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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