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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고 멸시받고 가진 것 없는 3등 인생

2018.02.11 17:06

천하고 멸시받고 가진 것 없는 3등 인생

사도행전 1:6-11, 고린도전서 1:26-29

 

고린도교회는 주후 50년경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세워졌습니다.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고 하죠. 수많은 죄악과 문제를 안고 있는 곳에 바울이 말씀의 폭탄을 껴안고 뛰어들어 전도의 열매로 세워진 것이 고린도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께서 바울을 통해 고린도 교회를 기록하면서 ‘미련하다’는 말씀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원어로 ‘어리석다. 머리가 밝지 못하다. 둔하다’는 뜻입니다. 한참 껌벅이다 불 들어오는 형광등 같습니다. 세상 사람이 볼 때 바울의 복음 전도는 천하의 바보 같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복음이지만 당시 유대인, 헬라인,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일이었습니다. “저 놈들, 저렇게 할 일이 없나?” “그 옷 입은 꼴이 뭐냐? 너나 예수 믿고 복 받아라” 하며 비웃었습니다. 세상은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여기는 유대인,헬라인,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해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변두리 인생,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는 미련한 자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救贖) 경륜입니다.

 

3원색이 있듯 인생도 3개 계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상류층입니다. 돈 좀 있다고 뻣뻣하게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둘째는 중류층입니다. 살만한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하류층입니다. 남들이 꺼리는 궂은 일을 대신 해주며 삽니다. 집에 가봐야 번듯한 살림도 없습니다. 상류층,중류층 사람들은 하류층 사람들이 무식하고 냄새 난다며 눈을 내리 깔며 상대도 잘 해주지 않습니다. 집에 수도가 터져 3등 인생들이 와서 일할 때 안방에 밥상 차려놓고 대접하는 상류층, 중류층 봤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썩어 악취가 나는 사람들을 들어 쓰십니다. 사람은 천하고 무식하고 미련한 사람을 무시하지만 하나님의 경륜은 정반대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스스로 일등 국민이라 자부하고 남들을 지옥의 땔감이라 무시하던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고전 1:23-24).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의 복음이 비위에 거슬리는 것, 거리끼는 것, 구역질나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을 메시아라고 믿고 있으니 어리석다며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고전 1:23)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유대인들은 흉악범들이 매달리는 끔찍한 형틀인 십자가를 기억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왕족인 베냐민 지파에 명문 다소대학 출신이고 정통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지만 그런 배경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에게는 오직 십자가 밖에 없었습니다. 왜 십자가를 자랑한 것일까요.

십자가는 성체(聖體), 즉 거룩한 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입니다(마 20:28). 주님의 생활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성체입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입니다(고전 1:18-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이런 복된 말씀을 상류층, 중류층은 발로 공 차듯 차버렸고, 배운 것 없고 구차하기 짝이 없는 3등 인생들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이요,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처참하게 짓밟히시고, 사정없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시고, 30관(112.5Kg)이나 되는 무거운 생나무 십자가를 걸머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셨습니다. 양손,양발에 다 못이 박혔고 가시관을 쓰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려 피가 서서히 빠질 때 온 몸이 주리틀듯 쑤시고 떨리고 목이 타고 고통스러우셨습니다. 목마르다는 주님에게 저들은 맹물도 주지 않고 신 식초를 가져다 줬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벧전 2:21-24),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빌 2:5-8)였습니다.

십자가는 화목제물입니다. 유대인, 헬라인, 철학자들은 미련한 것으로 봤지만 실상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 때문에 막힌 담을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셔서 허무신 것입니다(엡 2:14, 고후 5:18-21, 골 1:19-23).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킵니다. 십자가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합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종적인 관계, 그리고 인간끼리의 횡적인 관계가 다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십자가 줄로 엮어 매셨습니다(엡 2:11-18).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이신 그리스도입니다(고전 1:18).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인간과 한번 언약하셨으니 그 말씀은 변할 수 없고, 그래서 다른 길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심벌이고 자랑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종착역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제대로 죽지도 못합니다. 처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제대로 죽습니다.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우리 죽음의 종착역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생명의 부활입니다.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영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새 생명으로 부활시켜 주십니다(고전 15:20, 갈 2:20).

 

이러한 십자가가 표적만 구하던 유대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어 성경은 ‘마음이 언짢다’고 번역했습니다. ‘거리낀다’(고전 1:23), 즉 거기에 걸려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지 못하는 영을 주셔서 영육 간에 눈이 멀게 하셨습니다. 헬라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고 어리석은 일, 무식하고 무지한 일로 간주됐지만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됐습니다. 맥 빠지고 세상살이에 속상할 때 길거리에서 십자가를 보면 힘이 생깁니다. ‘옳지, 내가 실수했구나’ 하고 무릎을 칩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지혜가 생깁니다. 사업 잘 할 능력이 생깁니다. 그런 체험을 못했기 때문에 교회 나오라면 망아지 끌려나오듯 끌려나오는 것입니다. 사업할 때도 ‘아, 내가 십자가를 놓치고 살았구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인데 세상에만 몰두하고, 돈 버는 생각에 인격을 빼앗기고 있었구나. 천하에 어리석은 바보였구나.’ 하고 깨닫고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 볼 때마다 새 힘과 능력을 받았습니다.’ 하고 기도하며 다시 사탄을 공격할 생각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1800년대 미국 서부 시대극을 보면 말 12필이 끄는 역마차가 나옵니다. 1등석은 천으로 포장을 쳤지만 3등석은 판자만 쳤습니다. 달리다가 바퀴가 빠져 마차가 멈추면 모자 쓰고 수염 기른 1등석 승객들은 내려보지도 않습니다.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만 꺼내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2등석 승객들은 기웃기웃 하면서 내다보다가 내려서는 팔짱 낀 채로 보고 있습니다. 3등석 승객들은 다릅니다. 곧바로 내려 마부와 같이 바퀴를 갈아 끼우고 끝까지 도와줍니다. 3등석 표 산 사람들은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없다면 마차를 누가 고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표를 사도 3등석표를 삽시다. 괜히 1등석 표 사서 거들먹거리며 다른 승객들 무시하지 맙시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좀 권력도 있고 명예도 있고 가진 자를 통해 일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쥐뿔도 없고 구차하고 땔거리 걱정하는 사람을 통해서 잃어버린 자 찾아오시겠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건데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며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13) 고린도전서 4:9-13절을 영원히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등 인생을 복음을 위해서 죽이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쉽게 깨닫기 어렵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사도들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처럼 여기시고, 그들 중에서도 맨 끝자리에 내세워 세상과 천사들과 뭇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되었고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현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자이고 여러분은 강자입니다. 여러분은 영예를 누리고 있는데 우리는 멸시만 받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으며 집 없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욕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고 우리가 받는 박해를 참아내고 비방을 받을 때는 좋은 말로 대답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인간의 찌꺼기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사역자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오늘 아침 이 말씀 읽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살려고 원숭이처럼 흉내라도 내 봤습니까. 건성으로 예배드리지 마십시오. 1년에 주일 한번도 안 빠져도 52번 밖에 못 나옵니다. 말씀 깨닫지 못하고 졸다 가면 하나님 앞에 올바르고 정당하게 예배 드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왜 이렇게 설교가 안 끝나느냐고 불평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려고 합니까.

세상에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진 것 없고 미련한 3등 인생들을 들어서 오른 장중(掌中)에 붙잡고 쓰십니다. “3등석 표를 산 3등 인생을 내가 들어쓰겠다” 하시니 빨리 3등석 표를 사십시오. 쥐뿔도 없으면서 있는 척, 가진 척, 아는 척하지 말고 “나는 바보다. 가진 것도 없다. 3등석 표도 겨우 살 수 있다” 하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그 겸손한 중심을 보시고 들어 쓰십니다.

 

성도는 바깥을 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행 1:8). 할 일 많은데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만 쳐다보고 있지 말고 땅을 보고 앞을 내다보라는 것입니다(행 1:11). 주님의 제자 된 성도는 춥다고 안방에 처박혀서 창문으로 내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방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가 1970년에 신림동에 200평 되는 교회를 처음 지은 뒤 춤추며 울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주일학교 학생이 20명인데 가르칠 교사가 없었습니다. 교회 온지 얼마 안된 김옥자 집사라는 분에게 아이들 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나는 아이들 가르치는 달란트를 못 받았으니 나에게 말씀하지 마세요” 하고 첫마디에 거절했습니다. 저도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 보니 그 분이 동네 아이들을 두 명 데리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끝나면 아이들을 모두 집까지 데려다줬습니다. 그런 식으로 6개월 동안 30명의 아이들을 데려 왔습니다. 학생이 모두 50명이 되면서 교회에 활기가 차기 시작했습니다. 냉방에 불땐 것처럼 교회가 뜨뜻했습니다. 그러자 반갑게도 두 부부가 주일학교를 맡겠다고 자원하고 나섰습니다. 그 때 제가 깨달았습니다. ‘아, 김옥자 집사는 가르치는 은사는 없었지만 밖을 내다보는 은사가 있었구나.’ 성도는 안에만 있으면 안 됩니다. 불평, 불만, 쓸데없는 말만 많아집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습니다. 5년간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늘 그 식구가 그 식구일 때 김옥자 집사님이 비록 아이들이지만 밖에 있는 생명들을 인도해 온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도한 분입니다.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언제까지 방 구석에서 내다보고만 있습니까. 낚시를 나가야 고기를 잡아올 것 아닙니까.

1942년 연초에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워싱턴DC의 선교사들을 초청해 “여러분이야말로 이 땅의 숨은 영웅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의 이익을 넘어섰고, 가족과 국가의 장벽도 넘어섰고 인종도 넘어서서 멀리 보는 사람입니다.”라고 칭송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강사 무디는 임종 직전 “내가 죽은 뒤 내 동상을 세운다면 두 다리만 만들어 세워달라. 나는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닌 사람이다.”라고 유언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사 52:7). 우리는 언제나 밖을 향해서 뛰는 사람들입니다(나 1:15, 롬 10:15, 마 4:23-25, 눅 4:43, 고전 9:16, 롬 1:14-16, 렘 1:9, 엡 6:15, 욥 3:18-19, 시 39:3).

 

성도는 위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내가 잘 나서 잘 믿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눈을 들어 바라봐야 합니다(롬 8:34, 골 3:1, 히 3:1). 하늘만 쳐다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찬송하라는 말입니다. 전도할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지식과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마음,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위를 향한 믿음의 자세, 정확하고 정직한 자세가 성도의 자세입니다. 1987년 7월 24일 새벽 3시 45분, 91세의 미국 할머니 등반가 헐더 크룩스가 해발 3,776미터인 일본 후지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많은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 정상에서 그녀는 이사야서 2장 2-3절을 암송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殿)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우리는 올라가는 자입니다. 주의 말씀과 하늘 성전을 향해 이 순간에도 거룩한 시온산으로 올라가는 자들입니다. 찬송가 394장처럼 모진 폭풍이 불어도 날개를 펼치고 유유히 바람을 역이용해 날아오르는 독수리를 보십시오. 주를 앙모하는 자는 독수리 같이 올라갑니다(사 40:29-31).

 

성도는 앞만 보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앞의 것을 붙잡으려고 푯대를 향해서 달려간다고 했습니다(빌 3:1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서 가시면서 장막 칠 곳을 찾아주셨습니다(출 13:21-22, 출 14:19-24, 출 40:38, 민 10:34, 민 14:14, 신 1:33). 뒤에만 서 있지 말고 앞장서 나가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남은 고난의 길을 우리가 책임 있게 걸머지고 나아가길 원하십니다(골 1:24). 저를 사랑해 주셨고 제가 존경하던 유명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병세가 악화돼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너 마산에 있던 박윤식 전도사냐?” “예, 목사님. 저를 길러주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알지, 알아. 못 보고 갈 줄 알았더니 보고 가는구나” 하시더니 “늙을수록 예수가 가까워지는 것 알지? 박 목사, 오직 앞일만 생각하라. 72세면 아직 청년이니 새로운 전도 사업을 계획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제자들은 늘 예수 곁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 앞에 좀 서면 어떻습니까. 뒤만 따라다니며 먹을 것 생기기를 바랐습니다. 늘 앞장서시던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도 그 분같이 앞장서야 하겠습니다(막 10:32). 예수님은 언제나 인류의 구원을 위해 전진적 자세입니다. 미래 지향적인 태도, 앞을 바라보는 선구자의 생활이었습니다. 복음은 전진해야 합니다. 교회도 말씀도 전진입니다.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과거를 붙잡고 회상할 시간 없습니다. 새 날을 바라보고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주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엡 4:22-25, 롬 6:3).

 

사람은 성숙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뉩니다.

남만 비방하는 사람은 인생의 유아 상태입니다. 교회 나와서도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남 얘기하다가 누가 오면 안 한 척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밖을 내다볼 줄 모르고 복음을 가지고 전진하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비판하는 사람은 인생의 청소년기 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 내가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분에게는 교육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피곤해하지 않고 앞을 내다보며 사는 사람은 인생의 성인입니다. 집 안에 머물러 있으면 날이 저무는지도 모릅니다. 밖에 나가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곧 닥칠 일을 예측하고 서두를 줄 압니다. 이런 분들이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앙가 우치무라 겐죠에게 배운 뒤 함석헌과 함께 신앙운동을 한 김교신 선생은 “나의 이념은 하나님께 대한 책임감이다. 이 신념만 확실하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사람을 앞을 내다봐야 한다. 이 민족의 앞날을 내다보며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의 꿈을 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하고 가진 것 없고 3등석 표도 가까스로 산 변두리 인생, 그 분이 바로 밖을 내다보는 크리스천입니다. 움직이는 사람, 위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나 위해서 주님이 기도하시는데 내가 왜 낙심하고 근심합니까. 감사하고 밖에 나가서 일할 뿐입니다. 그가 앞을 내다보는 사람입니다(히 3:1, 살전 5:10, 롬 8:18, 빌 1:19-21). 세상의 재물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다 의인을 위해 쌓아두는 재물입니다. 세상이 멸시천대하고 만물의 찌끼만도 못하게 여길지라도 그래도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주인의 오른손에 늘 붙어서 쓰임 받는 바가지가 되시기 바랍니다. 금그릇, 은그릇 있어봐야 1년에 몇 번이나 꺼내 씁니까? 주인이 마음대로 이용하고, 그래서 내 몸이 부서지고 아프고 닳을지라도 희생정신으로 교회를 받들며 보람을 느끼는 신령한 바가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1.23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미국 뉴욕 늘푸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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