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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수난과 부활의 기념교회들

2018.03.25 02:06

예루살렘, 수난과 부활의 기념교회들

 

초대교회의 형성 이후 예루살렘은 약 1,600년간 기독교 최대의 성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성지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그 흔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멸망한 뒤, 예루살렘의 재건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후 132년에 있었던 유대인 2차 반란으로 예루살렘은 다시 멸망 당했고, 로마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모두 추방시키고 로마식으로 재건했다. 이후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과 392년 기독교 국교화를 거치며 거룩한 도시로 격상되었고, 이슬람과 치열한 싸움 가운데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였다. 이 파괴와 재건으로 인해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보다 현재의 예루살렘의 지반이 약 4~8m가량 높아졌을 정도이다. 이쯤 되면 예수님 당시 유적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 교회들을 ‘기념교회’라고 부른다. 실제 그 장소에 세워졌기 때문에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념할 만한 장소에서 기린다는 의미이다. 보는 것은 불신자를 위한 표적으로서 기능할 수는 있지만, 신자에게는 보이는 증거보다 더욱 커다란 믿음의 증거가 있다(고후 5:7, 히 11:13). 예루살렘의 기념교회들을 살펴보면서, 고난주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고난주간 종려주일: 예수 눈물 기념교회

오늘날 예루살렘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자리에는 눈물교회(도미누스 플레비트: 주께서 눈물을 흘리다)가 세워져 있다. 교회의 제단에는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는 모자이크가 놓여져 있으며, 교회 정면의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은 가시덩굴 무늬를 두르고 가운데 성묘(聖墓)교회 위치에 십자가가 표시되어 있다. 교회 지붕 사면에는 눈물 모양의 길쭉하고 둥근 돌 형상을 올리고, 교회 전체적인 모습도 눈물방울을 형상화해서 만들었다. 특별히 이 교회 앞에는 가시면류관을 만들던 가시나무를 심어서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 너머 베다니와 벳바게에 도착하신 후, 나귀와 나귀 새끼를 데리고 오게 하시고 그 위에 타고 감람산 정상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셨다. 축제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자신의 겉옷을 내려놓았다. 비록 볼품없는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이시지만, 사람들은 왕의 입성으로 여기며 기뻐하고 노래를 불렀다. 감람산 정상을 지나 내려가는 길이 시작되자, 제자의 온 무리는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 영광이로다”라며 소리를 질렀다(눅 19:38). 누구도 그들의 환호를 막을 수 없었다(눅 19:39).

내리막길을 걸어가 감람산 중턱에 도착하면 예루살렘 온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무리들의 환호는 정점에 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순간, 입성하시는 왕의 눈물이 터져나왔다. 예수님께서는 성을 보고 그저 눈 물을 흘리신 정도가 아니라, 대성통곡 하셨다(헬라어 ‘클라이오’(κλαίω), 참고-눅 7:32, 8:52, 22:62). 군중들의 환호는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예수님의 눈과 사람들의 눈은 완전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제자들과 군중들에게는 당시 로마보다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유일한 도시, 타오르는 태양을 반사하며 황금빛으로 빛나는 예루살렘이 보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주후 70년 로마의 공격으로 비참하게 멸망당하는 예루살렘을 보셨다. 군중들은 예수님의 입성을 보며 로마를 정복하는 군사적인 메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절대 순종의 어린양이 되셔서 대속제물의 길을 걷고 계셨다. 예수님의 눈에는 5일 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악을 쓰며 외치는 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참 평화의 일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이 그들에게 숨기웠음을 안타까워하시며 예루살렘의 비참한 멸망을 예고하셨다.

 

고난주간 목요일: 겟세마네 기념교회

눈물교회에서 감람산 아래로 좁은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벽면에 작은 기념비가 보인다. 이 기념비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를 향하시는 길에 제자들끼리 ‘누가 크냐’며 싸운 곳을 기념하는 장소이다(눅 22:24-30). 예수님께서는 만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겸손의 왕으로서 나아가셨지만, 여전히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세상을 정복하는 인간적인 제왕으로 생각되었다. 제자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면 누가 더 높은 권세와 힘을 가지는지만 관심을 가지고 서로 헐뜯고 싸우는 어린아이 신앙이었다.

 

감람산 아래 겟세마네 동산에는 겟세마네 기념교회(만국교회)가 세워져 있다. 본래 이 자리에는 비잔틴 시대 때 겟세마네 기도를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졌었지만, 수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다가 1919년 16개국의 성금을 통해 재건이 시작되어 1924년에 완공되었다. 만국교회 앞 작은 정원에는 아주 오래된 올리브나무(감람나무) 8그루가 있는데, 그 나이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올리브나무는 수명이 200~1,000년 정도인데, 수명이 다해도 나무 본체 뿌리에서 새순이 나와 다시 자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심지어 갈릴리에는 주전 331년에 있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시에도 살아 있었던 약 2,300년 이상 된 올리브나무도 발견된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의 디도 장군이 주후 70년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감람산 전역의 올리브나무를 모조리 작벌했다고 한다. 만국교회 앞의 올리브나무가 그 때 살아 남았던 나무라면, 이 나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목격한 나무들일 수도 있다. 교회 안쪽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자리라고 알려진 평평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을 상징하는 울타리와 예수님을 위로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둘러싸고 있다.

 

 

헬라어 ‘겟세마네’(Γεθσημανεί)는 ‘기름 짜는 틀’을 의미하는 아람어 ‘가트 셰마네’(ינמש תג)에서 유래하였다. 감람산에서 채취한 올리브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기 전, 겟세마네에 들려 올리브를 짜는 과정을 거쳤다. 당시 올리브유는 큰 바퀴 모양의 연자맷돌을 올리브 위에 굴려가면서 으깨어 짜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리실 때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으깨진 올리브의 심정으로 눈물 흘리며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주간 목요일, 습관을 좇아 겟세마네에 나아가셔서 기도하셨다(눅 22:39). 여덟 제자는 감람산 아래에 두시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을 데리고 가셨다. 이들을 돌 던질 만한 거리에 머물러 깨어 있게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육체와 마음, 영혼까지 기름을 짜내듯 구속 사역의 완성을 놓고 간절하게 기도하셨다. 특별히 예수님의 기도는 ‘가까이 나아가는’ 기도였다(마 26:39, 막 14:35). 이천 년전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기 위해 여호와 앞에서 더 ‘가까이 나아가’ 기도하는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창 18:2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시며 더욱 힘써,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이다(눅 22:44). 마태복음 26:39의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온몸을 땅에 붙이고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에 비벼가면서 간절하게 기도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눈물로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기도해야 할 세 제자는 모두 잠들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때가 되었으니 일어나서 함께 가자” 부르셨다. 그리고 자신을 잡기 위해 살기등등하게 올라오고 있는 대제사장과 로마 군인들, 가룟 유다를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셨다.

 

고난주간 금요일: 성묘교회

성묘(聖墓)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과 예수님의 무덤을 기념하여 세워진 기념교회이다. 사실 이곳이 실제 골고다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교회가 예수님 당시 성벽 밖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훨씬 후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교회까지 가는 길과 교회 내에 보존한 각 유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받으신 수난의 걸음을 묵상할 수 있다. 성묘교회로 들어가기까지 길은 아랍인 상인들로 가득한 시장 통이다. 거룩하고 고요한 성지 답사를 꿈꾸며 방문한 신자들은 시장길에 위치한 비아 돌로로사 길을 지나며 적잖게 놀란다. 그러나 놀라기보다 무섭도록 확실한 고증이라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신 길은 숙연하고 엄숙한 길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욕하고 소리 지르는 온갖 인간 군상 사이로 놓여진 길이었다.

성묘교회는 카톨릭과 그리스정교회, 시리아정 교회, 이집트 콥틱교회, 에디오피아 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여섯 종파가 분할해서 관리하고 있다. 덕분에 그 안은 각종 종파에서 온 순례객들로 항상 인산인해를 이룬다. 교회 내에는 골고다 언덕이었다고 부르는 언덕을 볼 수 있는데,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건 가운데 교회 지대가 높아지면서 지금은 언덕의 윗부분만 일부 볼 수 있다. 성묘교회 정중앙에는 커다란 무덤 건물이 지어져있는데, 이 건물은 빈 무덤이 있던 동굴을 제외하고 나머지 돌들을 파낸 뒤에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신약 시대 동굴 무덤의 터가 남아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형 선고를 받으신 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오르셨다(참고로 ‘골고다’는 히브리어 ‘골고타’의 음역이며, ‘갈보리’는 라틴어 ‘갈바리오’의 음역이다). 마태복음 27:33, 마가복음 15:22, 요한복음 19:17 모두 골고다를 ‘해골’이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에 공동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과 이 언덕이 해골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골고다 언덕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지만, 전자가 보다 정통적이고 성경적인 견해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을 ‘영문 밖’이라고 표현했다(참고-히 13:13). 예수님 당시 골고다 언덕은 예루살렘 성문 바깥에 있는 채석장의 바위 언덕으로서, 성문 바로 옆에 위치했다. 성문 옆에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처형함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경계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채석장의 바위 언덕은 약 4m 정도 높이로 별로 높지 않았는데, 로마군은 이 언덕에 십자가를 세워 많은 사람에게 죄인의 죽음을 적나라하게 보이려고 했다.

 

십자가에 달린 사형수는 최악의 고통을 겪는다. 십자가에 달기 위해 사용하는 못은 약 15cm 이상의 우둘투둘한 못으로 인간의 중추신경이 집합된 손과 발에 못을 박는 것도 끔찍한 고통이었지만, 못에 박힌 뒤에는 체중으로 인해 상처가 서서히 찢어져나가고 어깨뼈가 탈골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가슴에도 체중이 가해지면서 폐와 횡격막을 강제로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었고, 숨을 내쉬기 위해 몸을 들면 못 박힌 발이 찢어지는 끔찍한 고통이 엄습하게 된다.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십자가형을 받은 사형수는 약 1,000번 정도 기절과 깨어남을 겪으면서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상태를 적어도 하루 이상을 겪어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십자가에 달린 죄수를 그냥 두면 약 사흘까지 고통을 당하다가 심장이 터지거나 쇼크사, 혹은 질식사로 죽었다고 한다. 또한 십자가에 달린 사형수는 최악의 수치를 겪었다. 십자가 형벌 전에 로마군은 채찍질을 가하고 죄수의 옷을 모두 벗겼다. 십자가에 대한 성화는 감히 나체의 예수님을 그릴 수 없어서 수건으로 가려서 표현하지만, 실제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성문, 그것도 멀리서도 보이도록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리셔서 벌거벗겨지는 수치를 당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극악한 형벌이었기에, 로마인들은 법정 최고형으로 십자가를 지정하였으며, 로마 시민권자에게는 십자가형을 받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였다. 십자가 사형수의 가족들은 차라리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채찍질을 통해 죽여 달라고 로마군에게 뇌물을 줄 정도였다. 로마군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추가로 씌웠다. 가시 면류관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가시나무에는 약 10~15cm에 달하는 굵고 날카로운 가시가 자란다. 이 가시를 묶은 가시관은 단순히 피부를 찌르는 수준이 아니라, 살을 뚫고 뼈를 찔렀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십자가의 형벌은 실로 만인간의 죄를 걸머지시고 받으신 최악의 고통이었다.

 

부활 후 40일째, 예수 승천 기념교회

감람산 정상으로 다시 올라가며 아랍인 마을을 지나다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장소라고 전해지는 승천교회에 도착한다. 본래 이 교회는 지붕을 개방하여 하늘을 볼 수 있게 만들어졌지만, 1187년 이슬람이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모스크로 만들기 위해 돔 형태의 지붕을 씌웠다. 교회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남기신 발자국이 찍혀 있다고 전해지는 바윗돌이 있다.

이러한 전승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성경의 묘사와 차이가 있다. 누가복음 24:50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다니 앞에서 승천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사도행전 1:12에서는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돌아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감람산을 지나면 먼저 벳바게가 나오고, 벳바게를 지나가면 베다니가 나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은 감람산 정상이 아니라, 벳바게를 지나 베다니를 향하는 노중이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후 다시 벳바게를 지나 감람산을 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따라서 감람산 정상은 예수님의 승천이 실제로 있었던 장소라고 할 수 없다. 바윗돌에 새겨진 발바닥 모양 역시 십자군 시대에 있었던 전승에 의거한 것일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총 10차례 보이셨고, 마지막 11번째로 부활하신 지 40일 후 예루살렘 가까운 베다니 앞까지 무리를 데리고 나가셔서 손을 들고 축복하신 뒤 무리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셨다(행 1:4-11, 눅 24:50-53).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는 장면을 자세히 보려고 쳐다보았다. 이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의 곁에 나타나 서서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라며 제자들을 일깨워주었다(행 1:10-11). 만약 이것이 ‘하늘로 올라가신 그 자리에 하늘에서 다시 내려오신다’라는 의미라면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라고 묻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성지의 정확한 장소나 방문이 신자의 구원의 방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 말씀하신 대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성경대로 사시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셔서 성경대로 승천하신 그대로 재림하신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이다. 우리는 성지를 자세히 쳐다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기념교회들을 통해 성경대로 이 땅에서 일하셨던 예수님을 묵상하며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글·사진_예루살렘=정디모데 전도사

삽화_박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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