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 성도의 승리 비결
마지막 때 성도의 승리 비결
단 6:10, 눅 21:36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 6:10)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6)
하루에도 끝이 있고, 한 해에도 끝이 있습니다. 사람도 한 번 났다가 죽는 날이 있습니다(히 9:27).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지 않고 사는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에녹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이 땅에서 살았습니다. 마음 상하는 일, 화나는 일, 성질 부릴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를 다 지켰고 그 결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증거를 받아 산 채로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엘리야도 죽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올라갔고(왕하 2:11),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감람산에서 5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남자만 5,000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2만 명의 군중을 물고기 2마리, 보리떡 5개로 먹이셨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요 6:11) 축사(祝謝), 즉 감사 기도하신 것입니다. 감사가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원하는 대로 나눠준 뒤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12 바구니였습니다. 부스러기 하나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감사 기도의 결과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까지 예수님 믿으면서 몇 번이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까. 가정도 사업도 그저 그렇고, 은행 빚, 카드 빚은 늘어가고, 자식은 속을 썩이니 감사 기도가 나오겠습니까. 감사가 없으니 기도가 투덜대는 데 그치고 맙니다. 감사 기도를 드리지 않으니 응답 받지 못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성경을 1,700번 이상 읽었습니다. 성경에 감사 없이 기도해서 응답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브라함, 다윗 왕, 솔로몬 왕 모두 감사 기도를 드렸기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속이 상하고 심통이 벌벌해 황소 눈을 뜨고 불평불만, 원망하는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응답받겠습니까. 참 기도는 호흡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안 하면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냥 마음에 ‘되겠지’ 하는 것은 천하에 금물입니다. 어떻게 믿는 성도가 ‘되겠지’만 하고 있다는 말 입니까. 하나님은 “생선을 달라는데 너희에게 뱀을 주겠느냐” 하십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되고, 두드리면 문을 열어 준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니엘은 BC 605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1차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성경은 이 일을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불쌍한 포로의 몸으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셔서 3인의 총리 중 하나로 세우신 뒤에도 매일 세 번씩 집에 가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드렸습니다.왕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 다니엘을 다른 두 총리가 시기해 음모를 꾸몄습니다. ‘지금부터 30일동안 왕이 아닌 어느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금령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감사입니다. 성도 여러분. 수십 년 믿었는데 집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 감사가 빠진 것 아닙니까? 감사가 빠지면 응답이 솜털만큼도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면서 간구하고, 마지막에 또 감사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감사 없이 무조건 달라고만 합니다. 하나님이 인격의 하나님이신데 그것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감사하며 기도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져 주시고, 오히려 흉계를 꾸민 대적들을 사자굴에 집어넣어 진멸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소년 때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 그리고 메대의 다리오 왕과 바사의 고레스 왕까지 제국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계속 총리를 지내며 고레스 왕 3년까지 90세가 넘도록 왕을 모셨습니다(단 6:28, 10:1). 세계를 제압하던 패권국가의 정치 무대 속에서 이방인 다니엘이 어떻게 그렇게 높이 평가받고 존경받았습니까. 감사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 기도가 없으면 안 됩니다. 원망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잘 못 해 놓고 누구 만나서 그렇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다니엘 선지자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경건한 생활입니다. 경건은 속된 생각을 끊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것, 세상 생각을 끊으십시오. 이것이 경건의 첫째 조건입니다. 경건은 오로지 하나님께 자기를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십니다. 나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저를 어떻게 쓰시든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생활 전체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에녹 선지자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고전 10:31-33, 롬 14:7-8). 그런데 이 모든 것에 감사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은 감사가 있는 제물은 받으셨지만 습관적으로 남이 하니까 드리는 제물은 받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제물을 바치고도 욕만 먹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 갈 때까지 감사해야 합니다. 죽는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눈 앞에 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감사했습니다. 감사하실 때 천사가 와서 기진맥진한 예수님을 도왔습니다(눅 22:42-43).
우리의 모든 생활이 감사가 돼야 합니다. 부모님에 대해서도 감사하십시오. 낳으시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면서 자식이 속 썩이고 거짓말해도 모른척하면서 도와주고 길러주신 어머니 사랑을 감사하십시오. 먹을 것 하나 생겨도 아들딸 주려고 아끼고 감춰뒀다가 자식을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뜨거운 사랑에 감사했습니까. 뼈가 아플 정도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지 않았습니까. 부모에게 감사가 없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도 그런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감사 없이 기도하니 응답도, 만족도, 기쁨도 없고 교회 오가며 교통비만 없애는 것입니다. 늘 얼굴이 밝지 못하고 어두움의 구름이 끼어서 40,50,60,70세가 됐으니 이러다 병들어 죽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천하의 바보가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 믿는 것은 이익을 보는 일입니다. 천국 가는 티켓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다 돈으로 통하지만 하늘나라는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습니다.
경건하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딤후 3:12).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밤낮 뚱한 마음으로 남을 비판하고 저주하고 싫어하고 남 탓만 하는 마음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기도는 끝까지 드리지도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르고 나면 캄캄합니다. 하나님께 아뢰어야 할 것도 잊어버립니다. 그러다 옆사람 기도 끝나면 같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실 때 얼마나 가련하겠습니까. 반면 경건한 자는 천국에서 보상해 주십니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4:13). 감사가 없으면 주 안에서 죽지 못합니다. 장로,권사,집사 아니라 목사,신학교 교수라도 감사 없이 죽으면 주님 밖에 있는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0년 동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하며 하나님을 불렀지만 예수님이 오시니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모두 껍데기, 거품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경건한 자는 천국이 보상한다고 하셨으니 교회 와서 일했는데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된 것입니다. 경건치 않은 자, 감사가 없는 자에게는 심판밖에 없습니다(벧후 2:5, 창 7장). 늘 감사하십시오. 사탕 하나 먹어도 감사하십시오. 물마실 때도 감사하십시오. “왜 물이 이렇게 맛이 없어?” 하면 물이 정말 맛이 없어지고 나에게 병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받은 네가 믿는 내 속에 들어오는구나. 감사하다’ 하고 먹으면 음식도 감사하고, 나도 감사하고, 서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 19:2-4)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다 들어있으니 우리는 말조심해야 합니다.
감사가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삽니다. 죽어도 하나님 품으로 갑니다. 감사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밖에 없습니다. 감사가 아멘,할렐루야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고 하셨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나는 전능한 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 없이 살아라”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직장 생활하고. 친구 만나고, 먹고 마셨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지 못하면 죄짓는 것입니다. 자기 배우자가 앞에 있다면 다른 남자,여자와 눈 맞추고 농담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 욕심 부리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더 무서워했습니다. 30일의 큰 시험 속에 ‘하나님, 내 중심 아시지 않습니까. 이 30일간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목이 달아나니 30일만 봐주십시오.’ 하지 않았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갈 줄 알고도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였습니다. 왕보다 하나님을 더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 이것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자식과 부모,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왕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려는 그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너무나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노력이나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있을 때 경건한 아내를 얻고 경건한 자식을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여기며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그 외의 것은 다 장애물, 귀찮은 존재, 가시와 엉겅퀴, 잡초처럼 여겼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로마 시민권자, 최고의 교육을 받은 율법주의자, 헬라 철학까지 섭렵한 지식인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미련도 후회도 없이 다 버렸습니다. 이 원동력이 바로 감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제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들은 나도, 다니엘처럼 바울처럼 결단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겠다는 결단을 했습니다. 포로로 왕궁에 잡혀간 소년에게 그런 결단이 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 결과 얼굴이 빛나고 머리가 맑아져 바벨론의 술객보다 지혜가 10배나 많아졌습니다 (단 1:20-21). 뜻을 정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삶을 살려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감사가 있으면 경건이 따라옵니다.
경건하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의 승리의 비결은 무릎이었습니다(행 20:36, 9:40, 21:5, 눅 22:41, 엡 3:15-16, 왕상 8:29,48) 잘 다린 바지가 구겨질까 봐 무릎 꿇지 않고 의자를 찾아서 앉아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솔로몬 왕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 백성들이 놀랐습니다. 손을 들고 ‘이 나라를 맡깁니다. 이 나라를 붙잡아 주십시오.’ 하면서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왕상 8:22- ). 오늘날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다면 수많은 카메라가 그 무릎을 찍지 않겠습니까.
감사하며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왕상 8:22, 38, 54, 35, 시 28:2, 143:6).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정해진 처소에서 기도했습니다. 그 처소는 자신의 집의 골방이었습니다. 집이 왕궁 바로 옆도 아닌데 일국의 총리가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가서 기도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세 번씩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루에 한 번만 해도 장하다며 자랑할 판입니다. 우리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기도의 골방이 있어야 합니다(마 6:6). 기도의 골방에 언제, 얼마나 자주 들어가고 있습니까.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았던 사무엘 선지자를 기억하십시오(삼상 12:23). 기도 안하면 죄입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믿지 않는 남편과 아들딸의 눈을 피해 늦게까지 일하는 척하면서 차가운 부엌에 쪼그려 앉아 기도하던 모습을 보십시오.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이시니 기도의 골방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하고, 무릎 꿇고, 결심하는 신앙! 결심하면 변하지 마십시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반드시 여러분의 소원대로 축복이 이뤄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06년 5월 24일 수요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