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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

2018.05.12 01:09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
롬 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1-14)

시간은 인간의 감정과 행복, 불행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시간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달력의 시간으로, 지구의 자전과 공전, 태양과 관계되어있는 천문학적인 시간입니다. 두 번째는 생물학적 시간으로, 모든 생물에게 부여되어 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따라 기러기는 때가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해 한국을 찾고, 연어는 태어난 곳을 찾아와 알을 낳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대가 다함이 없으시기에, 늙음과 죽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달력의 시간과 생물학적인 시간에 따라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마침내 늙고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관점에서 구원이란 나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시간을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모든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내 권리로 차지하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부르실 때 하던 일을 다 중단하고 부르심의 응답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붙잡는 복된 역사가 신구약의 핵심 사상입니다. 그런 자세로 살아가는 신앙인은 하루를 살아도 감사가 넘치고 시간의 길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너는 단 한 번 산다
“사람은 얼마나 삽니까?” 이 질문에 사람은 “70-80년 산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단 한 번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은 70-80년이 아니라 단 한 번인 것입니다. 길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이라는 시간 뭉치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 동안 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살피는 것이 하나님의 시간 관념으로 사는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업에 대해서 “시간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여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질문에 하던 일을 즉각 다 중단하고 부름의 응답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간을 붙잡는 방법입니다.
만인간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33년을 사셨습니다. 33살이면 젊은 청년입니다. ‘꽃다운 청춘에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적다’ 하며 시간의 길이를 두고 왈가왈부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온갖 고초를 당하시며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라고 기록했습니다(벧후 3:8).

미국에 윌리엄 필이라는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사형 집행일이 다가왔는데 그날이 마침 썸머타임을 실시하는 날이었습니다. 간수들은 난감해 하다가 윌리엄 필에게 원래 계획된 그 시간에 사형을 당하겠느냐, 아니면 썸머타임대로 한 시간 늦추겠느냐 물었습니다. 윌리엄 필은 왈칵 눈물을 쏟으며 한 시간만 늦춰달라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그 삶의 애착을 보십시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한 시간이 늦춰졌어도 사형이라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필은 한 시간이라는 시간의 길이에 눈물을 흘렸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야 비로소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단한 번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시간을 속량(贖良)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나의 시간’이라고 길이를 따지던 모습이 있었다면, 이제 단 한 번이라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바꾸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너에겐 너의 시간이 있다.
“시간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인생은 시간이 없다고, 바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에게 너의 시간이 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 말하는 것은 나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있는 시간을 다 쓰고 남은 시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시간을 몽땅 가로채고 하나님의 시간을 도둑질하겠다는 심보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시간을 횡령하는 것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법으로 지정하시고 7일 중에 6일을 우리에게 주시고 제7일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일마저도 지키지 않고 지나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시고 최후에 전 우주와 세상 만물까지 심판 받는 종말에 대해 방대하고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마 24:1-25:46). 시간이 없다고 하시거나 바쁘다고 핑계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바삐 움직이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며 스케줄을 정리하는데 야단입니다. 다이어리, 핸드폰, 컴퓨터, 수첩 등 보이는 곳마다 스케줄을 정리해서 열심히 수놓고는 합니다. 인생이란 어쩌면 이렇게 날마다 스케줄을 배회하면서 그 스케줄의 회전 속에서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것은 나의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살기 위해서는 내 시계를 버리고 하나님의 시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시계를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스케줄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계를 바라보며 그 시계에 내 인생을 맞추어 시간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계에 나의 인생을 맞추어 사는 삶입니다.

 

너의 시간이 끝났다.
“시간이 남았습니까?” 이 질문에 인생은 “내 시간이 얼마만큼 남았다” 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의 시간이 끝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지금 내 나이가 30살이니 앞으로 40-50년은 살겠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연약한 인간에게 그만큼 어리석은 말도 없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누가복음 12:16-21에서는 어리석은 부자가 자기 창고에 쌓아둔 곡식을 보면서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기뻐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내가 오늘 네 영혼을 찾아오게 되면 네가 준비한 것은 누구 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하지 못하고 자기에 대해서 부요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정해진 수명이 있다는 운명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능(大能)의 손이 우리의 영육을 붙잡아 둘 때에만 세세 무궁토록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의 제약이 있습니다. 농구나 배구와 같은 운동경기에서는 작전타임이 있어서 잠시 경기를 멈출 수 있습니다. 후반전이 있고 2차전, 3차전이 있어서 막판에 역전할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경기장에는 작전타임도, 후반전도 없습니다. 시간은 저축할 수 없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면 뭐든지 사고 파는 인간이지만, 시간 은행, 시간 시장은 없지않습니까? 아무리 많은 백화점이 있어도 시간을 파는 백화점은 없습니다. 잊어버린 물건을 찾을 수는 있지만, 지나버린 시간은 다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니까 내 시간을 조정하고 마음대로 요리하려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감사하고,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자손만대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루를 계산하면서 여러분의 생애를 마무리짓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제는 이미 나에게 무효의 수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아직 약속어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하루만이 현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에 24매의 현찰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현찰은 오늘 하루만 사용할 수 있고, 내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주신 현찰은 우리가 가치 있게, 보람 있게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공헌할 만한 선한 일을 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라고 말했고 “너희가 이때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시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롬 13: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나의 남은 생애의 첫날이다’하는 신앙자세로,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진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연대가 다함이 없습니다. 그러한 시간 속에 살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시간으로 이사 가서, 세세 무궁토록 연대가 다함이 없는 그 세계에서 여러분의 생명이 무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997년 6월 3일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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