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은혜의 찌르는 가시
하나님 은혜의 찌르는 가시
겔 28:20-24, 고후 12:1-10
사도 바울은 은혜의 최고봉을 향해 달리는 사도였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는 신비로운 체험을 했으며, 셋째 하늘까지 올라가 그 세계를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스스로도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며 그 계시가 지극히 크다고 말씀하였습니다(고후 12:1-5).
그런데 이와 정반대로 바울에게 큰 고통,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본문 고린도후서12:7절에서는 이 가시를 ‘사단의 사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단은 밤낮으로 성도들을 참소하고 파괴하고 시험하는 자입니다. 성도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자신 속에 두셨다고 사도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고통이요 아픔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는 사도 바울의 교만을 미연에 방지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은혜의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사단의 가시’를 두셨습니다.
사단은 성도의 대적자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욥 1:6-12, 계 12:9). 밤에 곡식 밭에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요(마 13:39), 밤낮으로 성도들을 참소하는 자(계 19:9-10), 파괴자(계 9:11), 시험하는 자(마 4:3), 무저갱의 사자(계 9:11)입니다. 귀신의 영(마 12:24), 처음부터 살인한 자이자 거짓의 아비(요 8:44)입니다. 성경은 그런 사단마귀가 지금 이 세상의 임금,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12:31, 14:30, 16:11, 엡 2:2, 히 2:14, 고후 4:4, 엡 2:2, 6:12).
이러한 사단의 속성을 가진 것이 가시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이나 환난을 가리키며, 신약성경에서는 바울이 가졌던 육체의 가시로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사단의 가시는 바울을 쳐서 넘어트리려고 하는 원수의 정체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마음의 고통과 외적인 환난, 병고까지 겹쳐서 모든 일에 찌르는 가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괴로운 사람이다! 누가 나를 이 죽음의 육체에서 구할 것입니까’ 하고 로마서 7:24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가시에 찔리면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아픕니다. 요한복음 19:5를 볼 때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것을 ‘저주의 표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가시가 저주의 표상입니까? 창세기 3:17-19를 볼 때,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뒤,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타락 전 세계에서는 만물이 인간 앞에 순종하였지만, 타락 후 세계에서는 가는 길마다 험난한 가시밭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육체의 가시를 이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생활에, 직장과 사업에, 국가에 가시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주님의 가시 면류관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주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에, 우리에게도 승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닭 우는 소리가 가시가 되었습니다. 그는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주님을 부인했던 일을 기억하며 괴로워하였습니다(마 26:69-75). 모세에게도 광야에서 순간적으로 분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던 실수의 가시가 있었습니다(민 20:1-13, 27:14, 신 1:37, 3:26, 32:51). 로뎀나무 아래 웅크려 숨은 엘리야 선지자에게도 연약한 가시가 있었으며(왕상 19장), 위대한 사무엘 선지자에게도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뇌물을 취하며 판결을 굽게하는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의 가시가 있었습니다(삼상 8:2-3). 아브라함에게도 한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하갈을 취했던 약점의 가시가 있었습니다(창 15-16장). 사라에게는 하갈이라는 이방 여인 가시가, 이삭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개인뿐 아니라 어떤 조직 기관에도 가시가 있습니다. 국가에도 가시는 있는 법입니다. 가나안 땅의 거민들을 다 쫓아내지 못한다면, 그 남겨둔 자들이 눈에 가시,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민 33:55). 이는 이스라엘 전체에게 주신 국가적인 가시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개인의 가시나 어떤 단체의 가시든지 당사자에게는 매우 괴로운 것입니다. 마음속의 고통도 어려운 것이지만, 육체의 가시도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 가지 가시로 인해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는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이유를 깨닫고 그 뜻대로 합당한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서 가시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졌던 높은 학문과 많은 지식, 그리고 그가 가진 신비한 영적 체험이 그를 교만하게 만들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가시가 찌를 때마다 낮아지는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40년간 바로의 궁에서 자라며 애굽의 모든 지식을 통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살인자의 신세로 미디안 광야에 도망가서 40년간 처가살이라는 가시에 찔려가며 겸손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가시를 주셔서 하나님의 종들을 겸손하게, 낮아지게 만드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잠 16:18), 인류가 최초로 지은 죄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만의 문턱에서 믿음으로 가시를 택함으로서, 하나님 앞에 끝까지 온전케 설 수 있었습니다. 반면 두로 왕은 세상에서는 위대한 왕으로 칭송 받았지만 그의 교만이 파괴와 멸망을 가지고 왔습니다. 에스겔 28:1-10에서는 두로 왕의 교만으로 인한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두로 왕의 마음 속에 있는 마귀가 바로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난 자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심지어 자신의 지혜가 다니엘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28:24-26에 기록된 시돈의 멸망 역시 교만의 결과였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교만의 결과는 패망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잠 16:18, 눅 18:14, 약 4:6, 벧전 5:6). 가시가 있을 때 교만을 피하고 도리어 겸손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가시를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10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시에 찔려 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가시에 찔리는 순간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순간인 것입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도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형제들의 미움의 가시, 애굽의 종으로 팔리는 수치의 가시, 보디발의 아내의 험담의 가시에 찔리고 마침내 옥에 갇혀 온 몸이 가시투성이가 되었지만, 도리어 이러한 가시를 통하여 신앙인격을 완성시켜 나갔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동족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사명자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십니다. 가시에 찔리고 찢겨져 피를 흘리십니다. 그러나 그 피는 사망의 피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없이하여 주시는 보배로운 피입니다. 가시에 찔려 피 흘리시는 순간에 하나님의 영광이 온천하에 선포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가시 앞에 곤고를 당했습니다(고후 12:10, 고후 8:13, 롬 8:35). ‘곤고’(困苦)는 곤할 ‘곤’에 쓸 ‘고’로, ‘곤란하고 괴로운 상태’를 가리킵니다. 인생 중에 곤고의 처지에 놓여있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고통을 망각하기 위해 고행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곤고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중생을 통하여 완전한 생명으로 고난을 이겨냅니다. 가시를 떠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를 정복하고 가시로서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픔과 쓰라림 가운데 가시를 빼달라고 세 번씩이나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대답은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고후 12:8-9). 우리는 가시가 떠나가기를 기도하지만, 오히려 가시를 은혜로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감사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릴 때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뜻을 이룩하기 위해 주신 가시를 내쫓지 마십시오! 가시가 있어야 일을 하게 됩니다. 가시가 있어야 기도하게 됩니다. 가시가 있어야 신앙 생활에 참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안일하고 편안해지면 도리어 죄가 들어오고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가시가 무엇입니까? 그 가시가 믿음으로 승리하는 가시, 도리어 축복의 가시가 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00년 9월 3일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