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백일장 성황리 개최
아브라함 백일장 성황리 개최
성경 속 인물과의 가상 인터뷰,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편>
권지혜 (청년2부 그루터기 선교회)
지난 4월 15일 주일 아침, 나는 아버지의 곁에서 임종을 지켰다. 뜨거운 기도와 찬송 가운데 나의 육신의 아버지는 천국에 입성하셨다. 그 어느 때보다도 평안한 모습으로, 이 땅에서의 모든 괴로움을 뒤로 한 채 아버지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슬픔의 눈물까지도 거둬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내 마음이 평안하도록 다독여 주셨다. 그날의 기억은 오롯이 나의 간증으로 남았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늘 부재(不在) 상태였다. 언제나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지켜봐 주실 뿐이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진짜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버지의 부재는 영원한 것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빠, 아빠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친구를 보면 부럽다”고 말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답해주셨다. “너한테는 영적인 아버지가 계시잖아”라고.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늘 내 곁에 없었던 육신의 아버지나 눈에 보이지 않던 영적인 아버지 모두 나에겐 부재중과 같았으니까. 그런 나에게 ‘아브라함의 신앙 노정’은 참 많은 위로와 은혜의 말씀으로 다가왔다. ‘영적인 아버지’를 만나게도 했고, ‘육신의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도 했다.
오늘 이 지면을 빌어 아브라함과 만나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를 만나면 항상 묻고 싶었던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아브라함이라면 나를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극히도 인간적이었지만 ‘오직 예수’의 신앙을 잃지 않았던 아브라함.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권지혜 :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아브라함 선생님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나의 어머니는 삶의 고비마다 아브라함 생각을 정말 많이 했노라 고백하시기도 했다. 나 역시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고비가 찾아오곤 한다. 때로는 이게 정말 맞는 길인지 수도 없이 의심한다. 7년 전 박윤식 원로목사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군대’를 가라고 하셨을 때조차도 순종을 가장한 의심을 끊임없이 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3년 후 전역을 하게 됐을 때, 어딘가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여러 번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렇게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삶의 매 순간마다 난 시험에 든다.(웃음) 그런데 구속사 시리즈 제10권, 「하나님 나라의 완성, 10대 허락과 10대 명령」을 보면 선생님의 일생 노정 역시 매 순간이 시험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 과정마다 잘 견뎌낼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이 궁금하다.
아브라함 : 나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매우 특별한 분이다. 감사하게도 나를 통해 구속사를 이루시고자 우상 숭배하는 곳, 갈대아 우르에서 강권적으로 불러내셨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내 삶의 노정가운데 고난 또한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절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시편 73편 28절 말씀에도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라’고 하셨듯이 나 또한 주 여호와를 피난처 삼아 다니며,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때로는 나도 인간적으로 나약했던 적도 많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책을 꾸려 아내 사라를 누이로 속였던 일도 두 번이나 있었다. 그리고 후손에 대한 언약을 의심해 하갈을 취했던 일도 있다. 그런 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함께 맺은 언약을 근거로 내 가정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 삶 속에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 있게도 하셨다. 내가 75세 때 하란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부터 175세가 되어 죽을 때까지 약 100년의 구속사 속에서 때마다 시마다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셨던 것처럼 지혜씨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지금 구속사의 말씀을 통해 나와 만난 것 역시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뜻이니까.
권지혜 : 나의 어머니도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육신의 정을 떼야 할 때가 많으셨다. 실제로 아버지가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고,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각자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동시에 아버지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좋은 것을 보며 인생을 즐길 때도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마음이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된 적도 많다. 그런데도 세상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적인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걸 시시때때로 느낄 수 있었다. 구속사 시리즈 10권을 보며 짧은 내 삶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실제로 2014년 전역을 한 뒤, 같은 해 12월 ‘17일’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게 해주셨고, 두 해 지난 2017년 10월 ‘17’일 또다시 새로운 길로 데려가 주셨으며, 이듬해 2018년 8월 ‘7’일 드디어 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지금의 좋은 자리로 인도해 주셨다. 삶의 매 고비마다 완전수의 의미를 더해주시면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아버지의 발인일도 4월 ‘17’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구속사의 말씀을 받은 성도라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느끼고 위로를 받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물론 지금도 살아가는 데 있어 ‘육신’의 미련을 떼는 일은 여전히 정말 힘든 일이다. 선생님께서도 아버지 데라를 두고 떠나올 때 정말 마음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당시 심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아브라함 : 지혜 씨 가족의 경우처럼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 명의 빈자리는 클 수밖에 없다. 전후 사정은 다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겠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혜 씨의 그 마음을 예쁘게 생각하신다.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구하는 그 마음 말이다. 나도 아버지를 하란에 두고 나왔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 소리를 들어야했다. 모진 아들이라고 말이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가 145세셨다. 그로부터 60년 후 아버지는 하란에서 돌아가셨다. 육신의 아버지와 분리되어야 하는 일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더 크고 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육신의 정을 끊지 못하고, 하란에서 지체했다면 하나님의 구속사에 쓰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가 하나님버지를 믿는 신앙의 길이 때로는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답답하고, 몽매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일요일에 교회 안에서만 살지?”, “일요일에 교회를 안 가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여기네”, “술도 안 마셔, 담배도 안 피워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지?” 별의별 소리를 다 듣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언약의 말씀이 있다. 그 외에 어떤 것도 우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위로와 즐거움도 그 속에서 피어난다. 세상 안에서의 즐거움과 위로는 경험상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양심이 우리 믿는 자 안에서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괴롭힘도 당하고 세상의 이런저런 유혹도 많겠지만 구속사의 말씀을 받은 우리는 세상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분명한 건 이 또한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인도해 주신다. 그러니 세상과, 육신의 정에 마음을 둘 필요가 없다. 내 조카 롯의 아내처럼 미련이 남아 뒤돌아 볼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에 관점을 두고 살면 답이 나온다.
권지혜 : 100세 때 낳은 아들, 이삭은 이스마엘에게 많은 괴롭힘과 학대를 당했다. 이스마엘 성질이 보통이 아니었나 보다. 결국 사라는 이스마엘과 그의 어미 하갈까지 모두 내쫓아내자고 했다. 어쨌든 육신적으로는 그들 또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었을텐데…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브라함 : 모든 것이 다 나의 부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온전히 믿지 못하고, 참지 못해서 잘못 선택한 일에 대한 나의 책임이 크다. 횃불언약 체결 후 난 하갈을 취했다. 그때가 가나안 땅에 거한 지 십 년 후쯤 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내가 86세 되던 해 첫 아들 이스마엘이 태어났다. 첫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있었지만…돌아보면 나의 온전치 못한 선택으로 인해 오늘날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자행하고 있는 온갖 전쟁과 테러, 분쟁들이 있음에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난 후, 13년간 하나님은 나에게 침묵하셨다. 그 침묵의 시기에 난 많은 괴로움 속에 살았다. 내 양심의 괴로움이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 난 겨우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해주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갈 그리고 이스마엘과 함께해 주셨다. 비록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는 씨’였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모자의 앞길도 지켜주셨던 것이다.
돌아보니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다. 하나님께선 나와 내 아내 사라의 이름을 개명해 주시고 열국의 아비, 어미로 만들어 주셨던 분이다. 그리고 내 나이 100세, 사라의 나이 90세에 자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앞에 웃어 보이며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선 변함없으신 모습으로 한결같은 축복을 주셨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어리석었다. 그래서 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은 일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다. 다만,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워선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에 우리가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 오직 그 생각뿐이다.
권지혜 : 선생님의 삶 가운데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기억한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내가 만약 그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 ‘지금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난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자문해 봐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한 때 연애를 하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푹 빠진 적이 있다. ‘반드시 구속사 말씀을 받게 해서, 신앙의 가정을 꾸려야지’ 하는 선한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하나님보다 먼저인 사람(또는) 사랑이 되어버리는 걸 느꼈다. 그게 내 마음에 죄책감으로 굳어져 갔다. 결과적으로는 구속사 말씀으로 온전히 전도하지 못했고, 나의 연애도 종지부를 찍었다. 말씀 안에서 영적인 동역자를 만나는 일 또한 하나님께 맡겼어야 했는데 나의 의지로만 될 게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아마도 ‘사랑’이란 감정이 눈을 흐리게 했던 것 같다. 그게 결코 하나님보다 먼저일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선생님께 있어서도 이삭은 그런 존재였을 거라 생각한다.
아브라함 : 지금 다시 그때 일을 생각해봐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한’에 태어난 약속의 아들이다. 여기서 ‘기한’은 히브리어 ‘모에드’로 ‘정해진 시간’을 의미한다. ‘모에드’는 하나님께서 구속사의 성취를 위해 특정 시간과 장소를 정하실 때 사용되는 단어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삭에게도 그런 비유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선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당시 모리아 땅의 한 산에 이삭은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지고 올랐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삭도 내게 캐묻지 않았다. 담담히 나무를 지고 오르는 그 모습은 마치 예수님께서 골고다에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삭을 결박해 단 위에 올리고 칼로 내리치려 할 때 다급히 외치시던 여호와 사자의 음성을 난 결단코 잊을 수 없다. 믿음 생활이 어려운 것은 이삭의 경우처럼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을 만큼의 의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지혜 씨에게도 다시 사랑이 찾아올 때 지금 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기 바란다. 세상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먼저가 될 수 없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계실 뿐이다.
권지혜 : 선생님의 조카 ‘롯’에 대해 묻고 싶다. 부모의 마음처럼 키운 조카 롯이 세상적으로는 자기 좋을 대로, 좋은 것만 마음껏 취해 떠나갔다. 그리고 동방의 네 왕들에게 붙잡혀 갔을 때,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명을 거느리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을 다 찾아왔다. 나라면 굉장히 얄미워서 내버려뒀을 것 같은데,(웃음) 선생님 마음에는 사랑이 많으셨던 것 같다.
아브라함 : 조카 롯을 구하러 가기까지 총 346km 거리를 이동했다.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참 먼 거리였다. 그리고 생명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기나긴 전쟁이었다. 험난한 과정이었고 수적으로도 열세했지만 그 안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그게 이 이야기의 본질이다. 나도 인간적으로 조카 롯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어 그런 마음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창세기 15장 1절에서 보면 하나님께선 두려움에 떨던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토록 사랑해 주시는 데 내가 그 사랑을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때로는 주변에 얄밉고, 재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해도 마음으로 죄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말씀을 받은 자녀가 그렇게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걸 원치 않으신다. 이럴 땐 마음속으로 ‘예수님 사랑해요’라고 되뇌어 볼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마음의 분노는 가라앉고, 사랑이 샘솟는다. 이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
권지혜 : 마지막으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조상으로서 신앙생활에 조언을 해주었으면 한다. 나는 종종 기복이 심한 나의 믿음을 자책하곤 한다. 서른이 넘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에 있어서만큼은 어린아이보다 못하다는 자책 말이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근심이 앞서고, 불안하고, 화가 나면 성질도 부리게 된다.(웃음) 앞으로 세상은 점점 더 믿음을 지켜나가기 힘들어질 텐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믿어야하고, ‘오직 예수’의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아브라함 : 하나님의 구속사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뜻을 이루시는 날까지 하나님의 역사는 흘러간다. 요즘 남과 북을 둘러싼 세계정세도 불안하고, 공산주의의 야욕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게다가 흔히 말하는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뉴스에는 종종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사고가 연일 이어진다. 우리는 이토록 험난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살았던 당시의 세상도 그때 기준으로는 지금만큼 힘들었던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갔던 선조들을 생각해볼 때 우리도 구속사 말씀 안에서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믿음을 지켜나가야 한다. 은에 비유하자면,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닦아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 어둠을 닦아 내는 노력 말이다. 때로는 삐거덕 거릴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회개의 기회도 주시는 거다. 우리가 그 사랑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다면 ‘오직 예수’의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다. 잊지 말자. 그 사랑을.
아브라함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난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문득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고통과 슬픔은 상대적인 것이라지만, 생각해보니 난 아브라함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의 슬픔’이 그에 비해 작기 때문이 아니라 그 또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의 인터뷰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 하네”
찬송으로 대신하는 나의 고백. 오늘도 그 사랑에 감사하자. 아브라함과의 가상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오늘 이 고백이 하나님께 흠향되어지는 날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멘, 할렐루야!
나에게 허락해 주신
10대 허락
문미혜(중등부)
작년 12월에 구속사 10권이 출판되었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무나 설레고 원로목사님 소천 이후의 첫 출판된 책이라서 걱정도 약간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정말 큰 은혜도 느꼈고 말씀의 역사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고 생생하게 체험하였습니다. 정말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도 느꼈고 마음에 와 닿았지만 그 중에서 제가 가장 많이 감명 받은 ‘10대 허락’과 나를 연관 지어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10대 허락’ 부분을 읽으며 가장 저에게 꽂힌 것은 맨 처음 부분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허락이 있고, 그 허락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라는 문장을 보고 나에게 하나님의 허락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10대 허락을 깊이 읽어보고 특별히 유구한 역사 속에 세계 최초로 아브라함의 10대 허락과 8복의 관계에 대해 읽으며, ‘아브라함에게 허락해 주신 10가지의 허락이 곧 나에게 허락해주신 10대 허락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큰 나라’의 허락은 곧 나에게 허락하신 천국을, ‘큰 이름’은 생명책에 나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큰 땅’ 역시 천국을 , ‘큰 자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것을 ‘큰 장수’는 하나님의 긍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큰 승리’는 모든 세상의 유혹과 핍박 속에서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승리를, ‘메시아’는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큰 의’는 예수님 한 분만을 온전히 갈망하고 온전히 믿는 믿음을, ‘큰 상급’은 천국에서 내가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받을 때 허락된 큰 상을, ‘큰 복’은 내가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주실 아주 큰 은혜를 의미한다는 것을 나에게 적용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10대 허락이 곧 나에게 허락해주신 10대 허락임을 깨달으며 그 10대 허락을 받은 만큼 더욱 더 아브라함처럼 10대 명령에 순종할 수 있도록 더욱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세상의 죄 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나를 하나님 앞에 산 제사로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지키지 못하고, 나의 마지막 애착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지 못한 나의 모습을 보며 더욱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처럼 이번에 다시 읽어보며 아브라함의 그 순종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 매일 더욱 더 전진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나를 갱신하게 되었고, 또한 나를 반성하게 하여 신앙의 흔들림이 있을 때 이런 말씀을 생각하며 마음을 잘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해주신 10대 허락, 나에게 주신 10대 허락을 생각해보면 정말 하나님의 큰 역사와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 속 깊숙이 이 글을 쓰며 느꼈습니다. 비록 지금 많이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의 역사로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브라함 사랑은
아브라함의 행사
신혜진 권사
저는 20대에 갓 결혼한 후, 1984년 노량진 대성교회 시절에 예수를 만나 어느덧 환갑 나이가 되고 보니 3대가 평강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주일이면 영아부에 할머니가 되어 와있는 얼굴들. 화살 같이 빠른 세월을 실감하고 서로들 웃습니다. 20대, 30대, 40대, 50대를 지나 60대가 되어 되돌아보니 오직 변화의 말씀만 굳게 붙잡고 참 부지런히도 달려왔구나 싶은데, 이제 또 다시 손주들 손잡고 가야만 하는 언약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제 사위와 딸은 군인입니다. 군인의 특성상 결혼 5년차에 이사를 5번이나 다녔는데, 올해는 강원도 전방 철원 백골부대로 가게 되어, 할 수 없이 아빠랑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살, 3살 어린 두 손녀는 주말이면 아빠를 보러도 가고 싶고, 교회도 가고 싶어한답니다. 금요일이면 아이들은 유치원과 어린이 집에서 일찍 하원해서 철원 아빠 집으로 갔다가, 철원에서 주일아침 6시에 출발해 잠든 채로 카시트에 앉혀 평강 유치부 영아부로 온답니다.
신명기 32:7 말씀을 받았기에, 감사함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나안 천국을 향해 힘들지만 끝까지 달려갑니다. 각자에게 주신 사명과 달란트대로 눈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나왔고, 아픈 가슴 안고 유브라데 강도 건너왔습니다. 내 삶을 주관하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때론 힘겹게 아주 힘겹게 이끄시는 대로 오직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달려왔기에 아낌없이 주신 오늘의 축복에 감사 드립니다. 30여년 믿음으로 양육한 자녀들이 베필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또 자신의 자녀들에 신앙전수 위해 애 쓰는 모습. 에녹의 300년 동행이 이런 과정이었겠구나… 우리들 각자의 구속사 이야기입니다
성전에서 70~80대 권사님들이 노트 필기 하시는 모습 뵈면 참 대단하시구나 싶습니다. 세상 어느 교회에 이런 풍경이 있을까요? 출애굽 광야 노정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이미 체험으로 알기에, 순간 그분들이 말씀 앞에 순종으로 살아온 인생이 그려지기 때문이죠. 이제 저도 할머니 대열에 서있고, 우리의 자녀들이 전도사님 목사님이 되어가니, 손주들의 미래도 밝은 거겠죠. 5월 가정의 달 어버이날도 지나고 이제 6월 호국 보훈의 달이 다가오니 더욱 박 아브라함 목사님이 그리워집니다. 저희 평강인들에게 구속사를 가르쳐 주시고 아브라함의 명령과 허락대로 살아가도록 은혜주심에 더욱 감사 드립니다. 이제 딸들은 물론이고 사위 손주들에게도 내가 걸어온 길대로 잘 이끌어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길만이 주신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리라 굳게 다짐합니다.
아직 어리지만 6·25 웅변대회 고사리 같은 두 손을 치켜들며 목청을 높이는 첫 손녀의 야무진 입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웃음짓게 되는 저는, 평강의 할머니입니다. 이런 극성 할머니들과 영아부, 유치부에 재잘재잘거리는 소리가 자자손손 이어지는 한, 평강의 아브라함 사랑, 언약의 길은 영원할 것입니다. 아멘!
새벽 미명의 아침새가
나를 깨울까
강미혜 (청년1부 헵시바 선교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수많은 나의 생각들은
오늘 밤도 잠 못 이루게 한다
애통하는 마음은 어디서부터 나오는걸까
나의 심령이 아직 가난하지 못한 까닭일까
온유하지 못했던 나의 어제를 탓하는 것이
전부인 지금
밤하늘이 내게 쏟아진다
마침내 든 고개위로 쏟아지는 저 별들이
마침내는 이루어질 것을 내게 말해준다
의심 없는 믿음으로 아침을 맞이 하오니
주님도 내게 의심 없는 밤을 허락하여 주소서
지는 해는 스치듯이 보지만
뜨는 해는 준비하여 보듯이
새벽 미명의 아침새가 나를 깨울 것이 아니요
해뜨기 전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깨울 것이니
오롯이 정직한 발걸음으로 걸어온 그의 길을
무엇보다 믿음으로 지켜 온 그의 마음을
막힌 눈과 막힌 귀로 지나온 그의 세월을
나도 온전히 따라가길 원하오니
나에게도 온전한 큰 복을 허락하여 주소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박다애 (청년1부 헵시바 선교회)
세상 이 곳 저 곳에 마음을 뉘이고
생각을 뉘어본다
떠나야하는 길목에 서서 떠나지 못해
눈물의 웅덩이를 만든다
버려야하는 것들을 버리지 못해 부둥켜안고
괴롬의 골짜기를 만든다
웅덩이를 지나고 골짜기를 지나며
‘내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걸어가며
‘내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어두운 내 맘의 밤 속에서 울부짖으며
‘내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나에게 주어진 광야의 끝자락에 서서
수없이 펼쳐진 기라성을 올려다본다
내 발걸음 한 걸음, 내뱉는 한 숨마다
함께였음을
굽이치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 내 믿음이
부디 굳건하기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음을
산 자의 땅, 평강의 동산에서
천국의 문이 열리고 한 걸음에 달려오는
아브라함을 나 보네
아버지 옆에 있는 아브라함의 손을
나 이제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