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울타리에서 재회한 탈북 자매
평강의 울타리에서 재회한 탈북 자매
20년 전 탈북해 평강제일교회 충주 지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김정숙 집사. 그런데 그의 친동생 김리옥 집사도 평강제일교회의 캐나다 토론토 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각자가 따로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으로, 그리고 구속사 말씀 안에서 또 다시 만난 자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들어봤다.
북한에서의 이야기부터 들려주세요
김정숙 집사 : 저는 1970년 함경북도 단천시 복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과 4남매가 함께 살았지요. 당시는 김일성 정권 때라 그나마 굶주리지 않고 온 가족이 사랑 속에서 평온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김정일이 실권을 잡으면서부터 나라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주민들이 굶어죽고 남의 나라로 떠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당시 저는 8년간 철도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부모님이 한 해에 돌아가시면서 형제들도 각자 생계 유지를 위해 떠나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흩어져 찾을 수가 없었지요. 나라가 힘드니 가족들도 산산조각이 나더라고요. 나라가 있어야 환갑잔치도 있고 부모도 있다는 박윤식 목사님 말씀 그대로의 상황이었지요. 부모님이 안 계시니 누굴 믿어야 될지 막막했습니다. 당시 여동생인 리옥이 27살, 저는 29살. 언니, 오빠는 결혼을 한 상태였고 저희 둘은 고아나 다름없이 서로 의지하며 살았죠.
그러다 중국으로 넘어가셨다고요?
1998년 3월이었습니다. 중국 가서 돈 벌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정착하게 되었죠.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계속 쫓겨 다녀야만 했고, 시댁에서도 차별 대우에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았어요. 그러던 중에 어떤 집사님이 그 많은 북한 사람들 중에 저를 데리고 어느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가정집을 성전으로 쓰는 곳이었어요. 그 교회에 6개월간 다니며 어둡고 외로웠던 제 마음에 광명이 들어오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브로커를 통해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당시 저는 임신 8개월이었습니다. 쉽게 생각하고 떠났는데 3년이나 걸릴 줄 그때는 상상도 못했죠. 13명이 하얼빈 열차를 타고 출발했어요. 당시에는 그 여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줄 몰랐습니다. 내가 잘 나서, 용감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행군길이었습니다.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를 애굽에서 건져 내어 가나안에 오게 해 주신 역사적인 순간들이었구나 하고 느꼈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노정길을 내가 답습했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물론 지금도 광야 행군은 진행 중이지만요. 야간에도 5시간 이상을 산 넘고 강 건너 논두렁을 끝없이 걷는 일정의 연속이었어요. 구속사 시리즈 제 2권에서 배웠듯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세 가지 길이 있었잖아요. 그 중에서 수르길이나 해변길이 아닌 험한 홍해길로 인도하셨듯이 우리의 길도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네요. 평탄한 길로 가도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데 만삭의 몸에 설상가상으로 임신 중독인 상태에서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뭐가 뭔지,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죽어도 뱃속의 아기는 꼭 살아서 한국 땅을 밞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어요. 결국은 13명 전원이 캄보디아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고 저는 무사히 출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기적이 일어났다고요.
놀랍게도 북에서 헤어졌던 친동생 리옥을 거기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 목사님이 목회하는 홍해교회라는 곳에 북에서 온 사람들 300여 명이 모여 있었는데 거기에 리옥이가 있었던 겁니다. 꿈만 같았죠. 그곳에서 1년을 지내고 태국과 라오스를 경유하여 드디어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때의 심장의 두근거림이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가슴 벅찬 순간이었죠.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먼저는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곳이구나 느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 취업하여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니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짖었던 저는 온데간데없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세상을 의지하게 되었지요.
평강제일교회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구속사 시리즈 제2권 ‘잊어버렸던 만남’에 나오는 광야 여정 그대로예요. 일하다가 발목 골절을 입었는데도 무리하게 일을 계속 하다가 더 심해져 일도 못하게 되고 6년간 고생을 했지요. 그러던 중 동생 리옥은 캐나다에 가서 살게 되었는데 평강제일교회 지교회인 참평안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저보고 한국에도 지교회가 많으니 나가보라고 했어요. 물론 처음부터 말을 들은 건 아니고 동생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죠. 한국에 와서도 여기저기 다른 교회에 다녀봤지만 성경책은 들고만 다녔었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고 그냥 이유 없이 왔다갔다만 하고 탐욕에 푹 젖어 세상을 의지하는 저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구속사 시리즈를 읽고 배우면서 성경이 읽혀지게 되니 그 옛날 하나님을 갈급하고 구했던 저를 다시 찾았어요. 기뻤습니다. 언제부턴가 북한 주민들을 위한 기도가 나와요. 하나님은 잘 모르지만 무언가 영적 갈급함이 있는 그들에게도 구속사가 전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도 말입니다.
구속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홍해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보고 체험했으면서도 수시로 불평 불만하며 모세를 원망한 걸 보며 바로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북한에서부터 중국과 캄보디아를 거쳐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밟기까지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지켜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먼저 찾아 두신 은혜들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읽으면서 구구절절 내 이야기를 써 놓으셨구나 하며 무릎을 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휘선 박윤식 목사님과의 추억이 있다고요
2010년 10월 충주 한아름교회에 등록하고 다음해 신년예배 때 서울의 평강제일교회에 갔습니다. 다쳤던 발목이 너무 아팠고, 또 캐나다에 있는 동생의 사정으로 동생의 아들을 제가 10년간 키우고 있었는데 아기가 잔병치레를 너무 해서 마음이 괴로웠지요. 편지글 형식으로 기도문을 써서 드렸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아기 치아 교정까지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낫지 않을 것 같던 발목이 완치되어 다시 일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49년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탈북하셨을 때였겠군요.
그렇죠. 그 여정은 지금 떠올려도 너무나도 험하고 무섭지만 저를 강하게 하는 역사적인 기록이었던 것 같아요.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이 요단강가에 기념비적인 돌을 세워두고 야곱이 누웠던 돌베게를 기념하였듯 앞으로 아직은 많이 부족한 저의 삶 속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쓰임을 받는 기념비적인 일을 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글_권오연 기자, 그림_박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