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손을 펴신 하나님
하루 종일 손을 펴신 하나님
사 65:1-2, 행 4:12-32
이사야 65장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자들과 종들을 보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생명이 중간에 끊어지는 법이 없고, 행복이 영원토록, 은혜를 천대까지 베푸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냥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양팔을 높이 들어올려 손을 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보면 쭉 뻗치고 있는 손가락이 있습니다. 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천지를 창조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맞은 편에는 사람이 손가락을 맞대고 있습니다. 창세기 1:27을 볼 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공통점 중에 아주 특이한 것이 바로 ‘손’입니다.
성경을 볼 때 손은 권세와 능력과 지혜를 말합니다. 헬라인들이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 중에 ‘호모 페타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손을 쓰는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헬라인들은 손을 기계를 만드는 등 기술적인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반면 히브리인들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그치지 않고, 손을 정신적인 기관으로서 능력과 지배를 표현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①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 ②지배와 섭리, 즉 ③하나님의 지배영역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닿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활동무대를 가리키는 말으로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며, 바라게 하시는 길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손을 펴신 하나님께서는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65:2에서 “내가 종일 손을 펴서”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인격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지만 인격의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인격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눈이 있다고 했습니다. 역대하 16:9를 볼 때,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감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사람의 심장폐부를 살피며, 성전에서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예배드리는 성도의 심정을 살피십니다. 열왕기상 8:29, 52에서도 하나님의 눈으로 성전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성도를 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귀가 있어서 우리의 기도 소리를 들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여정 중에서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지를 때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다 들으시고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 14:26-28).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천막 안에서 숨어서 입으로 범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36-37에서도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반드시 심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귀는 성도의 간구를 들으시는 귀입니다. 열왕기상 8:30에서도 성전에서 간구하는 기도를 하늘에서 귀 기울여 들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입이 있어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사야 34:16에서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입으로 명령하신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사야 1:20에서, 40:5, 45:23, 58:14, 62:2에서도 ‘하나님의 입’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손이 있어서 그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손으로 벽돌을 구우며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민족의 정체성과 언어마저도 잊어버릴 정도로 힘든 고통의 삶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이들을 안아서 인도해 내셨습니다(출 19장, 신 4:34-35, 7:8, 신 11:2, 26:8).
하나님께 마음이 있어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며 구원하셨습니다. 스바냐 3:17에서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의 마음 가득한 기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하나님께 발이 있습니다. 사람의 발은 자기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만, 하나님의 발은 오직 사랑하는 언약 백성을 향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두 발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구하시기 위해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마 14:25). 그 발로 우리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십니다(사 63:9).
요한복음 4:24를 볼 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이 모든 표현은 하나님께서 영의 세계를 깨달을 수 없는 인간을 깨우치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눈이 있느냐? 귀가 있느냐? 입이 있느냐? 나도 있다, 내 손과 마음, 발로 이렇게 너희를 구원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보여주옵소서”라는 빌립의 요청에 예수님의 눈과 귀, 입, 손과 마음, 발로 움직이신 모든 사건을 가리키며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으로 33년 동안 계셨습니다. 인간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쥐어 패고, 발길질하고, 가래침 뱉고, 주먹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오직 인간의 구원을 위해 바삐 움직이실 뿐이었습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라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인격을 체험한 사건에 대해 말씀했습니다(요일 1:1).
하나님께서는 구하지 않던 자에게 하루 종일 손을 펴셨습니다.
이사야 65:1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는 하나님을 몰랐던 이방 사람이요,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는 믿는 자든 믿지 못하는 자든 하나님에 대해 깨닫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가리켜서도 구원하시겠다고 안타깝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집 나간 탕자가 아버지의 속을 썩이고 온갖 고초 끝에 악취를 몰고 와도, 동네 밖 어귀에서 기다리다가 발견하자마자 손을 펴서 안으시는 아버지의 모습! 그 모습이 바로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사야 65:2에서 하나님께서 종일 손을 펴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 종일 손을 펴고 계시다는 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4:8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펴고 계신 그 손은 우리의 죄악과 질고를 대신 짊어지신 손입니다. 나의 죄 지은 손과 발 대신 주님의 손과 발을 십자가 못박힘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악한 생각 대신 주님의 머리를 가시 면류관에 내어 주셨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악한 범죄 대신 주님의 옆구리를 창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양손과 양발, 머리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어떠한 죄도 다 사하실 수 있는 사죄의 피, 능력의 피가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5-26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이 바로 주님의 사랑의 결과입니다. 그 결과 우리 기독교는 무덤이 없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펴신 사랑의 손에 붙잡힘으로 죄로 멸망받은 우리에게도 재활의 기회, 다시 사는 축복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세상 문제에 낙심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 쉬어 무엇 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지금이 누구 시대다, 내 시대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시편 31:15에서 시편 기자는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전투할 때 모세의 손이 들릴 때마다 승기를 잡고 ‘여호와 닛시’라는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 모세는 지쳐 팔이 내려올 때마다 아론과 훌이 받쳐 주어야 했지만, 우리의 하나님의 손은 하루 종일 내려오지 않습니다. 오늘도 나를 향해 하루 종일 펴신 팔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붙잡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1년 10월 28일 주일 2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