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마르고 뚜껑이 제쳐지는 대망의 한해
물이 마르고 뚜껑이 제쳐지는
대망의 한해
창 8:13-19
(창 8:13-19) “육백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14 이월 이십칠일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2019년이라는 대망의 한 해 첫 날 첫 시간이 도래했습니다. 우리에게 8,760시간이라는 새로운 한 해를 임대해 주셨습니다. 이해에 존귀와 찬양을 아버지께 돌리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1:5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도 ‘나는 안돼, 나는 틀렸어, 나는 불가능해’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고 말씀하실 때 나의 모든 부정적인 생각이 새롭게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노아는 601세 1월 1일, 방주 뚜껑을 제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이 말랐음을 체험한 것입니다. 노아의 950년 생애에서 601세 1월 1일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새해 첫날입니다. 이 감격이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아가 601년 새해에 받은 축복이 무엇입니까?
물이 마르는 축복
창세기 8:13에서 “육백 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걷히다’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고 있는데, 이 단어는 ‘물이 마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하레브’(חָרֵב)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창세기 8:14의 “이월 이십칠일에 땅이 말랐더라”에서 ‘마르다’는 ‘건조하게 되다, 바짝 마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야베쉬’(יָבֵשׁ)입니다. 노아 600세 1월 1일은 창일했던 물이 마르고 없어졌지만, 여전히 질퍽한 상태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57일이 지나서 2월 27일에는 완전히 땅이 굳어져 사람이 걸어갈 수 있을 만큼 말랐습니다. 13절에는 ‘물’이 주어로 되어 있지만, 14절에는 ‘땅’이 주어로 되어있는 것도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6:5-6에서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가득 차서 흘러 넘친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할 지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죄가 가득해서 흘러 넘치는 세상 아닙니까? 마태복음 24:37-38에서는 인자의 임함이 노아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아 때 죄의 관영이 심판의 원인이었다면, 오늘날 이 타락한 세상에도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멸망시키시기로 결심하시고, 노아 600세 2월 10일에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갈 것을 명령하시고, 2월 17일에 비를 내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깊은 땅에 있는 샘들이 터졌습니다(창 7:11-12). 지구 땅 덩어리 깊은 곳에 있는 샘들에서 물이 솟구치고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일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창 7:23). 이 홍수로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 쓸어버리시고, 오직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8명만 살아남게 하셨습니다(벧전 3: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 홍수로 쏟아 부으신 물은 저주와 심판을 상징합니다(참고-민 5:22, 시 109:18).
물이 마른 것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온 세상이 물로 덮여서 비가 쏟아질 때,
‘이러다가 우리도 죽는 거 아니냐,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는 거 아니냐’ 순간 마음에 의심의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지루하고 기나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끝났습니다. 창세기 8:13을 볼 때, 노아가 뚜껑을 제치고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창 8:13) “육백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여기 ‘본즉’은 히브리어 ‘바야르 베힌네’(וַיַּרְא וְהִנֵּה)로, ‘보다’라는 의미의 ‘라아’(רָאָה)와 감탄사 ‘힌네’(הִנֵּה)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노아가 자세히 보니 물이 말랐기에 기쁨으로 외치는 감탄의 표현입니다. 노아는 이렇게 물이 빠르게 마를 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기쁨과 감격 속에서 기뻐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죄악의 물결, 저주와 심판의 물결이 얼마나 창일합니까? 그래서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죄의 물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가 모든 물을 마르게 합니다. 에베소서 1:7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09:18을 볼 때 저주가 물같이 몸에 들어가고 기름같이 뼈에 스며든다고 하였습니다. 저주가 물같이 몸에 들어가 염증이 생기고 병이 생기고 암이 생기고 죽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그 모든 저주와 심판의 물이 마른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근심 걱정 우수 사려의 모든 질병의 물이 마르고 기쁨과 행복과 형통만이 펼쳐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뚜껑이 제쳐지는 축복입니다.
노아는 601년 정월 곧 그 달 일 일에 방주 뚜껑을 제쳤습니다. 뚜껑을 제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새로운 공기가 들어옴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비가 오는 40일 동안 창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짐승들이 호흡하고 여덟 식구가 호흡하는데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비가 그치고 창문을 열 수 있습니다. 신선하고 새로운 공기가 들어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 한마디 못하고 억압당한 채로 혼자 괴로움 가운데 살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방주 뚜껑을 제치게 하심으로, 모든 괴로움의 공기가 나가고 신선한 소망의 공기, 생명의 공기가 우리 가정에 넘쳐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깥으로 나갈 소망이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닫혀있으면 평생 바깥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창을 열고 난 뒤 57일이 지나서 노아 601년 2월 27일에 땅이 말랐습니다(창 8:14). 그리고 노아는 드디어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방주에 갇혔을 때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습니까? 그러나 땅이 마르고 방주에서 나가는 날이 반드시 도래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으로 뚜껑을 열게 하시고 나가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절망의 말을 할 필요도, 원망의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민수기 14:27-28을 볼 때,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리가 광야에서 죽었으면 차라리 좋았을걸!’ 원망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입성하고야 말았습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 모두 마음 속에 이 잘못된 생각의 뚜껑을 힘차게 여시기 바랍니다.
뚜껑은 내가 제쳐야 함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7:16을 볼 때, 하나님께서 방주 문을 닫으셨습니다. 그러나 방주 뚜껑을 여는 것은 노아가 열었습니다. 창세기 8:13의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에서 ‘제치고’는 히브리어 동사 히필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노아가 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망의 문도, 형통의 문도, 행복의 문도 자신이 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문을 열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혹시 미움의 뚜껑이 닫혀 있지 않습니까? 미움의 뚜껑을 열어야 사랑의 새로운 공기가 들어옵니다. 요한일서 3:15에서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잠 10:18), ‘미련한 자’(잠 10:18)입니다. 성도끼리는 오직 사랑으로 하나 되고 덮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에게 “검을 든 자는 검으로 망한다” 말씀하시며 미움으로 닫힌 뚜껑을 열어주셨습니다(마 26:52). 남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일 4:8). 오늘날 우리는 미움의 뚜껑을 열어 제치고 새로운 사랑의 공기를 받아들이시기 소원합니다.
게으름의 뚜껑이 닫혀 있지 않습니까? 게으른 것은 태생적인 성품이 아니라, 악한 것입니다. 로마서 12:11에서는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2018년 한 해 동안 전도에 얼마나 열심을 냈습니까? 성경을 얼마나 읽었습니까? 구속사 시리즈 얼마나 읽었습니까? 예배의 자리를 얼마나 열심으로 참석하였습니까?
오늘 모든 어둠과 답답함과 나태와 게으름과 절망의 뚜껑을 열어 제치십시오. 이제 열심과 행복과 소망과 형통의 공기를 마셔서 여러분 가정이 사업이 또 교회가 하시는 일이 새로워지는 일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경이 넓어지는 축복
노아는 주전 601년 2월 27일, 드디어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 600세 2월 17일에 방주에 들어갔으니 1년 10일 동안 방주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나와 보니 홍해가 마르듯이(출 14:21), 요단강이 마르듯이(수 3:17, 4:22) 땅이 완전히 말랐습니다.
방주 안은 짐승들과 노아 8식구가 거주하기에는 너무 비좁은 공간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8:15-16에서 하나님께서는 방주에서 나오라 명령하셨습니다. 방주에서 나오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지금 좁은 지경에 갇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명령만 있으면 능히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생육과 번성, 땅에 편만하여 번성해지는 축복을 명령하셨습니다(창 8:17-18, 9:7). 노아의 지경은 좁은 방주에서 드넓은 세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제 2019년 새해, 우리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심으로 교회의 지경이 넓어지는 역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올해 평강제일교회 교회 지표는 “날마다 믿는 자의 수가 많아져 구속사의 지경이 크게 넓어지는 교회”입니다. 출애굽기 34:24에서는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대적 마귀 원수를 쫓아내실 때, 우리의 지경이 넓혀지는 것입니다. 2019년 전 세계 평강의 권속들 교회마다 구속사의 지경, 사업의 지경, 집안의 지경이 날마다 넓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권념과 바람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권념과 바람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창세기 8:1을 볼 때, 하나님께서 노아를 권념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불게 하실 때 물이 점점 없어져 다 말랐습니다. 오늘날도 저주와 심판의 물이 내 주변에 넘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권념해 주시고 바람의 은혜를 보내 주시면 다 말라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권념’은 히브리어로 ‘자카르’(זָכַר)로, ‘기억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때로는 비가 계속 쏟아지고 물이 창일하게 보여서,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신 것이 아닌가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오늘 그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기억해 주시는 역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가 자식을 기억함보다, 부모가 자식을 기억함보다 더 뜨겁게 우리를 기억하시고 잊지 않으십니다(사 49:15, 시 27:10).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친히 달리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해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기억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이제 이 말씀을 명심하시고, 노아처럼 아무리 답답하고 괴롭다고 해도 믿음으로 방주 뚜껑을 열어버리고 미움과 절망, 괴로움의 뚜껑을 열어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믿음과 소망의 공기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질퍽질퍽한 땅이 이제 마르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말씀이 응하시기 바랍니다. 2019년에는 가정과 사업과 교회마다 지경이 넓어져서 마침내 구속사의 지경이 크게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2018년 한 해가 저물고 2019년 새날이 밝았습니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모든 생각들을 버리고 새롭게 하심으로, 2019년 반드시 형통하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1월 1일 (화) 신년예배 이승현 담임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