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의 전쟁사(1) – 다볼산 전투
성경의 주무대가 되는 팔레스타인 땅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3개 대륙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요지는 상업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엄청난 가치를 가진 곳으로, 늘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전쟁 가운데 놓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연히 차지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아두신 땅’이었다(겔 20: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는 지정학적 이점을 극대화하여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호령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는 주변 민족이나 국가들을 통하여 징치하셨다. 또한 이스라엘이 패망할 수밖에 없는 위기 가운데 개입하셔서 먼저 싸워주심으로 놀라운 전쟁의 승리를 맛보게 하셨다. 이런 점에서 성경의 전쟁은 역사적인 의미뿐 아니라, 구속사를 성취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정복해가는 영적 전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 중에서 매우 특징적인 전투를 뽑자면, 사사기 4-5장의 다볼산 전투를 뽑을 수 있다. 기록의 분량 면에서도 방대하게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사사기 4장은 산문체로, 사사기 5장은 운문체로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는 면도 독특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정작 이렇게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전투 자체에 대한 묘사는 매우 짧으며, 도리어 전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사사기 5장의 노래는 사사기 4장에 기록된 전쟁사에 대한 구속사적 해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다볼산 전투를 구약의 전쟁들을 구속사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안내자로 삼아 그 구체적인 장면들을 살펴보자.
시대적 배경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사사 시대에 접어든 이스라엘에는 많은 사회, 문화적인 변화가 있었다. 가나안 족속에게 회반죽으로 건물에 방수처리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관개시설이 크게 증가하였고 이는 경제적인 발전으로 이어졌다. 또한 경제적인 발전은 필연적으로 교역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문화적인 교류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가나안 땅을 점령하여 분배한 지 오래 되지 않았기에,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통일국가라기보단 12지파 간의 연맹에 가까웠다. 이런 점에서 사사는 12지파 전체를 다스리기 보다는 일부 연맹을 지휘하는 대표의 성격을 가졌으며, 지파 간의 이해가 다를 때는 협력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주전 1248년에 시작된 가나안 왕 야빈의 학대는 20년간 이어져 주전 1229년까지 계속되었다. 이들은 여호수아 때 정복하지 못한 잔존 세력들의 연맹체로서, 하솔 왕 야빈을 우두머리로 삼았다. 하솔이라는 도시국가는 가나안을 대표하는 강국으로, 여호수아 당시에도 가나안 전체의 머리였다(수 11:10). 여호수아는 철저하게 하솔을 진멸하였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를 남기지 않았다(수 11:11-12). 따라서 약 200년이 지난 본문에 등장하는 하솔은 진멸당한 하솔 지역에 정착한 가나안 민족일 것이며, ‘야빈’은 ‘바로’나 ‘아비멜렉’과 같이 왕의 호칭일 것이다.
당시 하솔은 강력한 철병거 900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시스라라는 군대장관이 있었다. 아마도 ‘시스라’라는 이름이 셈족과 상관없음을 고려할 때, 그는 아마도 이방인 용병이었을 것이다. 애굽에서는 주로 나무 전차를 사용하였지만, 가나안은 전차의 취약한 부분에 철을 두르고 말에도 철갑을 입힌 강력한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이스라엘의 보병은 기본적인 갑옷도 없이 창과 방패만을 가지고 나온 차출 병력이었다. 가나안의 철병거 부대는 굉음과 흙먼지를 내며 순식간에 이스라엘군에게 달려와 화살과 투척용 창을 퍼부었으며, 이스라엘 보병들이 달려 들기 전에 저 멀리 거리를 벌려 재차 화살을 퍼부어댔다. 그리고 이스라엘 보병들이 전의를 상실하면 철병거로 돌진하여 보병들을 짓밟아버렸다. 한마디로, 당시 철병거는 625 전쟁 때 북한군이 투입한 T-34 전차와 같이 속수무책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는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철병거의 존재 앞에 이스라엘은 최대 곡창지역인 이스르엘 평야를 모두 빼앗긴 채 가나안의 학대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드보라와 바락의 등장
그때에 이스라엘의 사사로 일어난 자가 바로 여사사 드보라이다. 라마와 벧엘 사이에 거하였던 에브라임 지파 사람 드보라는 납달리 지파의 바락을 불러서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에서 각각 일만 명씩 차출한 군대를 맡겨 다볼산으로 진군시켰다(삿 4:4-6). 드보라는 바락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군대를 기손강으로 이끌어내서 승리를 거두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바락에게 이는 두려운 말로 들렸다. 철병거를 막기 위해서는 그나마 숲이나 험한 지형에서 싸워야 하는데, 다볼산은 평지에 볼록 솟은 산으로 포위되기 딱 좋은 장소이며 기손강 역시 평지 지대로 철병거가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바락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드보라에게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했고, 드보라는 함께 가는 대신에 바락이 직접 승리를 취하는 영광을 얻을 수 없다고 예언했다(삿 4:7-9).
다볼산 전투의 진행
드보라와 바락은 게데스에 1차로 진을 치고, 다볼산에 올라가 전세를 갖췄다. 이 소식을 시스라가 듣자, 그는 모든 철병거와 군사들을 동원하여 기손강으로 달려 나왔다(삿 4:10-13). 다볼산의 산정 둘레는 약 1.2km 정도로 크지 않아 전군을 동원하여 퇴로를 막아버리면 이스라엘을 손쉽게 포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사기를 읽는 독자들은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하게 된다.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하던 사사기의 저자는 갑작스래 단 두 절로 전쟁의 이야기를 끝내버린다.
사사기 4:14-15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는 사사기 5장의 노래를 통해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사사기 5:4-5에서는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땅이 진동하고 구름이 비를 내리게 하심으로 철병거를 완전히 무력화시키셨다는 것이다. 당시 근동지역의 전쟁은 항상 봄, 건기에 시작되었다(참고-삼하 11:1, 대상 20:1). 우기에는 비로 인해 땅이 질퍽거리며 우기에만 물이 범람하는 와디 때문에 전쟁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철병거 군단은 비에 대한 걱정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비가 내릴 리가 없는 건기에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져 내리자, 기손강은 순식간에 범람하며 온 땅을 질퍽거리게 만들었다. 가나안의 자랑인 철병거는 순식간에 불어난 급류에 쓸려나가며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고, 발락과 함께 돌진한 일만 군대는 가나안의 대군을 섬멸하였다. 얼마나 긴급했는지 군대장관 시스라는 철병거를 버리고 도보로 도망하여 야엘의 장막까지 도망하였다(삿 4:16-17). 사사기 5:20-21에서는 이를 별들의 싸움이자 옛 강 기손 강의 공격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사기 5:20-21, 표준새번역 “별들이 하늘에서 시스라와 싸웠고, 그 다니는 길에서 그와 싸웠다. 21 기손 강물이 그들을 휩쓸어 갔고, 옛 강 기손의 물결이 그들을 휩쓸어 갔다. 나의 영혼아! 너는 힘차게 진군하여라.”
가나안 군대장관 시스라의 죽음
가나안 군대장관 시스라는 폭우 속에 철병거를 버리고 도보로 도망하여 게데스 근처에 있었던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도착했다. 사실 겐 족속의 헤벨이 게데스 근처에 살고 있었던 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가문인 겐 족속은 유다 지파 가운데 광야에서 거했기 때문이다. 헤벨은 어떤 일로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 근처에 장막을 쳤고, 가나안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삿 4:11, 17).
그런데 시스라가 도망하자, 헤벨 대신 그의 아내 야엘이 시스라를 맞이했다. 그리고 야엘은 시스라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긴장을 풀게 하고, 그가 물을 청하자 물 대신 염소 우유를 가지고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야엘’은 히브리어로 ‘산 염소’라는 뜻이며, 따듯한 염소 우유는 긴장을 풀고 잠을 청하는 데 아주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잠시 후 시스라는 피곤함이 몰려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그때 야엘은 말뚝을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대고 박아버렸고, 말뚝은 그의 머리를 관통하여 땅에 박혔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잔인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시대적인 배경을 고려해서 읽으면 지극히 평범한 여인이 영웅으로 거듭나는 장면이다. 겐 족속 자기 자리를 떠나 진멸의 대상 가나안 족속과 친밀하게 지낸 헤벨의 집은 분명 수치스러운 집이었다. 그런데 그 수치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주도적으로 씻어냈다. 히브리어 원문은 시스라를 맞이하여 말뚝으로 관자놀이를 관통해버리기까지 전 과정을 와우계속법으로 연결하여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이스라엘의 원수를 진멸한 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야엘은 단순히 원수를 진멸하여 이스라엘의 수치를 씻을 뿐 아니라, 헤벨 집의 수치를 씻어낸 것이다. 그 자리에 쓰임 받은 것은 대단한 장군이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이름 없는 여인 한 사람과 장막을 설치하기 위해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말뚝이었다. 야엘은 평소에 하던 대로 장막을 치듯이 말뚝을 관자놀이에 올렸고, 그것으로 시스라를 절명시켰다.
여인의 힘으로 단번에 머리를 관통하여 땅까지 말뚝을 박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사사기 4:23에서는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라고 말씀하면서 이 날의 승리는 드보라와 발락, 야엘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먼저 선물하신 승리로 인해, 이후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겨 마침내 진멸하는데 성공했다.
드보라와 바락의 찬양
감격적인 승리의 당일, 드보라와 바락은 노래를 지어 부르며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찬양했다(삿 5:1). 드보라는 이 노래를 통해 하늘을 다스리셔서 비를 내리시고 땅을 진동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며(삿 5:3-5, 20-22),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전쟁에 달려나온 자들의 헌신을 치하하고 있다(삿 5:9-15). 반면 르우벤 지파와 단 지파, 아셀 지파는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멀리서 관망했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삿 5:16-18, 22). 무엇보다 이 노래의 백미는 헤벨의 아내 야엘에게 승리자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삿 5:24-26). 야엘의 영광은, 시스라의 승전보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어미의 헛된 공상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삿 5:27-30).
사사기 5:3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다볼산 전투의 구속사적 경륜
다볼산 전투의 극적인 승리는 건기에 비가 내리는 하나님의 역사로 주어졌다. 그런 점에서 발락의 일만 용사는 전쟁의 승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승리에 참여하고 그 열매를 맛본 것이다(참고-대하 20:17). 이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 하시는 최후 전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먼저 승리하시며 재림으로 모든 구속사를 이루시고 성도들로 하여금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예표한다(히 2:14, 계 17:14).
발락은 본래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의 주역이 되어 적장의 수급을 취하는 영광이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드보라의 말을 믿지 못할 때, 그가 누릴 영광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는 이방 겐 족속, 그것도 그 자리를 벗어나 수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헤벨의 아내 야엘에게로 넘어갔다. 하나님은 볼품없는 한 여자와 말뚝을 통해 원수를 쓰러트리셨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먼저 언약의 주인공이 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함으로, 언약 밖에서 수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주어진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가문의 도망자요, 장막에 굴러다니는 말뚝같이 평범한 우리 한 사람이 원수의 관자놀이를 꿰뚫는 하나님의 무기가 되는 것이다.
사사기 4장의 승리가 5장에서 노래로 이어지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요한계시록 14:1-5에서도 마지막 전투를 이기고 시온산에 우뚝 설 144,000 역시 새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볼산의 전투와 평범한 여인 야엘의 승리가 노래를 통해 영원토록 보존되듯이, 구속사 성취의 순간에 마지막 최후 승리를 거두는 성도들의 새 노래 역시 영원토록 울려퍼지게 될 것이다.
글_정디모데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