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주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고난주간
주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생각할수록 기이한 일입니다.
이렇게 죄로 가득하고 하나님을 알되 그를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 십자가를 중심으로 삶과 영혼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이세상도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십자가가 우리 심령 속에서 귀하게 묵상되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러나 교회가 참된 영적 부흥 아래 있던 시기에는 언제나 선명한 복음이 용기 있게 선포되었고, 그 중심에는 항상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구원에 필요한 일회용품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축복스러운 영성을 누리던 시대의 성도들은 언제나 십자가 앞에서 감격했고, 그 도의 끝없음에 감탄하였습니다. 언제나 그 진리 안에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발견하며 겸손을 배웠으며, 구원의 가치를 깨달으며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십자가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 한 바울의 고백은 옳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여! 죄인 중의 괴수는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 중 십자가에만 사로잡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상을 향해 단호하게 그러나 ‘내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할 수 있는 이들도 소수입니다. 예수의 피 뿌린 복음을 가슴에 품고 뜨거운 구령의 열정으로 어두운 땅을 누렸던 믿음의 선진들은 실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능하였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순결한 예수께서 소망 없는 죄인들을 위하여 죄 없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사랑의 위대함을 영혼으로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불굴의 신앙으로 모질고 험한 고난의 광야를 지나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오직 좋으신 구주만을 위하여 살 수 있게 한 것은 그들의 인간적인 각오와 결심이 아니라, 그들 안에서 역사하는 십자가의 복음이었습니다. 강단에서의 빛 바랜 십자가 설교는 다음 세대의 교회가 영광스러움을 잃어버리는 전조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평강제일교회의 영적 각성과 신앙 부흥을 사모하는 이들마다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고 듣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된 예수와 미련한 도로 여겨지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교회가 감격해 하고 세상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던 참된 영적 각성과 신앙부흥이 조국을 위해 임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 위하여는 십자가가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일은 언제나 깊은 영적 각성과 함께 일어났습니다. 이 피상적 교회시대에 이처럼 십자가에 사로잡힌 설교자들을 통해 이 땅 방방곡곡에 십자가의 진리가 선포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알 것은 십자가에 대한 설교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기독교를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인간의 풍조가 나날이 갈리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이것을 통해서만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도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받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도 오직 십자가로써만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렇게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 세상도 십자가가 아니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점점 십자가를 잊고 살아갑니다.
새 천년! 2000년도에 맞이하는 고난주간 저녁집회 시간마다 다시 한 번 십자가의 도의 사건을 통해서 영적으로 깊이 체험하고 모두 십자가의 의미와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체험하기를 기도하면서.
2000년 4월 19일 아침 수난주간 개웅산 염주봉 기도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