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의 전쟁사(2) – 에돔 광야 골짜기 전투
성경의 전쟁들에서는 간혹 당혹스러운 전략이 등장한다.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의 대부분을 돌려보내거나, 사지(死地)처럼 보이는 곳으로 몰아넣는 일을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명령은 가장 뛰어난 전략가인 하나님의 뜻 안에서 놀라운 구원 사건으로 완성된다.
열왕기하 3장에 기록된 에돔 광야 골짜기 전투에서도 당황스러운 전략이 제시된다. 골짜기의 마른 땅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것이다. 그것도 전장 한가운데에 개천을 파라니, 전술적으로 보면 자살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시대적 배경
당시 남조 유다의 왕은 여호사밧이었고, 북조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람이었다. 모압은 매년 새끼 양 십만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에 공물로 바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여호람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공물 헌납을 중단했다.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이스라엘의 여호람은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에돔과 동맹을 맺고 모압을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전투의 시작
동맹군이 행군한 지 일주일이 지나 물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전쟁이 한창인 건기에 물이 떨어졌다는 것은 병사들과 가축들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는 치명적인 위기였다. 이때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어찌해야 할지 묻자고 요청했고, 엘리사 선지자는 거문고 연주 가운데 하나님의 영에 감동받아 전투에 대해 예언했다. 전투에 이길 방법은 바로 비도, 바람도 없는 건조한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것이었다(왕하 3:15-17). 개천을 많이 파면 모든 병사와 육축, 짐승들이 물을 마실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압까지 정복하게 된다는 것이었다(왕하 3:18-19). 여호사밧은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했다.
골짜기에 판 개천들
척박한 건기의 땅을 아무리 파 본들 물을 구하기는 어렵다. 7일 동안 물 구경도 하지 못한 군대에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라는 명령은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다.
전략적으로도 위험했다. 이스라엘의 ‘골짜기’란 좁고 가파르게 갈라진 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언덕과 언덕 사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에돔 광야 골짜기는 두 산지 사이에 넓게 펼쳐진 광야로서, 동맹군과 모압군은 각각 양쪽 산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개천을 파서 물이 난다고 해도 개천을 파다가 급습을 당하면 적과 산지 사이에 갇혀 몰살당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은 말씀에 순종하여 골짜기에 개천을 팠다. 아마도 광야의 극심한 더위를 피해 저녁 무렵 공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큰 믿음으로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기 시작했다.
구속사적 경륜: 골짜기에 하나님이 임하시면
임재(臨在의) 시간 : 아침, 예배 드릴 때(왕하 3:20)
(왕하 3:20) “아침에 미쳐 소제(素祭)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마침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에돔 편에서부터 갑작스레 흘러온 물이 골짜기에 가득해졌다. 하나님은 ‘신령한 아침’이 되시는 분이며(삼하 23:4, 사 58:8-9, 시 30:5, 88:13, 130:6), ‘아침’은 하나님의 임재의 시간이다. 누가복음 1:76-79을 볼 때 예수님을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비취는 돋는 해’로 말씀하고 있다.
또한 이 시간은 ‘소제 드릴 때’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상번제(常燔祭)를 드린 뒤 번제 후 추가로 소제를 드렸다(출 29:38-41, 겔 46:13-15). 번제가 죄인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희생제사라면, 소제는 피와 상관없이 곡식을 드리며 감사와 헌신을 드리는 제사이다. 즉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감사와 결단이 충만한 바로 그 시간! 그 시간이 물이 흘러들어오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임재의 방법: 해와 피(왕하 3:21-25)
구름 한 점 없는 건기에 해가 떠오르면 그야말로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 붉은 해가 골짜기에 창일(漲溢)한 물에 반사되자 마치 붉은 피처럼 보였다. 아침 일찍 일어난 모압 군대는 이 모습을 보고 ‘연합군에 내분이 일어나서 서로 죽인 피가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략하러 달려갔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직업 군인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은 생업에 종사하다 징집되어 나온 자들로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 적군의 노략물을 취하는 것은 징집당한 자들의 정당한 권리였고 많은 징집병들은 노략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었다. 따라서 모압 사람들은 하나라도 많은 노략물을 취해야 하는 조급함 속에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지도 않았을 것이다. 헐레벌떡 달려온 모압 군대는 이스라엘 진에 이르러 공격을 받자, 도망가는 자와 노략물을 취하러 내려오는 자들이 뒤엉키며 대패하고 말았다.
메마른 땅에 솟아나는 생수에 태양이 비칠 때 그것이 붉은 피로 보였던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실 붉은 보혈의 역사를 예표하고 있다(요일 5:6-8). 십자가에서 흘리신 붉은 피를 본 사단은 승전고를 울리며 달려들었지만 실상 그 피 속에 담긴 생명은 사망을 정복하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었다(고전 2:8, 골 2:15).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 신령한 아침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표적도 가나에서 물을 붉은 포도주로 바꾸는 이적이었던 점도 주목할 만하다(요 2:1-11).
동맹군이 파 내려간 개천은 과거의 개천만이 아니다. 세상에서 치열한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는 성도도 개천을 파야 한다. 생수 된 하나님의 말씀이 메말라버린 척박한 땅이라 해도 순종하여 파내려 갈 때 소망의 물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참고-호 10:12, 렘 4:3). 이 개천은 말씀의 개천이요(시 119:103, 147-148, 렘 15:16, 호 14:2, 요 4:14, 6:35), 기도의 개천이다(막 9:29, 겔 36:33-38). 에돔 광야 골짜기 전투를 통해서 전쟁의 승리는 메마른 땅을 누비며 창칼을 휘두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물이 말라버린 메마른 땅에 개천을 파내려가는 데 있다는 영적 교훈을 배우게 된다.
에돔 광야 골짜기 전투의 한계와 성도의 최후 승리
에돔 광야 골짜기 전투는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승리는 일시적인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적을 완전히 진멸하여 전쟁을 종결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패배한 모압 왕은 동맹군 중 가장 약한 에돔 왕을 다시 공격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왕하 3:26). 그러자 세상 신을 의지하면서 맏아들을 죽여서 번제를 드렸다(왕하 3:27上). 그런데 이 미개하고 잔혹한 행위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분하게 여기고 자기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하 3:27下). 이 말씀의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격노가 임했다’인데, 이는 모압 왕의 우상숭배를 보고 이스라엘이 격노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그 행위의 미신적 능력을 믿고 두려워하며 당황하여 격노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를 “이것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크게 당황하여 그곳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결국 최후 승리를 얻는 데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에도 모압의 공격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왕하 13:20).
오늘날 성도들은 에돔 광야 골짜기 전투의 안타까운 결말을 반면교사로 삼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얻은 승리를 끝까지 붙잡는 가운데 영원한 승리의 응답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히 3:1, 6:11-12, 고전 1:8).
글_정디모데 전도사
2006년 11월 12일 주일 2부예배 설교 ‘이 계곡에 도랑(개천)을 많이 파라’를 요약,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