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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 주신 마지막 성전

2019.05.27 23:31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 주신

마지막 성전

 

겔 40:1-4, 43:10-11

 

우리가 사로잡힌 지 25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14년 정월 10일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하나님의 이상(vision)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지어다” 하더라(겔 40:1-4).

인자야 너는 이 전(殿)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겔 43:10-11).

 

제가 이 땅에 태어나서 하나님께 부름받은 목사로서 에스겔 성전에 대해서는 오늘 처음 설교합니다. 지리산에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말씀을 깨달은 이후 처음 전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듣는 사람이 알아야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생각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연구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해봐야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많이 보내셨지만 그 중에서도 에스겔만큼 고생 많이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30세에 선지자로 부름받은 뒤 20년이 지난 50세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에 대해 에스겔 40-48장에 기록했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이 세상에 한 번도 실제로 지어지지 않은 성전,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는 성전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성전에 대해 기록한 에스겔 40-48장이야말로 신,구약 66권의 결론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다 에스겔 성전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성전입니다.

성도 여러분, 남을 흉보고, 의심하고, 욕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에스겔 성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도적질하고 사기 치는 죄를 범해도 에스겔 성전에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 기업(基業)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고후 6:16). 남에게 눈 흘기고, 차별하고, “저 사람 나쁜 사람이야, 상대하지 마” 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혀를 금하라”(벧전 3:10) 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 심판 날에 그 말에 대해 심문받습니다(마 12:36-37). 남의 얘기 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속사 시리즈 제7권 이후의 출간이 늦어지는 이유가 바로 에스겔 성전 때문입니다. 에스겔 성전에 대해서만 600페이지 분량이 나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 신구약의 결론인 성전에 대해 다루다 보니 내용이 방대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마지막 성전에 대한 이상(vision)을 보고 듣게 하신 뒤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주님 재림하실 때 순간적으로 변화된 사람만 가서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22장에 기록된 새 예루살렘 성(城)도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곳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거듭난 사람만 새 예루살렘의 성전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은 ‘여호와삼마’, 즉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에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십니다(계 21:3). 죽음이 영원히 없고, 아픈 것, 병드는 것이 없는 세계입니다. 에스겔 성전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돼 있으니, 내가 믿고 나도 가야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앞으로 나올 구속사 시리즈에 에스겔 성전의 입체도, 평면도를 성경의 기록에 따라 그려서 컬러로 실을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의 어느 신학자도 손대지 못한 일입니다. 평강제일교회를 통해서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성전을 재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에스겔은 누구인가?

‘에스겔’의 뜻은 첫째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시다’, 둘째 ‘하나님께서 강하시다’입니다. 에스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역했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마음 뜨겁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경고하셨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패역한 백성’, ‘망할 종자’라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로만 깨닫고, 행동은 하지 않으면 패역한 백성이 됩니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바벨론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의 사랑입니다. 끝까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포로로 잡혀간 곳에서도 다시 깨닫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여호야긴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간 지 5년째인 BC 593년, 나이 30세에 선지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당시 바벨론의 수도에는 서울의 한강 같은 ‘그발강’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이스라엘 포로들을 풀어놓았습니다. 포로들은 먹는 것, 입는 것, 화장실 가는 것조차 자유가 없었습니다. 에스겔은 그런 동족들을 보면서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은 새 언약과 새 성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소망과 용기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선지자로 부름받은 지 20년 뒤인 50세에, 오늘 본문인 에스겔서 40장부터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에스겔서는 1장 1절부터 48장 35절까지 총 1,273절로 돼 있습니다. 1-3장은 에스겔 선지자의 소명(召命)과 임무에 대한 기록입니다. 4-32장은 포로기간 전반부터 이스라엘 심판 때까지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33-39장은 포로 기간 후반부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입니다. 40-48장의 총 260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 즉, 예언의 완성, 새 성전의 환상을 보여줍니다. 새 성전은 에스겔서의 결론이자 신,구약 66권의 최종적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1,22장도 에스겔서 48장이 이루기 전에는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 받아 이 성전을 봐야 합니다(요 11:26).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예수님이 오신다고 성경에 예언된 대로 오시지 않았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처녀가 아기를 낳는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사 7:14, 8:8-10)고 예언한 그대로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습니까?(마 1:23). 하나님이 노(老)선지자 시므온과 과부 된 지 84년 된 여(女)선지자 안나에게 “메시야, 만왕의 왕, 인류의 구세주를 네 눈으로 볼 것이다”라고 예언하신 그대로 그들이 보지 않았습니까? 이 땅에 지어지지 않은 성전, 하나님이 지으셔서 육신의 눈으로는 못 보는 성전, 거듭나고 변화받아야 볼 수 있는 성전이지만, 성경에 분명히 기록돼 있지 않습니까? 실재(實在)하는 성전이 아니라면 규격이 얼마나 된다는 것을 어떻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도 말씀을 믿지 못하는 바람에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 줄 믿으라. 너희와 같은 인간이지만 내 말을 믿는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라’ 라고 에스겔서에만 무려 일흔 네번 기록하셨습니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겔 2:5)

에스겔은 망국의 설움 속에 자기 나라를 가족처럼 마음에 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것에 대해 자기 자녀가 부모 말을 듣지 않는 듯한 아픔으로 기도했습니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고 속을 썩인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답답하겠습니까. 에스겔은 바로 그런 심정을 품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는다 하면서도 나라가 망하든, 흥하든, “저러다 망하든지, 죽든지 알아서 해라” 하며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았습니까? 하늘 아래 에스겔 선지자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지리산에서 기도할 때 1년 반 동안 에스겔 선지자를 마음에 품고 눈물로 양식을 삼았습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유대교 랍비들은 에스겔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가 민족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새 성전을 통해 민족의 회개를 촉구하고, 소망의 활력소를 민족에 불어넣은 이는 에스겔 뿐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소명(召命)받을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겔 1:1). 구약에서 선지자가 기도할 때 하늘이 열렸다는 기록은 에스겔에게만 있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이 다 막혀있는 암울한 역사적 현실 속에 하나님께서 하늘을 여셔서 이스라엘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실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를 내가 시작하겠다. 에스겔아, 힘내라! 용기를 내라! 의심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라!’는 소망과 확신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하늘이 열린 것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으시고 올라오실 때(마 3:16, 막 1:10, 눅 3:21-22)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했을 때(행 7:56), 베드로가 기도할 때(행 10:9-11)에만 기록돼 있습니다. 하늘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마음이 뜨겁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임마누엘’, ‘여호와삼마’의 축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에스겔과 같은 뜨거운 심정이 있습니까.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않으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라고 한 예레미야 같은 마음, 양심의 가책이 있습니까.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1년 내내 한 사람도 전도하지 않는다면 장로도 아닙니다. 권사,집사도 아닙니다. 어떻게 장로가 전도를 하지 않습니까? 장로는 교회에서 대접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장로가 돼서 교회에서 눈 한 번 치웠습니까? 직원,목사들은 새벽 4시 반부터 눈을 치우는데 어떻게 장로, 권사, 집사라고 하면서 교회에 눈 한번 치우지 않습니까. 장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교회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까?

  

에스겔의 행동 예언

성도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에스겔은 행동으로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1.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하매”(겔 24:16-18)


아들딸 낳고 건강하게 잘 살던 아내가 그날 갑자기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아침에 에스겔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친척에게도 알리지 말고, 알고 음식을 가져오더라도 그 음식을 먹지도 말고, 슬퍼하여 울지도 말고, 평소같이 일하라고 하셨습니다(겔 24:16-18). 에스겔 선지자는 말씀대로 실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일에 당할 일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겔 24:19-26).


2.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겔 3:26)


BC 593년 에스겔 선지자가 선지자로 부름받은 지 7일 됐을 때는 하나님이 그를 벙어리로 만드셨습니다(겔 3:24-26). 하나님께 계시받았다는 에스겔이 말도 안 하고 있으니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조롱하고 욕했겠습니까?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다”고 경고한 때는 무려 7년이나 지난 BC 586년이었습니다(겔 33:21). 하나님이 예언하라고 명령하실 때만 잠깐씩 말을 할 수 있었으니 7년 동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벙어리로 만드신 것은 백성들의 마음이 바위처럼 굳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겔 3:7, 3:26, 12:1-2, 43:8, 44:18-19). 그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에스겔의 아주 특이한 행동을 통해 말씀을 깨닫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정신병자로 보였습니다. 아직 이스라엘에 남아있는 동족들에게 ‘너희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나라가 완전히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와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된다’는 것을 행동으로 경고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저는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줄과 멍에를 메고 다녔던 예레미야 선지자처럼(렘 27:1-2), 3년 동안 벌거벗고 맨발로 이 거리 저 거리 다니며 ‘너희들이 내가 벗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줄 알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이사야 선지자처럼(사 20:1-6)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신,구약에 에스겔처럼 오해를 많이 받고 욕을 먹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하되”(겔 6:11)


에스겔에게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라고 하셨습니다(겔 6:11, 21:17, 22:13). 히브리 원어(알레이헴)에는 ‘미친 척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른들이 모여 회의하는데 누가 가서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친다면 어떻게 보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그런 행동을 하라면 순종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4. “인자야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겔 11:4)


에스겔서에 여러 번 기록된 “쳐서 예언하라”는 명령에서 ‘쳐서’도 히브리어로 ‘알레이헴’입니다. ‘미친 척하다, 째려보다’는 뜻입니다(겔 11:4, 13:2,17, 20:46, 21:2, 25:2, 28:21, 29:2, 34:2, 35:2, 38:2, 39:1). 누구와 얘기를 하는데 째려보면서 말한다면 상대가 어떻게 보겠습니까? 같이 대화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에스겔은 이런 행동을 하며 하나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5. “너는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게 네게 40일로 정하였나니 1일이 1년이니라”(겔 4:4, 6)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박석(타일)에 앉아 적에게 생포된 것처럼 스스로 줄로 묶으라고 하셨습니다. 매일 다른 기행(奇行)을 하니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문이 다 났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를 위해 좌편으로 390일, 우편으로 40일간 누워있으라고 하셨습니다(겔 4:4-17). 왼편은 히브리어로 ‘북쪽’입니다. 오른편은 히브리어로 ‘남쪽’입니다.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되 뜻 없는 소리가 없다고 하셨는데 여기에 뜻이 없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390일간 왼편으로 누워있고, 40일간 오른편으로 누워 있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이런 명령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렇게 누워서 물은 하루에 1/6힌(아주 작은 컵으로 두 컵), 떡은 하루에 20세겔(228g, 달걀 2개 무게)만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인분(사람의 변)을 주워다가 나무 대신 불을 피워 떡을 구우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하니 “그러면 쇠똥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겔 4:15). 하나님은 부정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과, 이스라엘이 패망해 떡과 물이 결핍하고 피차 민답(悶沓: 걱정스러워 가슴이 답답하고 아픔)하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겔 4:16-17). 결국은 그 예언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6. “너는 터럭 3분지 1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3분지 1은 가지고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3분지 1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겔 5:2)


수염을 깎아 1/3은 불사르고, 1/3은 칼로 난도질하고, 1/3은 바람이 불 때 흩어 내보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자 “깨닫게 된다. 시킨 대로 하라” 하셨습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한두 번 행동으로 예언했지만 에스겔은 소명 받은 뒤 끝까지 행동으로 예언했습니다. 율법에 제사장은 머리털을 깎아서는 안 되지만(레 21:5, 신 14:1)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이면서도 명령대로 준행했습니다.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 것은 극도의 심판, 저주 중의 저주, 불명예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탐심과 음욕이 가득했던 당시 장로,종교지도자,백성들에게 모두 망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1/3은 도성에서 죽고, 1/3은 전쟁에서 죽고, 1/3은 바람에 날려 처참하게 죽는다는 것입니다. 칼로 친다는 것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며, 불사른다는 것은 존재 가치도 없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입니다. 바람에 흩어진다는 것은 살아 남은 자도 다 흩어져 부모와 자식이 다시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황에 처하고 호적마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조금 남은 터럭마저도 밀어서 옷자락에 싸고, 그 가운데 얼마를 불에 사르라고 하십니다(겔 5:3-4). 누구도 예외 없는 철저한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 남는 것은 남은 자의 소망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7.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目前)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겔 12:3)


하나님은 에스겔에서 밤에 행구를 만들어 몰래 이사 가라고 하셨습니다. 왕과 지도자들이 바벨론에게 패망해 밤에 예루살렘 성벽을 뚫고 몰래 도망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우습게 여기며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살고 있지만, 그날에는 몰래 도망쳐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굶어죽는 것을 예언하기 위해 근심하고 걱정하면서 음식과 물을 마실 것도 명령하셨습니다(겔 12:17-20).


8.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겔 21:6)


많은 백성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또 시퍼런 칼을 들고 아래로 번쩍번쩍 비추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겔 21:9). 바벨론이 쳐들어 와서 너희 부모,형제가 목 베임을 당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살려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메시지입니다(겔 21:8-17).


9. “가마를 걸라. 건 후에 물을 붓고 양떼에서 고른 것을 가지고 각을 뜨고 그 넓적다리와 어깨고기의 모든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 모아 넣으며…가마 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을지어다”(겔 24:3-4)


에스겔이 포로된 지 제9년 10월 10일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좋은 고기’로 비유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바벨론 침략 같은 환난이 와도 ‘가마’ 같이 난공불락인 예루살렘 성벽이 자기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으로 보장받는, 무쇠처럼 단단한 예루살렘이 왜 무너지느냐? 에스겔은 미친 사람이다’ 하며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택한 이스라엘 백성이다’ ‘제사장이다’ ‘장로다’ 하는 자부심에 빠져 있던 그들에게 에스겔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백성들에게 바른 교훈을 가르쳐 회개시키지 못했던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매 맞고 도망치다가 사람을 만나면 차마 백성에게 맞았다고 못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슥 13:6)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언약 받은 백성이라고 자부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해야 합니다. 말씀은 영광의 영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머리 위에 있습니다. 그래야 심판이 와도 안전을 보장해 줍니다(벧전 4:13-14). 여러분 머리 위에 하나님의 말씀의 영광의 영이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성경 한 번 읽지 않고, 언약의 말씀을 믿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장로,목사, 전도사라고 하겠습니까. 한심한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24:35). 말씀을 믿는 사람은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 이 민족이 죄를 물 마시듯 마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탄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벙어리같이 가만히 있지 말고 복음의 나팔수가 돼야 합니다. 밥값을 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밥을 먹었는지, 떳떳한 밥을 먹었는지 스스로는 알 것 아닙니까.

에스겔의 예언은 유난히 특이하고 해괴망측한 행동을 통해 선포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신(新)신학자들은 “에스겔이 신경질환 환자였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절대로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실제적 행동을 통해 역동적으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영적,심리적으로 강한 충격을 줌으로써 말씀이 그들의 속에 깊이 들어가게 했습니다. 행동 예언을 통해 백성들의 죄악을 낱낱이 파괴시키고, 회개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한 선지자는 에스겔 뿐입니다.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하기 힘든 이런 과정을 통해 패역을 회개하고, 진실로 하나님 말씀이 귀한 줄 알게 되는 가운데 오늘날까지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한 에스겔 성전이 우리 앞에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 성전 안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여호와삼마(하나님이 거기 계시다)’의 축복이 임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마다, 어디에 가든지 여호와삼마의 축복,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계시다)의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2월 17일 주일 2부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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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3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2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1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0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59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58 마라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엘림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 구속사 세미나 참관기(1) 2026.09.22
2957 누구라도 쉬기 원하는 시간, 고된 봉사를 자원한 평강의 어른들 남선교회 ‘오직봉사팀’ 토요 봉사 체험기 2026.09.22
2956 추석에 관한 잔소리, 금(金)소리 2026.09.22
2955 The Rules for Spiritual Leaders – 1 Corinthians 4:1-2; Romans 15:1-2 2026.09.22
2954 Foreword 2026.09.22
2953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2026.09.01
2952 ‘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자’ 2026 하계 대성회 2026.09.01
2951 성막 화첩의 인기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 구속사 시리즈 제9권 영문판·일어판 출판 감사예배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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