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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상 기도회에 다녀와서

2019.05.29 22:10

지리산 산상 기도회에

다녀와서

 


권오연 성도

 

5월, 사방이 푸르르다. 꽃들이 만발하니 곳곳에서 축제가 한창인 계절, 황금연휴(5월 5-6일)에 우리(32대) 교구 19명은 지리산 산상 기도회를 떠났다. 어떤 축제보다 송두리째 내 마음을 움직이는 본향 같은 곳, 안식처 같은 지리산 기도처! 가장 큰 기도제목은 앞으로 열릴 권역별 성경 구속사 세미나를 위해서다. 장안산 산상 기도회는 세 번 다녀왔지만 지리산은 요셉선교회 때 처음 가고 13년 만이라 갈등을 했다. 30대 시절 장안산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선뜻 나섰다가 며칠을 빌빌 앓았는데 이 나이에 장안산의 3배라는 지리산을 갈 수 있을까. 게다가 배낭이라도 대신 들어줄 남편도 이번에는 직장 일 때문에 못 간다니 그냥 나도 가지 말자. 교구 식구들이 지리산으로 출발하는 주일에 나는 저녁 4부예배까지 드렸다. 지하철에서 4부 말씀 녹취를 읽으면서 오는데 에스겔의 행동 예언에 깃들어 있는 구속사적 교훈이 계속 꽂혔다. 회개치 않으면 아무리 권력 있고 돈이 많아도 인생이 사막같이 황무해진다는. 그저 한숨만 나왔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지리산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8시간 동안 회개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총무님께 가겠다고 부랴부랴 문자를 했다. 부리나케 씻고, 마트 가서 쵸콜렛과 방울 토마토 사고, 짐을 꾸려 약속 장소에 나갔다. 버스에서 내리니 새벽 3시. 하늘을 보니 별들이 내 얼굴에 마구마구 쏟아 질듯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끌고 ‘저 별들처럼 네 몸에서 날 자들이 많을 것이다’ 약속하실 때는 이보다 더 많은 별들이 보였겠지.

한 달 전 장안산 기도회 때. 그때도 새벽에 출발. 몇 번을 쉬어 갔건만 도저히 못 가서 여기서 포기해야겠다 생각하고 혼자 쉬고 있었는데 사방이 캄캄하고 갈대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박윤식 목사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기도가 부족하면 나뭇잎 구르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정상까지 안 가고 혼자 남아있던 해병대 출신인가 하는 분이 텐트가 번쩍 들렸다 놨다 해서 기절초풍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자리를 털고 얼른 따라갔었다. 이번 지리산행은 나름 매일 준비운동을 했던 터라 걱정했던 것보다 무난하게 올라갔다. 날이 밝았다. ‘천왕봉’ 돌비를 발견하자마자 그 자리에 그냥 누워버렸다. 어느 권사님께 “한라산 다녀왔어?” 라고 누가 물어보니 “거기는 기도처가 없잖아. 장안산이나 지리산은 기도처가 있기 때문에 온 거지 없으면 왜 가냐”. 내 생각과 일치된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건강을 위해 다른 운동을 하면 했지 1915미터,이 험한 산을 내가 어떻게 오를까. 이제 기도처를 향해 신발끈을 고쳐 매고 발길을 돌렸다.

이제까지의 산행은 정말 일도 아니었다. 미지의 길이라면 모를까 한 번 다녀왔기에 ‘그래, 기도처 직전 밧줄 잡고 갔던 그곳만 쪼금 겁났었지.’ 하며 보무도 당당하게 나섰건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산은 그대로고, 기도처도 그 자리에 있고, 당연히 가는 길도 13년 전과 같은 길일 텐데, “저기요, 이 길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요”를 연발했다. 그만큼 험난했다. 한 사람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길목에 둥그런 바위만 붙잡고 옆에는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 거기를 통과해야 했다. 아, 나는 그냥 천왕봉까지 왔다는 사진만 남기고 돌아가야겠다 했지만 돌아가는 길도 혼자는 못 갈것 같았기에 사시나무 떨듯 달달 떨면서 지나갔다. 올 것이 왔다. 그 옛날에도 겁났던 기도처 직전 밧줄 잡고 가던 그곳에 다다랐다. 천 길 낭떠러지를 보는 순간 첫 애 낳을 때처럼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65세 이상이신 분들도 잘만 건너가셨건만 막내인 나만 ‘무서워 무서워’를 연발하니 손잡아 주고 기도를 겸한 응원을 해 주신 덕에 어떻게 어떻게 기도처를 내 발로 밟게 되는 감격적인 순간!

홍해를 건널 때는 하나님이 갈라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지만, 요단강을 건널 때는 법궤를 앞세우고 제사장이 먼저 건너고 뒤에 백성들이 건넜다고 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있어야 이 아슬아슬한 절벽을 거쳐 기도처에 도달할 수 있겠구나! 그 사건이 깨달음처럼 메아리쳐 들렸다. 찬찬히 기도처 안을 들여다 보았다. 창문 같은 작은 구멍이 있는 것도 보이고 돌들도 만져보고반 세기 전 박윤식 목사님이 이곳에 처음 기도하러 오셨을 때 6개월간은 흙을 파내고 드러내고 하셨다는데. 장안산에서도 느꼈지만 ‘몇 평짜리 내 집은 어느 세월에 사고 돈은 언제나 모으려나’ 한 때 고민했던 것이 다 부질없었다. 그저 우리 집에 대문 하나 붙어 있는 것, 그거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3년 6개월 7일을 지내셨을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통성기도하고, ‘인침을 받은 자의 시온산 새노래’를 불렀는데 교회에서는 너무 자주 불러서 어떤 때는 립싱크만 하고 때운 적도 있었는데 오늘 이곳에서 부르니 구구절절 새로웠다. ‘펴 놓인 작은 책 먹고 온 열방 향해 외친다. 영원한 복음의 선포, 열방이 춤춘다’. 박 목사님도 성령의 조명으로 성경을 깨달으신 뒤 여기서 너무 좋아 춤을 추셨다는데 기도처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50여 년 전 그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황홀한 천국 체험은 여기까지. 돌아갈 시간이 다가온 것. 옛날에는 기도처 안쪽에 있는, 사람 한 명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으로 나갔었는데 이제는 막아놔서 아까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아, 내 인생 서막은 여기까지였구나. 다 집에 가고 나는 그냥 여기 기도처에서 남은 여생 보내라는 건가 보다.’ 도저히 아까 왔던 그 길을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교구 식구들이 남겨둘 리 만무. 돼지 같은 나를 다시 붙잡아 주셔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러나 밧줄 잡고 가는 그곳은 길이 좁아서 누구도 옆에서 도와줄 수 없었다. 손에 땀이라도 나서 밧줄을 놓치는 날에는 가룟 유다가 떨어진 것처럼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는 건가? 내 회개를 아버지가 받아 주셨을까 아닐까? 지금 가면 안 되는데아니야, 데려가기 전에 지난 인생을 다 보여 주신다는데 나는 아직 못 봤으니 아직 이 땅에 사명이 있을 것도 같은데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찌어찌 하산을 하는데 어둠 속에 오를 때 보지 못했던 노란 꽃들이 눈에 들어오고 개울물도 소리로만 듣다가 시청각으로 직접 보고 담궈 보고 비록 피곤하나 끝까지 따랐던(삿 8:4) 기드온의 300용사나, 아브라함의 집에서 길르고 연습시켰던 318명의 가신들도 한마음 한뜻이었기에 헤브론에서 단과 다메섹을 지나 그 먼 호바까지 345km 이상 추격해서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급습하여 대승을 이룬 것처럼, 거친 광야 노정에서 천국 가는 여정에 함께 가야겠구나. 세상 연휴라 차가 많이 밀려 집으로 돌아왔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듯 내 발바닥은 다시 세상 바다를 밟고 있었지만 오늘 있었던 흔적의 돌담이 추억처럼 내 마음 어느 구석 한켠에 자리잡아 그 든든함으로 남은 생을 또 위로받으며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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