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만 한다고 해결이 되느냐고요?”
“기도만 한다고 해결이 되느냐고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이 두 말씀 앞에 우리는 고민한다. 대체 ‘기도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행동이 우선’이라는 것인가? 연약한 우리 인간들 보고 어쩌라고 이다지도 헷갈리는 말씀을 주셨던 말인가.
교회 일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이런 말도 있다. “아니, 기도만 한다고 해결이 됩니까?”
또 헷갈린다.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필자의 변변치 않은 소견을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준비운동’ 또는 ‘국민의례’ 정도로 여긴다. 일단 준비운동으로 몸을 좀 풀고, 본 게임은 내 힘으로 뛰겠다는 것이다. 본질은 ‘내 힘으로’ 하려는 것인데, ‘기도하고 한 일’이라는 면죄부를 받으려고 ‘국민의례’를 대략 치른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우리 머릿속 평균적 계산은 ‘기도 20%, 행함 80%’ 정도 아닐까.
그러나 과연 그런가. 내가 꼭 해결해야 할 중대한 민원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천재일우의 기회로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를 갖게 됐다.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을 만나 하소연하는 것이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행위인가, 동사무소 가서 주사부터 만나며 발에 땀나게 뛰는 것이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행위인가.
우리는 자주 기도의 파괴력을 과소평가(過小評價)한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과소(過小)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가 찾은 개인적 방법은 이렇다.
첫째, ‘기도가 100%’라고 생각하고 기도한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 단계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어떤 경우에는 ‘기도만’ 해도 하나님이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주신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되고, 가야 할 자리에 가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행함’은 마음이 평안하다. 그러나 ‘내 힘으로’ 하는 ‘행함’은 힘이 들고 빡빡하다. 내가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표 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의 계획과 시간표에 하나님을 끼워 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둘째, ‘행함’의 트랙으로 진입했더라도 기도했을 때의 마음이 유지돼야 한다. 한마디로 ‘기도’와 ‘행함’의 결이 같아야 한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말처럼, 꿰맨 자국 없이 기도와 행함이 하나로 연결돼야 한다. ‘기도할 때의 마음’과 ‘행할 때의 마음’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 행할 때는 내가 주인이 돼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되면 ‘기도’가 행함이고, ‘행함’도 기도이다. 필자가 이 경지에 들었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지향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이 경지에 들면 천하무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