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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광복(光復), 그것은 생명 해방의 환희입니다

2019.08.19 16:59

참 광복(光復), 그것은
생명 해방의 환희입니다

1989년 8월 참평안 권두언(휘선 박윤식 목사 집필)

 

 

1945년 8월 15일 광복(光復)의 그날, 우리는 온 민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게 생존권까지 박탈당한 채 애가 마르고 뼈가 녹는 고통 속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35년!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감격은 생명 해방의 환희였습니다. 

나라를 되찾았을 때 ‘빛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나라가 빛이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빛을 먹고 살 듯이, 민족이 나라 있어야 생존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이 소중한 진리를, 44년 전 광복의 아침에 솟구치던 겨레의 뜨거운 눈물 속에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얼마 전에 TV 화면에서 기막힌 광경을 보았습니다. 공산화한 조국을 도망쳐 나와 해상으로 떠돌던 월남 난민 수십 명이 우리나라 해안에 상륙, 한국 땅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남녀노소가 땅에 엎드려 두 손을 비벼대면서 눈물로 호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폭풍우가 그치면 다시 해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살아 보지 않고는 그 참담하고 절박한 심정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먼저 나라를 찾아야 부모님도 자식도 아내도 있는 법이라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채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떠돌며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서 애태우다가 숨질 때에도 눈을 감지 못하신 어른들, 그분들의 마음속에 나라가 살아 있지 않았더라면 광복의 아침은 밝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불신과 불안이 만연해 가는 나라 현실, 범국민적인 각성이 있어야!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되찾은 생존의 터전 이 나라를 어떤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까?

38선이 그어져 나라가 두 동강이가 났고동란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된 민족적 참화 속에서 분단의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한맺힌 어제를 살아 왔으나 아직도 통일조국에 대한 밝은 기약도 없이, 반 동강의 이 땅의 현실은 불신과 이기심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온 국민이 심혈을 기울여 이룩해 온 기적적인 경제 성장마저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교육계, 종교계 어느 곳을 보아도 애국 선열과 순국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욕되게 하는 일들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양심’이라고 하는 인간 보편의 가치나 ‘정의’라고 하는 사회 공통의 선(善)은, 그 생명력을 상실한 채 집단적 이기심을 포장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나라’라고 하는 공동체가 건재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신뢰’와 ‘사랑’인데 온 국민의 마음속에 불신과 증오가 만연해 가고, 사람 사이에나 집단 사이에 극도의 이기심이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나라는 극한 분열상을 이루고 있어 온 국민의 마음을 암울케 하고 있습니다. 불안과 좌절은 반드시 폭력을 동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이 놈의 세상, 아예 뒤집어 엎고 보자” 하는 혁명세력의 위협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구세력은 소외계층의 절망엔 눈을 감고 있습니다. 힘 있는 자의 은근한 비호 속에서 가진 자들은 아직도 이기심의 벽에 갇혀 극한 부패와 타락상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근본적으로는 ‘혁명’에 반대하지만, 기득권층의 부도덕성을 지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혁명 세력과는 구분되어야 할 사람들에게도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 결과 공권력 행사에 문제점이 생기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해지고 사회는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국민은 불신과 불안 속에서 아무 것도 믿으려 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 포기하고, 어떤 집단적인 움직임이나 집단의 소리 속에 자기 자신을 묻어 버리고 아무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베트남같이 되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 속에는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깔려 있고, ‘혁명’을 막기 위해서는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혁’의 전제 조건은 ‘기득권층의 도덕성 회복’이라고 역설하고 있지만, 무엇이 이 화석화된 양심들을 대오각성시켜 개혁을 가능하게 해 준단 말입니까! 기득권층뿐만 아니고, 지금 온 국민의 양심이 병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나라의 활로(活路)는, 하나님을 찾아 나 자신부터 빛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나라의 진정한 활로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잠 28:2)라고 했습니다. 나라를 장구하게 할 만큼의 큰 명철과 참된 지식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온갖 인위적인 지식과 명철이 내로라 소리쳐도, 그것이 나라를 전체로서 살려낼 수는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 거짓과 역심으로 얼룩진 것이어서 그것이 힘을 얻으면 역사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을 우리 국민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지구촌 전체가 한데 얽혀서 선악과 시비의 기준도 없이 온 세계가 자국(自國)의 이익만을 위해 각축하고 있는데 여기서 나라와 국민을 보호하여 역사의 정로(正路)로 인도할 수 있는 그러한 크고 밝은 힘의 출처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찾아 구해야 합니다. “악인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잠 28: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했고(잠 1:7), 악을 떠나는 것이 명철이라 했습니다(욥 28:28). 동서남북 사방이 막혔고 뚫린 것은 하늘밖에 없는 오늘입니다. 저물어가는 소돔과 고모라의 성문에서 위로부터 오는 도움을 기다리며(창 19:1), 자기 백성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던’(벧후 2:8) 롯의 탄식소리, 하나님은 그것을 들으셨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나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간절히 찾으면 대한민국은 나 하나 때문에 밝아집니다. 나부터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고 그 빛과 동행하면 어둠 속에 준동하던 소돔 고모라는 사라지고 억눌렸던 뭇 생명들은 함께 일어나 빛으로 나옵니다. 

온 백성이 좌절하고 있을 때 스가랴 선지자는 민족 부흥이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神)만으로 된다’(슥 4:6)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신(神)만이 참 빛입니다. 이 나라가 근본에서부터 살아나려면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면서도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는’(롬 10:3) 그런 사람들이 크게 회개해야 합니다. 감추인 욕심과 교만으로 빚어낸 우상, 곧 ‘인간의 의(義)’는 다 더러운 옷 같아서 나무 잎사귀같이 쇠패해지는 법인데(사 64:6) 그런 헛된 것으로 백성을 속이고 열광케 하면 그들의 죄악이 이 나라를 바람같이 몰아가고 맙니다.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며, 심은 것이 줄기가 없고 이삭이 열매 맺지 못하며, 열매가 설혹 맺혀도 어둠의 세력이 삼키고 말게 하는 그런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하늘 아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일찍이 우리 민족은 하늘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늘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모든 수난을 이기며 살아온 슬기로운 백성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체념과 굴종의 삶을 살아온 듯해도 그 속에는 어떤 악으로도 이길 수 없고 소멸시키지 못하는 생명이 약동하고 있습니다. 그 끈질긴 생명, 천래적(天來的)인 슬기의 원천은 ‘하늘 아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 144:15)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성경은 “옛날을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신 32:7)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나라’가 무엇인지를 조상에게 한번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나라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삶의 자세도 그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고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0-11)라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가르치는 이가 없었어도 하늘 뜻을 믿었습니다. 반만 년 역사에 내우외환(內憂外患)의 굽이굽이 천지가 캄캄해지는 그 가운데서도 하늘이 심으신 한 뜻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큰 빛줄기 속에서 어둠을 이기고 살아왔습니다. 나라는 크고, 높고, 깊고, 영원한 것이고, 그것은 하늘의 섭리대로 경영된다는 절대의 진리를 어느새 우리 민족은 감지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좁아지고 어두워진 제 자신을 먼저 꾸짖고 스스로 벌하면서 ‘나라’ 앞에 늘 겸허하였습니다. 일자무식한 필부필부(匹夫匹婦)도, 양반한테 볼기맞기 바빴던 상놈도, 대쪽같이 곧아 늘 가난했던 샌님도, 나라는 철부지 인간들이 법석을 부리며 빚어가는 것 아니고 하늘이 섭리하는 것임을 굳게 믿고 살았습니다. 하늘은, 하늘이 주신 마음 그대로 살아가는 힘없고 가난하고 못난 것들의 편임을 알았습니다. 임금님보다 더 크고 높으신 하늘을 믿고 살았기 때문에 불의에 눌리면서도 절망하지 않았고,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무모하게 사나와지거나 방자해지지 않았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 하면서 하늘을 믿기 때문에 제 마음도 믿었습니다. 

하늘에서 비 내리고 땅에서 오곡백과 절로 영그는 것을 하늘 앞에 감사하고, 땡볕 아래 비지땀 흘려 심은 대로 거두어 살아가는 것이 조상 앞에 그지없이 고마운 사람들, 이 불변의 천심(天心)들이 곧 나라입니다. 나라가 어둡고 어지러우면, 그것은 나라의 주인인 제 탓이라 했지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 원망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위당 정인보가 쓴 이순신 장군의 비문에는, “장군께서 ‘내 목숨은 하늘을 믿는다’고 했고, 그분이 노량해전에서 ‘하늘을 우러러 빌고’ 마지막으로 싸우다가 숨지셨을 때 ‘이 싸움이 지난 뒤에는 여러 군데의 적이 한꺼번에 씻은 듯이 없어져서, 일곱 해 만에 뭍과 바다가 처음으로 맑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믿고’ 지성(至誠)하는 마음이 감천(感天)하여 불가항력의 어둠을 이기고 나라를 구하고 역사를 건졌던 것입니다. 

 

참 ‘자유와 해방은’ 예수 마음 받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극심한 혼란과 위기를 만난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광복(光復)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해방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본래 죄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의 사백 년 종살이, 바벨론에서의 칠십 년 포로생활이 그랬고, 우리 민족의 일제 35년이 또한 죄의 결과였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탄식하던 바울에겐 대명천지 밝은 세계에 산다 해도 자유와 해방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혔어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바울과 실라!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고 했으니, 거칠고 완악한 마음을 녹이며 울려퍼지는 위대한 노래를 부르는 그는, 그 발이 착고에 든든히 채워졌으나 참 자유인이요, 해방된 자가 아닙니까!

남의 종된 적이 없는 자유인으로 자처하는 유대인에게, 주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 국민은 어떻습니까? 죄와 허물이 하도 크고 무거워서 사람의 힘으로는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같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하고 찬송하는 개인과 가정, 그리고 이렇게 찬송하는 국민이 참 자유인이요, 자유한 그 사람 자신이 곧 해방된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진정한 광복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고 하신 그 마음 받아서 남을 사랑하면, 모든 불신과 불안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죄와 죽음이 달아납니다. 마침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터져나와 서로 화답하는(엡 5:19) 그곳에서 참으로 광복된 나라가 열려옵니다. 

민족이 이토록 숙원하는 통일도 남을 사랑하는 마음, 일어나 빛을 발하는(사 60:1) 국민의 가슴 속에서 밝아옵니다.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고 하십니다. 자기 속에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어 타오르는 그 사람이, 때를 아는 지혜를 받아 하나님의 신(神)으로 역사하면 평화 통일의 아침은 앞당겨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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