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에게 호(號)를 지어달라고 하셨을까?”
구속사 시리즈 저자 박윤식 목사님의 호인 ‘휘선(暉宣)’은 흔히들 박 목사님이 직접 지으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이 호를 지어드린 성도가 있었다. 참평안은 박윤식 목사님의 호를 지어드린 인물, 김인수 성도(75세, 평강제일교회 연예인선교회 소속)를 만나 숨겨졌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박윤식 목사님을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한 15년 전쯤에 만났어요. 어떻게 인연이 됐느냐 하면 당시 큰 행사에 내가 사회를 보러 갔어. 성역(聖役) 몇 주년 기념행사라고 하는데 몇 주년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원로목사님(편집자 주:박윤식 목사님을 지칭)은 대중들의 애환을 달래 준 연예인들을 각별히 생각하셨고, 형편이 어려워진 연예인들을 많이 챙겨주셨던 분이라 그날 행사에도 김세레나 씨를 비롯해서 연예인들이 많았어요. 나는 그때 원로목사님을 처음 만나게 된 거예요.
호를 지어달라는 부탁은 어떻게 받게 된 건가요?
행사 끝나고 몇 주 지나고서 어느 날 전화가 왔네? 평강제일교회 신귀환 장로님인데, 원로목사님께서 한번 보고 싶어 하신다는 거야. 어르신이 점심식사를 하고 싶다시니 얼마나 영광이야. 같이 사회를 봤던 콤비한테 “어르신이 같이 식사를 하고 싶다시단다, 같이 가자” 해서 같이 가서는 교회 에담 식당 가장 안쪽 귀빈석에서 원로목사님하고 밥을 먹었어요. 식사하고 디저트를 먹는데 원로목사님이 “좀 자주 봤으면 좋겠다” 그러시더라고. 그리고 나서 또 한 2-3주 흘렀는데 어르신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한번 하시고 싶대. 나한테는 너무 과분하고 영광이지. 사실 내가 그 전까지는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자꾸 베푸시는데 밥만 먹고 간다는 게 민망하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그 주일날 생애 처음으로 교회에 나왔어요.
그렇게 몇 달쯤 지났나, 신 장로님을 통해 다시 어르신의 부탁을 하나 받은 거야. 어르신이 성도들한테는 ‘원로목사님’으로 통하는데, 사회에서 칭할 수 있는 ‘호’를 하나 지어달라고… 이게 내가 지금도 미스테리예요. 왜냐면 내가 어르신 만났을 때 한문 공부했다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했거든. 주변 사람들한테도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 나한테 아무 정보도 없는 가운데 나한테 부탁을 하시니까. 평강제일교회에만 해도 교인이 수만 명인데 그중에 명석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사회자 두 명 중에서도 하필 나한테. 나는 이 생을 살면서 이런 미스테리는 처음이에요. 기적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야.
그럼 한학(漢學)은 얼마나 공부하신 건가요?
“공부 얼마나 했냐” 물을 때마다 나는 부끄러운 게, 아버지가 한학자이셔서 여섯 살 때부터 <천자문>을 시작으로 공부를 하긴 했지만 깊지는 못해요. 그냥 언저리를 왔다갔다 하다 말았어. 글씨 공부(서예)만 좀 오래 했지, 한자에 조예가 있다고까지는 절대 못해요.
그러셨군요. 호를 지으시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이름이라는 것은 대외적으로 그 사람을 알리는 첨단(尖端)이거든. 과연 내가 이 짧은 지식을 가지고 어떻게 어르신의 호를 지을까, 그럴 능력이 있을까 하고 걱정 무지하게 했어요. 신 장로님한테 부탁을 받고는 몇 날 며칠 고민이 되더라고. 잠이 안 와. 어디 조그만 회사 사장 같으면 안 그러지. 그런데 내가 한 4-5개월 설교 말씀 듣고 하다 보니까 스스로 원로목사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끓어 오를 때 쯤 돼서 이 명령이 떨어진 거야. 그래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수염 깎으려고 그날따라 목욕탕까지 갔다가 집에 왔지. 그날 먹을 갈아서 붓을 들고 서예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딱- 영감이 온 거야. “어르신의 호를 ‘휘선(暉宣)’으로 해야겠다.”
휘선(暉宣)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
‘휘’는 ‘햇볕 휘(暉)’, ‘선’은 ‘베풀 선(宣)’. ‘휘’에서 ‘날 일(日) 변’은 ‘해’를 뜻해요. 햇빛이라는 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비취잖아. 돈 많다고 해서 비추고, 없다고 해서 안 비추고 하지 않고 햇빛은 평등하게 주어지거든. 생각해 보니 이런 햇빛의 특성이 꼭 어르신이 성도들에게 평등하게 사랑을 주는 것과 비슷하잖아요. 햇빛을 뜻하는 한문은 많아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왜 이걸 택했느냐? 여기 ‘날 일(日)’ 변 옆에 있는 한자는 ‘군사 군(軍)’이야. 군인은 바로 사명을 위해서 있는 사람 아니에요? 자기 마음대로 있는 게 아니고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게 바로 ‘군(軍)’이란 말이야. 나는 정말 어르신이 사명감에 의해서 일하고 계시다 하는 것을 말씀 강론 들으면서 느꼈거든. 어떻게 이렇게 참 어르신과 딱 맞아 떨어지는 한자가 있는지, 은혜로 너무 기적같이 지었어요.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원로목사님께서는 이 호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이 호를 지어서 어르신한테 드리니까 설명을 한번 해 보래. 내가 말 깨나 한다는 놈인데 어르신 앞에서 괜히 긴장되고 그랬지. 그래도 이런이런 뜻이 담겨 있다 하니까 딱 하시는 말씀이, “나한테 너무 과분한 거 아니냐. 내가 그만한 그릇이 못 된다”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 호를 봐서라도 앞으로 더 분발해야겠다” 하셨어요. 내가 그 말씀하실 때 정말 가슴이 울컥했어. 나는 “목사님은 지금까지 하신 것만 해도 이 호 이상을 베푸셨다[宣]”고 말씀드렸지. 그리고 나선 작명료를 주시더라고. 참 좋아하시면서 “이름을 그냥 지어서 되냐. 작명 값은 내가 밥 한 끼라도 먹으라고 준다”고.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한테 꼭 들려 주고 싶었어요. 오늘 큰 책임을 벗은 것 같아.
글_윤은혜 기자
이름은 하나의 ‘구별 짓는 기호’이자
그 ‘존재 자체’를 가리키고(창 2:19),
그 ‘존재의 속성과 인격’까지 내포합니다.
또한 평생 따라 다닐 뿐 아니라,
그가 죽은 이후까지 남겨지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구속사 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박윤식 저, 도서출판 휘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