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적인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자
세상적인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자
빌 3:10-16
하나님이 주신 은총 중에 가장 큰 것이 있다면 망각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성령의 역사로, 은혜를 주셔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은혜를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을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의 인생철학은 바로 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전에는 잊어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앞장서 날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데 지장이 없게 됐습니다. 빌립보서 3:8에서 사도바울은 세상 것을 배설물과 같이 다 잊어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사나 죽으나 예수님 한분밖에 없었습니다. 전에는 예수를 그렇게 미워하고, 사단으로 여기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옥에 가뒀지만, 예수님을 만나 성령의 역사로 과거의 잘못된 율법적인 신앙이 담긴 메모리가 다 지워졌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바울보다 억울한 사람은 없습니다. 욕을 먹고 돌에 맞아 죽을 뻔했고 40에 하나 감한 매, 즉 39대씩 다섯 번을 맞고 감옥에 들어갔다 오고 굶고 춥고 헐벗고 병까지 걸렸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지난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다고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성경에서 인생의 가시가 요셉처럼 많은 사람은 없습니다. 형제들에게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세겜 사람에게 20세겔에 팔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끌려갑니다. 거기서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2년 이상 고생했습니다. 감옥에서는 술 따라주는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줬습니다. 술 따라주는 관원장이 출옥할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그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바싹 말라 꼬드라진 이삭 일곱 개와 살찐 이삭 일곱 개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바짝 마른 소와 살찐 소 일곱 마리가 나왔습니다. 이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술 따라주는 관원장이 그제서야 요셉을 기억하고 왕에게 고함으로써 왕의 앞에서 요셉은 꿈을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요셉은 죄인이고 이방 사람이었습니다. 최고 권세의 왕이 다른 사람들과 의논하지도 않고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을 나라의 두 번째 치리자인 국무총리로 임명했습니다. 그 후 요셉이 해석해 준 바로의 꿈대로 온 세상에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요셉의 형제들과 아버지 야곱이 있는 곳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식량이 풍부했던 애굽으로 형제들은 식량을 얻으러 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지난날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이 아들을 낳고 ‘므낫세’라 지었는데, ‘므낫세’라는 이름의 뜻처럼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복수의 마음이 다 잊혀진 것입니다. ‘사랑’이 요셉으로 하여금 모든 가시와 분함과 원한을 말끔히 쫓아내고 씻게 해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다 잊어버릴 때 손해 본 만큼 하나님께서 은혜로 가정마다 부요의 축복을 채워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잊을 수 있는 것은 결심이나 수양으로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져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주 안에서, 성령의 역사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지만 인간의 죄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에게 다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리고 죄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주셨습니다. 우리를 값을 주고 사신 것입니다. 당신의 외아들의 거룩한 몸에서 흘린 보혈,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그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인데 세상적인 생각, 육신적인 생각으로 머리 아파하지 말고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와 성령의 불담으로 다 태워서 내쫓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증거합니다(벧전 4:8). 사랑은 어떠한 죄든지 덮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진 사람보다 그것을 공개하며 나무라는 사람을 더 미워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덮어주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고전 13:4). 용서란 무엇입니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용서’의 히브리 원어도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남에게 베푼 것을 잊지 않고 상기시켜 주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베푼 것도 기억하지 말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남에게 백번 사줬어도 잊어버리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죄와 잘못을 잊지 않고 따진다면 살아 남을 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허물을 없던 것으로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고, 눅2:14에 말씀하신 평화요, 복음입니다. 마 18:21-35을 볼 때 친구의 허물을 잊어버리고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 안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19:11, 벧전 1:22, 롬 5:4-9말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있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 그리고 노인들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모두 거짓말입니다. 빨리 죽어서 해결될 일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은 역사를 남기고,동물은 냄새를 남긴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사람 역시 여러 가지 냄새를 나게 합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룟 유다는 2천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얼마나 썩고 흉악한 냄새를 나게 하는지 모릅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그렇게 못되게 살았지만 회개하고 은혜 받아서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마음 가득히 예수님만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냄새, 즉 예수님의 향기를 날리며 살았습니다(고후 2:14). 예수님의 향기는 어떤 것입니까? 많은 표현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향기는 ‘너그러움’입니다. 성경 볼 때 우리가 죄 지은 것을 다 아시지만 알면서도 못 본 척 하십니다. 간과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죄 지은 것을 끝까지 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 짓기 전부터 아시는 분이지만 못 본 척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그러운 마음, 큰 마음입니다. 잊어버릴 때 너그러운 마음과 큰 마음을 주십니다.
구약 39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사랑을 잊지 말라’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말라기 4:6까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시는, 시종일관 똑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서 주신 말씀으로 우리 마음이 채워지면 빌 2:5의 말씀처럼 예수의 마음만 품고 살 때 만사의 형통과 출입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다섯 번째 책인 신명기는 기억하라, 잊지 말라, 생각하라 이 세가지 말씀으로 꽉차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신 32:7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 연대를 생각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가나안 복지(福地)를 향해서 갈 때 그곳에서 평화롭게 잘 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출애굽시키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여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40년간 발이 부르트지 않고 옷도 해어지지 않은 은혜를 기억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돌봐 주시고, 아껴 주시고, 안아 주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기 위해서 세상 것은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잊어버릴 때 싸움이 없어집니다. 그리할 때 출입의 복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년 7월 15일 주일3부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