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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흐르는 생명의 강

2019.12.24 14:41

넘쳐흐르는 생명의 강
에스겔 47:1-12

“이 말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
예수님이 공생애(公生涯) 출발하실 때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남의 집 문짝 고쳐 주던 목수의 아들로만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 하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분이 회당장, 제사장에게 듣는 모습만 봤지, 앞에 나가 가르치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두루마기를 펴서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한 글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왜 저럴까’ 하고 주목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 나사렛 사람들이 한마디로 ‘도깨비 대동강 건너는 소리’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겼다”(눅 4:22)고 했습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이 이런 말을 하다니 참으로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다는 얘기입니다. 눈만 껌벅거리며 예수님의 말씀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뒤 700년 만에 예수님이 오셔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 하셨을 때 이미 이 말씀은 이뤄졌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어야 이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소원대로 살며 부부, 자녀, 사업이 모두 형통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됩니까? 눈과 귀와 생각으로 들어오는 세상 것들이 여러분의 속에 살아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시기, 질투, 가식, 외식(外飾)이 살아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것들이 자기 속에 살아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어오게 할까봐 날마다 스스로를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세상이 바울을 향해서 못을 박고, 바울도 세상을 향해서 자기를 못박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는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신비스러운 영의 세계를 보여주시고, 이방인들이 말씀 앞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방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 받은 소명(召命)의식과 이 땅에 사는 목적을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니 성깔을 좀 죽이십시오. ‘나’를 죽이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서 깨닫고, 그대로 살고 믿고 행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싸움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힘든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장 힘들고 끈질깁니다. 이긴 것 같지만 또 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죽이기가 어렵습니다. 참고 참다가도 울화통이 터져 못 견디고 폭발시키고 맙니다. 기도 많이 하고 응답도 많이 받은 사도 바울조차 이 싸움이 너무 지겹고 힘들었습니다.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할 지경이었으니 얼마나 무서운 싸움입니까. 영국 속담에 ‘자기보다 더 큰 적은 없다’고 했고, 명나라 유학자 왕양명은 ‘산속의 적은 무찌르기 쉬워도 마음속의 적은 무찌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질이 나쁜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자신을 극복하는 것은 승리 중에 최고의 승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 첫 번째 원수, 최고의 원수는 욕심입니다. 가장 밉고 지긋지긋한 존재입니다. 권세, 지위, 씩씩한 남자, 예쁜 여자, 돈에 대한 욕심이 순간순간 우리 속에 들어옵니다.

두 번째는 교만입니다. 되지 못했으면서 된 줄 알고 우쭐대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교만한 자는 가증하지만 겸손한 자의 기도는 기뻐하십니다.

세 번째는 혈기입니다. 툭하면 성깔을 내는 것입니다. 자기는 다 옳고, 남은 다 악이라고 믿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은 마땅하고, 남이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네 번째는 시기심입니다. 시기가 있으면 집안이 잘 안 됩니다. 시기는 살인죄입니다. 괜히 미워하고 샘내고 거짓말합니다. ‘그 사람 시골 변두리 학교 나왔어’ 하며 헐뜯고 끌어내립니다.

다섯 번째는 게으름입니다. 게으른 자가 기도를 합니까, 성경을 읽습니까, 주의 몸된 교회를 살핍니까, 구역과 교구를 돌봅니까. 그냥 죽은 사람처럼 왔다갔다만 합니다. 게으른 자는 정신병자입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가난이 강도같이 들어옵니다. 게으른 사람은 손에 숟가락을 쥐고도 입까지 넣기를 귀찮아합니다. 남이 내 입까지 넣어 주길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롬 12:11).

여섯 번째는 원망입니다. 잘 되면 내 탓이고, 안 되면 남의 탓입니다. 그때 그 사람 말 안 들었어야 하는데, 그때 그 사람 말 듣고 거기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하며 원망합니다. 광야에서 원망했던 603,548명이 세렛 시내 건너기 전까지 38년간 다 죽었습니다. 원망하지 않은 여호수아, 갈렙만 살았습니다. 모세도 가나안 입성을 2개월 남겨 놓고 죽고, 입방아 찧은 아론은 8개월 남겨 놓고 죽었습니다.

여기 계신 목사님, 장로님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을 점령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을 아무리 증거해도 깨닫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믿는 척 외식(外飾)했습니다. 실상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뱀들과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3:33). 자신도 천국에 못 들어가고 교인들까지 천국에 못 들어가게 문을 닫는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기록적인 역사의 한 장면을 증거하는 말씀을 지금 듣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반드시 그 말씀이 이뤄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목인 ‘넘쳐 흐르는 생명의 강’은 지나간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넘쳐 흐르는 생명의 강에서 생명수를 마시고, 그 물로 농사지은 밥을 먹고, 그 나라 갈 때까지 생명의 강수가 뱃속에서 끊어지지 않고 솟아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강은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입니다(겔 47:5). 물이 성전 문지방에서 졸졸 나오는 줄 알았더니 발목까지 차고, 무릎에 차고, 허리에 찼다가, 마침내 창일(漲溢:흘러 넘침)하여 둑을 넘습니다. 너무 깊어서 헤엄을 쳐서 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이것을 보고 사람으로서는 능히 건널 수 없는 강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런 1급 비밀을 오늘 선포할 때 이 역사적인 말씀이 앞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에스겔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에스겔’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 ‘하나님이 강하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신령한 에스겔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사장 부시의 아들인 에스겔은 빛이 없는 참혹한 암흑의 시기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앉으면 가시방석이요, 서도 사방에 찌르는 것뿐인 고난과 비극의 시대였습니다. 그는 BC 597년 망국의 슬픔을 안고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리고 잡혀간 지 5년 되던 해(BC 593년)에 30세의 나이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BC 588년 10월 10일,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대로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마라’라는 명령에 아내의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습니다(겔 24:15-24). 아내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사명을 감당했던 에스겔 선지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내는 예루살렘을 상징하며,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상징합니다. 또한 BC 588년 10월 10일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날이기도 합니다(겔 24:1-2). 그러나 슬퍼할 수조차 없었던 것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멸망의 날의 비참함을 온몸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난 당하는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애족의 사람이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기도할 때 그 가운데 죽은 아내도 있다는 것을 믿고 위로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하나님께 간절한 중재자 역할을 했습니다(겔 9:8, 11:13).

그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부가 첫날밤 배필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뜨겁게 느꼈습니다(겔 34:11-16).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아주 민감했습니다. 그의 생애 자체가 거룩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하는 말씀의 선지자로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하고 충실했습니다. 거짓이 없었습니다. 말씀 받아서 앞날을 안다고 우쭐대지 않았습니다. 백성의 목자요, 죄로 인한 민족적 비극에 대해 날카로운 경계와 뜨거운 사랑을 겸비한 인격적인 선지자!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동시에 나라와 민족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이런 선지자가 그 후 또 다시 일어났습니까?

에스겔이 목격한 생명의 강물
오늘 본문은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간 지 25년 되던 해인 BC 573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완전히 함락된 지는 14년 됐을 때입니다. 이때 그는 성전에 대한 계시를 보며 이 계시가 장차 도래할 메시야 시대가 지나 종말을 앞두고 지구촌에 이뤄질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영광스런 교회 시대를 상징적으로 예언한 말씀이 바로 본문인 에스겔 47장입니다. 이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스겔 40장 1절부터 48장 35절까지를 모두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47장은 ‘축복의 강’을 말씀하는 대목입니다.

첫째, 이 강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었습니다(겔 47:1-2). 성전의 본체는 예수님입니다(요 2:20-21). 그래서 성전에는 보혈의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신병자 취급했습니다. ‘47년 지은 성전을 당신이 어떻게 3일 만에 다시 짓느냐’며 비웃었습니다. 제자들조차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하신 뒤에야 성전이 바로 예수님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강물은 성전의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뒤 제단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성전 문을 지난 뒤 발목, 무릎, 허리까지 차더니 마침내 헤엄쳐 건너야 할 강이 됐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강가가 아니라 사막이고 돌밭인데 거기서 생수가 나서 전 세계를 점령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깨닫지 못해 근심하고 있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 물이 생명의 강수(江水)요, 이 강 좌우에는 달마다 열두 과실을 맺고, 그 잎은 약 재료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 22장에는 생명나무가 열두 가지 실과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이 물이 성소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에스겔서 47:12에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왔다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가 있을까 봐 말씀하신 것입니다.

강물이 발목까지 찼다는 것은 초신자(初信者)입니다. 어른은 깊은 데서 놀지만 아이들은 물장구치듯 강가 자갈밭 발목까지 차는 데서 놉니다. 무릎까지 물이 찬 것은 기도하는 성도를 상징합니다. 무릎 꿇을 수 있는 신앙이니 초신자보다는 낫습니다. 허리까지 찬 것은 진리의 띠, 은혜의 띠를 띤 사람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어야 힘을 씁니다. 역도 선수는 두텁고 넓은 허리띠를 띠고서 무거운 역기를 듭니다. 물이 허리까지 찰 정도면 보통 신앙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시험에 듭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급기야 능히 사람으로서는 건너갈 수 없는 강이 되면 헤엄을 쳐야 합니다. 오장육부와 오관(五官)과 전 인격을 총동원해 죽지 않기 위해 목적지까지 헤엄쳐 가야 합니다. 끝날에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람으로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헤엄쳐서 건너갈 정도면 바로 그 사람이 물건입니다. 그분이 끝날에 뜻을 이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막 가운데 세워진 성전의 문지방에서 맑은 물이 나온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해내고 계시지 않습니까? 성전 뜰이 물로 충만합니다. 우리 평강제일교회도 정문부터 성전 구석구석마다 샘물이 솟아납니다. 복되고 귀한 성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면, 성도도 성전입니다(고전 6:19-20).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피를 값으로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피 묻은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이요, 샘물은 보혈입니다. 찬송가에도 ‘샘물같은 보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자랑하고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생명의 강물은 안 가는 곳이 없이 흘러갑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지나시다가 물 길러 온 수가성의 여인을 만났을 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요 4:14)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까지 흘러간 이 강물이 앞으로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흘러가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른다고 하셨습니다(요 7:37-38). 생수의 말씀을 받으면 목마름이 없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목마름이 있기 때문에 사니, 안 사니 다투는 것입니다. 자식 낳은 것을 후회하는 것도 목이 말라서 그렇습니다. 잘 사다가 갑자기 부도가 나면 목마른 인생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가 떨어지면 온 집안이 초상집입니다. 수가성 여인도 남자에 목마른 여자였습니다. 남편이 5명 있었고, 당시 남편은 또 따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여인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소에서 나오는 샘물을 바라보면, 그 생수가 남편에게, 아내에게도 흘러갑니다. 그러나 샘물을 보지 못하고 내 남편, 내 아내만 찾으면 언제나 목마른 인생입니다. 우리는 성전이신 예수님에게서 활천(活川), 즉 움직이는 물이 솟아남을 믿고 성전 제일주의, 예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활천은 가는 곳마다 살리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사방에서 콸콸콸 활천이 솟아나는 성전 제일주의로 살면서 그 역사를 체험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공경하라 하셨습니다. 성전이 나무조각, 벽돌조각, 흙조각, 쇳조각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공경의 대상이 되겠습니까. 성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잎사귀가 약재료가 된다고 하셨으니, 예수님만 바라보면 질병이 없어집니다. 어린 양을 따르는 무리에게는 목마름이 없습니다(계 7:16-17). 언제나 만족하고, 근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하나님 말씀을 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이뤄진다는 것을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다 말씀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지나 하나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렙다 과부를 보십시오. 말씀에 순종해 한 움큼 남은 곡식 가루를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드리자 3년 6개월 간의 흉년 속에도 그 집만은 풍년을 누렸습니다. 질병이 달아나고 죽었던 아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비실비실 죽던 나무와 꽃에도 생수를 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살아납니다. 우리 생활 속에 이런 일을 반드시 체험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강물은 가는 곳마다 시꺼먼 것을 다 깨끗이 세탁하고, 부조리하고 냄새나는 것을 떠내려가게 합니다. 집안이 고달프지 않습니다. 점점 살림이 불어납니다. 남편을 봐도, 아내를 봐도, 자녀를 봐도 만족합니다.

마침내 창일해진 생수는 여러 갈래로 갈라져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겔 47:8-9). 큰아들, 큰 며느리, 작은 아들, 작은 며느리, 큰딸, 큰 사위, 사촌에게까지 생수가 흘러갑니다. 물은 어디든 흘러가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막힘없이 흘러가게 돼 있습니다. 부부끼리 다투는 곳에도 화목의 대사로 갑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도 흘러갑니다. 자살 직전에 있는 사람에게도 위로의 말씀으로 가서 자살을 중지시킵니다. 생수에는 충만성이 있습니다. 은혜가 충만하고 축복이 충만하고 형통이 충만합니다. 대통령이 지나가는 행렬 앞에 빨간 신호등이 파란 불로 일제히 바뀌듯 생명 강수가 흐르는 길은 막을 자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생명강수는 가난한 집, 병든 집, 자살 직전에 있는 사람 모두 들러서 가기 때문에 늦습니다. 남 돌보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흘러서 오늘까지 온 것 아닙니까.

우리는 이 강을 하나님의 손을 잡고 건너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牧者)요 인도자입니다. 나로 물을 건너가게 하시는 분입니다(겔 47:3, 4). 어떻게 물을 건넙니까? 하나님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돌다리 건너는 아이가 엄마 손을 꼭 붙잡고 건너듯 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로 가는 줄이었습니다. 그 줄은 소리요, 말씀이요, 갈대이고, 성경입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 47:3에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했습니다. 말씀이 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례 요한의 말을 들었다면 예수님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그 소리가 줄이었습니다. 시편 19:4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른다’는 말씀에서 ‘소리’가 곧 ‘줄’이라고 성경에 표기돼 있습니다. 계 11:1에 나오는 ‘지팡이 같은 갈대’도 ‘자’입니다. 측량하는 ‘줄’입니다. 신,구약 말씀 외에는 측량할 수 있는 줄이 없습니다. 말씀이 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도 줄을 잘 서야 출세한다고 합니다. 줄이 끊어지면 찬밥이 된다고 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의 줄을 잡는 것입니다.

마침내 생수가 창일한 강물이 되면 헤엄쳐서 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히 8:10-11에 기록된 ‘말씀이 충만한 세계’가 이뤄지는 순간입니다. 그때는 “예수님 믿으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명의 강수가 다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을 통해서 했지만, 마지막에는 말씀이 직접 역사할 때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지는 때가 온다고 예언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강권(强勸)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6천 년 동안 나라마다 선교사를 보내 말씀을 전했지만 그래도 다 전도 못했습니다. 마지막 때 말씀이 성전 바닥에서 흘러나와 전세계에 노아 홍수처럼 충만하게 퍼져 있을 때 역사가 일어나서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귀한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론입니다. 말씀이 나를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렘 31:12, 시 36:8, 시 46:4, 계 22:1, 계 7:16-17, 고전 4:20, 고전 2:4-5, 고전 1:24, 벧후 1:3, 16, 벧전 1:5). 물이 내 키를 넘으면 물이 나를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이 응하는 시대는 언제입니까(히 8:1-13, 히 10:1-25, 렘 31:31-34, 롬 11:25-27, 고후 3:3-5, 사 54:13-15, 요 6:45, 요일 2:27). 요 6:45에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온다고 하셨습니다.

바다는 세상을 가리킵니다(계 17:15). 바다의 소성(蘇醒)으로 말미암아 그 가운데 각종 물고기와 모든 생물도 소성함을 얻는 축복이 임합니다. 죽음의 세상 중에서 주의 몸된 교회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성도의 부활 생명을 뜻합니다. 겔 47:10에 어부가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약 시대에 일어날 수많은 하나님의 종, 복음의 일꾼이 생긴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각종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펄과 개펄이 돼선 안 됩니다.
겔 47:11에 생명 강수가 흘러가도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땅이 된다고 했습니다. 진펄과 개펄은 못과 웅덩이를 가리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수렁과 웅덩이에 있는 물은 다 단물이 되지 않고 전혀 짠물로 남아있게 된다’고 번역했습니다. 이 강물이 세계를 점령할 때 여러분은 제발 못과 웅덩이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평지가 돼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며 생수를 먹고 생수에서 헤엄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는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생수가 터져서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의 결론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강물 체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구원을 체험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믿음과 회개를 일으키고,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거룩한 성화(聖化)를 이뤄나가는 놀라운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엡 6:17, 요 20장, 요 5:39). 주님은 솟아나는 보혈의 생수입니다. 점점 불어나는 충만한 보혈, 여러 갈래로 흐르고 흘러 만국을 관통하는 이 보혈의 강을 우리는 건너가야 합니다. 측량하는 줄, 곧 성경을 놓치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직장 가든, 놀러가든, 출장 가든 성경을 꼭 가지고 다니면서 단 5분이라도 기다리는 시간에 성경을 읽을 때 벌써 은혜가 충만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샘물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왔으니 교회 문지방만 밟고 왔다갔다 해도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다녀와서도 인상 구기며 있지 마십시오. 아무리 속상해도 교회 문지방만 밟고 왔다면 생명의 강수를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평강제일교회 성도들은 세계가 다 못 살겠다고 아우성쳐도 절대 망하지 않고, 점점 깊어지는 바다에서 헤엄치듯 은혜의 도가니 속에 늘 만족하며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의 나그네 신분을 깨닫고, 나의 본향이고 도성(都城)인 하나님 나라를 거룩한 시온산, 예루살렘으로 믿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4년 6월 4일 청평연수원 특별집회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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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0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59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58 마라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엘림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 구속사 세미나 참관기(1) 2026.09.22
2957 누구라도 쉬기 원하는 시간, 고된 봉사를 자원한 평강의 어른들 남선교회 ‘오직봉사팀’ 토요 봉사 체험기 2026.09.22
2956 추석에 관한 잔소리, 금(金)소리 2026.09.22
2955 The Rules for Spiritual Leaders – 1 Corinthians 4:1-2; Romans 15:1-2 2026.09.22
2954 Foreword 2026.09.22
2953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2026.09.01
2952 ‘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자’ 2026 하계 대성회 2026.09.01
2951 성막 화첩의 인기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 구속사 시리즈 제9권 영문판·일어판 출판 감사예배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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