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의 왕
샬롬의 왕
누가복음 2:1-20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는 이 시간 하나님의 축복과 평강의 은혜가 우리 교회와 우리 국가, 민족 위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특히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동포들, 또한 북한에 있는 우리 동족들에게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아가서 이 기쁨의 날에 성전에 오셔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두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에게, 또한 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고 병원에, 혹은 집에서, 혹은 고향에서, 침상에서 치료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빨리 회복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찬양의 메아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거룩한 날, 오색찬란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거리마다 반짝이고, 찬양대가 부르는 갖가지 크리스마스 캐럴들이 대지의 어두움을 추방하는 감격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9:1-2에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멸시를 당하던 스불론과 납달리 해변의 길과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시며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쳤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평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이 말의 근원은 기드온이 미디안 민족을 이기고 오브라에 쌓은 제물이 하나님께 응답을 입은 때에 이름 붙였던 ‘여호와 샬롬’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강의 왕, 즉 샬롬의 왕이 바로 여러분과 가족과 사업과 직장과 하는 일마다 축복으로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샬롬은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 히브리어 원어의 뜻을 볼 때 풍부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농사가, 사업이, 가정마다, 식구마다 풍부한 수확을 거두는 삶의 열매가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문자 그대로 샬롬의 왕이 함께 하시는 복, 모든 사업에 축복을 받고, 모든 목축도 축복을 받아 소떼와 양무리가 우리 속에 가득 차는 것이 샬롬입니다. 무역이 잘되고, 진급도 하고, 가정과 사업이 날마다 번창하며 가족을 대할 때마다 사랑과 화목을 느끼는 이 모든 것을 주시는 샬롬의 왕이 여러분들에게 축복으로 오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높으신 하나님이 낮고 천한 데로 내려오셔서 살롬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이런 풍요의 축복이 실현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풍부한 시대, 곧 샬롬의 날이 다시 올 것을 고대하고 앞날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메시야 탄생을 알리는 노래가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샬롬” 즉, 평화의 노래였습니다. 이 천사의 선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던 풍부한 날, 전쟁이 없는 천국의 도래를 선언하는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 가운데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까? 보람이 있습니까? 기쁨이 있습니까? 모든 삶에 자신이 있습니까? 샬롬의 왕,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이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절대 하나님이 여러분을 혼자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너희에게 평강, 즉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해변을 가다가 심한 풍랑을 만났습니다(마 8:23-27,막 4:35-41,눅 8:22-25,요 6:16-21) 예수님은 곤하셔서 배 고물을 베고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보통 기적담(奇蹟談)이 아닙니다. 메시야로서의 예수를 우리의 신앙의 대상으로 확정 짓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심한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배에 있는 전문가들, 제자들은 모든 노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은 평화스럽게 깊이 잠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깨웠습니다. “이제 최후를 만났습니다. 우리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절망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날까지 신앙 생활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절망을 만났을 때 주님의 제자들처럼 겁을 먹고 두려워한 나머지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이 허덕이고 살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때 예수께서는 조용히 잠에서 깨어나서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탄에 오셔서 여러분 가정마다, 사업마다, 직장마다, 나라의 모든 어지러움을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막 4:39) 명령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잠잠하라”는
히브리어로 ‘평화하여라’입니다.
성탄절을 믿음으로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까지 어지럽고, 답답하고, 괴롭고, 안타깝고, 숨통이 끊어질 정도로 답답하지만 주님 친히 오셔서 “잠잠하라, 평온하여라, 고요하여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사납게 파도치는 바다를 향하여 샬롬! 샬롬! 평강하여라! 즉, 평화하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갈릴리 바다에 국한된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들 개인과 가정과 우리나라, 민족 위에 아니, 나아가서 전 인류를 향하여 하신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이자 목적인 것입니다. 샬롬! 평화하여라. 풍족하게 되는 축복이요,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나라마다 싸움이 없는 천국을 바라시는 기원의 축복입니다.
또 다른 날에는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모든 노력이 허사(虛事)로 돌아가고 죽음이 도래한 순간 파도 위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공포에 질려 있는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주님 말씀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막 6:50, 마 14:25-27).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풍랑을 만나고 있습니다.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 성탄을 보지 못합니까? 샬롬은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상황이야 어떻든 예수가 곁에 계신 것이 곧 샬롬이 아니겠습니까? 평화입니다. 풍부한 상태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향해서 걸어오십니다. 병자가 있습니까? 영접하시기 바랍니다(마 9:29). “믿는 대로 되리라!” 말씀하십니다(막 9:23). 믿음에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을 향해서 걸어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샬롬, 평화는 꿈도, 환상도, 이론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구체적인 축복입니다. 예수께서 파도와 바람이 넘실거리는 바다에 나타나 제자들의 배를 향하여 걸어오신 시각이 몇 시인 줄 압니까? 성경에 ‘밤 사경(四更)’이라고 했습니다.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를 말합니다.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에 여러분들을 향해서 오시면서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해 주십니다. 아직은 어두움만 충만하지만 곧 동이 틀 시간이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약속된 소망의 시간입니다. 광명이 흑암을 삼킬 시간입니다.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평화의 시간입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샬롬! 평강과 평화가 모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5.12.24(주일) ‘제2회 평강가족 찬양의 밤’ 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