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이렇게 읽었다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이렇게 읽었다
강물에 빠져들었다
2013년에 휘선 박윤식 원로목사님께서 에스겔 성전에 관한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외에 교회에서 작업할 때나 경건회를 통해서 에스겔 성전에 대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뿐만 아니라 전 성도님들이 구속사 시리즈 제11권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을 크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에스겔 40장 4절을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겔 40: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지어다 하더라.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이 출간된 후, 저는 최대한 많이, 그리고 깊이 상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약속이 있어서 같이 밥 먹지 못하고 늦게 집에 들어간다”고 아내에게 말해야 했습니다. 무슨 약속이냐? 바로 책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저는 이 서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먼저 책에서 나오는 모든 그림과 도표를 보고 감탄하며 놀랐습니다. 모든 그림과 도표가 성경적으로 매우 상세하고 정확했습니다. 참으로 유구한 역사 속에서 최초로 정리되고 발표된 내용입니다. 영상과 더불어 보니까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명의 강에 들어서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앞부분을 읽을 때는 물이 제 발목까지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점점 뒷부분으로 갈수록 강물이 창일해서 제가 빠져서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내용도 많아 지혜를 구하고,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책의 전개와 구조를 이해하고 저자의 관점에서 책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강물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영안이 열리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책 초반에 에스겔과 그의 사역, 그리고 연대기를 먼저 다룬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전체를 읽어 보니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그 당시에 활동했던 세 선지자들의 예언과 사건에 관한 연대기를 정리한 후, 포로민들과 함께 살았던 선지자였던 에스겔의 중요성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예레미야는 고향에서 사역을 감당했고, 다니엘은 궁전에서 많은 왕들 밑에서 사역했지만 에스겔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하늘이 열리면서 특별한 말씀을 받고 특수한 사역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인자’라고 불렀습니다. 에스겔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사역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과 함께 거하셨지만 고난과 핍박만 받으셨고 그들은 임마누엘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속사 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 결론 부분에 에스겔 성전을 언급한 것을 기억하면서 휘선 박윤식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에스겔 성전이 성경과 우리의 믿음의 삶에 대한 결론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정확하게 척량(尺量)하시듯이,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을 정확하게 감찰하시는 분임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에스겔 성전과 그 완전함이 거울이 되어서 제 자신의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더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을 더더욱 의지하면서 이 말씀을 반드시 전해야 된다는 사명감이 새롭게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생수가 전 세계의 모든 나라로 흘러 들어가서 그들을 소생시키며, 모든 열방이 평강제일교회로 춤을 추며 달려 나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합니다.
박제임스 목사
이것은 기적이다
3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며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읽었다. 기자는 ‘다른 사람의 글과 말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명, 회견문, 논문, 조서, 판결문… 수많은 난해한 글들 중에 최고봉은 공소장(公訴狀)이다. 검찰이 기소할 때 법원에 내는 글이다. 그러나 난수표와 다름없는 이 공소장들도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훈련이 되고 나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구약성경 ‘에스겔서’의 난해도는 공소장의 100배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수십 년 성경 읽기의 내공으로 한글 개역성경의 옛 말투에 꽤 익숙하고, 이미 출애굽기 ‘성막’에서 전초전을 치른 사람들조차 ‘에스겔 성전’에 진입하면 두 손을 든다. 처음엔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나중에는 하나님이 원망스럽다. 에스겔서가 기록된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로라하는 신학자들조차 에스겔 성전 기록을 그냥 스쳐지나간 이유다.
그래서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은 한마디로 ‘기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에스겔 성전을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책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완벽하게 시각화된 성전 그림을 보다 보면 ‘에스겔 성전을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책을 받은 한 회사 동료는 “마침 에스겔서를 읽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잘 몰랐던 점들이 쏙쏙 이해된다.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답을 보내왔다. 물론 구속사 시리즈 독자들은 제9권 ‘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에서 이미 이런 마법을 경험한 바 있지만, 성막의 70배(건물 면적 기준) 규모인 에스겔 성전은 또 다른 신세계다.
그러나 이 책이 쓰여진 목적은 우리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종말의 때에 지어질 마지막 성전에 대해 알고 제발 정신을 차려라! 회개하고 성결해져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애타는 음성이고, 저자의 강력한 경고다. 이렇게 찬란하고 웅장하고 반듯한 성전에 지금 내 모습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서도 안 되겠구나 하는 뼈아픈 자각을 하게 된다. 머리에만 하나님이 있고, 실생활에는 하나님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비참한 참상에 직면했던 그들의 모습과,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지금 나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된다. 다행히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때는 마지막, 길은 하나다.
호준석 장로
첫 장을 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7년이 흘렀다. 박윤식 목사님께서 강대상 위 하얀 물수건으로 행구를 싸는 시늉을 하시며 에스겔의 행동예언을 설명하신 것이…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별하는 담이 못 들어오게 막는다”고 그 담의 두께와 높이 치수를 말씀하실 땐 ‘에휴… 나는 어찌할꼬’ 한숨을 내쉬며 두렵게 만드시는가 하면, 또 큰 팔로 미소를 머금으시며 ‘사비브 사비브’와 ‘여호와 삼마’의 말씀으로 위로와 소망을 주시니, 들었다 놨다 병 주시고 약 주신 게 지금도 마음속에 잔재해 있다.
구속사 시리즈 11권. 하얀 종이에 검은 글자가 아니었다. 구구절절 빛들의 조각이었다. 그 눈부신 광채가 무저갱 같은 심령에 쏘여 또 얼마나 추잡하기 그지없는 내 죄악들을 들춰내며 마음을 후벼 파고 수술시킬 것인가(히 4:12). 마취라도 시키고 하시지… 아프겠다 싶어 겉표지만 한동안 쳐다보며 앉아 있다. 제11권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 책과 조우한 순간, 글을 먼저 읽지 못했다. 괜히 표지를 쓰다듬어 보다가, 갈피 사이사이 책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하고, ‘이해 도움’ 도표를 들춰보고, 목차를 쭈욱 훑어보고, 서문 끝에 ‘2012.12.25.’이라는 날짜를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그렇게 배회하다가 드디어 저자 서문을 읽어 내려갔다. 지리산 동굴에서 산모가 해산하기까지 짊어져야 하는 수고와 고통, 그 이상의 고된 씨름이었다는 표현과, 바위를 치며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온몸이 몇 날 며칠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곤 하셨다는 말씀에, 작년 지리산 동굴 안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아~ 이곳에서 이런 글과 그림들이 나왔구나.
주전 593년에 에스겔을 불러서 22년 동안 주신 이 말씀이 2,500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지금 내 앞에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도무지 나 같은 게 무엇이관대 이 귀한 말씀이 나에게까지 왔을까. 연구한 적도 없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으니 언감생심 여쭤본 적도 없었던 구속사 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에서 10권 ‘하나님 나라의 완성, 10대 허락과 10대 명령’까지의 이 말씀이. 마치 남이 잘 깔아 놓은 아스팔트 6차선 도로 위에 서 있는 느낌.
제11권 71쪽 ‘책을 받는 자의 자세’를 나에게 적용시켜 보았다. 말씀은 항상 입에 달다. 너무나 달짝지근하고 맛있게 먹는데 문제는 고(告)하는 것. 자신감 있게 못하고 늘 망설이며 가슴은 두근반, 세근반 뛴다. 금강석같이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미친놈’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행동예언을 하고 말씀을 선포했다는 에스겔 선지자. “말씀을 받는 목적은 그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74쪽) 라고 써 있는 글씨가 대문짝만하게 크게 확대되어 심장에 꽂혔지만 그러나 두려워 말라고 다시 쓰다듬어 주신다(겔 3:8-9).
영원한 생명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만난 후 “와 보라!”(요 4:29)고 외치던 수가성 여인처럼(412쪽) 이 말씀 의지하며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렇게 안 살면 너무 황송할 정도로 259쪽부터 거의 매 페이지 정밀하게 그려져 있는 장엄하기 그지없는 성전 그림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고로움에 나는 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읽고 있으니 가시방석 같다. 이 그림이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 책을 덮고 문득 스쳐간 생각. 그 옛날 박윤식 목사님께서 본교회 목사님들을 성전건축에 직접 참여시키신 목적도 에스겔 성전을 성도들에게 잘 가르치라고 하신 것 아닐까. 목사님 같은 고급인력에게 왜 막노동을 시키실까 이해가 안 된다던 한 새가족의 말이 떠올랐다. 실제 벽돌을 쌓고 치수를 재고 삽질하는 모든 과정들이 이론만으로는 성도들께 전달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들어가야 할 천국의 청사진이라는 최종 성전, 에스겔 성전의 모형이 이제 우리에게 열렸다. 자격이 안 되면 들어갈 수가 없다. 바벨론 포로에서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까지 1,700km를 걸었다고 했다. 그 마음으로 본향을 향해 올 한 해 부지런히 걷고 열심히 배우고, 생명수 강물이 흐르는 길목인 신령한 내 마음의 성전 문지방을 철저히 사수해야겠다.
권오연(여선교회)
불친절한 11권, 친절한 11권
“불친절하다”. 제11권上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보통 구속사 시리즈를 읽을 때 중요 사실에는 빨간색, ‘삶에 적용’에는 노란색, 연대(年代)에는 분홍색. 이렇게 나름의 구분을 해가며 읽는데, 1-10권에는 노란색이 많은 반면, 11권에는 빨간색 밑줄이 지배적이었다. 그만큼 11권이 사실을 이해시키는 것에 집중된 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구속사 시리즈의 최고 강점은 때때로 내 삶과 전혀 무관하다 생각했던 성경의 내용을 정확하게 풀어서 오늘 나의 생활 가운데 깊숙이 침투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11권을 읽고 나니, 너무나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성전 척량의 수치들과 그 구조들,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그 모든 과정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완벽하게 구현해 낸 에스겔 성전의 수치가 오늘날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이 되는 것인가에 대해 또 다른 고민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박윤식 원로목사님께서 에스겔서를 설교하실 때마다 에스겔 성전이야말로 신구약의 최종 결론이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다.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기도하시면서 가장 마지막에 성령의 조명으로 깨달으신 말씀도 에스겔 성전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에스겔 성전의 결론은 무엇인가? 바로 ‘여호와 삼마’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 단 하나!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다. 에스겔 성전은 이런 하나님과 내가 영원히 함께 거할 장소인 것이고, 성전 건축의 역사가 바로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건축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때, 에스겔 성전의 건축자로서 나는 성전의 치수와 구조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이를 통해 “내가 지어야 할 성전. 하나님과 내가 함께 살 집을 건축하는 그 설계도가 바로 11권의 내용이구나!”를 깨닫고, 그러한 마음으로 두 번째로 책을 폈더니 그제서야 너무나도 ‘친절한’ 설계도가 내 눈에 들어왔다.
에스겔 성전의 키워드는 거룩이다. 성전의 담과 벽, 입구를 지키는 문과, 수많은 방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거룩’을 외치고 있다.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선 거룩이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거룩 또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삼마’의 축복을 받는 그 순간 내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할 수 있도록 대신 죄와 싸워 주시기 때문에 에스겔 성전 역시도 능히 건축하게 만들어 주실 줄 믿는다. 눈을 감고도 에스겔 성전의 구석구석이 내 눈앞에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그 순간까지 이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희년의 성취자로 오시는 주님과 영원히 거할 우리의 집을 반드시 완성하리라 감히 다짐해 본다.
이보라(청년2부 그루터기선교회)
그것도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었구나
지난 2019년을 돌아볼 때, 혼란했던 국내외 정세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의 삶 속에서도 육신적인 생각으로는 원치 않은 여러 일들을 겪은 한 해였다. ‘나름대로’ 말씀의 뜻을 좇아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한 해의 결산서를 제출하는 시점에서 보았을 때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열매들을 모두 수확하지 못한 것 같아서 깊은 어두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서, 때를 따라 주신 구속사 시리즈 제11권 말씀을 통해 이 모든 것이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는 하나님의 위엄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절대로 파괴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백성들의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결국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말았다.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당연히 아버지께서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시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삶 가운데 고통과 좌절감을 느꼈던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심판의 원인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내 생각을 앞세웠던 죄, 하나님의 뜻보다는 나 자신과, 나의 가족에 대한 일을 우선시하는 우상숭배 등 모두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죄들을 범하고도 뻔뻔스러웠던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죄를 짓고도 우리의 삶이 평탄했다면 그간 지었던 죄를 낱낱이 돌아보며 회개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펄과 개펄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징계의 기간을 통해 죄악의 녹을 없이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할 수 있게끔 역사해 주셨다.
매우 짜임새 있고 완벽하게 건축된 에스겔 성전처럼,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 경륜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빈틈없이 치밀하고 완벽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이 말씀을 접하는 사람마다 삶 가운데 마주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임을 깨닫고, 여러 모습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오직 감사함으로써 여호와 삼마의 축복이 늘 함께 해주심을 체험하는 올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동현(청년2부 그루터기선교회)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의 독후감을 모집합니다. 구속사 시리즈 독자 누구나 투고하실 수 있습니다. champyungan@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