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의 생애와 성전
에스겔의 생애와 성전
‘메소드 연기’라는 말이 있다. 배우가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 실제 인물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각본을 뛰어넘어 극중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하고 연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때로는 성경에도 ‘메소드 읽기’가 필요하다. 복잡한 현실을 글로 요약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데, 다시 번역까지 하면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기 더 어려워진다. 이럴 때 성경의 저자가 느꼈던 현실 상황에 몰입해 보면, 저자가 어떤 심정과 상황에서 말씀을 증거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에스겔서는 ‘메소드 읽기’가 가장 어려운 책일 것이다. 저자의 상황이 매우 복잡하며, 행동도 이해하기 어렵다. 에스겔서의 히브리어 문체는 구약 성경에서 해석하기 가장 어려운 것으로 꼽히며, 번역도 쉽지 않다. 이 모든 난제들의 해석은 에스겔이 살아갔던 삶의 배경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에스겔은 제사장 부시의 아들이다(겔 1:3). 만약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그는 자연스레 제사장이 되었을 것이다. 에스겔 1:1의 ‘제삼십 년’은 에스겔의 나이이다. 에스겔이 하늘이 열리며 이상을 보았던 때가 30세라는 뜻이다. 이때는 주전 593년으로,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주전 597년에서 5년째가 되는 해였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약 26세의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갔으며, 사로잡혀간 지 5년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본래 레위 지파는 25세부터 회막 봉사를 시작해 5년간 훈련을 받고 30세부터 본격적인 직분을 수행했다(민 4:3, 23, 30, 35, 39, 43, 47, 8:24). 다윗은 훈련 기간을 늘려 10년간 제사장 직분을 훈련하게 했다(대상 23:27-32).
그러므로 에스겔이 성전에서 봉사를 시작했을 때는 20세인 주전 603년경이었을 것이다. 주전 605년 제1차 바벨론 포로의 충격적인 사건이 있은 지 2년이 지난 시기였다. 당시 바벨론은 성전의 기구들을 빼앗아갔다(왕하 24:1, 대하 36:6-7). 아마도 청년 에스겔은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성전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열망을 가지고 제사장 직분을 준비했을 것이다.
에스겔 26세, 꿈이 좌절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다
주전 597년, 제2차 바벨론 포로로 다시 한 번 성전의 보물과 금기명이 약탈당했고, 에스겔 자신도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왕하 24:10-13, 대하 36:10). 당시 26세로 한창 성전의 직무를 배워가던 에스겔에게는 소명의 길이 끊어지는 좌절의 순간이었다. 올림픽 출전의 부푼 꿈을 안고 운동에 전념하다가, 대회를 눈앞에 두고 출전하지 못하게 된 선수의 마음을 생각해보라. 시편 137편에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슬피 노래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라리 악기를 나무에 걸고 노래하는 재주조차 잊어버리기를 바랄 정도로 고통을 호소했다(시 137:1-6). 삶의 중심을 예루살렘과 그 중앙의 성전에 두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그곳에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제사장의 소망을 가지고 청년 시절을 보내던 에스겔에게는 더 큰 아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에스겔 30세, 선지자로 세움받다
사로잡힌 지 5년째, 에스겔은 30세가 되었다. 만약 그가 사로잡히지 않고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었다면 제사장으로 사역을 시작했을 때이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꿈을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해 4월 5일,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에게 하늘을 여시고 여호와의 권능으로 임재하셨다(겔 40:1). 소명과 비전을 모조리 상실했던 에스겔이 한순간에 하나님의 사명자로 거듭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제사장 대신 선지자로 부르시고, 이스라엘의 멸망 직전에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선지자 에스겔의 사역은 가시밭길이었다. 사역을 시작하면서 충격적이게도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입이 열리지만, 평소에는 입이 닫혀 사람들에게 온갖 오해와 고초를 당해야만 했다.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고 부정한 것을 먹으며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해야만 했다. 심지어 예루살렘의 함락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어야만 했고,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에스겔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모든 명령에 오직 아멘으로 순종하며 맡겨진 사명을 완수해 나갔다.
이런 배경에서 에스겔의 사역 말기에 주어진 새 성전의 이상을 다시 생각해 보자.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일은 극도의 절망이었다. 37세의 한창 젊은 나이에는 성전이 파괴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예언이 이뤄진 것이지만, 비통한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로잡힌 지 25년이자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14년째, 에스겔에게 새 성전의 이상을 보여주셨다(겔 40:1). 이스라엘의 범죄로 완전히 파괴되고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성전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났다! 예루살렘은 우뚝 솟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어 있고, 광야 한복판에 지어진 성전에서 생명수 강물이 흘러나와 좌우에 과실을 맺는 나무가 가득하였다. 에스겔의 마음에 바라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이상 속에서 펼쳐진 것이다. 당시 에스겔의 나이는 50세이다. 그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면 사명을 다하고 마무리하는 해이다. 에스겔은 그 후 2년 뒤까지 선지자 사역을 계속했지만(겔 29:17), 에스겔서의 결론이 ‘새 성전 계시’라는 사실은 이것이 그의 사역의 정점임을 보여준다.
에스겔이 전하는 소망의 메시지
성경의 저자들도 오늘날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행 14:15, 약 5:17). 에스겔이 선지자라고 해서 무감각하게, 혹은 손쉽게 사역에 순종했던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인생의 굴곡을 맛보며 깊은 심적 고통 가운데 오직 믿음으로 사역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나 에스겔 사역의 전체가 고통은 아니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은 거대한 소망과 벅찬 감동으로 가득하다. 메마른 광야 높이 솟은 산, 그곳에 지어진 성전에서 생명수 강물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 물은 발목과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차고, 마침내 헤엄쳐야만 할 정도로 사람을 덮는 거대한 강물이 되었다. 발목과 무릎 높이의 물은 인간의 힘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벽을 세워 막을 수 있다. 허리 높이의 물도 힘은 조금 들겠지만 충분히 거스를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정수리를 삼키는 거대한 강물은 사람을 강 흐르는 대로 몰아쳐간다. 비록 에스겔이 보았던 이스라엘의 과거가 계속하여 생명수 강물을 거스르고 벽으로 막아버리는 악한 행위로 가득했다고 해도, 마침내 생명수 강가가 이스라엘과 온 열방을 덮어버리고 가는 곳마다 죽은 바다가 살아나는 강권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놀라운 소망의 역사이다.
글_정디모데 전도사, 삽화_박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