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코로나 시대, 성도는 이렇게 산다
그래도 신앙은
전진한다.
‘진원지’ 우한에서 체험한 여호와 삼마
황명진(청년2부 그루터기선교회)
우한은 인구 1,100만 명이 거주하는 후베이성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친구에게서 1월 초부터 원인 불명의 유행성 폐렴이 돌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손 세정제와 마스크를 구해서 교회 갈 때 쓰고 갔어요. 아직 아무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던 때에 그 친구와 저만 마스크를 쓰고 다녔습니다. 한국 유학생 SNS방에서도 유행성 폐렴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지가 없었고, 우한 봉쇄령이 떨어지기 2-3일 전에야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소식이 돌았어요. 1월 23일 마침내 우한 봉쇄령이 떨어졌고, 1월 30일에 가까스로 전세기를 타고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못 돌아올까 봐 무서웠을 때 부모님의 요동치 않는 모습을 보며 믿음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담대하게 말씀하셨어요. “마지막 때에 역병이 돌 것이라는 말씀이 성경에 있다. 지금은 한국이 피난처가 될 수 있겠지만, 마지막 때에는 말씀이 없으면 어디에도 피난처가 없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어디에서든 함께 계신다’는 여호와 삼마의 축복이 있으니 한국에 오게 되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고, 전세기가 뜨지 못해 중국에 남아 있다 해도 무서워할 필요 없다.” 그 당시에는 ‘딸이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부모님의 그런 모습 때문에 나도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귀국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전세기 도착 전날, 여권을 가지러 영사관에 가야 했습니다. 비자 연장 때문에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대중교통은 다 끊긴 상태였고,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는 하루에 한두 대 볼까 말까 한 상황이었습니다. 무작정 밖에 나갔는데 놀랍게도 10분 만에 택시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여권을 무사히 받아 전세기에 오를 수 있었지요. 저는 평소에 겁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체험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지켜주시면 어디 있어도 안전할 것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여러 교역자님들이 제 소식을 듣고 통성기도를 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말씀 안에 있으면 코로나가 아니라 더 무서운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버티고 살아갈 수 있겠다는 감사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표징(表徵)과 감계(鑑戒)
김인자 전도자
‘에이, 설마 오래가겠어. 그냥 금방 지나가겠지.’ 처음에는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달라지는 상황을 보니 ‘어? 아니네?’. 급기야 한 번도 생각해 보지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일, 6·25 전쟁 때도 닫히지 않았던 성전 문이 닫히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니 성경에서만 보던 10대 재앙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하며 정신이 번쩍 듭니다.
성도가 없는 텅 빈 성전의 주일. 대표기도하시는 장로님, 사회하시는 목사님,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 그리고 더 힘차게 찬송하고 뜨겁게 기도한 우리도 아마 같은 마음으로 울었으리라. 텅 빈 모리아 성전 맨 앞쪽에 교역자들끼리만 앉아 강력하게 설교하셨던 강대상을 바라보니, 죄송한 마음과 함께 받은 말씀을 의심 없이 믿어 그대로 될 줄 알았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골수에 사무치는 아픔을 느끼며(렘 20:9) 예언의 말씀을 전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왠지 작금의 상황을 미리 알았고 직접 위로해 주지 못해 안타까워 그저 우리와 같이 텅 빈 성전을 바라보고만 계실 것 같아 더욱 울컥해지는 예배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가정도, 개인도 없다’고 안타깝게 부르짖으셨으나 그것은 옛일이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감사하고 복된 일’이라는 말씀은 그냥 문자적으로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마음이 시들해지고 있을 때 이렇게 교회 문이 닫힘으로 텅 빈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다니…. 더구나 신천지 사태로 기독교와 교회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처럼 여겨지는 시련을 당하니 그동안 말씀을 믿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깨어서 기도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끼지 못하게 했던 강퍅한 마음과 영적 게으름에 대한 죄송함에 더욱 눈물을 떨구며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지 못하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왜 주십니까? 안 주시면 되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사랑했어. 그들에게 말씀으로 언약했기 때문에 그 언약을 내가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 아무리 믿지 못하지만 내가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단다. 너희들은 배반하지만 나는 변치 않고 계속 기억하고 있다’라고 답을 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깨달으라는 뜨거운 외침에 무관심하고, 믿는 것 같으나 믿지 못한 우리를 모른 척 내버려 두면 그만임에도 불구하고 말씀 받은 성도를 세상과 바꾸지 않으신 그 불가항력의 사랑이 바이러스라는 도구를 통해 다시 한번 기회의 경종을 울려 주시고 계십니다.
‘표징’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겉으로 나타나는 형상이나 특징을 말하며, ‘감계’는 지난 잘못을 거울로 삼아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경계 또는 본받을 만한 훈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전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감계’의 역할로 계속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속사 시리즈 11권上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계’의 역할로 부끄러움을 깨닫고 진심으로 통회 자복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개인과 나라, 전 세계가 말할 수 없는 환난을 만났습니다. 모든 일상이 멈췄고,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므로 점점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지막 때, 영생을 주는 복음을 받고 믿고 있는 우리에게 전 세계 열방을 맡기셨고, 열방이 춤을 추며 몰려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때론 그 약속이 흐려지고,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유효한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유유히 성취시켜 가시는 하나님이 ‘표징’으로 보여 주고 계십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두움의 바이러스를 구속사 말씀의 백신으로 퇴치하여 전 세계 구석구석마다 빛으로 환하게 밝아지게 하므로 위로와 소망을 주는 신령한 제사장이 되고, 이 나라와 전 세계를 걸머지고 기도하는 치료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정예배와 성가대 찬양의 소중함
변광진(미스바 성가대 총무)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소원이 있다면 가정예배 드리는 것”이라고 저에게 어렸을 때부터 종종 말씀하셨지만, 1933년생으로 소위 인텔리 지식인이라고 자부했던 아버님은 교회 출석은 하고, 장로 할아버지를 두기도 했지만, 당시 시대를 휩쓸던 인본주의적, 사회주의적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탓인지 제가 33세가 될 때까지도 할머니의 가정예배 소원을 막고 있던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습니다. 결국 2003년 할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방 안에 꼼짝 못하고 말도 못하고 시력도 잃은 채 누워 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동안 잘 모시지 못했던 뒤늦은 후회와 죄스러움으로 출근 전 아침 일찍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가정예배를 마치고 나서, 잠시 할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던 중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보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계신 할머니가 모든 가정예배를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에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할머니는 우리와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머니 소천하시기까지 약 3년간의 가정예배 중 할머니가 입을 연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가정예배의 소중함을 깨닫고, 모든 선대 가족을 떠나보내고 혼자 있을 때도, 결혼을 하여 새로운 부모님인 장인, 장모님, 신앙의 배필, 자녀까지 함께하는 지금도 가정예배의 시간을 소중히 지키고자 노력 중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각자의 처소에서 가정을 교회 삼아 예배드리는 것도 가정예배의 훈련이라 여기고 온 식구가 같이 예배드리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처소에서 드리는 가정예배는 시간과 장소의 문제로 찬양을 목청껏 부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더욱이 미스바 성가대의 일원으로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마음을 쏟는 찬양을 있는 힘껏 부르지 못해서 생기는 목마름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어서 속히 모든 평강의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거대한 가정을 이루고 성전에서 있는 힘껏 찬송과 감사로 예배드리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떡을 떼고
예배를 드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유혜경(여선교회)
장거리에 있는 교회를 가는 나로서는 늘바쁘고 분주하다 그야말로 눈만 뜨면 보따리 싸서 올라가는 일이 일상인 내게 이번일은 ‘멈춤’ 그자체였다. 10대 재앙, 악질 재앙 말씀을 한두 번 들었던가?
성경과 대립하는 사상이나 이념만이 우리의 신앙을 단절시킬 거라 예상했었다. 집 앞 마트도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마음의 평강은 사라지고 온 사지가 어둠에 하루에도 몇번씩 묶이는듯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참으로 믿는 성도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당회에서 온라인 예배가 결정되었다고 단체 문자를 읽는 순간 울컥해서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었다
“오직 믿음으로 일평생 구속사 뜻의 완성을 위해서 헌신하며 달려오신 성도 여러분…” 그랬다. 비로소 우리가 하나였다는 것을, 아니 애초부터 우리는 하나였다는 것을.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뜨겁게 올라오는 이 강한 연민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봄은 여전히 우리를 찾아와 주었고 촉촉한 빗속을 뚫고 수줍게 고개 내민 꽃다지를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공중 나는 새도, 지나가는 개들도 아랑곳 않는데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는 이 시대에 인간들만 소용돌이 치고 있구나.
천년만년 배부르고 등 따시게만 신앙생활할 수없음을 목격하면서 우린 또다른 훈련을 시작하고 있다.
처음 온라인 예배 때는 늦잠자고 헤매더니 늘 그랬듯이 이내 익숙해진다. 토요일부터 성전인 집안을 말끔히 치우고 깨끗하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예배를 준비한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성전에서 떡을 떼고 예배드리는 일상이 가장 가치있고 고귀하고 복된 순간순간이었음을… 값없이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릴 뿐이다.
모리아 성전을 가기 위해서 올라가는 작은 오솔길 그 길을 다시 걸으며 평강 동산의 유쾌하고 상쾌한 공기가 유난히 그리운 오늘이다.
그 어떤 바이러스도 이기게 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정윤희(여선교회)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변한 2020년 3월은 꽁꽁 얼어붙은 나의 신앙에 봄을 알게 해주는 귀한 시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그저 먼 훗날 언젠가 이루어질 일로만 생각했고, 설교 말씀은 하루하루 새로운 말씀이었지만 나의 신앙은 매일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변함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ULA 우주어학원 수업을 하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 여선교회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시간, 마르다 식당에서 봉사하는 시간, 구역장 공과 시간과 예식 봉사하는 시간으로 1년 365일 중 350일 이상을 평강 동산에 머무를 수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번에 인터넷 예배를 드리면서 사람들이 없어서 조용하고 적막하기까지 한 평강의 동산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불평 불만하고, 때로는 귀찮아하기도 하며, 감사를 잊고 살았던 어리석었던 시간들을 반성하는 회개가 절로 나오더군요. 성전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큰 소리로 찬양하고, 땀 흘려 일하고, 기쁨도 슬픔도 나누는 동역자로 인해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에너지를 받으며, 행복하고 평안하게 견딜 수 있었는지… 성전이 얼마나 소중하고 평안한 곳인지 가슴 시리게 느껴집니다.
코로나19의 환란과 고통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라 믿습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사와 동역자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주안에서의 평강, 그리고 선포되는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위기는 하나님께 기회’라는 말처럼 코로나19 사태는 어리석고 무지한 나를 돌아보고, 회개와 갱신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에 화답하듯 성도 간의 하나 된 모습으로 더 단단해지는 시간이 되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영육간의 바이러스의 공격도 이겨낼 수 있는 치료제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성도 간의 교제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요즘 따라 교회에서 사랑으로 해 주시는 맛있는 밥이 생각납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교회 봉사는 내 신앙을 잡아주는 축복
백종철(고등부 교사)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나에게도 주일은 24시간이었다. 코로나 이후 나의 주일은 매우 느리게 가고 있다. 아침 8시인데 아직도 집에 있는 내가 낯설다. 오전 9시에는 고등부 아이들을 맞이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집에서 유튜브로 지난 예배 영상을 먼저 보고 있다. 10시 30분부터 TV 앞에 앉아서 찬양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10시 40분 시작된 예배는 12시 20분이면 끝난다. 아직 3, 4부 예배 시간까지는 한참이 남았다. 뭘 해야 할지 참 시간이 안 간다. 매주 경건회, 고등부 예배, 2부 예배, 식사, 회의, 3부 예배, 청소, 학생들과 상담 등 바쁘던 주일이 예배와 학생들 예배 확인 외에는 할 것이 마땅히 없어 길고도 길다.
주중에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여유 시간은 많은데 막상 성경 읽는 시간과 기도는 줄어들었다. 주일날 학생들을 만나 공과를 하기 위해서 미리 성경을 찾고 공부하고 준비했었는데,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되니 나태해진다. 또 학생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상황을 알고 수요일에 기도회를 통해 집중적으로 기도하였는데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수요일에 교회에 가지 않으니 기도를 덜 하게 된다. 교회에 가는 것, 학생들을 만나는 것, 공과 공부를 위해 성경과 구속사 시리즈를 읽고 공부하는 것 등 교사로서의 봉사는 헌신이 아니라 나의 신앙을 잡아 주는 축복이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시간이 길어지고 있으니 나의 신앙을 돌아보고 새로운 시간 활용 습관을 들이자. 간단한 수칙 3가지를 정해 실천해 보고자 한다. ① 아침에 일어나서 교회 산을 돌며 기도하기 ② 성경을 읽고 중요 구절 학생들에게 전달하며 학생들 상황 알아보기 ③ 주중에 고등부실을 돌아보고 주말엔 성전 청소하기이다.
요즘 성경과 구속사 시리즈를 읽으며 생각한다. 그동안 말씀을 받아 내 안에 채워 넣는데 치중하였다면 이제는 내 인격이 말씀화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주신 말씀을 실천하는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주시는 이도, 거두시는 이도
신윤섭, 오정은 성도 부부(노르웨이 오슬로 거주)
예배가 끝나고 길어지는 성가대 연습을 기다리는 아이들 입이 댓 발 나왔습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작은 한인 교회에서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곡. 부활절 칸타타 ‘십자가’ (조성은 곡). 게다가 3번째 곡 ‘겟세마네 동산’은 하나님과 예수님 듀엣으로 불러야 하는 곡인데 고음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부담되는 마음으로 집에 가는 길 가족들에게 이야기해 봅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하나님이 채워주시겠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그리고 몇 주 뒤 놀랍게도 독일에서 성악가 두 분이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5월에 오슬로에서 있을 오페라에 초빙되어 오셨고, 계시는 동안 교회 성가대 칸타타에도 참여하고 싶으시다는군요. 너무나 놀랍고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들과 함께한 몇 주간의 연습시간은 우리 모두가 오페라 가수가 되어 구름 위를 날며 하나님의 부활을 찬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19에서 상대적으로 평화롭던 노르웨이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습니다. 2월 26일 중국에 다녀왔던 확진자가 발견된 후 2주가 지나 첫 사망자가 발생하더니,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킹 후손인 노르만들은 건강한 음식을 먹어서 튼튼하다고 자부하더니 결국 약국에 마스크와 세정제가 사라지고, 마트에 식료품과 휴지가 동이 나면서 코로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초, 중, 고, 대학교 문이 일제히 닫히고, 100명 이상이 모이는 각종 모임은 취소,연기하라는 정부의 권고가 내려졌습니다. 혹시나 했던 염려는 역시나, 5월 오페라는 취소되었고 두 분의 성악가는 하늘 길이 막히기 전에 독일로 바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씀.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날이 갈수록 사태가 심각해져 이제 주일에도 교회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작은 교회지만 예배당에 모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교제를 나누었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언제쯤 이러한 상황이 종식되어 다시 예배당에 나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실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믿고, 아이들에게도 말씀을 가르치며 마음에 평안과 위안을 가져봅니다. 세상에 떠다니는 수많은 정보와 루머 속에서 두려움에 흔들리는 대신, 주신 이도, 거두실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굳게 믿고, 이 시간 내 자신과 내 가족의 신앙을 되돌아보면서 한 단계 더 성숙한 신앙의 길로 도약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가방끈이 기인 남자
이재경 (남선교회)
성도님네들 이 내 말 좀 들어보소. 공부 좀 맘 먹구 열심히 해보려구 가방끈이 아주 기~~~인
2만 7천원 주구 6개월 할부로 성경가방을 샀는디 그 담주부터 코로난지 뭐신지 땀시 어깨 힘주구 으시대며 교회 한 번 못갔네유 맴이 차암 거시기 하내유. 낼은 교회 가는 길 잃어버리믄 안되니께 답습할 겸 밤에 살포시 새로 산 가방 미구 한번 가따오려구요. 언능 코로난지 뭣인지 빨랑 종식되라구 기도하는 수밖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