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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 이렇게 읽었다.

2020.08.06 01:29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
이렇게 읽었다.


“이번 정차역은
여호와 삼마 성읍입니다”
유혜정 권사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7독)

11권을 받은 지 한 달 된 날. 가슴 뭉클함과 감사는 어느덧 눈 녹듯 사라지고 저자 서문만 얼른 읽어 놓고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었다. 직장 생활에 바쁘다는 이유로 너무 못 읽어서 늘 죄송하고 죄송했다. “아버지, 구속사 읽기 진도 좀 나가게 해 주세요.” 그 기도만 몇 번째 하는지 모른다. 천국 가기 전에 7독은 할 수 있을까? 결단을 내려야 했다. 출퇴근 길을 적극 활용! 퇴근 후에도 카페에 가서 부지런히 읽었다. 그런데 제6장 사비브를 지나 제7장 성전 방문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단위가 척이다 보니 실제 길이가 바로바로 가늠이 안 됐다. 문통은 어디고 문간은 어디를 말하는 건지 그 방향이 다 다르니 답답하고 눈도 아프고 급기야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했는데 행동 예언을 읽는 부분에서 에스겔 선지자를 생각해 보았다. 포로로 끌려와 서러움 중에 말도 못 해, 390일을 왼편으로만 누워야 돼, 자신의 손과 다리를 때리고 잠도 못 자면서 벽을 깨고, 놀라면서 물을 마시라 했으니 그 물을 제대로 삼킬 수나 있었을까. 나한테 시켰다면 그중 나는 몇 개나 순종할 수 있을까. 그동안 나 자신을 위해서만 바빴었지, 아버지 일에 바쁘지 못했구나. 구속사 책을 책꽂이에 가득 쌓아 놓기만 했지, 읽고 내 말씀으로 만들지 못했다. 풍요 속에 빈곤, 정작 말씀의 기갈을 나는 미리 당겨서 맞고 있었구나. 회개가 밀려왔다.
휴대폰을 꺼내 척을 미터(m)로 계산하고 줄자로 재보며 감을 잡으려고 노력하던 중 문득 초등학교 운동장을 지나다가 100m 달리기 선을 보았다. 출발선으로 기준점을 잡고, 지성소가 20척이면 10.64m니까 약 10분의 1로 상상하고, 1천 척은 532m니까 100m 달리기 다섯 바퀴. 4천 척이면 100m 달리기 스물한 번 길이의 강을 따라갔구나…
여러 개의 방과 문간 내용을 그림과 비교해 보면서 반복해서 읽다 보니 에스겔 성전의 윤곽이 보이고 “베힌네!”라고 외쳤던 에스겔처럼 내게도 경이로움과 벅참이 밀려왔다. 그 후로는 예배 때 에스겔 성전 말씀만 나오면 귀가 쫑긋해지고 재미가 붙고 5독째에는 어떤 힘에 이끌려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읽었고, 6독째에는 무언가 마음의 울컥함이 느껴졌다. 성전 땅바닥에서부터 문간에, 벽에, 창에, 비어 있는 터에게까지, 손바닥만 한 갈고리에까지, 그리고 작고 작은 나 하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둘러 진(陣)치고 불 성곽으로 지키고 보호하시는 아버지의 사랑. 전(殿)에 덮였던 그 영광이 나를 덮고 전에서 스미어 나오는 은혜의 물줄기가 나를 촉촉이 적시어 옴을 느끼며 7독을 마쳤다. 그렇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미 생명수 역사를 다 이루어 놓으셨다. 그 생명수가 내가 건너지 못할 강으로 넘치고 강가로 무성한 가지가 자라 실과를 맺힘같이 만방이 몰려올 것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시각 새벽 5시 43분.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나는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다. 고단한 내 어깨에는 여전히 구속사 가방이 든든히 메어져 있다. 이번 정차역은 ‘속된 땅(성읍의 기지)’(겔 48:15)이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고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를 기다린다. 오래전에 주신 말씀 중에 “금 그릇은 귀해서 찬장 깊숙이 넣어 두었다가 손님이 올 때만 가끔 사용된다. 그러나 바가지는 주인의 손에서 늘 떠나지 않고 일한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주인의 손에서 떠나지 않는 바가지! 나도 구속사의 신령한 바가지가 되어 반 척도 안 되는, 남들이 보기엔 비천한 도구로 보일지라도 이제 도래할 영광스러운 아버지 나라를 위해 사용되기를 소망한다.

그림 퍼즐 맞추며 놀던 유년시절
심재기 안수집사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7독)

성경은 어렵고 딱딱해서 아무리 읽어도 큰 줄거리를 파악하기가 어려워 따분하고, 그래서 읽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하며 신앙을 정립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구속사 시리즈가 출판된 이후 이 책을 순차적으로 읽다 보면 신구약 성경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눈에 띄지 않던 구절과 사건들이 생명력을 얻은 듯이 살아서 큰 줄거리로 엮여 마침내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큰 줄기를 이해하는 가슴 벅찬 감동을 맛보게 한다. 성경은 어쩌면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시공간을 넘나들며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그 퍼즐의 규모가 너무나 거대해서 전체 그림이 어떤 모습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원로목사님의 구속사 시리즈로 인해 성경에 여기저기 이모저모로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씩 맞추어져 가면 갈수록 파노라마 영상처럼 더욱더 선명하게 다가와 신비로운 은혜를 느끼게 한다.

1. 맞추어지는 퍼즐(1) – 희년의 10주기에 따른 성전 건축 역사 (마지막 에스겔 성전)
희년의 기준 연도인 BC 1445년에 모세 장막성전이 건축되어 그해를 기점으로 첫 번째 희년의 10주기(약 490년) 동안에는 모세 장막성전이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고, 두 번째 희년의 10주기(약 490년)인 BC 465년까지는 솔로몬 성전이, 세 번째 희년의 10주기(약 490년)가 되는 AD 26년 이전에는 스룹바벨 성전이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고 원로목사님은 2014년 1월 15일, 1월 22일 설교 말씀
‘희년의 성취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30세가 되는 AD 26년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니, BC 1445~AD 26년까지의 전체 기간 1,470년을 희년 10주기인 490년으로 나누어 보면 정확히 3으로 똑떨어진다.
창세기 3:15에 기록된 ‘여자의 후손’ 약속 이후 4,000여 년의 기나긴 세월에도 1년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30번째 희년인 AD 26년에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자신이 희년의 성취자이심을 선포하시는(눅 4:16-21) 오묘한 섭리에 소름. 그리고 에스겔 성전에 관한 구속사 시리즈 제11권이 출판된 오늘날 우리 시대가 70번째 희년의 10주기 기간이란 현실 앞에 전율한다.

2. 맞추어지는 퍼즐(2) – 에스겔 성전의 척량
수치가 50의 배수
어떤 그림이나 건축도면 하나 없이 오로지 문자로만 이루어진 성경 속에 이렇게 거대하고 장엄한 에스겔 성전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 비밀의 성전이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에 의해서 입체적으로 정교하게, 게다가 모든 수치가 50의 배수라는 원칙에 따라 건축물로 형상화되어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나다니…
숫자 50은 7년마다 반복되는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 즉 50년째를 희년으로 선포하여 자유와 해방 그리고 타락 이전의 상태로 원상회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담긴 상징 숫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에스겔 성전의 척량 수치가 바로 그 숫자 50의 배수로 설계되었다는 놀라운 말씀(ex. 0.5척은 50의 0.01배수, 25는 50의 ½배수, 500척은 50의 10배수 등). 종말에 이루어지는 에스겔 성전과 숫자 50의 상징성을 갖는 각각의 퍼즐이 신비롭게 맞춰져서 구속사의 완성을 향해 전진하는 일관성에 놀라서 자빠질 지경이다.

3. 나는 에스겔 성전에 들어갈 수 있을까?
현재의 나의 일상생활과 신앙 상태를 보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지구상에 실제로 건축되지도 않을 성전에 일일이 구조물의 세세한 수치까지 눈이 따가울 정도로 제시되어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성전의 곳곳에 빼곡하게 빈틈없이 배치되어 있는 ‘사비브 사비브’를 통과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혹시 나의 마음 판에 에스겔 성전이 건축된다면 자동으로 진입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자 실체라고 하셨는데, 그럼 예수님을 내 마음 판에 모시면 되는 것일까? 어쨌든 7독 이상 읽으라고 하셨으니 에스겔 성전의 형상이 이미지화되어 마음속에 자동으로 떠오를 수 있을 때까지 읽고 또 읽는 것을 계속해야겠다.

아하! 에스겔 성전의 정중앙에는
번제단이 위치하고 있었구나.
이은미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7독)

구속사 시리즈에는 언제나 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말 그대로 세계 최초로 에스겔 성전에 관해서 자세하게 저술하신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글”이라고 할 정도로 어려운 내용이기에 ‘에스겔서’가 기록된 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로라하는 신학자들조차 에스겔 성전 기록을 그냥 스쳐 지나간 그 책
‘에스겔서’. 예전에 어떤 성도가 원로목사님(편집자 주:구속사 시리즈 저자 휘선 박윤식 목사)께 “이렇게 어려운 걸 꼭 알아야만 천당에 갈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저도 원로목사님께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원로목사님의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바로 “하나님 명령이다.”이었다고 합니다. 그 에스겔서에 대해 풀어낸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을 읽어 내려가며 여기는 몇 척, 저기는 몇 척, 안뜰, 바깥뜰… 또 수도 없이(?) 나오는 여기저기의 방들.
처음 1독, 2독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그냥 글자만 훑어보는 정도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3독부터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평면도를 찾아 눈으로 확인하며 어렵게, 어렵게 거의 책의 끝부분까지 이르렀을 때, 마치 ‘전광석화’같이 뇌리에 꽂히는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명확하고 또렷하게 기억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로 <동향(東向) 한 문과 안뜰과 번제단>, 395쪽 중간 부분에
‘특별히 제단은 에스겔 성전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입니다.
예수를 수십 년 믿었지만(?) 한 번도 의문조차 갖지 않았던 에스겔 성전 정중앙, 그곳에는 성소도 아니고 지성소도 아닌 번제단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이어서 399쪽 하단에
‘피를 뿌리는 규례’는 장차 죄악된 인간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할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정방형(正方形)의 번제단은 속죄와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자기 몸을 제물로 단번에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대망(待望) 하게 합니다.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속죄 역사이므로 성전의 중심은 ‘번제단’임을 설명해 주심으로써 내 각자의 삶의 가장 중심부에 나를 위해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임재하셔야 함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이 글은 신학적이거나 학문적인 연구물이 아닙니다. 다만 기도의 무릎을 꿇고 또 꿇으면서 또 성경을 수백 번 읽고 또 읽으면서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강단에서 선포하며 정리한 것입니다.” – 구속사 시리즈 제1권 「창세기의 족보」 저자 서문 중에서
저는 언제나 이 글을 접하게 되면 원로목사님의 전 생애를 한마디로 표현한 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합니다. 예전에 영화배우 황정민 씨가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습니다”라고 했던 수상 소감이 생각납니다. 일평생 피땀 흘리시며 각자 나를 위해 하늘 양식 진수성찬으로 잘~ 차려 놓으신 천국 밥상 위에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아버지 은혜를 따라 나의 숟가락을 올릴 수 있도록 한량없는 사랑과 기도로 양육해 주신 원로목사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많이 보고 싶습니다.

나를 척량해 보다
최영일 성도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6독)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단시간 동안 폭발적인 힘과 속도로 경쟁하는 것이 아닌, 요람부터 하늘나라에 도달하기까지 백 년 가까이 펼쳐지는 고되고도 긴 경주이기 때문입니다. 수백, 수천 번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순간순간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지 못하면 순위는 뒤처지고, 심지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순간 열심을 내기는 쉽지만, 해가 바뀌고 기관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헌신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환경 때문에, 때로는 직장 핑계로, 때로는 사람 문제에 발목이 잡혀서 교회의 직분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말씀만이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헌신할 수 있는 원동력임을 절감하고 30살이 되던 해에 앞으로 성경을 해마다 3독 이상 하기로 작정했고, 지금까지 그 작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젠 정말 힘들고 지쳐서 올해만 쉬게 해 달라고 몸이 지속적으로 유혹할 때마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직분을 붙잡고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성경읽기가 습관처럼 자리잡혀 있었기에 구속사 시리즈도 다독할 수 있었습니다.
구속사 시리즈는 읽으면 읽을수록 오묘합니다. 분명 머릿속에 지식적으로 다 알고 있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순간의 나의 환경, 상황, 감정, 신앙 상태에 따라 깨닫는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지난번에 읽었을 때는 흰 바탕에 검은 글자를 무미건조하게 지식으로 담기 바빴는데, 이번에는 내용 안에 담긴 하나님의 역사가 신비롭다는 감격에 눈물샘이 터지게 됩니다. 기분이 좋을 때 읽으면 한없는 기쁨과 감사가 느껴지지만,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 생길 때 읽으면 어느 순간 나의 무지함과 부족함, 연약함에 눈물 흘리며 회개하게 됩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다섯 번, 아니 열 번 이상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때마다 깨닫게 되는 깊이가 완전히 다릅니다.
에스겔 성전을 구석구석 빈틈없이 척량한 숫자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전체적인 큰 그림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이 바로 성전이고 구석구석 척량해야 된다는 사실을요. 한 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수치로 척량된 에스겔 성전처럼 과연 내 신앙도 정확하게 척량될 만한 수치를 가졌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동료를 만나더라도, 집에서 아내를 대하더라도 언제든 말과 행동에 조심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한순간 실수할 때 그 부분은 모자란 길이가 되어서 결국은 성전 전체가 어긋나고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대한민국 전체에 어둡고 삭막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또 세계적으로 반(反) 기독교 정서가 담긴 사상들이 법제화돼 기독교의 근간조차 흔들리는 위기마저 닥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에서 자유롭게 예배드리지 못한 지 이미 반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어느새 온라인 예배라는 편리한 수단에 의존한 나머지 교회와 멀어지고 성도들과의 협력과 교제마저 소홀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성전을 보여 주신 때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강제 노역 가운데서 마지막 희망으로 품고 있던 예루살렘 성마저도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 속에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시며 하나님께서 에스겔 성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구속사 시리즈를 통해서 에스겔 성전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계십니다. 마지막 때 들어갈 새 예루살렘 성전을 소망하며 끊임없이 척량하는 가운데 신앙적으로 성숙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 기회야. 열까지 센다!
박영미 성도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14독)

예수님이 오심으로 역사가 주전과 주후로 나누어진 것처럼 저에게는 에스겔서의 의미가 11권上 출간 이전과 이후로 크게 달라졌습니다. 에스겔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 중 하나였습니다. 1장부터 낯선 지명과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등장하여 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아~ 하나님은 에스겔을 택하셨구나.’라는 정도로 가볍게 넘겼습니다. 마치 소화 안 되는 음식을 먹듯이 이해도 못 하면서 읽고는, 마지막에 ‘여호와 삼마’를 읽고 나면 다 읽었다고 위안을 하곤 했습니다.
2013년 원로목사님께 에스겔서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에스겔의 행동 예언들과 에스겔 성전에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사비브 사비브’, 즉 하나님께서 그곳에 뭔가 중요한 것이 있어 지키고 계시다는 것과, 에스겔 성전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성의 청사진으로, 어렵다고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이 아닌 반드시 주목해서 알아야 할 내용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책이 기다려졌습니다.
책이 출판된 것은 7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에스겔서 설교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탄과 감격이 많이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책이 발간된 뒤 몇 주가 지나서야 미스바 성가대의 구속사 읽기 운동에 밀려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각종 예배 시 반복되는 설교와 사관학교, 구역 공과를 통해 밀려오는 물결에 잠겨가듯이 나도 모르게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당시 설교 말씀을 다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고 책을 다시 읽어보니 ‘회개’를 통한 죄 문제를 해결하신 후 주시고 싶은 것이 ‘에스겔 성전’인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 우리와 어떻게 살고 싶으신지 알려주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동 예언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도래하였음을 알리며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였습니다.”(81쪽)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새 성전의 모습을 보여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의 죄를 부끄러워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모든 법도와 율례를 알고 지키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183쪽)
처음에는 저자 서문에 나오는 에스겔 43:10-11 “인자야 너는 이 전(殿)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는 말씀이 어려웠습니다. 성전 형상을 보여 주는 것과 죄를 회개하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7장 에스겔의 성전 방문 부분은 성전 평면도를 펼쳐놓고 하나하나 대조해 가면서 자세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에스겔 성전의 말씀은 연구한다고 깨달아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에스겔 성전을 보이는 건물로 이해한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 삶이 변화되지 않아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으로는 ‘담이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별하고, 온통 거룩으로 가득차 있고, 문지방 밑에서 생명수 강이 흘러나오고,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함께하는 이 에스겔 성전이 내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말씀을 읽고도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을 볼 때 ‘내가 과연 에스겔 성전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성전을 보여 주시고 마지막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여전히 내 모습은 달라지지 않으니 어쩌면 좋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 소망이 있는 것은 어떻게든 회개시키려고 틈을 보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마지막 기회야. 열 센다! –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말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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