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따뜻한 밥을 차려 주는 교회의 어머니 – 이미란 신임 권사
아침이면 따뜻한 밥을
차려 주는 교회의 어머니
이미란 신임 권사
엄마는 시골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둥이라고 생각했다. 일찍 잠들어 새벽이면 산 넘어 교회를 가서 동이 트도록 기도하고, 주일이면 시골교회 마당 가마솥 가득 밥과 국을 끓여 예배 후 온 교회가 함께 먹었다. 추수철이면 보리며 고구마며 가득 머리에 이고 산길, 바닷길을 걸어 교회에 들여다 놓고, 교회를 내 집같이 돌보며 일찍 혼자된 슬픈 삶을 은혜 받은 여집사의 삶으로 승화시키고 계셨다.
그러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시골집을 떠나왔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를 생각해볼 수도 없는 막내아들의 큰 사고로 부랴부랴 모든 삶의 터전을 두고 나오셨다. 나는 불현듯 ‘이제 엄마는 어디에서 권사가 되지?’ 참 엉뚱한 생각이었다. 엄마가 시골 교회를 섬기는 모습은 헌신과 사랑이어서 어디 가서 저 훈장을 받을 수 있을까. 그 뒤로 엄마는 시골교회로 돌아가지 못했다.
엄마는 보훈병원에서 아들을 간호하며 그쪽 교구에 편성되었고, 온라인 예배도 없는 그 당시에는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으로 와서 챙겨 주시는 구역장님만이 교회와의 끈이었다.
2005년, 교회는 오류동으로 옮겨와 안정된 시기에 대대적인 권사 임직이 있었다. 우리는 기도했지만 막막했다. 엄마의 구역장님만이 간절하게 추천서를 들고 뛰어다니셨다. 3부 예배 시 발표한 권사 피택자 명단에는 엄마의 이름이 없었다. 예배 후 절망스런 목소리로 구역장님께 전화했다. “구역장님, 엄마 이름이 없네요. 안 됐나 봐요.” 구역장님께서는 기다려 보라고 하시며, 기도하자고 하셨다. 구역장님께서는 추천서를 들고 다시 한번 강청하였고, 은혜가운데 엄마는 권사 임직을 받으셨다.
나는 지금도 엄마의 권사 임직은 엄마의 젊은 날의 헌신 때문만이 아니라 그 구역장님의 구역원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으로 믿는다. ‘아~ 구역장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온 마음으로 배웠다. 결혼을 하고 여선교회에 편성되어 이듬해 구역장을 하고 20년을 채워 권사 임직을 받았다. 그 구역장님 생각이 났다.
권사는 교회의 어른이고 어머니이다. 권사는 고집부리는 둘째 녀석 등짝을 치고도 아침이면 따뜻한 밥을 차려 주는 엄마이다. 항상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젊은 식구들에게는 함께 하자고 권면하고, 나이 드신 권사님들에게 따뜻하게 손잡아 드리는 그런 권사가 되어야지 생각한다.
이제 더 많은 직분자들이 세워질 텐데 그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우리를 충성되이 보시고 하늘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의 은혜임이다. 그리하여 우리 찬양 소리가 나이만 먹어 고집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소리, 헌신의 소리, 기도의 소리로 더욱 성숙하게 익어가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 21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