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아름다운 보고(寶庫)를 열으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寶庫를 열으사
신명기 28:12-14, 말라기 3:7-12
산과 들마다 색동옷을 입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을 때입니다. 설고 퍼런 것에는 주인의 눈길도 가지 않습니다. 오실 토실 먹음직하게 익은 과일을 향해 주인의 손이 가는 것이죠. 우리 생애를 돌아보십시오. 스무 살까지는 부모 슬하에서 철없이 친구 따라다니며 놀고, 거짓말도 합니다. 그러다 이성(異性)에 눈뜨고 장가, 시집가서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아기를 낳아 키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기가 저절로 기고 걷는 게 아닙니다. 정성으로 보살피고 먹이고 입힙니다. 그러나 아이가 부모 마음대로 됩니까. 야단친다고 듣습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다 이렇게 성장한 것입니다. 인생은 ‘붙는’ 것의 연속입니다. 남녀가 사랑으로 붙어야 아기가 생기고, 아기는 태(胎)에 붙고, 태어나면 어머니 젖꼭지에 붙습니다. 밥숟가락에 붙고, ‘고등학교 붙었느냐’ ‘대학교 붙었느냐’ ‘직장 붙었느냐’로 이어집니다. 그러다 나이 40, 50되면 자녀들이 중, 고등학생이 됩니다. 머리 크면 내 아들, 딸이 아닙니다. 신문, 방송에 나오는 범죄 기사는 내 아이들과는 상관없는 줄 알지만, 어느 교회 장로님이 “남의 집 자식 얘기로만 알았는데, 내 집안에 이런 원수 같은 자식이 있었다”고 눈물이 글썽글썽해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요즘 서울에 있는 대학은 다 명문대입니다.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한 달에 수십만 원, 수백만 원씩 들이지만, 명문대 나와 유학 가고 대학원까지 졸업했다고 합시다. 그 자녀가 하나님 믿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대학 합격을 위해서는 몇천만 원 투자하면서, 영혼이 말라 꼬드라지고, 문둥이같이 썩는 것은 왜 신경 쓰지 않습니까. 영혼을 위해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를 붙여준 적 있습니까? 어려서부터 성경 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 옷차림, 머리 모양 보십시오. 그래도 부모님들은 ‘허허허’ 만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경칩니다. 예수님을 날라리로 믿지 마세요. 성경대로 확실하게 믿으세요. 성경 믿고 망한 사람 있습니까. 그런 사람 있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걸어 고소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가정은 자손만대에 거지가 없습니다(시 37편). 역사의 증언입니다. 부모가 잘 쌓아 놓으면 뭐 합니까. 올바른 신앙 교육하지 않으면 자식 대에 다 망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틀 전날, “인자의 임함은 노아 때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아 때 죄악상을 보세요. 근친이 상간하고, 자기 눈에 맞는 대로 남녀가 붙기에 바빴습니다. 지금 서울에 남녀가 죄짓는 숙박업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남편, 아내, 자식 있는 사람들이 다 죄짓는 것입니다. 아들딸들이 보고 배웁니다. 소돔, 고모라가 옛날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하기 위해 교회가 정신 차려야 합니다. 부부간에 신뢰하고 사랑해야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그래야 집안이 잘됩니다. 이 땅에 몇 해나 살겠습니까. 낙엽 인생입니다. 1년 못 돼서 떨어져, 바람 불면 날아가는 걸 보세요. 안개 같습니다. 해 뜨면 없어지는 이슬 같습니다. 아궁이에 불 때면 불똥과 함께 사라지는 연기 같습니다. 모세는 120년 살았지만, 화살같이 순간 지나갔습니다. 70, 80년 살아 봐야 순식간입니다. 영원한 내세(來世)를 준비하세요. 남들만 죽는 줄 알고 ‘그 사람 죽었구나’ 하지 말고, 우리 모두 한 번 났다가 한 번 간다는 걸 깨달으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복음을 위해 일해 달라는데, 하나님 일은 한 번도 안 하고 밤낮 남편, 아내, 자식한테만 ‘허허’ 거리다 가겠습니까? 잘 들으세요. 오늘은 우리가 ‘도둑놈’ 되지 않기 위해 설교하겠습니다. 도둑질 한 사람을 도둑놈이라 하지, 누가 도둑님이라 합니까. 성경은 분명히 도둑질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말 3:8). 살인, 강도, 강간, 거짓말과 같은 죄라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대로 온전한 십일조를 하셨습니까? 제가 마산에서 목회할 때입니다. 모두가 끼니 잇기 힘들 때였습니다. 맹물에 탄 옥수숫가루를 시꺼먼 솥에 붓고 죽을 쒀서 한 바가지씩 나눠주던 시절입니다. 어느 권사님이 남편에게 “당신 교회 나오는 것이 내 소원이니, 그렇게만 해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고 울며 얘기했습니다. 그분이 80마지기 농사를 짓던 부자였습니다. 처음 교회 와서는 “예수 믿으면 비용이 많이 든다던데 얼마나 듭니까?” 합니다. “얼마 정도면 신앙생활 하시겠습니까?” 했더니 “교회 나오면 담배 끊어야 하니, 담뱃값 정도면 믿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면 된다’고 했더니 생각보다 적게 든다며 좋아했습니다. 다섯 달쯤 지나니 그분 헌금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주위에서 “너 교회 다니면서 술 마시면 교회에 먹칠하고 죄 짓는 것”이라고 해서 술도 끊고, 술값까지 헌금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세례는 받지 않았습니다. 권사님에게 물었더니 남편이 ‘세례받으면 십일조 바쳐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세례라면 펄쩍 뛴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분을 만나 “세례받으셔야죠” 했더니, “그러면 십일조 바쳐야 한다면서요?” 합니다. “세례를 안 받더라도, 교회 나와서 신앙 고백한 사람은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했더니 “전체 소산물의 십 분의 일을 바쳐야 합니까, 경비를 다 쓰고 나머지에서 바칩니까?” 묻습니다 “경비 쓰기 전에 십일조 바쳐도 되고, 경비 제하고 십일조를 바쳐도 됩니다.” 했더니 “그러면 내가 세례를 받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례받은 뒤 그분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매달 쌀 두 가마씩 헌금하더니, 추수감사절이 오자 쌀 20가마를 헌금했습니다.
“왜 이렇게 늘었습니까?” 물으니 “은혜 받고 성경을 보니까 내가 온전한 십일조를 못 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간절히 축복해 줬습니다. 5년 만에 집사가 됐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십일조 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에는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근심, 눈물, 괴로움 속에 사는 것을 절대 원치 않으십니다(애 3:33).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고, 은혜 주시고 축복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민 6:24-27). 그래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우리의 원죄, 유전죄, 자범죄를 깨끗이 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너 죄 없다” 선언하시고, 마귀의 자식 된 우리를 하나님의 친 아들딸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돌아가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으니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죽는 것을 ‘잠자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우리도 부활해 영생 복락(福樂)의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누구든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요 3:16).
구원받은 자에게는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옛사람이 아닙니다. 바람에 날아가듯했던 과거의 삶은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오늘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가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옛 죄는 무서운 것이죠. 예수를 믿으면 믿음과 행위가 일치돼야 합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26). 말씀대로 믿고 행할 때, 반드시 축복이 임합니다. 입으로만 하지 마세요. 결심했으면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십일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세요. “너희는 내게 돌아오라”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돌아가야 합니까?” 했습니다. 위선적입니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답하신 것을 보십시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우리가 언제 도적질했습니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명하셨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십일조에 대해서만은 “시험하라”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이 하늘 보고(寶庫), 즉 곳간을 열고 너희 집에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복을 쏟아 부어 주나, 안 주나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바람에 우리 생명이 단축되고, 사업을 했다 하면 망합니다. 은행이자, 카드이자, 사채, 가족과 친척에게 꾼 돈에 짓눌립니다. 하나님 앞에 ‘짠돌이’가 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나에게 바치는 것을 그렇게 아까워하는데, 난들 너에게 아까워하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축복의 문을 닫으십니다. 구약 때는 모두 농경이나 유목을 했죠. 그런데 하나님이 이른 비도, 늦은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으시니(렘 14:4) 어떻게 됐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 볼 때 하늘을 철판으로 막으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신 28:23). 비가 내려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자식이 예쁘죠. 아들딸을 정말 성공하고, 가문을 빛내고, 나라와 민족에서 알아주는 자식으로 기르려면 하나님 말씀을 영접하게 하십시오.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혼하고, 신앙으로 하나 된 가정을 이루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권력 떨어지고 돈 떨어지면 배우자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아이들은 순간적으로 부모 없는 아이들이 돼 버립니다.
십일조는 복 중의 복입니다. 하늘의 문을 열어 쏟아부어 주십니다. 물질, 건강, 축복의 세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떼어먹지 마세요. 생활도 어려운데 200만 원에서 20만 원 떼라고 하면 “아이고, 그 큰돈을” 합니다. 큰돈이 아닙니다. 그걸 드리면 보이는 세계에서는 분명히 마이너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바치는 순간 플러스가 됩니다. 얼마나 복입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간곡한’ 명령입니다. 왜? 우리에게 복 주기 위해, 우리가 잘 되게 하기 위한 명령입니다.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사람의 명령은 순종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자손만대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 대에만 잘 살면 뭐 합니까. 자식, 손자, 증손자, 자자손손 잘살게 하시려는 선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의 집은 교회입니다. 모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농사지은 뒤 십 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리고, 십 분의 일은 가난한 사람 위해 나눠주고, 십 분의 일은 교회의 축제를 위해 드리라고 하셨죠. 히스기야 왕 시대에 그렇게 시험해 본 뒤 백성들이 얼마나 태평성대를 누리고 복을 받았습니까?(대하 31:4-21) 병든 자가 없고 이내 죽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제 생활이 그렇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하’ 자만 나오면 아까워함이 없습니다. 최고로 좋은 것을 드립니다. 교회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집은 번쩍번쩍하게 꾸미면서 하나님의 집에 대해 무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심장과 폐부를 살피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십일조는 창세기 14장에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이 쳐들어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재물을 약탈해 갔을 때, 아브라함이 잘 훈련된 사병(私兵) 318명을 데리고 가서 다 찾아왔습니다.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 시시한 것이 아닌 가장 좋은 것을 십일조로 바쳤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준 것을 보십시오. 야곱도 옛 루스인 벧엘 땅에서 기둥을 세우고 기도하며 십일조를 서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식들이 잘살게 됐습니다. 그의 허리에서 만왕의 왕 되시는 메시야, 예수가 나게 하셨습니다. 십일조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것도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전체가 하나님 것입니다. 내 몸뚱이라고 내 것입니까. 우리는 적신(赤身), 즉 벌거숭이입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게 없습니다. 내 몸조차도 하나님 것입니다. 열 개 중 하나만 하나님 것인 줄 알다가, 신앙에 눈뜨면 전체가 하나님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가 하나님께 바쳤으니, 내가 바친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대상 29:16). 하나님이 그 말을 듣고 “너희 집에서 왕국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의 아들인 위대하고 영특하고 지혜로운 왕 솔로몬 때 이스라엘이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집집마다 부요(富饒)해 가난한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온 나라가 도둑질하는 것이고, 저주를 받는다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과일나무 100그루가 있으면 10그루는 하나님 것입니다. 소가 100마리 있으면 10마리는 하나님 것입니다. ‘소득’의 십일조입니다. 돈 생기면 뭐 갚고, 뭐 갚은 뒤 남은 것에서 십일조 드리는 그런 짓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심장(心臟), 폐부(肺腑)를 살피시는 분입니다(렘 17:10). 우리 마음을 다 아십니다. 바벨론의 벨사살 왕에게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선고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달아보니, 왜 이렇게 가볍냐’는 것입니다. ‘나를 잊은 너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날 밤 62세로 죽었습니다. 레 27:30, 34, 민 18:21, 32, 신 12:5-18, 14:22-29을 꼭 기억하세요. ‘모든 소산물’의 십일조입니다. 제가 목사님들에게도 재물이 생기면 무조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합니다. 주머니에 넣으면 안 됩니다. 왕상 8:15-17, 암 4:4, 대하 31:4-29, 느 13:10-13을 보십시오. 성경이 거짓말입니까?
온전한 십일조는?
어떤 사람은 ‘십일조는 율법 시대의 일이지, 은혜 시대에는 필요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케 하려 오셨지, 파괴시키러 오셨습니까?(마 5:17) 예수님은 종교지도자, 바리새인들에게 ‘지옥이 두렵지 않으냐. 십일조도 바쳐야 할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3:23). ‘십일조를 왜 안 바치느냐’고 물어보면 ‘생활이 어려워서’라고 합니다. 200만 원에서 20만 원 뗀다고 생활이 어려워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마음 먹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 눈가림하지 마세요. 100만 원 받아서 10만 원 떼고 90만 원으로 사는 사람도 있는데, 300만 원, 400만 원 받으면서 어떻게 십일조를 안 바칩니까. 말씀 한마디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아들딸들의 가정을 외면하시겠습니까. 사람도 저녁 식사 하면서 “둘째는 어디 갔냐. 다 먹지 말고 반찬 남겨 놓아라”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죄악 된 인간도 이런데, 인류를 사랑하되 아들 예수를 죽이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사랑하시지 않겠습니까. 십일조의 금액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셔야 합니다. 한 달에 200만 원 받으면 20만 원 드리고, 또 보너스를 타면 또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생각 밖에 용돈 생겼다고 무 잘라먹듯 그냥 삼키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잘사는 길입니다.
십일조는 에덴동산에서 시작했다
잘 들으세요. 십일조는 어디서 시작됐습니까?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 하와에게 “만물을 다스리라, 주관하라, 땅에 번식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따먹어라. 단,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일조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선악과는 내 것이라’는 말씀은 없지만, 뜻으로 볼 때 선악과는 당신의 것이니 따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먹으면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불순종은 죄죠. 죄의 값이 사망입니다(롬 6:16-23). 한 사람이 죄지음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에 죄가 들어왔습니다(롬 5:12). 선악과를 마귀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마귀의 편이 됩니다. 아담,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도둑질을 한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따먹었으니 ‘도둑’이 아니라 ‘강도’가 된 것입니다. 주인 몰래 가져가는 것은 도둑이고, 주인 보는 앞에서 가져가는 것은 강도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 손바닥 위에 있지만 그렇게 물으셨죠. 아이가 “나 꼭꼭 숨었다. 엄마, 나 어디 있는지 알아?” 하죠. 엄마는 뻔히 알지만 “나 모르겠는데” 하다가, 아이가 “까꿍” 하고 나타나면 같이 “까꿍” 해주지 않습니까.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성경에 없는 얘기를 보태서 하면 배나 저주받는다고 하셨는데(계 22:18-19) 제가 그걸 모르고 말씀하겠습니까. 세상의 소리에는 다 뜻이 있고 우연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좌편, 우편에 강도들이 달린 것이 우연입니까? 성경의 깊고 오묘한 뜻을 알아야 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습니까? 과거, 미래와 연결되지 않은 현재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이 강도들과 동류(同類)가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에덴동산 사건을 예수님이 걸머지고 책임지셔야 할 것 아닙니까. 양편에 달린 강도를 예수님이 보고 계신 것입니다.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강도의 후손들 아닙니까. 얼마나 치가 떨리고 가슴 아픕니까. 성경을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십일조를 바치세요. 바치는 순간, 집안이 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일이 안 되고, 허가가 안 나오던 것이 풀립니다. “제가 강도인데,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겠습니까” 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가 44세 이상 권사님들을 임직합니다. 옛날에는 나이 들어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권사였지만, 우리 교회는 교회 생활과 예배 행위에 성실한 분들, 십일조를 철두철미하게 바친 분들, 생활에 규범이 있고 모범이 되는 분들을 임직해 열심히 일하게 합니다. 권사는 교회를 돌보는 신령한 어머니입니다. 왔다 갔다 하며 대접이나 받으려 하면 안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권사가 돼서 교구와, 구역과,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 찾아가서 찬송해 주고, 기도해 주고, 위해 주고,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활성화됩니다. 젊어집니다. 저는 산에 가서 임직 받을 권사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제가 지금 얼마나 아픈지 말도 못 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울고불고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사는 것이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말로 ‘깡다구’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십일조 바치고, 자식들이 복 받아 잘사는 것을 제 눈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자녀를 믿음으로 정말 잘 기르세요. 건실하고, 마음이 반듯하고, 씩씩하고, 의욕을 가지고 게으르지 않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가 돼야 합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말대답하는 자식은 골짜기의 까마귀와 독수리가 눈을 파먹는다고 하셨고(잠 30:17), 부모를 공경하면 생명이 길다고 하셨습니다(엡 6:1-3, 신 5:16).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단축됩니다. 부모 말에 순종하는 자식이 절대 일찍 죽는 법이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부모는 한번 떠나면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까지는 다시 볼 수 없습니다. 부모를 하나님처럼 섬겨야 합니다. 잘 들으세요. 정신을 차리세요.
십일조 바치는 것을 힘들게 생각하지 마세요. 짐이 가볍습니다. 내가 잘되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내게 “내일 천억 원 드리겠습니다” 한다면 의심하겠습니까. 대통령의 이름과 인격이 있는데 거짓말하겠습니까. 아직 내일이 안 됐는데도 마음이 부풀고 기뻐서 춤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면 하늘 문을 열고 너의 집안 사업체에 축복을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말 3:10). 복된 장맛비(겔 34:26)같이 쏟아집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장대비가 쏟아져 보세요. 그 땅이 비 맞는 순간 탄내가 납니다. 그러다가 한참 쏟아지면 땅이 축축해집니다. 그 농부의 마음을 생각해 보세요. 막걸리 한 사발을 새끼손가락으로 저어서 한번 마시고 웃는 너털웃음을 생각해 보세요. 복된 장맛비가 내리면 그렇게 말썽부리던 아이들이 달라집니다. 공부합니다. 공부 잘하면 남을 다스립니다. 못하면 남 밑에서 일해야 합니다. 가난해집니다. 공부 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무슨 일에든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돼야 합니다. 아래 처져있지 않고 위에 있어야 합니다. 남에게 줄지언정 얻어먹지 않아야 합니다(신 28:12-15).
십일조를 명령하신 목적은?
십일조 명령의 목적은 전(全)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 통치자요, 하나님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대상 29:11, 14, 학 2:8, 시 24:1, 창 1:1, 1:3). 말씀 없이 지음 받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하나님만이 주인입니다. 사람은 청지기입니다(마 25:14). 주인이 “창고 가면 우편 둘째 계단에 뭐 있으니 가져오라”고 말하면 “예” 하고 가져오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집에 재물이 있어야 하겠으니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인 교회를 왜 가난하게 만드냐는 것입니다(말 3:10). 주인은 창고에 얼마가 있고, 물건이 몇 개나 있는지 다 알고 셈하십니다. 종은 모릅니다.
또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입니다. 믿는 성도의 흔적입니다. 성도임을 알리는 표식입니다. 신앙 고백한 성도의 기본이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아이 낳으면 동사무소나 구청에 출생 신고를 하듯, 십일조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신고입니다. 십일조는 생명의 표시입니다(잠 3:9-10). 나 자신이 건강해지고, 복 받고, 마음의 소원대로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십일조를 바치면 나가도 복 받고, 들어와도 복 받습니다. 출입의 복입니다(신 28:6, 시 121:8). 나갈 때 땅이 꺼져라 한숨 쉬고, ‘이게 되겠나’ 하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갈등할 필요 없습니다. 신앙은 모험입니다. 믿고 당차게 나가는 것입니다. 나가도 복 받고, 들어와도 복 받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안 바치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말라기 2:2에 “저주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늘이 구리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습니다. 태양빛, 달빛, 별빛도 없습니다(신 28장). 시꺼먼 먹구름만 끼어도 빛이 보이지 않는데, 쇠로 내 집안과 사업체가 막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이 답답하고 근심과 한숨입니다. 왜 그런 바보짓을 합니까. 사기 당하고, 벌레가 와서 먹어 치웁니다(신 28:42, 말 3:11). 남편도 빼앗기고, 아내도 빼앗깁니다. 신명기 28:30이 거짓말입니까. 나는 성경을 믿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과실이 열매 맺기 전에 다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폭풍을 보내 불어 팽개치십니다. 소를 잡았는데 나는 먹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와서 다 먹어 치웁니다(신 28:31). 1년 내내 애썼지만 밤새 도둑맞고 맙니다. 무서운 재앙입니다. 목사가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저도 안 바치면 벼락 맞습니다. 우리 인생은 복을 부어 주시되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열어 주셔야 합니다. 히브리 원어를 보면 철철 넘쳐 주체 못 할 정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호박 넝쿨이 내 담을 넘어가서 남의 집에서도 따먹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집에 있는 그릇마다 가득해집니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주인의 손이 가는 비싼 그릇보다는, 늘 주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바가지처럼 사용되는 존재가 돼야 합니다.
앞으로 십일조만큼은 강도질하지 마세요. 물고기 2마리, 보리 떡 5개를 가지고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떡이 많아서 감사했습니까? 적은 것을 가지고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감사할 때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 십일조 바치는 것 짜증 내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하고 맡길 때 개인과 가정과 사업체가 부요(富饒)의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남편한테 잘하고, 부인에게 잘하십시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엡 5:28). 부부의 양식은 사랑입니다. 부부는 사랑을 먹고, 위로를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십일조 생활하면서 부부의 의(宜)도 좋아지고, 자녀와의 사이도 좋아지고, 사업도 좋아지고, 신앙생활에 보람을 느끼고 감사하고, 오늘 그 나라 간다 해도 두려워 말고, 죽자마자 천국에 간다는 것을 믿을 때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신 말씀으로 승리하고 자손만대 부요의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04년 10월 27일 수요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2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