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신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시고
높으신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시고
시편 113:1-9
휘선 설교집 제3권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성탄」 중 재수록
우리 성가대 찬양을 들으면 잠자던 영혼들, 조는 심령들이 깰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천군 천사들도 화답하는 것이 신앙을 통해 느껴집니다.
오늘이 1990년 12월 23일이죠. 내일은 성탄 이브(Eve)이고, 25일은 성탄절이고, 26일은 수요일 저녁예배, 27일은 목요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집회가 있습니다. 또 새벽제단 있고…. 늘 말씀을 드리지만, 장사할 때에는 그 품목만, 가격만 외우면 됩니다. 설교라고 하는 것은 뼈를 깎고 살을 찢고 피를 토하는 것이라고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씀했죠. 눈만 떴다 하면 목사님들은 설교 준비하는 거예요. 한 교회에서 30년 목회하면, 성탄 30번 맞이합니다. 성탄 전날까지 60번을 설교해야 되는 거예요. 신구약성경을 다 찾아봐도 60개 본문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올해 성탄 전에 ‘주일 설교는 무엇을 할까?’ 목회자의 고민이죠.
그러는 가운데, 대부분 신약성경 혹은 이사야나 예레미야, 창세기 3장에서 본문을 찾지만, 이번에는 시편에서 찾았습니다. 시편 113편 1절부터 9절까지 보는 가운데 특별히 5절과 6절, 번갯불 지나가듯 번쩍 하는 순간 마음에 떠올라서 원어 성경과 공동번역, 일본 성경, 여러 성경을 찾아보면서 하나하나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시고’, 원뜻은 ‘나를 위하여 허리를 굽히신 하나님’입니다.
‘성탄’(聖誕)이 뭐냐고 저에게 묻는다면 한마디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히셨다’고 하겠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히시지 않았다면 ‘외면’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단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서 이 낮고 천한 땅의 인간들을 향해서 허리를 굽히지 않으셨다면, 모든 인류에게는 영원히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또한 사모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받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5-6절을 볼 때, 시편 기자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라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했습니다. 공동번역은 6절을 “하늘과 땅을 굽어보시는 분이시거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시고 가난한 자, 억울한 자, 궁핍한 자와 잉태하지 못하는 여자를 굽어보셨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리를 굽히신 하나님’ 혹은 ‘자기를 낮추신 하나님’을 사도 바울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빌립보서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즉, 강림(降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허리를 굽히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히십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이 죄가 없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 때문에 높고 높은 보좌에서 이 땅의 인간을 향해서 지금도 허리를 굽히고 살피십니까? 자식이라면 부모님이 누구 때문에 굽실거리고 허리를 펴지 못하고 사시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야, 이 녀석아! 내가 동네에서 제대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사는 이유를 자식인 너는 알아야 될 것 아니냐. 제발 허리를 펴고 살 수 있도록 올바른 사람이 되어 다오’라고 육신의 부모님이 자식에게 말씀한다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겠죠.
새벽 미명에 어둠의 장막을 뚫고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탄생하시는 예수님은 허리를 굽히신 것입니다. 죄인인 아들을 가진 부모는 동네에서 떳떳하게 낯을 들고, 허리를 펴고 살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하기 전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 부르기 전에,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허리를 굽히셨구나!’ 하고 깊이 생각할 때, 속죄와 구속의 은총을 올바로 깨닫고 주님의 그 사랑을 깨달아서 ‘이제는 예수님을 잘 믿어야 되겠다. 하나님이 나 때문에 허리를 굽히시는 게 아니라 허리 펴고 사실 수 있도록, 남은 생애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굳은 결심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히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화목을 위해 허리를 굽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혀 종의 형체를 입으신 이유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히면서 이 땅에 탄생하셔야만 되는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다음에 형제간에, 가족 간에, 교회 간에, 나라의 백성 전체에 화목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허리를 굽히기까지 하면서 이 땅에 탄생하신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 그다음에 형제끼리의 화목을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화목된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즐거워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을 저희들이 상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그뿐만 아닙니다. 에베소서 2:13-18을 볼 때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13-18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만인간의 화목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가슴속 깊이 안고 살면서도 가족끼리 화목하지 못하고, 형제끼리 화목하지 못하고, 교인끼리 화목하지 못하고, 나라에 대해서 화목하지 못한다면, 그분에게는 ‘성탄’이 안 된 것입니다.
화목의 결과는 화평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해 가면서 너희들이 화목하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그래서 십자가에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성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20-22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그뿐만 아닙니다. 바울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3:25-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 제물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제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제물이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이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대신해서 희생의 제물로 하나님 앞에 바쳐졌는데, 무슨 제물인가 하면 ‘화목 제물’입니다. 죄악된 만인간, 각자 나 때문에 화목 제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아직도 마음이 강퍅하고 사악하고, 이해심·양보심이 없고, 오기가 있고, 중상모략하기 좋아하면 되겠습니까? 남이 ‘그분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물어볼 때 정확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좋게 말해 주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그분이 진급도 할 수 있고 잘될 수 있잖아요? ‘그걸 알아서 뭐해? 그저 그래’ 하면서 도리어 깎아내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 때문에 화목 제물로 오셨습니다. ‘네가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화목의 복을 받아야 되겠다. 내가 너 때문에 하나님 앞에 화목 제물로서 죽는다.’ 이 뜻을 알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해야죠. 교회마다 가정마다 거리마다 아름답게 트리 장식, 밤에 네온사인 번쩍번쩍하게 꾸민다고 해서 주님이 거기 계십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만 번 탄생하시면 뭐합니까? 각자 내 마음속에, 마음의 구유에 탄생하셔야죠. 세상에서 높은 대통령이 100번 찾아오면 뭐합니까? 주민이 쳐다보지 않으면, 인사 안 하면 오나마나 한 것 아니겠습니까?
찬송 하나를 불러도,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부를 때에, 주시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정말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뜻을 알고 부르면서 하나님을 높이고 최선을 다해 영광 돌리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참성탄이 되는 것이죠! 떳떳하면 남한테 왜 굽실거리고 허리를 구부리겠습니까? 강도, 살인자가 신문에 나 보세요. 그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들이 낯을 들고 바깥에 나갈 수 있습니까? 이사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6천여 년간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굽히시면서, 잘못된 자식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눈물로 세월을 지내신 것이 신구약성경의 내용입니다.
로마서 3:25을 볼 때, 바울은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라고 말씀했습니다. ‘간과’는 ‘볼 간’(看), ‘넘을 과’(過)자입니다. ‘대충 보아 넘기고 빠뜨리는 것’입니다. 깊이 관찰하지 않고 예사로 보고 내버려뒀다는 뜻입니다. ‘내 자식은 틀림없이 착실하고 학교 잘 가고 공부 잘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자식이 잘못된 거예요.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고 이 땅을 감찰하신 결과, 전부 다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지은 후로 오늘날까지, 타락한 이후로 이 시간까지 하나님께서는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굽히시면서, 완전히 천국에 올 때까지는 마음 놓으실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뜻을 알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해야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성탄의 목적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가 인간과의 화해를 성취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 자신이 화해의 직분을 맡아서 가는 곳마다 화해시키는 것입니다. 불화, 분쟁, ‘네 편, 내 편’이 아니에요. 오늘 주시는 말씀을 잘 깨닫고, 각 교회, 기관마다 ‘끼리끼리’ 하지 마세요. 남선교회면 남선교회 전체가 하나! 장로회면 장로회 전체가 하나! ‘끼리끼리’ 하면 큰일 나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그거 못 하게 하러 오신 것입니다. 화해입니다.
그다음 셋째는,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죠? 죄에 대한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해서 받아 가지고 깨달아서, 하나님 앞에 와서 제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사 59:16). 가만 내버려두니까 자기 멋대로 살고,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손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고, 마음은 하나님의 세계를 다 잊어버리고 땅만 추구하고 사는 인간들(롬 3:10-18)에게 소망이 없잖아요? 그러니 누구 하나 중재자로 나서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스스로 중재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무엇을 사야 되는데 갑자기 다른 지방으로 가서 그 동네 물정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복덕방 간판 보면 얼마나 반갑습니까? 복덕방에 있는 중재자같이,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시다 못해 당신을 비워 가지고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말이죠. 이 땅에 내보내신 분이 하나님이고, 보냄을 받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중보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배신한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자신이 허리를 굽히시고 친히 사랑의 음성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요 3:16)는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그날이 ‘성탄’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중심 메시지는 ‘화해’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입니다. 사람끼리의 화해입니다. 가정과 사회와 인류 전체에 미쳐야 될 것이 화해입니다. 욥기 22:21에서는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한 복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만복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화해의 계절입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화해가 있습니까? 자식으로서 겉으로만 부모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뜨겁게 효도하고 순종하면서, 중간에 어떠한 막이 없는, 갈등이 없는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친척 사이에, 이웃 사이에, 그리고 교회와 교회, 나라와 나라 사이에 화해를 이루는 계절입니다.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히셨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셨다’는 뜻입니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대통령 출마하면서 ‘나는 보통 사람’이라고 한 그 말이, 음식 볼 때 구미를 돋우듯이 참 구미를 돋게 합니다. 나라의 통치자이지만, 정치할 때에 마음가짐은 권력 없고 아무 힘 없는 밑바닥 백성과 똑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보통 사람, 죄악된 인간과 똑같이 오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예수님을 내어 주셨다고 했습니다(롬 4:25). 그래서 요한일서 2:2에는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4:10을 볼 때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을 보내시되 낮춰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를 보냈는데 잘 대접하지 않으면 ‘이놈아, 그분이 누구 아들인지 알아? 어떻게 그렇게 대할 수가 있어?’ 그럽니다. 대접을 잘 못 받은 사람이 부모님한테 이릅니다. 직장 상사한테 이릅니다. 들어보니 보낸 사람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전화 걸어서 ‘아니, 내가 당신한테 잘해 달라고 보냈더니 보통 사람같이 그렇게 대접할 수가 있습니까? 내 낯이 뭐가 됩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우리보다도 못하게 보내시지 않았습니까?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보기도 그렇고, 청계천 무허가 건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허가로 건축하는데 대낮에 제대로 지을 수가 있습니까? 밤에 짓다 보니, 못도 막 박고, 아침에 해 뜨고 가서 보니 집이 형편없습니다. 예수님 모습이 그렇습니다. 딱 봐서 좀 풍채가 있어야 될 텐데,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요만큼도 없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 나시기 7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그러한 예언을 했습니다.
이사야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렇게 하나님이 보통 사람같이 되셔서 허리를 굽실굽실하면서 오셨는데, 우리가 금년 성탄만큼은 ‘아이고, 나 때문에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고 찾아오셨구나!’ 하고 깨달아야겠습니다. 죄지은 아들을 권면할 때 어머니가 눈물 흘리면서 손을 붙잡고 ‘제발 나 좀 살려 다오’ 합니다. 아들이 살려 달라고 해야 될 텐데 어머니가 닭똥 같은,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가야, 제발 내가 숨 좀 쉬고, 허리 펴고 살게 해 다오. 어쩌려고 이렇게 됐니…’. 그러한 걸 생각하면 이 말씀을 이해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롬 8:32). 바로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거지 모양으로, 알아보려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내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사야 53:5-6 말씀 볼 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채찍을 수백 군데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양손 양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사람들이 가시관을 씌우고, 주먹다짐으로 얼굴을 치고, 어떤 녀석은 가래침을 탁 뱉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허리를 굽히고 오신 예수님이 가만히 대접만 받고 계셔도 시원찮을 텐데, 저와 여러분 때문에 모진 매를 맞고 가시관, 가래침, 주먹다짐, 발길질을 당하셨습니다. 나라 전체가 달라붙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그것 때문에 주님이 성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고대광실(高臺廣室) 높은 집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나라 전체의 존경을 받는 분들인데, 장차 역적으로 몰려서 처참하게 죽을 것을 안다면 부모님 앞에 순종 안 할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아버님이 처참하게 죽을 텐데…’ 하면서 부모님의 얼굴을 쳐다보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가는 곳마다 핍박과 환난과 조소와 비난과 매 맞음과 소란이고, 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짧은 생애를 사셨습니다.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예수야. 앞집에 대문이 허물어졌단다. 떼어서 가져오너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목수의 아들이니 부친이 대문 가져오라면 가져오고 문짝 가져오라면 가져오고, 30년 동안 그 일을 하시다가 3년 공생애 동안 인류의 죄를 위해서 가는 곳마다 멸시, 천대를 받고, 이단이니 삼단이니 죽일 놈이니 하는 수모를 받으셨습니다. 누구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고생하셨는지,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기 전에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살아 봐야 70-80년입니다. 한 번 났다가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인데(히 9:27), 여러분의 영혼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 육신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주의 부활이 각자 내 부활 아닙니까? 영육 간 완전히 부활해서 장차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령한 우주인입니다. 세상 우주인은 산소마스크 쓰고, 엉덩이에 대변 볼 것도 차고, 물도 차고 가지만, 예수님께서 영육 간 부활해서 하늘나라 가실 때에 뭐 뒤집어쓰고 올라가셨습니까? 초인간적입니다.
마태복음 20:28을 보면 주님 오신 목적, 성탄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만인간에게 대접받고 높임받고,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갈 1:4-5).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희생의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 속에 계시다가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셔서 40일 계시다가 올라가셨는데, 우리 때문에 허리 한 번 펴지 못하셨습니다. 아들이 죄를 지어 보세요. 부모님이 편히 살겠습니까? 두문불출이에요! 예수님이 그렇게 사시다 가셨습니다. 마귀가 어떤 장로, 어떤 권사, 어떤 집사가 죄지었다고 고발합니다. 그러면 부모 되시는 하나님이 가만 계십니까? 허리를 굽히시고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지구 8만 리 땅덩어리에 사는 인간들 가운데 우리 성도들은 이 해가 가기 전에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에 허리 펴지 못하시는 하나님도 모르고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집에 상 차려 놨으니 오세요. 선물 받으세요’ 그러한 것 백날 해보세요. 하더라도 알고 하자는 겁니다. 12월 25일 됐다고 ‘금년에는 무슨 선물 줄 거야?’ 그럴 때는 ‘주긴 뭘 줘?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셨는데…. 허리를 굽히신 하나님이 선물이야’ 하시기 바랍니다. 뜻을 알면 가슴이 뜨끔하죠. 부모는 허리 펴지 못하고 있는데 자식들은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애걔, 겨우 샴푸 하나가 선물이야?’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보다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죠. 허리를 펴지 못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입이 억만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중재자를 찾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허리를 굽히신 것은 ‘중재자, 중보자가 있나 없나 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는데, 땅에서 4천 년 동안 소식이 없습니다. 가정에서 네 살, 다섯 살 먹은 아이가 조용하면 문제 있는 것입니다. 애들은 뭘 깨뜨리든가, 라디오·시계 같은 것을 뜯든가 그러죠. 하여튼 건넌방이고 안방이고 마당에서 복작거리고 좀 떠들어야 별일 없는 거예요. 일하다 보니 갑자기 조용합니다. 그러면 무슨 사고 난 거예요. 옛날에는 아이가 우물에 빠지거나 빨래 삶는 솥에 빠지고 그러한 일이 좀 많았습니까?
인간이 죄를 지은 지 4천 년 됐는데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일하시다가 이 땅을 보시는데,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보시는 거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 중보자가 있나 보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중재자, 중보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허리를 굽히기까지 하면서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이사야 59:16-19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이사야 63: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디모데에게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라고 하였습니다(딤전 2:5).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데, 복덕방 중재자와 같이 중보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천상천하에 한 분밖에 없는데, 바로 예수님입니다.
갈라디아서 3:19-20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성도 여러분, 중보자는 사람 편만 위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 편만 위한 것도 아니고, 양쪽 다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세상 중매쟁이는 거짓말을 좀 잘 합니까? 사실대로 잘 말해 주지 않습니다. 제가 목사님들이나 전도사님들한테 결혼 중매하지 말라고 엄명(嚴命)을 내렸습니다. 내용을 다 알면 소신껏 중매하되, 남의 말만 듣고 하지 말라고 말이죠.
예수님은 하나님 편만도 아니고, 사람 편만도 아니고,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세상 중매쟁이나 중개자들은 다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푼도 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사실대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천하에 용서 못 할 죄인이지만, 제가 이분을 위해서 희생의 제물, 속죄 제물, 화목 제물이 되겠습니다’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면 당장 죽여야 마땅하지만, 예수님을 보실 때 ‘예수가 이 아이까지 책임지고 있구나. 알았다’ 하시고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십니다. 그런데 땀 흘리고 애쓰고 금식하면서 무릎이 상하도록, 목구멍이 마르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마지막에 누굴 모셔 오느냐?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잖아요? 내가 그냥 기도하면 ‘오만 가지 죄를 짓고 와서 낯짝도 좋다’ 하시다가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을 들어서 기도할 때 ‘알았다, 오바’ 하고선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죄를 다 사해 주시고, 소원대로 성취되는 응답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8:6에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이십니다. 중보 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나에 대해서 이러하다고 말씀해 주실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알았다. 그러면 이렇게 하라’ 하는 언질(言質)을 받는 것입니다. 언약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 좋은 언약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날이 성탄절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9: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새 언약의 중보로,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친히 하늘 보좌 영광을 버리고 중매쟁이로서, 중보자로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중보자는 결혼 중매만 해 주면 끝납니다. 그 부부가 싸우든지 이혼하든지 잘 살든지 상관없습니다. 소개될 때까지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잘 말해 주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책임지고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천국 갈 때까지, 아니 천국 가서도 세세무궁토록 그 중보자는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요한복음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해 바다 들이치는 험난한 땅 위에서, 여러분 때문에 평생 허리를 굽히고 굽실대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 사람 어때?’ 하고 물어보면 ‘나 잘 몰라’ 그러한 인간들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 누가 물어보면 ‘걔 죄 없어. 내 안에서 사람 됐으니 당신 맘대로 데려다 써’ 하고 말씀해 주십니다. 잘될 때까지 허리 펴지 못하고 굽히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만인간들이 다 주를 믿어서 구원받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보살피고 도와주고 여러분 편이 되셔서 가정에 평안과 평강과 화목과 사랑이 넘치기까지 돌봐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성탄절은 진정한 성탄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 교회에 오시되 제 마음의 구유에 한 번 성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에는 뭣도 모르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양하고 ‘임마누엘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 성탄 축하 예배를 드렸지만, 금년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면서, 누구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히고 그렇게 눈물로 세월을 지내시고, 지금도 마음을 졸이면서 기다리고 계신가 하는 것을 깨닫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리는 자 하나도 없도록 성령님께서 강하게 저희들을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금번 성탄절은 육신적으로 어떤 물질을 소모하면서 남한테 뽐내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허리를 굽히신 하나님 앞에 맨발로 달려 나가서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받고 칭찬받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1990년 12월 23일 주일 3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1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