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 주소서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 주소서
시편 119:133, 139:1-5
여주 평강제일연수원에서 열린 두 해째 하계대성회인 2008년 하계대성회 마지막 날(7.31.목)
새벽예배에서 휘선 박윤식 목사님이 선포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위대한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이 시간, 이 장소, 이 모임에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묻고 계십니다. 정직하게 답변해야 합니다. “너 정말 은혜받기 위해서 만사를 다 뒤로 미루고 왔느냐?” “첫날부터 이 시간까지 마음 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돼 있느냐?”. 예를 들어 말하면 안방, 건넌방, 현관문, 마루, 뒤뜰, 앞마당 다 청소하고, 대문 열어 문 앞까지 깨끗이 했는지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돌아가면 저는 한 이틀 허전합니다. 그리심 산에서 마무리기도 드리고 가야 하니 오늘 못 올라가죠. 연수원을 한 바퀴 돌면서 ‘여기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하나도 없구나.’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묻고 계십니다. 올 때 마음가짐, 와서의 마음가짐, 지금 마음가짐이 어떠냐고 말입니다. 세상에서도 문화인은 머물렀던 자리가 깨끗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산(聖山)입니다.
원래 가나안 땅은 저주받은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하셨습니다. “7족속을 때려 부숴 주겠다. 네가 차지하라.” 그때부터 가나안은 거룩한 성지, 언약의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써 언약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왔든지, 말씀 듣는 것도 시원치 않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상하고 흐트러지고 집중이 안 되고, 하나님 말씀보다 권사, 집사끼리 사람의 말만 무성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보고 듣는 가운데 은혜받은 것이 있겠죠. 집회 끝나면 짐 싸서 집에 가는 데만 바쁘지 말고, “하나님, 내 발걸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내 발걸음을 말씀에 붙들어 매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이 땅에서 100년 삽니까? 다 떠날 사람들입니다. 나그네입니다. 떠나기 전에 이 땅에서 열매를 거둬야죠. 우리 시대와 후대에 오늘의 이 모임이 반드시 증거될 수밖에 없는 그때가 옵니다. 우리는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몇 사람이 모였는지를 다 기억하십니다. 우리는 그냥 ‘많이 모였다.’고만 하죠. 하나님의 별의 숫자를 아시고 각각의 이름을 다 아신다고 했습니다. 제가 쓴 구속사 시리즈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 음성 들은 대로 쓴 것입니다.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것을 저는 체험했습니다. 성경은 그림의 떡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제가 지리산에서 기도할 때 원고지가 떨어지면 가랑잎에 적어 놓았죠. 일주일 동안 응달에 놓아두면 그대로 있습니다. 바람에 날아갈까 봐 싸리나무를 올려놓고, 그렇게 정리해서 지금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노아가 간 이후 4,400년, 모세 간 후로 3,500년,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씀이 구속사 시리즈 「창세기의 족보」와 「잊어버렸던 만남」으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부모가 자식들에게 일일이 얘기는 안 하지만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비지땀 흘려가며 모아놓았다가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주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여주 연수원을 공사한 것입니다. 내 키의 두 배 되는 골짜기를 메웠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골반 있는 데가 빠져서 걸을 때마다 종아리 힘줄이 당깁니다. 제 성격이 전화로 보고받지 못합니다. 반드시 시키면 직접 가서 확인합니다. 지하 420미터 우물을 팠죠. 하루 350톤의 물이 나옵니다. 맑은 물, 생수는 색이 파랗습니다. 흰 그릇에 물을 담으면 푸르스름합니다. 우리가 지금 그 물을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한 국회의원이 와서 보고는 “대통령도, 대기업 회장도 못 먹는 물입니다. 원로목사님이 교인들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는지 이것만 봐도 알겠습니다. 건강하게 생수를 마시게 해서 일상생활에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우물을 판 것 아닙니까.” 하더랍니다. 앞으로는 물 전쟁입니다. 곳곳에 땅에 비닐이 묻혀서 썩고 있는데, 이곳은 주변에 동네가 없어서 썩는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와 후대에 증거 될 이 모임, 얼마나 복된 자리입니까. 말씀 끝난 뒤 일어서서 가는 발걸음을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붙잡아 주십니다. 내 발을 굳게! 흐트러짐 없이! 집중적으로! 목적을 향해서! 마음과 생각과 몸과 발걸음이 하나가 돼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하나님의 아들딸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 주소서
본문인 시편 119:133에 나의 행보, 즉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달라고 했죠. 공동번역에는 “당신의 약속의 힘을 얻어 꿋꿋이 걷게 하시고 악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로 번역돼 있습니다. 발걸음! 집을 나설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나의 발걸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복 받는 발걸음이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나간 사람 있습니까. 1분도 안 걸립니다. 그런데 안 한 것 아닙니까. 사업한다, 친구 만난다, 동업한다고 하면서 분주하지만 모두 헛다리입니다. 왜? 이런 기도를 안 하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감언이설로 속여서 돈 떼어먹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집을 나서기 전, 악인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내 발이 헛다리 짚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데 안 한 것 아닙니까. 기도한 대로 이뤄지는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믿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매사가 진땀만 나는 생활입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년, 2년 지나며 늙죠. 이팔청춘 때와 다릅니다. 자기 늙는 줄만 알지 자식 크는 줄도 모릅니다.
자기 가는 길, 향하는 방향! 인생관, 역사관을 뜻합니다. 주의 말씀에 자기 향방(向方)을 정립시켜야 합니다. 사람은 날 때부터 갈 때까지 늘 걷고 있습니다. 집에서 잘 때도, 사무실에서 쉴 때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자기 향방을 정립시키고 주께 부탁하는 시편 기자를 보세요. “오늘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주소서.” 이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주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 자신,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어둠이 아닙니다. 태양 빛보다 몇천 배, 몇만 배 밝은 빛이에요. 빛 가운데 걸어가면 실수가 없죠.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근심, 걱정이 없고, 자신만만하고, 이미 영원한 천국의 보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고
(요 8:12) “빛이 세상에 있는 동안 빛을 믿으라.”(요 9:5) 하시고,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여주에 왔습니까. 직장 상사 눈치 보면서 휴가 얻고, 가정도 부지런히 정리하고, ‘내가 올 때까지 좀 봐줘.’ 하고 친구, 친척에게 부탁해 가면서 왜 왔습니까. 주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신·구약의 원작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요 17:17). 진리는 불순한 것 하나 낀 게 없습니다. 아주 깨끗합니다. 잡탕이 없습니다. 정결합니다. 먹었다 하면 꿀맛이고,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이 말씀을 깨닫게 되면 시원합니다. 모든 생활이 유쾌합니다. 사도행전 3:19에 “회개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유쾌, 상쾌, 통쾌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외칠 때 “회개하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옛날 의인과 역대 선지, 사도들은 이 진리 하나 때문에 택함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주에 오신 여러분도 이 진리를 증거할 사명이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감사와 사명이 있어야만 그 나라 갈 때까지 전도하는 것이죠. 전도 안 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심(心)혼(魂)골수(骨髓)를 찔러 쪼갭니다(히 4:12). 내가 산 하나님을 믿고, 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운동력이 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시편 119편 전체의 물 흐르는 듯한 흐름을 보세요. 한결같은 사상이 주의 말씀, 주의 법, 주의 율례, 주의 계명, 주의 증거, 주의 규례, 주의 입의 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딤후 3:16).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신 것은 ‘나의 나 된, 스스로 계시는 전지(全知) 전능(全能)의 말씀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가라사대’ 하시니, 여러분을 통해서 말씀의 시작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멍’하고, 졸고,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여러분을 데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말씀의 시작을 하시겠습니까. 가장 불쌍한 사람이죠. 껍데기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이고 4-5대째 믿고, 교회 생활을 몇십 년 했다지만 하나님의 시작이 없으면 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품속에 있던 말씀입니다(요 1:18). 하나님 품속에 있던 독생(獨生) 성자(聖子)가 나타나신 그분이 바로 말씀입니다. 그분이 시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언제 시작하겠습니까. ‘글쎄, 조금만 준비하고 슬슬 사업을 시작해야지.’ 이것이 세상 사람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의 시작은 예수님입니다. ‘내가 예수님께 기도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시작해야지.’ 하고 답해야죠. 듣는 사람이 ‘이 사람은 예수밖에 몰라.’ 하고 비웃으면 ‘예수밖에 몰라야 사업이 되는 거야, 이 사람아!’.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신약 말씀을 보세요. “예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시작하겠다고 하시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 말씀이 시작입니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아이 낳는 것도 다 하나님이 시작하셔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잊지 마세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과 생명이라.”(요 6:63) 하셨죠. 영과 생명을 감싸고 있는 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의 보자기를 풀면 영과 생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안 받을 수 있습니까. 죽지 않고 사는 영, 죽지 않고 사는 생명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와 약속하신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영생입니다(요일 2:25).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이걸로 끝입니다. 다 된 것입니다. 이것 하나를 얻으려고 지금 우리가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앞뒤로 봐도, 옆으로 봐도, 거꾸로 봐도 말씀 자체입니다. 불순한 것, 세상 것이 끼려야 낄 수가 없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로 계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는 태초부터 계시는 말씀, ‘로고스’입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말씀이 육신 되어 이 땅에 오셨죠.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내가 너의 구주다.” 하십니다. 말씀이 눈에 보입니까. 납작한지, 뚱뚱한지, 긴지 짧은지 안 보이죠. 그래서 말씀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만약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시지 않았다면 믿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말씀이 육신 돼서 오신 분이 말씀 자체, 생명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오는 자는 영원히 산다. 나는 생명이라.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하셨죠(요 8:51 이하).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여러분의 모든 생활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말씀이 모든 생활의 주인이 되고, 모든 생활에서 그분을 안방에 모시듯 말씀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말씀을 듣고 싶어도 말씀을 듣지 못할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암 8:11).
주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고향입니다.
이제 이지(理智)와 이성(理性)이 있다면 ‘하나님 말씀 믿어라.’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이 나의 고향입니다.’ 하고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향은 친척과 친구가 있고, 부모님이 계시고, 자기 조상이 묻힌 곳이죠. 이제 어린아이 같은 신앙에서 벗어나 앞을 내다보세요. 말씀을 고향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은 다 뜨내기입니다. 모두 나그네입니다. 땅에서 맺으면 하늘에서 맺고, 땅에서 풀리면 하늘에서 풀립니다. 이 땅에서 말씀을 고향으로 삼는 사람은 하늘나라가 고향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고향으로 삼지 않는 것은 큰 문제죠. 인생이 말씀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말씀이 고향입니다.
말씀이 고향인 사람이 말씀 듣지 않고, 주일예배 드리지 않고, 수요예배 드리지 않고, 모이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 돼서 교만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고향이 없죠. 객지에서 객사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지 않고, 믿지 않았다면 ‘내 고향을 잊어버렸구나.’ 깨닫는 차원 높은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영원한 본향(本鄕), 즉 고향 중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불순종한 죄 때문에 고향을 잊어버렸습니다. 말씀을 잊어버렸죠. 그때 말씀하시는 예수께서 고향을 잊어버린 인생들을 살리기 위해 말씀이 육신 되어 이 땅에 찾아오신 것입니다(요 1:14). 그분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보이는 세계에서는 가난하기 짝이 없고, 목수의 아들입니다. 천대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알려주러 오신 분이죠. “나는 길이요.”(요 14:6) 하셨습니다. 길은 어디로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셔서 오신 것입니다.
인류의 첫 어머니가 하와죠. 하와의 고향이 어디입니까. 아담입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뒤 갈비뼈를 하나 빼서 살로 채우시고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여자의 고향은 남자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사모함으로 살게 돼 있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부부 간에 이러니저러니 다퉈도 남편이 있어야죠. 아담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상하신 허리에서, 양손 양발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그 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모하지 않습니까. 아담이 사모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아담을 사모합니다. 그걸 들키게 되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그 말씀에서 인생이 나왔습니다(신 8:3, 마 4:4, 눅 4:4, 요 6:49-51). 오늘 본문인 시편 119:133은 고향을 찾아 울부짖는 소리입니다. ‘타향살이’ 노래에 고향 잃은 처지를 ‘부평(개구리밥) 같은 내 신세’라고 했죠, 성경의 모든 의인과 신앙가, 선지자들의 발걸음이 바로 고향을 향해서 가는 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다 잊어버린 채 굼벵이처럼 땅만 알고 살던 존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고향 찾아가는 길이 바로 성경의 기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향(思鄕)의 노래가 시편 137편에 나오죠. 고향이 생각나서 부르는 노래! 무수한 순례자들이 고향을 찾아가는 귀향길! 해방 되자 우리 동포들이 일본에서 귀국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 부산으로 향하는 노래가 ‘귀국선’입니다. 귀향길이죠. 아벨은 이 고향, 즉 말씀을 찾다가 형 가인에게 들에서 처참하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성경 이면의 뜻을 찾아야죠. 좌우에 누가 있나 없나 보고 돌을 들어 아우의 머리를 쳐서 죽였죠. 올바른 고향 얘기를 하다가 죽었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은 9대손 라멕과 56년간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편집자 주 : 연대 계산은 구속사 시리즈 제1권「창세기의 족보」(도서 출판 휘선, 박윤식 저) 참조) 아담이 9대손까지 보면서 에덴동산에서의 실패를 자손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9대 가운데 7대손 에녹만이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창 5:22-23). 에녹이 죽지 않은 이유를 히브리서 11:5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는 것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롬 10:17).
여러분이 여기 왜 오셨습니까? 정답은 ‘고향 가기 위해서’입니다. 고향 갈 때 그냥 갑니까. 가방도 사고 선물도 사서 짐을 싼 뒤에 낑낑대면서 버스를 타든지 기차를 타든지 해서 가죠. 그간의 ‘잊어버렸던 만남’을 찾아 고향 가는 길인데 빈털터리, 맨손으로 갑니까. 고향 가서 빈 가방 풀어놓아 보세요. ‘고향 싫다고 타향 가더니 알거지 됐냐? 무슨 낯짝으로 고향 돌아왔냐?’ 할 것 아닙니까. 아이든 어른이든 비싸지 않지만 선물 하나씩은 드려야 할 것 아닙니까. 빛들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빛의 열매’입니다(약 1:17, 고전 3:12-15). 마지막 구원 받기 위해 고향길 가는데 볏짚, 풀, 나무 조각 같은 것 가지고 가면 누가 환영합니까. 불에 집어넣으면 다 타죠. 보석은 불에 집어넣어도 타지 않습니다. ‘너희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 얻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고전 3:15).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고향을 찾아갔던 사람들
에녹은 300년 동안이나 그의 걸음을 허탄한데 옮기지 않고 고향 찾는 데만 열중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보실 때 속이 상했습니다. 죄로 썩어 악취가 났습니다(창 6장). 그러나 에녹만은 아담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나님이 죽일래야 죽일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괴로우실 때 에녹만 보면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래도 고향을 찾는 참된 말씀의 종자(種子)가 하나 있구나.’ 에녹은 고향 찾는 데만 재미를 붙이고, 고향 찾는 데만 다 쏟아 부은 사람입니다. 부인이 쫑알대고 아이들이 속 썩여도 ‘우리는 좀 있으면 영원한 고향에 갈 사람들이다. 아담 할아버지 얘기 잘 들어.’ 했습니다. 300년 동안 자녀를 낳았는데 그들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향 찾는 데 다 투자하고, 정신을 다 쏟고, 깨가 쏟아지도록 재미를 붙인 것이 바로 에녹의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 즉 말씀을 들었죠.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 아닙니까. 믿음을 얼마나 칭찬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백부장에게 “내가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 만나보지 못했다.” 하셨죠. 가나안 여인에게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라.” 하셨습니다. 믿음을 칭찬받은 어머니의 소원대로 그 딸이 흉악한 귀신 들린 데서 고침 받은 것입니다. 고향 찾는데 앞장서는 평강교회 전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 고향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주의 말씀을 고향 삼았습니다. 100년 안 되는 기간 동안 하루같이 방주를 만들었죠. 수십 년 전 만든 부분이 썩어 들어갑니다. 다시 새것으로 바꿉니다. 사람들이 “정신 빠진 노아야, 비 온다고 한 지 몇십 년 됐는데 날이 청청하게 맑다. 우리는 가족끼리 놀러 가는데 바보같이 산에 올라가서 부인, 며느리, 아들 셋 고생시켜? 비 온다고 거기까지 찰까? 정신 차리게!” 하고 조소하고 비난했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장사하고 집 짓고 파는 데만 몰두하던 그들은 마침내 비가 쏟아져 홍수가 나서 콧구멍, 목구멍에 물이 들어갈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끝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역대 선지자와 의인들이 듣지 못하고 사모하다가 죽었지만 너희는 말씀을 들었으니 복 받았다.”고 하셨습니다(마 13:16-17). 그러나 제자들은 반응이 없었습니다. 당장 입에 들어오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내가 땅의 일을 말해도 깨닫지 못하는데 하늘의 일을 말하면 믿겠느냐.” 탄식하셨겠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 걸음을 말씀에 붙였습니다. 75세에 말씀을 따라서 떠났습니다(창 12:4). 말씀의 걸음입니다. 평생 나그네로 살았지만, 진정한 본향을 찾아가는 삶이었습니다(히 11:13-14). 시루떡 찌면 냄새가 무럭무럭 나죠. 갈비를 무 넣고 푹푹 삶으면 냄새가 얼마나 좋습니까. 눈을 감고 콧구멍이 벌렁벌렁하면서 ‘아 좋다, 한 그릇 먹으면 좋겠다.’ 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냄새’에 콧구멍이 벌렁벌렁할 정도로 쫓아간 삶이었습니다. 175년 평생을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전쟁 나면 싸울 수 있는 남자만 60만 3,550명, 여자, 아이들과 믿지 못하는 중다(衆多)한 이방 사람들까지 하면 2백만 명이 넘었습니다. 모두 모세의 말씀을 따라갔죠. 그러나 그 길이 진정한 고향 찾는 길인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고향이고 뭐고, 남의 집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도 주인이 먹다 남은 고기는 먹었는데 여기는 눈만 뜨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바람과 먼지만 부는 사막을 걸으니 못 살겠다.’고 불평했죠. 오직 여호수아, 갈렙만이 고향 찾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나머지는 가르쳐도 고향 냄새를 맡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마지막에 모두 무덤이 됐죠. 세렛 시내를 건너기 전에 하나님이 내려가셔서 자는 사이에 다 죽이셨습니다. 집집마다 초상집이었습니다. 수십만 명 장례식을 치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천막 친 장소가 다 공동묘지였습니다. 그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고향은 이런 곳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고향 찾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고향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픔이 없고 늙음이 없고 굶주림이 없고 목마름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요만한 다이아몬드, 진주만 있어도 어디 다녀와도 마음이 거기 가 있고, 한번 끼어 보면서 좋아하죠. 옆 사람 보라고 손가락을 은근히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제일 흔한 게 금입니다. 모든 것이 진주, 보석입니다. 열두 가지 보석이 빛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기록돼 있죠. 어디 한군데에 다이아몬드를 끼는 게 아니라, 온몸이 다이아몬드입니다. 천사가 우리 심부름꾼이죠. 여기서 미국 가려면 최소한 하루 걸리지만 그 나라에서는 순간입니다. 생각하면 이미 가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1장, 10장 볼 때 그룹의 모습이 나오죠. ‘휙휙’ 순간 이동합니다. 그런 세계입니다. 이 땅의 꽃은 ‘아이고 좋다.’ 해도 1분만 쳐다보면 싫증 납니다. 그 나라에서는 시시각각으로 변화됩니다. 싫증이 안 나죠. 먹지 않으니, 화장실도 없고, 냄새가 안 나고, 목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빛 가운데 사는데 그런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영원한 세계입니다.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닙니다. 바보 같은 사람들은 ‘먹지 않으면 얼마나 심심하냐.’고 합니다. 먹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음식이 들어가면 내장들이 ‘또 죽었구나. 우리 주인은 먹는 것밖에 모르는구나. 소화도 안 되는 고기만 좋아하는구나.’ 합니다. 그 나라는 그게 없습니다.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게 이뤄집니다. 이 땅에서는 햇빛, 달빛에 상함이 있지만 거기는 없습니다. 가족끼리 3일만 금식해 보세요. 할 일이 없습니다. 집안이 깨끗합니다. 사람의 입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이 땅에서는 100세 되면 다 쪼글쪼글해지죠. 뼈만 남고 광대뼈, 엉덩이 골반이 튀어나와 흉하죠. 피부가 다 말라붙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에는 만약에 100살에 죽은 사람이 있다면 어린애와 같다고 이사야 65:20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도 믿지 못하니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린애가 얼마나 예쁩니까.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런 고향을 찾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이 고향이구나!’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아침부터 성경 읽지 않았다면 ‘고향을 잊어버렸구나!’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셨고, 바위를 쪼개 생수가 나게 하셨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니 동풍을 명하셔서 메추리를 사방에서 몰아오셨습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했죠. 이스라엘은 주의 말씀에서 떠날 때마다 갈라졌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애굽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고랑을 차고, 머슴살이, 종살이를 하고, 매 맞았습니다. 그러나 정신 차려서 회개하고 참 고향인 말씀을 찾았을 때는 번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말씀이 참 고향이다. 아담도 거기서 나왔고, 인류의 시작이 말씀에서 나왔다. 잊어버렸던 고향을 찾아서 가야겠다.’ 하는 각오와 결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주를 떠날 때 무거운 마음은 믿음으로 내던지고, “하나님! 내 발걸음을 내 고향 되는 말씀에 묶어 주시고, 이제 어디 가든지 내 고향 찾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저녁으로 사업의 어려움, 가족 간의 다툼, 자식 문제 때문에 뛰쳐나오고 싶죠. 그러나 딴 데 가야 별 볼 일 없습니다. 우리의 본향, 말씀과 함께 걸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다 같이 하세요. “말씀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이번에 여주 와서 한 끼 3천 원씩 밥 사 먹고, 그 밖에도 먹을 게 많으니 돈 많이 썼죠. 집에 가면 열흘 동안 생활비 없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감사하세요. ‘열흘 아니라 한 달 생활비가 없더라도 내가 고향을 찾았으니 너무너무 값어치 있다.’ 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을 잊어버리고,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다 타향살이입니다. 고향을 떠나 눈칫밥 먹고 서러운 생활을 해왔습니다. 말씀이 인생의 영원한 참 고향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말씀을 떠날 때 타향살이입니다. 사랑하시는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여. 우리의 육신의 고향도 그립지만, 영육간 죽지 않고 사는 영원한 본향, 영혼의 고향을 찾아 다 은혜받고 여주를 떠나는 모든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스라엘의 위인과 선지자들이 말씀 운동, 곧 고향 운동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모든 날 마지막에 그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요한복음 14:9에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봤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30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참 고향, 예수 한 분만 붙잡으면 예수와 아버지가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도 영원하신 살아계시는 아버지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가 돼서, 여주 연수원을 떠나서 은혜 생활에 푹 빠지고, 늘 감격, 감사하고 날마다 고향에서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집에 내려가서 한 사람도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성령님의 뜨거운 말씀의 역사로 모든 난(難)문제를 해결시켜 주시옵소서. 고향 찾는데 그 나라 갈 때까지 열중하고 힘을 쏟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앞세우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부간에도 참 고향, 자식들도 참 고향 찾는 데 마음들이 하나가 돼서, 늘 감사하고 즐겁고 기쁘고 은혜 가운데서 떠나지 않는 우리 평강교회 전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감사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8.7.31.(목) 하계대성회 새벽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