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제일교회  ›  평강미디어  ›  평강라이프  ›  참평안
참평안

성경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 – 마태복음 5:17-20

2024.04.18 14:57

성경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
마태복음 5:17-20

1. 들어가는 말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은 2020년 기준 약 40억부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나 많은 성경을 구입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읽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인류 최고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또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하여 읽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39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믿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성경을 올바로 읽어서 영생을 얻을 것인가’ 하는문제로 귀결됩니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의 후예인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쓰신 책’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그 목적이 분명한 책이기 때문에 오직 한 가지 해석만이 존재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기 위하여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성경은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 이유는 각자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표면적인 문자만을 읽었지 그 이면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저자이신 아버지의 마음을 빼고 죽은 문자만을 읽으면 성경이 올바로 해석될 리 없습니다.


2. 구속사의 등장 배경

성경은 모세, 솔로몬, 요한, 바울 등의 손을 빌어 하나님께서 쓰신 책입니다. 즉 이 저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을 통하여 각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의 제1 저자’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모세나 바울 같은 사람들은 ‘제2 저자’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제2 저자들을 부르시고 또 그들을 통하여 구약 39권, 신약 27권 모두 66권의 책을 쓰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 각 권에 담긴 메시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경 66권 전체에 흐르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 즉 ‘타락한 아담의 후예인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성경 전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성경 각 권의 이해에 초점을 맞춘 ‘공시적 관점’보다 성경 66권 전체의 이해에 초점을 맞춘 ‘통시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본격적으로 시도한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통시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대표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구속사 운동인데, 이 운동이 나타나기 전 기독교 상황은 참으로 암울하였습니다. 18-19세기 계몽주의와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이후 하나님의 존재는 무시되거나 부정되었으며 따라서 교회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유럽의 기독교는 성경을 인류 문화 유산으로 보는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와 함께 초토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던 교회들도 마치 사사 시대처럼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성경을 해석하였고 이에 따라 수많은 교단이 새로 생겨나거나 사라지기도 하였습니다.

성경을 본격적으로 구속사의 관점에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성경을 66권 각 권으로 나누어 각 권에 담긴 메시지 파악, 즉 주석 연구 위주로 신학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성경에 대한 접근 방식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가 인류에게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해 줄 것이라는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1차,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전에 보지 못하던 엄청난 파괴와 살상을 겪으면서 인간의 이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부정적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그동안 부정적으로 보던 신앙에 대한 평가도 다시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20세기 후반 ‘구속사라는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새로운 성경 해석 운동’입니다.


3. 구속사 운동의 출발점

이 구속사 운동의 출발점은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성경의 제1 저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성경 해석은 제2 저자들의 특성과 당대의 시대적 특징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성경 전체에 통일되고 일관된 해석을 주기 어려웠고 오히려 자유주의 신학이 기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습니다. 구속사 연구는 이런 부분적 해석의 한계를 벗어나 성경 전체에서 통일된 주제, 일관된 흐름을 찾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는 성경을 주로 ‘각 시대를 따로 구분하는 공시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왔다면, 앞으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 전체의 흐름을 보는 통시적 관점’에서도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구속사 연구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라면 당연히 성경 전체는 ‘하나의 중심 주제와 흐름을 가진 저술’이어야 합니다. 즉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라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의 흐름, 하나의 주제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흐름과 주제를 찾는 것이 바로 구속사 연구의 목표입니다. 이런 연구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그동안 자유주의 신학에 압도되어 갈 바를 모르고 있던 20세기 복음주의 신학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신학자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새롭게 등장한 구속사 운동은 20세기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복음주의를 크게 부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연구 결과로 언약, 성전, 절기, 제사, 율법과 은혜, 에덴과 새 예루살렘 성, 왕 같은 제사장, 새 하늘과 새 땅 등등 지금은 우리 귀에 매우 익숙한 개념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고, 이런 개념들이 지금도 구속사의 주요 주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4. 구속사의 연구 현황

그동안 구속사에 관련된 수많은 논문과 책들이 발간되었지만, 막상 구속사 연구의 뚜껑을 열고 보니까 구속사 연구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이 곧 드러났습니다. 성경 해석의 원칙이라는 이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이상 가는 해석 원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제1 저자로 보고 성경 전체에서 하나의 일관된 주제와 흐름을 찾아내는 것은 실로 어려운 작업입니다. 구속사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환호하고 기대하였던 만큼의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자, 21세기 들어서면서 학자들의 연구 의지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학자들이 ‘하나님을 성경의 제1 저자로 보는 구속사의 대원칙’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연구를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나온 것이 바로 박 아브라함 목사님이 저술한 구속사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사그라져 가던 구속사 연구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세계 최초로 그동안 어느 학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족보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구속 역사를 전개시켜 왔는지 매우 독창적으로 설명하여 주고 있는 구속사 연구의 걸작입니다. 구속사 연구에 새로운 한 획을 긋는 이 시리즈의 가치를 알고 있는 우리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크고 귀한 다이아몬드 원석을 정성을 다해 가공하듯이 이 시리즈를 더욱 발전시켜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보급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5. 구속사 연구의 핵심 과제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의 핵심은 바로 <성경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즉 요즘 유행어로 성경의 “찐(眞)”저자이신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게 성경 전체에 또 성경 구석구석에 반영되어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 구속사 연구의 핵심입니다. 박 아브라함 목사님이 저술하신 구속사 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족보를 구분하여 나열한 것이 아니라 족보 속에 담겨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 바로 구속사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학문적 업적입니다. 성경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찾아내지 못하면 영생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읽게 되면 어떤 모습을 갖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면, 바리새인들은 BC 1446년 모세 율법언약 이후 약 1,500여 년에 걸쳐 진행되어 온 율법 해석을 집대성한 ‘이스라엘 율법 해석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유대교도 바리새인들이 집대성한 율법 해석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율법 해석은 완전한 실패작이었습니다.

그동안 축적되어 온 율법 해석을 집대성한 바리새인들의 구전 율법은 율법의 표면적 의미만 읽었지 문자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였기 때문에 율법의 올바른 해석에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율법 해석에 따라 외식하는 위선적인 삶을 살아온 바리새인들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하는 저주를 받았던 것입니다. 즉 율법을 아버지의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왜곡하여 해석하고 실천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친 바리새인들에게는 영생의 축복이 허락될 수 없음을 예수님께서 일곱 번이나 반복하여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6. 율법 : 선물인가? 짐인가?

그렇다면 구속사에서 율법이 갖고 있는 의미가 중요해집니다.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율법시대는 이스라엘의 종말과 함께 그 운명을 다 한것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율법과는 완전히 구별된 새로운 복음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또 천국에서는 율법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까? 박 아브라함 목사님께서 쓰신 구속사 시리즈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속사 시리즈 제7권 『영원한 만대의 언약 십계명』 216페이지는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전체의 강령인 십계명을 알지 못하면 기독교 복음의 진수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십계명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영생의 본질이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골 1:27, 2:2)를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 즉 ‘예수님의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반증하여 주고 있는 예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살아 생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없었으면 기독교도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바울은 제자들 중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바울이 율법 전문가인 바리새인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5-6 또 갈라디아서 1:14 말씀처럼 동년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율법에 열심이었던 바울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주목하자마자 즉시 바리새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유대교와 다른 것으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의 근본 정신 즉 ‘율법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낸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율법의 성격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즉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 제사장 나라로서 언약 관계를 맺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까?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약의 올무에 묶어 두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가혹한 짐’입니까? 이에 대한 답에 따라 율법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율법을 실천하였을 것이고, 짐이라고 생각하였다면 무겁고 괴로운 마음으로 실천하였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꼭 져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율법 해석을‘율법을 주신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라 ‘율법이라는 짐을 진 자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믿었던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율법 해석을 근거로 ‘율법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 경계를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기중심적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율법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완전히 무시하였고, 또 자신들은 ‘율법의 짐을 잘 지고 있다’는 교만한 마음 즉 “율법에 흠이 없는 자”라는 자기 확신 속에 율법을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위선적 도구로 전락시켰던 것입니다.

잘 알려진 구절이지만 마가복음 7:11에 ‘고르반’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모님에게 드려야 할 음식이나 옷 등을 ‘고르반’ 즉 하나님에게 대신 드렸다고 말하면 더 이상 부모를 공궤하지 않아도 된다는 바리새인들의 율법 해석입니다. 그러나 고르반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낸 유전으로, 인간이 만든 유전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더 우선시되는 결과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계명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결코 예수님의 칭찬을 기대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5:7-9에서 이사야 29:13 말씀을 인용하여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은 2,000년 전에만 일어난 것 아니라,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또 아무리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며 산다고 해도, 그 해석이 ‘성경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똑같은 저주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성경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이 성경 공부의 알파와 오메가 즉 시작과 끝임을 알아야 합니다.


7. ‘성경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읽는 법

성경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좋은 예가 바로 마태복음 5:21-48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소위 <여섯 개의 반제>라 불리는 구절인데 예수님은 여기에서 여섯 개의 율법을 예로 들어 어떻게 율법을 해석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 하지 말라”는 것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하면 이미 죄를 범한 것이니라>라는 형식으로 여섯 개의 샘플 율법에 담긴 올바른 의미 즉 아버지의 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이 기존의 율법 해석을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주장입니다.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치고 있었던 율법 해석의 핵심을 예수님이 다시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섯 개의 반제>라는 제목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제(反題; anti-thesis)라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주장’이라는 뜻인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반대가 아니라 해석을 완전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1) 제1 반제 : 살인하지 말라 vs 미워하지 말라(마 5:21-26)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살인이라는 죄에 얽매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살인을 유발하는 분노를 없앰으로 말미암아 살인으로 대표되는 싸움과 대립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아버지께서 주신 계명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아버지가 율법을 주신 원래의 목적인데, 젖먹이 신앙에 머물러 있는 바리새인들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십계명엔 살인하지 말라고 문자적으로 쓰여 있지만, 아버지의 마음엔 분노가 있으면 이미 살인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살인을 막으려면 그 원인인 분노까지 없애라는 것이 이 계명을 주신 아버지의 참 된 마음입니다.

2) 제2 반제 : 간음하지 말라 vs 음욕을 품지말라(마 5:27-32)

‘간음을 하지 말라’라는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음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속에 음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음욕이 없다면 간음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음욕을 품고 있으면 이미 간음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회만 되면 언제든 간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지 마음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음욕 자체를 없애 간음은 물론 음욕으로 인해 벌어지는 온갖 추문들까지 다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제3 반제 : 이혼 증서(마 5:31-32)

모세는 이혼할 경우 이혼 증서를 써 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그 아내와 또 그 아내와 혼인하는 남자를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하나님이 이혼을 인정하지 않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도 간음한 것이 되며, 또 본인도 하나님으로부터 이혼을 인정받지 못한 다른 여인과 혼인함으로써 똑같이 간음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한번 짝지어 주신 것은 영원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4) 제4 반제 :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라 vs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마 5:33-37)

우리 인간은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맹세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한 짓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에만 “예 / 아니오” 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율법을 어기지 않기 위하여 편법으로 하늘이나 성전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습니다. 이는 율법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무시한 것으로 아버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5) ‌ 제5 반제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vs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 5:38-42)

악한 자에게 맞서 대적하지 않는 것도 아버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도 주라는 것입니다. 즉 비록 악인이라 하더라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거절을 하지 말고 베풀라는 것이 이 계명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해야 악인들과 이 땅에 함께 살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 생활을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아버지가 주신 지혜인 것입니다.

6) 제6 반제: 이웃을 사랑하라 vs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마 5:43-48)

제일 유명한 마지막 반제를 보면, 자기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도 사랑합니다. 누구나 자신을 아껴 주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알지만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며 그 이유는 원수도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하여는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아 이방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이러한 마음까지 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 때 열방들이 모여드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상에서 이 여섯 가지 예를 종합해 보면, 결국 율법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 즉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약과 구약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똑같은 마음’이 담긴 ‘똑같은 복음’입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읽는 것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새 언약’은 출애굽기 13:9나 신명기 6:8-9 말씀처럼 손목, 미간, 문설주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새길 것이라고 예레미야 31:31-34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짐으로 여긴 바리새인들은 표면적 문자만 지키려고 노력하였지 율법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율법을 통하여 아버지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드러내었고 또 마치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것처럼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듯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분량까지 장성해야 하는데, 오히려 어린 애처럼 자신의 의만 내세우는 위선적인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불완전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시대를 초월하여 조금도 오류가 없는 완벽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속사 시리즈 제7권 『영원한 만대의 언약 십계명』 206페이지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만고불변의 명령이요 영원한 효력을 지니는 법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만민을 위하여 선포하신 삶의 근본적인 명령으로서 영원히 폐하여 질 수 없는 만대의 명령입니다.” 즉 잠시 어느 시대나 혹은 잠시 어느 곳에서 통용되다가 마는 법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절대 불변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의 일점일획이 천지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아버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완전한 율법을 종교 지도자라는 바리새인들이 자의적인 해석을 통하여 불완전한 율법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율법의 표면적 의미와 자신들의 이익에 얽매여 해석되고 있는 율법을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율법 본래의 의미로 고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율법 중에는 폐하여진 율법들도 있습니다. 할례법, 안식일법, 음식법, 제사법 등이 그것인데 이 율법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핵심인 도덕법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잘못된 율법 해석을 완전하게 하러 오셨으며 율법은 여전히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의의 내용’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31은 “믿음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8. 결론

비교 종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예수님이 종교 역사상 최초로 종교를 제사 중심의 외형주의에서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 내면주의로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 구속사 시리즈 제7권 영원한 만대의 언약 십계명』 222페이지도 “예수님이 율법을 마음의 영역으로 확대하고 또 확장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 조문이 발전되어 마음의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본 것처럼 처음부터 아버지가 의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울타리’를 만들어 외형적인 율법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율법을 마음으로 발전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즉 젖먹이 신앙에서 장성한 신앙으로 자라지 못하고 ‘영적 미숙아’ 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율법을 해석하고 실천해야 그것이 진정한 순종이고 또 아버지가 약속하신 영생의 축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율법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살펴보았지만 구속사의 다른 주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되면 우리도 아버지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즉 자식이 부모를 닮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이듯이(요 10:30) 우리도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과 구속사 시리즈를 공부하면서 성경 구절구절마다 담겨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발견하고 그래서 늘 아버지와 동행하는 또 약속하신 영생의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글_류 아모스 목사

원문 보기 ›

댓글 0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글쓰기
번호 제목 작성일
2970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9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8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7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6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65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64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3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2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1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0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59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58 마라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엘림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 구속사 세미나 참관기(1) 2026.09.22
2957 누구라도 쉬기 원하는 시간, 고된 봉사를 자원한 평강의 어른들 남선교회 ‘오직봉사팀’ 토요 봉사 체험기 2026.09.22
2956 추석에 관한 잔소리, 금(金)소리 2026.09.22
2955 The Rules for Spiritual Leaders – 1 Corinthians 4:1-2; Romans 15:1-2 2026.09.22
2954 Foreword 2026.09.22
2953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2026.09.01
2952 ‘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자’ 2026 하계 대성회 2026.09.01
2951 성막 화첩의 인기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 구속사 시리즈 제9권 영문판·일어판 출판 감사예배 2026.09.01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