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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없는 역사(느헤미야 6:1-9)

2024.05.13 18:01

정지 없는 역사
느헤미야 6:1-9

제가 서울에 와서 처음에 만났던 분들에게 첫 메시지로 느헤미야 2장 18절 말씀과 이사야 60장 1절 말씀으로 “이제 주저앉지 말고 이제 일어나 세우자”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은혜와 축복이 임하고 성도는 쉬지 않는 힘찬 기도로, 4~5명 모이던 교회가 지금은 3,500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로 불어났지만 앞으로 3천 7백만(당시 기준) 동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의 삶을 전달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은 바사 왕 아닥사스다 시대입니다. 느혜미야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이 임재하시는, 만백성이 복을 받는 거룩한 성전이 짓밟힘 당하고 불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할례
받은 구속의 성도들이, 언약의 성도들이 적군에 의해 고통당하고,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피눈물로 가슴을 치고 자기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면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주님이여,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응답을 받고 용기백배 희망을 갖고 바사 왕에게 요청합니다. “저를 예루살렘에 보내 줄 수 없습니까?”

바사 왕의 허락을 받아 느혜미야는 하나님께 성을 쌓기 위하여 출발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 성과 성전이 무너진 것을 건축해야 될 텐데 물자가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인력이 있습니까?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나 같은 것이 이런 걸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주저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불가능’이라고 하는 불신앙이 없습니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믿음의 주가 되시는 주님께서는 믿음의 역사로 말미암아 입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온 세계를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느혜미야는 백성들이 보든 안 보든 골방에 들어가서 나라와 민족을 이끌기 위해서 기도하는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느 2:12)”, 응답을 받았죠. 느헤미야 선지자는 백성들 앞에서 느헤미야 2장 18절 말씀대로“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 선지자의 그 말씀을 믿고 “일어나 건축하자”고 호응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소문이 나고, ‘우리 가운데 위대한 선지자가 나타났다’고들 했습니다. 느헤미야 선지자의 말을 믿고 백성들이 따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 중에 악도들이 등장합니다. 이 악도들이 작당해서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를 헐뜯고 방해합니다. 그 종자들의 이름이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느혜미야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주야로 보초병을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성을 쌓을 때에, 허물어진 성전을 지을 때에 적군이 처들어올지 모르니 보초를 세우라는 거죠. 또 호위병을 두라고 지시하십니다. 그들이 지도자 느헤미야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두 번째 계시는 ‘백성의 절반은 무장을 시키고 절반은 일하게 하라’는 거죠. 절반은 완전무장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화살을 가지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입으로 성전을 지은 게 아닙니다. 평화스러울 때 지은 게 아닙니다. 적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벽돌을 나르면서도 그 생각만큼은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사상. 완전무장으로 방패와 활을 가지고 지켰습니다. 일하는 사람도 단칼을 차게 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일하다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을 대비하라는 거죠. 여러분, 진짜 그런 칼은 아니더라도 마음에 의의 경계가 되는 신령한 칼을 차고 있습니까?

또 주야로 옷을 벗지 말고 그냥 자게 했습니다. 신발을 신은 채로, 옷을 벗지 말고 그냥 자라는 겁니다. 이렇게 어려움들을 이기면서 허물어졌던 성을 완성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그러자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편지를 써서 느헤미야에게 보냅니다. ‘오노’라고 하는 평지로 불러냅니다. 죽이려 한 거죠. 그러나 만사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느헤미야 아닙니까. 축복받은 자의 복이 여기 있는 겁니다. 생명의 길 아닙니까. 하나님도 바로 응답하셨죠. 무전도 그런 무전이 어디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느헤미야 6: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오노’라는 곳은 아주 경치가 좋은 고관대작들의 휴양지입니다. ‘수고가 많으니 만찬을 베풀겠다’고 제안했을 터이니 느헤미야도 덮어놓고 안가겠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내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큰 역사를 하는데 이를 중지하고 어떻게 가겠느냐?’ 오늘 설교 제목 ‘정지 없는 역사’가 여기서 나옵니다.

네 번을 살살 꾀었는데도 오지 않으니 나중에는 왕에게 모략 조서를 씁니다.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스마야라고 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꾀어 가짜 선지자 노릇을 하게 합니다. ‘계시가왔는데 일하던 것을 중지하고 성전에 숨어 계시오’ 예배당에 숨어 있으라는 겁니다.

선지자라고 하는 바람에 느헤미야도 사람인지라 마음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스마야라고 하는 선지자가 제게 와서 계시의 말씀이라 하는데, 하나님 왜 저더러 성전에 숨으라 하셨습니까?’ 기도했겠죠.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느 6:12)고 결론 내립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로 하나님의 사람은 굳건한 신앙의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했던 것입니다.

 

 


1. 정지 없는 역사로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여야 됩니다

정지 없는 역사로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말씀의 기초 위에 세운 교회가 되어야만 세속화되지않고,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저와 여러분들이 참 성도다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내가 먼저 성도다운 성도가 되어야 할 텐데 말씀 앞에 비춰볼 때에, 하나님의 영원한 빛 가운데 비춰볼 때에 사실 캄캄한 어둠일 뿐입니다.

생명이 있는 회개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이 맘 편안하게 할 일 다 하고 나머지 자투리 시간 가지고 와서 ‘하나님 안녕하십니까? 나 이제 왔습니다’ 하는 식으로 입으로만 찾는 기도로는 안됩니다. 정성을 다한 생명 있는 회개, 철두철미한 회개가 있어야 힘있는 기도가 가능하고 성도 간에 화목, 화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교회가 구원의 바퀴를 달고 3천 7백만(당시 기준) 심령을 향해 나아가 영생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했습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교회가 됐습니까? 기껏해야 내 새끼, 내 아내, 내 남편 아닙니까? 친척 오는 것도 귀찮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사람 집에 사람 오는 거 싫어하는 사람들, 인맥 끊어지면 자기 생명이 단축되는 겁니다. 남을 미워하게 되면, 누군가의 생명과 내 생명이 통하지 않을 때는 내 생명이 단축됩니다. 민족이 요구할 때, 나라가 요구할 때 응답자가 될 수 있는 생명 있는 산 말씀의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교회 일을 생활 위에 두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위치에 두어야 합니다. 나의 하고자 하는 일보다 더 위에.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이 하는 일이 만사형통의 축복을 가져오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큰 건축 역사에 있어 말할 수 없는 많은 적의 음모와 계략, 방해 공작이 있었지만 느헤미야 선지자는 오로지 하나님과 나, 나라와 민족, 철두철미한 신앙의 의지를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옛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용기백배 의지와 신앙, 신념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의 깊은 잠에서 깨어납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감싸면서 헐뜯지 말고, 감싸줄 줄 아는 성도가 됩시다. 하늘 영광 보좌 버리시고 낮고 천한 땅에 오셔서 억조창생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죄와 허물로 영원히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죄 없다 하시고 당신이 대신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에 처참하게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받았다면 여러분들이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헐뜯고, 누구를 도외시하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3천 7백만(당시 기준) 동포를 한데 감쌀 줄 아는 넓은 마당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일치단결하여 정지 없는 역사에 동참합시다. 하나님의 뜻은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깨닫기를 축원하고 축원합니다.


2. 정지 없는 역사는 성도와 함께 가는 길(생명의 길)입니다

성도의 특징은 같은 성도를 정중히 대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같은 교회 다니면서 서로 미워하고 눈을 흘기면 성도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인생은 동료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동료! 예수 믿는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십자가 피로 죄사함 받았다고 하는 기독 신자의 세계가 얼마나 강한 동료 의식으로 묶여져야 하겠는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가까이 가까이 되게, 형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기독신자가 아닙니다.

로마서 16장 17-18절 말씀, 맞습니다. 같은 교인을 비방하고 교역자를 험담하거든 그는 모의자라고 성경은 말씀했고 일찍이 사도요한은 요한 일서 3장 15절에 무서운 선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이고 생명이 그 속에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 미워하지 않은 분들 있습니까?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이는 사람,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고서는 교회에 나와 ‘주여, 주여’하고, 나라 민족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다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옛날 다윗 왕 보세요. 다윗 왕이 가만 보니 미워하는 자가 쓰러집니다. 잘 될 것 같이 흥왕하지만 마지막에 비참하게 죽는 걸 다윗 왕이 봤어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시편 16편 3절에 무슨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까?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땅에 있는 모든 성도는 뭐 버릴 게 없다는 겁니다. 다 값지고 귀합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이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 다 머물러 있죠? 내가 가난한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하나님 뜻을 미워하는 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미워하게 되면 내가 죄 받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사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저 예수 믿다가 죽어 천당 간다면, 목사들은 전부 천당 가겠습니까? 그 천국은 죽어 천국이 아니라 살아서 천국 생활을 해야 우리가 축복받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시고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불만을 품고 다니시는 분은 없습니까? 불만을 품고 다니는 사람의 가슴 속에 절대 주의 은혜가, 축복이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얼마만큼 노력하고, 힘을 썼는가. 같은 환경과 여건이 주어질지라도 맡은 자에 따라서 그 환경은 현저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주어진 현실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생명의 길이 항상 열려 있기에, 우리 성도들은 정지 없는 역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정지 없는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정지 없는 역사는 모든 현실에서 불평없이 살아가는 신앙의 길입니다

모든 현실에서 불평 없이 살아가는 신앙의 길, 어떤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자의 길은 언제나 형통하고 거기 생명의 축복이 쏟아집니다. 거기에 나라가 잘 사는 것이 눈 앞에 보이기 때문에 불평이 없는 것입니다. 다윗 왕의 깊은 한마디 말씀 시편 16장 3절 읽었지만 10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불평불만 하는 자의 마음은 썩지만, 다윗 왕은 부활의 아침을 내다봤습니다. 예수님 탄생 천 년 전에, 천 년 후에 이루어질 부활의 아침을 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9절~24절에는 우리가 썩지 아니할 영생의 말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불평합니까? 왜 마음이 썩어 있습니까? 교회가 썩은 것은 거기에 부활의 아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서지 못하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썩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는 개인의 양심은 썩지 아니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지 없는 믿음을 가지고 이 나라와 겨레와 민족을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와 여러분들이 진군할 때 충성을 다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생명의 길이 열려 있고 정지 없는 역사가 우리를 부릅니다.

생명의 길이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입니다. 여러분들, 창세기 5장 24절이나 히브리서 11장 5절 말씀 볼 때 아담의 7대손이 에녹인데 그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는 가운데 죽지 않고 살아서 올라갔다고 했으니 여러분들 하나님이 같이 하심을 믿습니까? 말할 때마다 식사 할 때마다 일 할 때마다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고 있습니까? 그래야만 불평이 없습니다. 왜 나만 시키지? 여기 나밖에 없나? 그러한 분 안 계십니까? 성도 여러분, 정지없는 역사 속에 참여합시다. 정지 없는 사람은,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이런 신앙인의 길에는 패배와 실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영원한 예수의 부활을 지니고 살아갈 때에 여러분들은 서거나 주저앉지 않고 주의 명령에 따라, 대한민국의 절대 명령을 따라 정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올립시다. 나라를 볼 때 심히 암담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무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마음 답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어찌하오리까. 이 나라 이 민족을 주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살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오늘 처지만 생각한 것입니다. 3천 7백만 동포가 다 살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불평불만 없이 사는 저희들 만들어 주시옵소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희들 만들어 주시옵소서. 주님이여 오늘날 복되고 거룩한 주일날에 귀한 말씀 주신 거 진실로 감사합니다. 받은 바 말씀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저희 심령 속에서 30배, 60배, 100배 결실할 수 있는 역사하심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라 민족 앞에, 하나님의 나라 앞에 정지 없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 받들어 감사기도 하옵나이다. 믿습니다. 아멘.

 

1979년 11월 4일 주일 2부 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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