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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행복한 가정과 참 부부 (마태복음 19:3-12, 에베소서 5:22-33)

2024.06.11 17:02

주 안에서 행복한 가정과 참 부부
마태복음 19:3-12, 에베소서 5:22-33

가정의 달은 1년 365일 날마다입니다. 가정은 작은 천국이므로 가정을 사랑해야 되겠죠. 그러나 예수 믿는 직분 가진 분들도 저한테 찾아와서 못살겠다고 이혼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목사가 성도들이 와서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생활고로, 자녀들 문제로 이혼하겠다고 할 때 그렇게 하라고 하겠습니까. 교회는 관계를 도로 붙여 주면 붙여 줬지 이혼하라는 말 안합니다. 요사이 서너 건 가슴 아픈 일이 있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가정, 패밀리는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신 여러 사회 제도의 하나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복되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조그만 조직 같지만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큰 일이 되겠습니다. 부
부를 중심으로, 가족이 생기고 ‘가계 제도’가 만들어지죠.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가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계 제도라고 말을 붙여보겠습니다. 참으로 가정은 허물이 없고, 허물이 있다 해도 가려
주고 덮어 주고, 위로해 주고, 소망적인 말씀을 나누는 곳입니다. 또한 가정에는 비밀이 없죠. 비밀이 있다면 가짜입니다. 원칙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비밀이 있다면 벌써 거기에 죄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은 가정을 통해서 태어나 존재하게 됩니다. 또 가정을 중심으로 일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가정으로부터 생명과 사랑과 양육과 보호를 받고, 또 공급을 받습니다. 가정의 핵은 부부입니다. 부부 떠난 가정은 있을 수가 없죠. 가정의 핵은 부부인데 권력이 있어도, 큰 돈을 벌어놓았다 해도 부부 사이가 갈라지면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소용이 없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 이하를 볼 것 같으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질서 관계를 창조했다고 정확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결혼해서 부부가 한 몸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역행하는 거예요. 그 죄 면치 못합니다. 가정은 화목해야 합니다. 밝아야 합니다. 태양빛보다 더 밝아야죠. 왜 그런가.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이거든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지금 태양빛의 7배입니다. 2,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사 30:26) 말씀하셨죠. 가정의 부부 사이는 그렇게 밝아야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두 사람이 한몸을 이루었기 때문에 아무런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부지간에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창세기 2장 25절에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세상 말로 하면 부부는 촌수가 없죠. 부모와 나는 1촌이고, 형제와 나는 2촌이지만 부부는 촌수가 없습니다. 보이는 세계에서는 떨어져 있지만 뜻으로 볼 때는 언제나 하나예요. 하나님 말씀으로 볼 때, 성령님이 에베소 교회에 하신 말씀을 볼 때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졌죠. 창세기 2장 17절에 엄숙하게 명령했습니다. 동산 안에 모든 과일을 마음대로, 임의로 따먹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반드시, 틀림없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밝은 사랑인데, 죄가 들어옴으로 다 가리워요. 남편 잘못한 거 아내한테 말합니까? 아내가 잘못한 거 남편한테 말할 사람 누가 있어요? 이 죄가 들어와서 다 속이는 겁니다. 

제가 목사여서 그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빠진 부부는 가짜입니다. 다 이해 타산이죠. 아담이 죄 지은 다음에 창세기 3장 7-10절 볼 때 벌써 벗은 줄을 알고 부끄럽기 때문에 해가 바싹 뜨면 며칠 못가 말라 꼬드라질 무화과 이파리 가지고 치마 해입은 거 보세요. 또 나무 사이에 숨은거 아닙니까. 

아담 하와야 너 벌거벗고 있을 때 누가 너한테 말하더냐? 부끄러움이 없었거든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옷처럼 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로마서 3장 23절에 기록돼 있잖아요. 복락원이 인류의 시조 아담 하와가 따먹지 말라는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실낙원이 됐습니다. 예수님 오신 목적은 잊어버린 낙원을 회복시켜 주는 겁니다. 가정은 가리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주고자 예수님이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신 겁니다.

저나 여러분들이나 부끄럽기 때문에 옷 입는 거지. 천국에 무슨 옷이 있습니까?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천국에서는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다 썩은 새끼줄같이 다 끊어지고 없어진다 했습니다. 영광의 옷입니다.


주 안에서 행복한 가정과 부부는 어떠한 가정이고 부부인가? 

오늘 본문 마태복음 19장은 고난주간 셋째날 화요일의 일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께 와서 골탕 먹이려 했죠. ‘네가 알아야 얼만큼 아느냐?는 식이었죠. 성경 말씀 볼 때 시험한 겁니다. 남자가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죄입니까, 죄 아닙니까? 옳은 것입니까. 옳지 않습니까? 고난주간의 화요일이 변론의 날 아닙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예수님은 기진맥진하셨죠. 종교 지도자들이 얼나 교묘하게 예수를 구렁텅이에 집어넣고 죽이려고 모의했습니까.

마태복음 19장 3절이나 마가복음 10장 2절에 “시험하여 가로되”,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는 악한 궤계입니다. 일찌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신명기 24장 1-4절 말씀을 그대로 하려나, 하고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신명기 24:1-4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2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 4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지니라

마태복음 19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19장 5절에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고 하셨죠. 본래! 창세기 2장 24절에 본래 한 몸입니다. 한 몸인데 왜 이혼합니까. 그래서 신명기 7장에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지 말고, 믿는 자와 결혼하라 하신 겁니다. 하나님 명령입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에도 혼인을 귀히 여기라. 결혼 전에는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고 했죠. 예레미야 2장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 아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2장 24-25절 볼 때 사람한테 증거 받을 필요도 없고 보고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마태복음 19장 6절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은 본래 사람이 나눌 수 없다. 내가 낳았다고 해서 자식이 내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혼 종용하지 마세요. 그 무서운 죄를 왜 짓습니까? 죄 짓기 전에는 완전한 결합입니다. 마음 가운데 ‘잘 살아봐야겠다.’ 그런 것도 없습니다. 잘 살게 되어 있는데 말이죠. 성경대로, 하나님의 말씀, 믿어야죠.

예수님은 본래. 본래(本來): 밑 본, 올 래, 처음부터 본디, 시작의 기원, 원리, 태초.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할 때 ‘본래’에다가 두십니다. 근본,태초에다가 두고 말씀하는 거죠. 사람은 ‘인간의 말꼬리’에 두고 말합니다. 내가 이 말하면 또 욕먹겠지 하면서 눈치 살살 보면서 말이죠. 예수님께서 본래는 그렇지 않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에게 그런데 어째서 모세는 이혼 증서를 줘서 아내를 내어 버림을 허락했습니까? 따지죠. 그럴 때 예수님의 말씀이, 너희 완악함을 인해서! 마음이 다 썩어 문드러지고, 부패했어.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해서 하나님께서 임시로 허락했다. 본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 앞에 가면 영원한 세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잘 믿어야죠. 엉터리로 믿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믿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사랑한다고 할 때 목숨바쳐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 볼 때, 모세는 이혼의 악습을 제거하려고 이혼 증서를 줬죠. 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혼 안하면 때리고 심지어 죽이까지 하죠. 이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독사 같은 마음, 완악하기 짝이 없죠. 그래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혼 증서를 써 주라고 한 것입니다. 본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잖습니까. 마태복음 5장 31-32절이나 이사야 50장 1절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명한 적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이사야 5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 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모세가 시대적인 조치로 허용했지만, 완악함 때문에. 본래는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지 않았다면 이혼이 없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완악하다. 헬라어 원어를 찾아 봤습니다. ‘스클레로 카르디아’ 우선 ‘굽힐 줄 모르는 강퍅함. 말라붙은 마음’ 이해라는 것은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아주 완고하고 거칠고, 딱딱한, 마음에 가시밭 길이 있어 만지기만 해도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찌르는 겁니다. 두 번째 계속적인 불순종으로 인한 무감각. 문둥병처럼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데 아픈 줄 모릅니다. 무감각, 그러니 불순종하는 겁니다. 내 것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그러느냐는 식이죠. 

유대 사회에서는, 모세 때는 여자는 인격체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종처럼 취급받았죠. 그러나 갈비를 빼내고 살을 채웠죠.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담한테 주었습니다. 아담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창세기 2장 23-24절 말씀이 거짓말입니까? 

도끼로 자기 갈비뼈 찍어보세요, 자기 발을 찍든가. 아내를 때리는 게 그런 겁니다. 왜 때립니까? 이혼을 못하게 하면 아내를 쥐어 패고 때리고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죽이고 암매장 합니다. 모세가 보니 너무 여자가 불쌍합니다. 그래서 이혼 증서를 써 줘서 이혼하라. 모세는 백성들의 완악함 때문에 유린당하는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한적으로 이혼하라고 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올가미로 예수를 공격합니다. 예수께서는 ‘본래는 그렇지 않다. 본래는’. 하십니다.

결혼할 때 잘 하세요. 잠언서에 그랬죠. 좋은 것이라고 하고 샀어도 살펴보면 흠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날 양을 삽니다. 사서 바로 잡는 게 아니라 나흘 동안 우리에 가둬 놓고 조사합니다. 발부터 버짐이 있나, 어디 상했나, 다 조사합니다. 나흘 조사 끝난 다음에 잡는 겁니다. 결혼 할 때 잘 살피세요.

마태복음 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예수께서는 언제나 궁극적 목적은 본래. 사람을 판단할 때도 본래입니다. 본래. 본래에 두었습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사건의 해결점을 본래에 두셨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끌려온 여자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 1-11절 사건입니다. 수백 명이 돌을 양손에 들었습니다. ‘모세는 현장에서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 했는데, 당신은 어떻소?’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예수께서 땅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셨죠. 글을 쓰니‘공부도 안했는데 글을 어떻게 아느냐?’고 했죠. 막 다그칩니다.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예수님이 일어서시고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율법으로 비춰볼 때 죄가 없습니까? 다 걸립니다. 그러니 다 돌을 놓고 슬금슬금 피했습니다. 예수님은 “널 정죄하지 않겠다.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이죠. 사건의, 문제의 해결점을 예수는 언제나 ‘본래’에 두시고, 말씀에 두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은 산상수훈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너희가 들었으나” 형식에 치우쳐 믿는 변질된 당시 지도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시며 ‘본래적인 교훈’을 들려주십니다.


첫째, 살인(마 5:21-22)에 관해서입니다.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 살인 한 거라는 말씀입니다. 살인한 자는 죽여야지? 그러면 너희 마음속에 미움이 없었느냐? 그 미움이 살인죄입니다. 사도 바울도 요한일서 3장 12절 이하에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완악해도 예수님 말씀에 깜짝 놀랬습니다. 

마태복음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둘째, 간음(마 5:27-28)입니다.

마태복음 5:27-28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모세 율법은 빛으로 따지면 촛불, 호롱불입니다. 예수님의 자유 율법은 전깃불이죠. 같은 빛인데 더 밝습니다. 구약 율법 때는 육체 관계로 간음 죄가 성립되지만 예수의 법은, 음욕을 품어도 간음죄를 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이 더 밝습니다. 이게 자유 율법입니다.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셋째, 이혼(마 5:31-32)입니다.

마태복음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저로 간음하게 하는 것이라. 집에 안 들어오고, 생활비 안 주고…. 여자가 뭐라고 말하면 쥐어 팹니다. 죄는 자기가 지어 놓고, 개 패듯이, 왜 때립니까? 그거 간음죄 범한 겁니다. 사랑하는 아내, 정말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입니다. 때리면 안 되는 거예요. 자기를 때리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엡 5:28)이라 했습니다.


넷째, 맹세(마 5:33-34)입니다.

마태복음 5:33-34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에스라 시대, 말라기 시대(주전 450년~주전 400년) 종교 지도자뿐 아니라 전부다 첩이 있었습니다. 첩이 없으면 사람 구실 못할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다보다 못해, 여자의 한 맺힌 거, 여자의 눈물! 여자가 고생한 그 마음, 아픈 마음 교회 제단에 가득하다 그랬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그 계시 받고 깜짝 놀랬어요. 나가서 보니 전부 다 첩이 하나씩 다 있는 겁니다. 말라기 2장 14-15절에 있잖아요. 부인들의 눈물과 한식 탄식이 이 교회 제단에 넘친다고….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인데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해? 14절에 있죠.

말라기 2:13-14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 궤사(詭詐: 속일 궤, 속일 사): 간사스럽고 거짓됨, 교묘한 속임수

우리 기독교는 일부일처, 부부일신이 원칙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 볼 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 여자로 창조하시고 둘이 하나가 되고 한 몸을 이룰지라 그랬어요. 바울은 교회 감독자, 교회 직분 집사 장로 목사의 조건이 뭐냐? 한 아내의 남편! 한 아내의 남편 된 그분을 직분자로 뽑으라(딤전 3:1)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1-2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성경은 남녀 평등에 입각한 일부일처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부일처, 부부일신! 이것이 창조의 기본 질서입니다. 가정 윤리의 기본 강령입니다. 부부는 남이 알지 못하는, 사랑으로 하나가 돼서, 그 사랑은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위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7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신지라.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먹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주신 거, 구원시켜 주신 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가 사랑입니다. 이 교회가 예수의 몸 아닙니까. 예수님은 교회 머리시고 우리는 지체들이고. 창세기 2장 24절에 둘이 합하여! 헬라어 원형은 ‘콜라오’입니다. 뜻은 뭐냐? 목수들이 나무 붙일 때 아교풀 있죠. 딱 붙이면 안 떨어집니다. 부부가 그렇다는 겁니다. 아교풀로 붙인 나무 모양으로 철썩같이 붙어 가지고 안 떨어지는, 이게 참 부부라는 겁니다. 헬라어 원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는 남자 여자가 떨어져 있는 때라도 뜻으로 볼 때는 하나입니다. 남편의 마음이 가정에 있는 아내에게 가 있고, 아내의 마음이 직장 가 있는 남편에게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가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런 즉 둘이 아니요 한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가 없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 창조할 때 아담하고 의논했습니까?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독자적인 작품입니다(막 10:9, 마 19:6). 

고린도전서 7장 10-11절에도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내가 말하지만 내 말이 아니라 주께서 내게 말씀해서 내가 여러분들한테 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했어요. 

명령입니다. 버려도 되고 안 버려도 된다가 아닙니다. 버리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기독교는 이혼이 없어요. 말라기 2장 14절에도 “그는 네 짝이라”고 하셨어요. 네 짝이 여기 있는데, 세계 방방곡곡에 다 돌아다녀도 짝 못 찾는다는 말씀이지요. 성경에는 이혼이라는 것이 없어요. ‘꼴 보기 싫다, 못 산다’ 그럴 때라도 이혼하지 말고 다른 남자 다른 여자에게 가지 말고, 그냥 지내고, 지내다가 시간 지나면 피차에 깨닫게 되고 은혜받게 되고 말씀 받게 되며, 다시 알게 되면, 다시 합할 수 있습니다.

 20여 년 전에 “부부”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가 있습니다. 노량진 교회 시절에 음반을 내주었습니다. 가사 의미 생각하시면서 잘 깨닫길 바랍니다.


<부부>
1절.
정 하나로 살아온 세월 꿈같이 흘러간 지금

당신의 곱던 얼굴 고운 눈매엔 어느새 주름이 늘고
돌아보면 굽이굽이 넘던 고갯길 당신이 내게 있어 등불이었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면서 이 못난 사람 위해 정성을 바친
여보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한 마디뿐이라오.

2절.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당신을 사랑하면서
살아온 지난 날이 행복했어요.
아무런 후회 없어요.
당신 위해 자식 위해 가는 이 길이 여자의 숙명이요 운명인 것을
좋은 일도 궂은 일도 함께하면서 당신의 그림자로 행복합니다.
여보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으로 정신 차리고 우리 평강교회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만세 전부터 나한테 이 남편, 이 부인을 짝지워 주셨다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경외하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큰 믿음 가지고 전도 많이 하시고, 가족부터! 가정이 작은 천국입니다. 하나님 계신 가정, 예수님 계신 가정, 성령님이 계신 가정이
되어서 정말 만족하고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시고, 모든 가족들이 오손도손 앉아서 찬송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또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고 교회 나오는 그런 즐거움이 가정서부터 시작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태복음 19장 말씀을 통해서 잠깐 생각했습니다. 귀한 남편과 귀한 아내, 하나님께서 짝지워주신 거, 감사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내를 위하는 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야고보서 1장 20절에 한 번 성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뜻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명심하고 우리 평강교회 전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신 남편과 아내 그 나라 갈 때까지 뜨겁게 사랑하고 마음 가운데 갈등이라든가 헤어짐이 없이 만족함과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늘 하나로 한몸같이 움직이는 복된 부부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신 말씀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고 명심하고 성령께서 미처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도 깨달을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총명과 명철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8년 4월 6일 주일 2부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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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4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3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2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1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0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59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58 마라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엘림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 구속사 세미나 참관기(1) 2026.09.22
2957 누구라도 쉬기 원하는 시간, 고된 봉사를 자원한 평강의 어른들 남선교회 ‘오직봉사팀’ 토요 봉사 체험기 2026.09.22
2956 추석에 관한 잔소리, 금(金)소리 2026.09.22
2955 The Rules for Spiritual Leaders – 1 Corinthians 4:1-2; Romans 15:1-2 2026.09.22
2954 Foreword 2026.09.22
2953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2026.09.01
2952 ‘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자’ 2026 하계 대성회 2026.09.01
2951 성막 화첩의 인기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 구속사 시리즈 제9권 영문판·일어판 출판 감사예배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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