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요한일서 4:7-21)
하나님의 사랑
요한일서 4:7-21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2007년 10월 26-27일 오전까지, 날수는 이틀이어도 하루밖에 안되죠. 그래도 이 하루가 역사를 바꿔놓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일에, 영생의 복음 말씀에 먼저 부름받았다는 것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4-5대째 믿는 분들 저희 교회에 많이 계십니다. 살림은 구차할지언정 믿음이 전수되어 내려오는 걸 볼 때, ‘참으로 복받은 가정이구나. 하나님이 저 가정을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이 제 마음 가운데 느껴집니다. ‘이 가정을 통해 기적적인 역사, 남이 알지 못하는 영적인 부요(富饒), 나아가 육신적으로도 행복의 열매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가운데 맺어지겠구나.’ 하는 것이 그려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날을 위해 부름받아, ‘나 같은 게 뭔데’ 나를 통해서 잊어버렸던 영혼들을 찾아오는 데 하나님이 이토록 열심을 내실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의 열심이 되고 또 우리의 열심이 하나님께 부딪혀서 ‘과연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내가 안다.’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형제를 사랑합니다. 잊어버렸던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전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잊어버린 우리의 형제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모릅니다. 우주만물 창조된 역사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 따뜻하게 대해 주고, 그분들을 교회로 인도해야지요.
낳자마자 애가 성장합니까?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주고, 병들면 병원 데리고 가고, 다들 곤히 잠을 잘 때 내가 낳은 아들딸 울면 남에게 방해될 까봐 어머니는 애 업고 들어왔다 나갔다 안절부절못하며 기르는 가운데 1년, 2년, 3년, 5년 지납니다. 볼 때마다 영특하고 지혜스럽습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어릴 때 자라나고 노는 과정을 보면 부모님들은 짐작할 수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뜻을 깨닫는다면 전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잊어버렸던 아들딸 찾아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그저 전도일을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2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왜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까. 하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기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밤에 기도 안 할 수가 없어요. 당신의 잊어버린 아들딸, 우리 형제가 있답니다. 잊어버린 영혼 찾아오는 데 게으르지 않고, ‘내가 일을 하겠다.’ 하면 하나님의 열심이 내 마음에 생수같이 쏟아나고, 폭포수같이 부어 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와서 사랑으로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도 없고, 높이와 깊이와 넓이가 한이 없습니다. 동서남북 어디가도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고, 느끼고 숨쉬게 됩니다. 우주 만물, 해와 달과 별, 모든 지구 속 만물들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한테 준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숨을 쉬고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온전히 이룬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런 분들은 심판 날에 추호도 손톱만큼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어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의 먼저 사랑입니다.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가면서. 로마서 5장 8절에도 내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가면서 내가 너를 사랑했다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죄 없는 분을 죄 있는 모양으로 사람을 만들어 보낸 것 입니다. 인류의 죄를 둘도 없는 성자, 아들 예수에게 몽땅 뒤집어 씌웠습니다. ‘너는 골고다언덕 십자가에서 죽어야 된다.’ 십자가 죽음으로 예수 속 보배로운 피가 인류를 살리는 죄를 씻어낸 것입니다. 원죄, 유전죄, 자범죄(自犯罪)까지.
인류 시조 아담이 지은 죄가 원죄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조상,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유전죄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부모의 죄가 3-4대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나서 알게 모르게 지은 자범죄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죄가 단번에 씻겨 나갔습니다. 지저분하고 더럽게 때묻은 옷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세제와 함께 돌리기만 하면, 내가 언제 더러웠더냐, 언제 지저분했더냐는 듯 깨끗한 옷이 나오잖아요. 우리를 그렇게 만드신 겁니다.
경치가 좋다 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숨쉬고, 먹고 마시고 사는 것 감사하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해 광야에서 불평한 것입니다. ‘만나 밖에 없다.’고 불평했죠? 만나는 종합영양제입니다. 아침에 나가면 사방 백리, 허옇게 이슬과 함께 내리는데 보리알같이 동글동글합니다. 진주알 같다고 했습니다. 절구에 찧기도 하고 맷돌에 갈기도 하고 삶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하지만, 만나 속에는 온갖 영양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고기 안먹어도 만나 속에 고기가 있고, 야채가 다 있고 비타민 A부터 Z까지 다 있는 겁니다.
그리고 바위에서 솟은 생수가 못이 되고 시내를 이루고 강같이 되었습니다. 이뿐입니까? 하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성경 말씀 볼때 40년 동안 반석에서 생수가 난 것은 두 번뿐입니다. 안개같은 이슬, 수분을 사막에 뿌려서 사람도 짐승도 목마르지 않게 축축하게 다 해주신 겁니다. 그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40년 동안 구멍나지 않는 신발이 어디 있습니까. 단벌 신사입니다. 옷이 해어지지 않았습니다. 때가 안묻은 겁니다. 40년 동안 걸었습니다. 그때 무슨 달구지가 있습니까. 광야의 모래밭, 황무지를 걷는데 발이 부르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신발바닥부터 옷까지, 40년 동안 실과 바늘이 필요 없습니다. 찢어지지 않고, 구멍나지 않고, 해어지지 않는 이러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까. 그러니 이웃형제를 사랑하세요, 내 몸같이.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 오늘 본문 볼 때 그건 거짓말입니다. 사람이 숨을 멈추고 공기를 마시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저버리는 게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가 너희 속에 거하고 그 사랑을 온전히 이룬다고 했습니다. 저는 결혼식 주례할 때 고린도전서 13장 4-8절을 꼭 넣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마시는 존재입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르고, 믿지 않아도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시다는 것,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해주시고 늘 마음 가운데서 역사한다는 것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생, 생명의 근원입니다. 인생의, 삶의 기초입니다. 여러분들 자식 손주들 예뻐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보세요. 그게 기초입니다. 그걸 모른 채, 하나님의 사랑은 도외시하고 ‘내 새끼’만 찾는다면 되겠습니까. 시편, 이사야, 잠언서를 봐도 우주 만물은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내가 천지를 창조했다. 내가 말하면 하늘 땅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 그러면서 ‘내가 너희들 잊지 않는다, 너희 이름을 다 안다.’ 하셨습니다. 하도 깨닫지 못하니, 하늘에 각각 별이 있는데 각각 그 이름을 부른다고 하셨죠. 밤하늘 쳐다보면 밀가루, 금가루 뿌리듯 은하수가 쏟아집니다. 별의 수를 셀 수 있습니까. 수억 만 개,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각각 이름을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우주만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의 인구가 60억, 70억 명 있다 해도 부모가 아들딸 이름 알 듯 그렇게 다 알고 계십니다.
예레미야가 나는 아이여서 말을 할 줄 모르니, 하나님의 심부름하기 어렵습니다 할 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하고 내 말을 네 입에 두면 될 거 아니냐. 내가 너 세상에 나오기 전에 너를 알고 택했다고 하셨습니다(렘 1:5-9절). 어머니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서로 결혼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보셨다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하고 저 딸하고 결혼하면 누구를 낳는지 그걸 다 보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의 사랑 잊지 마세요. 손주 이쁘다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손주를 보세요. 반드시 손주가 앞길이 환히 열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손주 머리를 쓰다듬을 때 하나님께서도 대견하게 여기고 기뻐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의 삶의 기초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성도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아닙니까.
마태복음 22장 34절에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한테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제일 크냐고 물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둘째 계명이다. 그러시면서 이는 선지자의 강령이라 했습니다. 로마서 13장 8절에 형제를 사랑하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은 십계명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10개 계명 가운데 9개는 지키고 하나를 지키지 못하면 십계명 전부를 범한 죄라고 야고보서 2장 10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렵게 믿고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때 눈에 보이는 내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분이 율법의 완성자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편한 길이 있는데 그걸 하지 않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고행(苦行) 해가며 이 산 저 산, 이 교회 저 교회 다녀도 그게 이뤄집니까? 형제를 사랑하면 됩니다. 그게 율법의 완성자입니다. 로마서 13장 8-10절 을 읽어보세요.
사랑을 빼앗기지 마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왜 빼앗깁니까. 남녀 사이라면 같이 살고 같이 죽자하며 난리치지 않겠습니까? 사랑은 성도에게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가보 제1호입니다. 땅의 은금보
화가 집안에 가득 차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휙 날아갑니다. 사랑이 있으면 그게 보존됩니다. 세상의 부(富)는 바람에 날아가지만, 성도의 부(富)는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랑은 바보같이 잊어버려서도 안 되고 빼앗겨서도 안 됩니다. 반복하지만 율법을 지킨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아홉은 지키고 하나 범하면 다 도루묵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다 완성자입니다. 로마서 13장 8절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겁니다. 하나님 믿고 목사다 장로 집사다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본다 할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본다 할 때 내가 사랑을 아니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저 사람 사랑하는데 내가 왜 미워하느냐 말입니다. 모든 계명과 모든 말씀은 사람을 찾는 겁니다. 영혼을 사랑하고 육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룩하기 위해 그 뜻을 사랑하고 말이죠. 그렇게 완성되는 겁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습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했습니다. 사랑은 남을 골탕먹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남한테 손해 끼치지 않습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내가 이만큼 성장한 것 어머니 아버지의 눈에 보이지않는 희생입니다. 사랑은 계산이 없습니다. 사랑은 잊어버립니다. 아들딸의 허물로 온동네에 난리가 나도 내가 낳은 아들딸 감싸 줍니다. 사랑은 허물을 가려 준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너희 모든 일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 했습니다. 그분이 천국의 일등 백성입니다. 성경을 외우고, 지식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봐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잘 믿고 교회 생활 잘하고, 말씀 깨달으려 기도하고 열심히 찬양 부르고 교회 나와 앉아 은혜의 말씀을 기다리는 그분은 정말 보배입니다. 그분의 변(便)도 보배가 됩니다. 귀합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정말 버릴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내가 너를 보배로운 백성으로 삼겠다 하셨습니다. 냄새도 없는 사람입니다. 고후 2장에도 사망을 풍기는 악취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한 말씀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 하나 찾는 거, 사랑한다는 거. 그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목욕탕에 때묻은 사람들 데려다 깨끗하게 씻겨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평강교회 전체가 신령한 목욕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 자신입니다(요일 4:8). 뒤집어보나 엎어서 보나 거꾸로 보나 높은데서 보나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고, 하나님만이 사랑의 원천이며 근본입니다. 사랑의 샘물이 콸콸 솟아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떠나서는 되는 법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17장 5절 이하에 기록돼 있죠. 하나님이 있는 자는 벌써 생각이 다릅니다. 강가에 심은 나무처럼 가뭄이 없습니다. 늘 잎이 청청하고 때에 따라 과실을 맺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겁니다. 다윗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했습니다. 모든 삶이 늘 푸르름입니다. 늘 싱싱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걸 체험하지 못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본적지고 현주소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태어난 곳과 사는 곳, 본적지와 현주소가 다르죠. 우리가 성탄절 지키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먼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걸 깨닫지 못하니 인간들에게 듣게 하고 보여 주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한테 보내면서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한다(마 1:23)고 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아들을 보내 속죄양으로. 얼마나 귀합니까.
다윗왕이 헷사람 장군을 죽이고 그 부인을 취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나라 군주가 그런 짓을 했다는 계시를 받고 다윗에게 가서 질책을 했습니다. 다윗왕은 은밀히 행했지만,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보시면서 나단 선지자에게 그 내용을 다 대주셨습니다. 나단이 ‘당신 집안에 칼날이 떠나지 않는다. 자식간에 피비릿내 나는 살인이 벌어진다.’고 저주했습니다. 그랬을때 다윗이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죄를 범했습니다.’ 고백하고 깔고 덮고 자는 요가 젖을 정도로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시편 6장 6절이하에 나와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다윗 왕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다윗 왕이 그걸 깨달았습니다. (신 6장, 레 19:13, 잠 3:27-28, 골 3:12-15, 딤전 1:5, 요일 4:7-11, 벧전 1:21)
구약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지만 신약은 헬라어로 쓰여졌습니다. 헬라어에 사랑이란 단어가 네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스톨게. 가족적, 민족· 동족적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필레오, 친구간 우애와 사랑. 세 번째는 에로스, 이성적인 남녀간 사랑. 네 번째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밖에 못합니다. 아무리 불구되고 못난 내 아들딸이라도 동네 사람 위해서 내놓을 사람이 있습니까? 어떻게 죽입니까? 불구된 것만도 불쌍하고 그 자식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 있는데.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자기 아들을 폭격 맞아 형체가 없을 정도의 상태로까지 만들어가며 우리를 사랑한 희생적 사랑입니다. 하나님뿐입니다. 끝까지 변치 않습니다. 나는 예수 믿지 않겠다 해도 하나님은 끝까지 따라오십니다. 내 옆에서 ‘네가 언제 철들래. 네가 언제 죄진 거 회개할래’ 하십니다. 마음에 악이 가득해도 그거 내쫓기 위해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우리를 끝까지 따라오시는 겁니다. 이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내 아들 죽여 네가 구원받고, 네가 나를 안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다.’ 그러시면서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처럼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서 열어 달라, 열어 달라, 열기만 하면 너는 나와 더불어 먹고 마신다 하십니다. 이게 아가페 사랑입니다.
헬라어의 네가지 사랑 가운데 가족적 사랑 스톨게는 내 가족뿐입니다. 필레오, 친구 간의 우애도 조건부적인 것으로 흐릅니다. 이성적인 사랑 에로스는 건강 잃고 죽으면 끝입니다. 그런데 아가페 사랑은 이별이 없습니다. 다른 사랑은 다 끊어지지만 기차가 연결되듯 아가페 사랑은 끊어지지 않고 그대로 다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가 죽든지 살든지 끝까지 따라갑니다. 천국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높이, 깊이, 넓이를 측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을 위해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가면서 무조건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바라는 것도 없어 무조건 사랑해서 죄악에서 구원시켜 주는 그런 사랑이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스톨게, 필레오, 에로스 다 이기적인 것 입니다. 자기 욕심입니다. 아가페는 내어주는 겁니다. 희생! 예수님이 오셔서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내 목숨을 속죄 제물로 내어주러 왔다.’ 마태복음 20장 28절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자기의 감정에 따른 차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정신병 같은 겁니다. 주고 또 퍼주고, 하나님이 사랑을 쏟아주는 데 끝이 없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우리가 받고 사는 겁니다. 사람은 병들면 부모도, 아내나 남편도, 자식도, 재산도 다 잊어버리고 소용없는 겁니다. 헐떡헐떡 물도 마시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건강하고 늘 찬송하고 감사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주변에 “같이 밥먹자” 할 때 그 순간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이 그걸 보시는 겁니다. 나이가 40 넘어 50줄 60줄 70줄 넘어가면 정신 차리지 말래도 정신차립니다.
누가복음 16장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를 보세요. 부자가 ‘잠깐 세상 보내 줄 수 없습니까. 형제에게 가서 이 광경을 얘기해서 지옥 못오게 하고 다 하나님 믿게 하겠다’ 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될 것 같죠. 그러나, ‘갈 필요 없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간다 한들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선지자가 있고, 율법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도 믿지 못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간다고 한들 믿지 않는다.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들, 천국 가면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다 압니다. 올 사람인 줄 알았더니 오지 못해. 마음이 이중적이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갚아 줍니다. 물질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재물, 형통의 복을 하늘문을 열고 쏟아부어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물질 가지고 욕심 사납게 살겠습니까. 다 선한
일에 힘쓰는거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는 거 말로만 가지고 됩니까. 여러분들 요나단 밑에 가보세요. 농사짓는 사람이 ‘거기 농사 안됩니다.’ 했습니다. ‘산을 깎은 곳이라 돌 밖에 안 나오는데 뭐가 되겠느냐.’는 겁니다. 전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어요. 문막 가는 길 비료 공장이 생각나 사다 뿌렸습니다. 배추가 아름드리입니다. 2,000포기. 농사 안 된다던 분이 보시고는 놀랍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노래이지요. 사랑의 찬송, 사랑의 시편이라고들 합니다.
천국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 사랑이다 했습니다. 천국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골로새서 3장 14절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그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입니다. 옷맵시를 완성하는 허리띠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은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면요 허물이 안 보입니다. 신구약은 사랑의 최고봉입니다.
산이 아무리 높다해도, 아무리 5대양 6대주가 넓다해도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 사랑을 우리에게 줬습니다.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가면서. 그게 고마워서 이제부터 누가 나오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오게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한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가 없는 강제적인 사랑. 그 사랑을 맛보시면서 끝까지 사랑의 도가니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주에 오신 성도 모든 영혼들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붙잡아 달라고,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둥그래지듯 하나님의 사랑을 숨결을 우리 온몸에, 마음에 불어 넣어 줘서 풍선같이 되게 해달라고. 그 나라 갈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안고 가고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먹고 마시고 숨쉬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정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떻게 제가 기도를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양심이 꺼림직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고기가 많은 걸 황금어장이라고 하고, 금이 많이 나오면 노다지라고 합니다. 이번 성회가 단 하루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노다지, 사랑의 보고(寶庫)에서 사랑의 다이아몬드를 다 캐고 돌아가셔서 천국에 갈 때까지 사랑의 도가니로, 사랑으로 먹고 마시다가 그 나라 가서 영원한 사랑의 보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07년 10월 27일
말씀 운동 50주년 기념 대성회 새벽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