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복’ 속 ‘To-Be-List’ – 아브라함 시점에서 ‘팔 복’ 다시 보기 (I)
‘팔 복’ 속 ‘To-Be-List’
아브라함 시점에서 ‘팔 복’ 다시 보기 (I)
팔 복은 위와 같이 ‘~한 자’와 그러한 자가 받을 ‘복이 있나니’ 라는 두 가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팔 복’을 원한다면 복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 복을 누가 받을 수 있느냐에 해당하는 앞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부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들이 될 때, ‘팔 복’의 자격자들이 되어 그 복들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팔 복’의 앞 부분은 곧 우리의 ‘To-Be-List’ 8가지 목록이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예수님께서 친히 제시해 주시는 ‘To-Be-List’를 알아보자.
아브라함과 ‘팔 복’
‘팔 복’은 아브라함 시점에서 다시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팔 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10가지 허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모두 ‘팔 복’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게 주신 10대 허락 중 첫 번째인 ‘큰 나라’의 허락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 복’ 중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복에 해당한다. 천국이야 말로 가장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아브라함은 ‘팔 복’의 자격자로서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To-Be-List’의 표본과도 같다. 따라서 아브라함 시점에서 ‘팔 복’을 다시 볼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 복’의 자격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인지 잘 이해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삶을 통해 어떻게 아브라함처럼 ‘팔 복’의 자격자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그 복된 허락의 내용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된다는 것은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가난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거나 그런 상태’라는 뜻이다. 넉넉하지 않고 부족함을 느끼는 상태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식욕 등의 부족함이 채워지기를 바란다.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부족함을 느껴 넉넉히 채워지기를 바라는 상태인 것이다.
성경을 볼 때, 아브라함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 살았다. 영적으로 갈증 상태였고 이 부족함이 채워지길 바랐기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셨을 때 세상에 욕심을 미련을 갖지 않고 즉시 순종하여 떠날 수 있었다(창 12:1-4).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큰 나라’를 허락해 주셨다. 이 허락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약속받은 가나안 땅에서 외국인이자 나그네에 불과했지만 (히 11:13),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 욕심을 두지 않고 그가 허락받은 ‘큰 나라’에 소망을 두었다.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로마서 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한마디로 말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이 세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 천국에 소망을 두는 자다. 아브라함이 허락받은 ‘큰 나라’는 ‘팔 복’ 가운데 천국에 해당된다. 천국이야말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가장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2 애통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다’는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다’라는 뜻이다.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4번의 분리의 역사를 볼 때, 그는 실로 애통하는 자였다. 아브라함은 아비 데라와의 분리, 조카 롯과의 분리, 첩의 아들 이스마엘과의 분리, 약속의 아들 이삭과의 분리의 역사를 겪었다. 이 모든 분리의 과정 속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게 하는 이 세상의 죄악과 유혹에 타협했다면 애통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그 모든 분리의 역사를 통과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큰 이름’에 소망을 두었다.
본문의 ‘위로’라는 단어는 헬라어 ‘파라칼레오’로서, 기본적으로 ‘곁에서 이름을 불러 주다’라는 의미이다. 내가 어렵고 힘든 상황일 때 누군가가 외면하지 않고 내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큰 위로 가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위로는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우리를 각자 이름대로 부르시며 참된 위로를 허락해 주신다(시 147:4).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다시 말해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나의 뜻과 이름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슬픔을 겪고 가슴 아파하는 자이다.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 세상의 죄와 유혹을 이기기 위해 애통함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큰 이름’의 복을 허락하신다. 이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흐려지지 않으며(눅 10:20, 계 3:5), 하나님께서 시인하여 불러 주시며(계 3:5), 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해 주시며(계 3:12), 나아가 아무도 모르는 비밀한 이름을 부여받는다(계 2:17).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참된 위로를 받기 위하여 먼저 애통하는 자가 될 수 있어야겠다.
마태복음 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요한복음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글_박이삭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