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사람 호모 에스페란스 – 빌립보서 4:6-7
희망의 사람 호모 에스페란스
빌립보서 4:6-7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희망
– 바랄 희(希), 바랄 망(望)
– 히브리어: ק ׁשֵֶׁחֵ (헤쉐크): 기쁨
①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얻고자 기대하고 바람. 소망.
② 좋은 일이 오기를 기대할 때 일어나는 감정. 밝은 전망.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사람은 돈이나 학식이나 권세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희망의 사람은 산 사람이요, 하늘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19세기에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곧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했고 산업화가 시작되었던 20세기 초반에는 인간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 곧 ‘도구의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을 가리켜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라고 말했는데 “희망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유명한 문호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불행을 치료하는 한 가지 약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희망이라는 약이라고 말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희망은 강한 용기요 새로운 의지”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희망은 우리의 용기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희망은 가능성에 대한 신앙이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는 적극적인 신념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빛의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빛)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희망의 사람은 그의 표정과 태도와 걸음걸이가 다르고, 삶의 가치관과 역사관과 생활 태도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고 할지라도 희망을 잃어버려선 안 됩니다. 희망은 우리가 천국의 문턱에 갈 때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희망과 반대되는 요소는 절망, 낙심, 불만, 근심, 걱정, 염려 등입니다(마 6:25-34). 우리 하나님은 오늘 성경 본문에서 염려는 도무지 하지마라고 권고하시고 있습니다. 염려가 있는 사람의 인생의 결단은 엄청나게 그 결과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희망의 사람이 되기 위해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희망의 적(敵)인 염려를 어떻게 제거하느냐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염려하는 습관을 숙명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얻은 것입니다. 습관이란 고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질없이 염려하는 습관을 마음속에서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습관을 고치는 데에는 2가지 특효약이 있습니다.
① 상상력의 발동과 ② 자기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그것인데, 우선 상상력을 발동하는 삶은 습관적인 염려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이 방법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적용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주시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아브라함은 불가능의 사슬에 묶여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바닷가로 끌고 가서 모래알을 헤아리게 했고(창 22:17), 밤하늘의 별을 보고 헤아리게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입니다(롬 4:16, 9:6-8).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롬 4:18).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란 말씀은 원문대로 번역하면 “소망을 거스르는 소망 가운데서 그가 믿었다” 입니다. 자신의 경험적이고 이성적인 소망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의 소망을 믿었던 것입니다. 소망의 근거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임을 일깨워 줍니다(롬 8:24, 고후 4:18, 5:7, 히 11:1, 13-16, 벧전 1:8).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가 있고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기에 우리 일생의 모든 소망의 기대를 몽땅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다고 했습니다(고전 1:25). 인간적인 처지와 상황을 보아서는 결코 아들을 가질 수 없는 절망 그 자체였지만, 아브라함은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었으며 자기 아내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롬 4:19, 창 17:17, 18:10-16, 10, 1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롬 4:20).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거짓말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두 번째로, 기도에 힘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막 9:28-29, 신 4:7, 마 7:7-11, 눅 11:9-13, 마 18:19-20, 막 11:24, 요 14:13, 요 15:7, 16, 16:23-24, 약 1:5-6)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로 알고 믿는다면, 결단코 희망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고 만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시고 끝까지 나를 책임져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희망이 생기고 염려가 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라는 이 말씀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과 연결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관리인이요, 머슴이요, 손님인 것입니다 모든 일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이 모두 그리스도의 일이라고 믿어 보십시오. 얼마나 가볍습니까? 사실 모든 염려는 인생 문제를 내가 책임지려고 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맡으셨다고 여길 때 나는 항상 편하고, 기쁘고, 열매가 있고, 밝게 살 수 있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기도를 소홀히 하고 염려만 합니까? 그 원인은 우리 자신이 주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인은 생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인정해야 됩니다.
감사는 어려운 일 당할 때는 빠지고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춥든지 덥든지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가기 위해 예수를 믿지만, 생활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인생은 내 힘으로 살겠다고 큰소리 치고, 기도를 소홀히 하고 날마다 염려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 없는, 희망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살아 있는 신앙의 기도를 드려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읍시다(눅 20:38). 모든 문제는 내 문제도, 네 문제도 아니고 예수님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문제의 하나님입니다. 문제의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오직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생활합시다. 반드시 주께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도록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우리를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사 41:10),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수 1:5),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외면하지 않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롬 6:11, 14:7-8)을 믿으며 근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요 14: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39편 7절에 보면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호모 에스페란스(희망의 사람)입니다.
그 나라 갈 때까지 예수께 희망을 걸고, 이 땅에서 아무리 어렵고 답답해도 나의 근심 문제를 예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시카고에 큰 화재가 나서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 선생의 가산이 전부 타버리고 말았을 때 어떤 사람이 무디 선생에게 찾아가서 “선생님 이번 화재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면서요?” 하니 무디 선생이 기쁜 낯으로 하는 말이, “아니오, 그리스도는 내게 남아 있어요”라고 하였답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남은 생애를 희망의 사람(호모 에스페란스)으로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년 9월 10일 주일 2부 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