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제일교회  ›  평강미디어  ›  평강라이프  ›  참평안
참평안

세상 나그네의 참된 동행자 – 누가복음 24:15-32

2025.04.29 11:35

세상 나그네의 참된 동행자

누가복음 24:15-32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신신당부하고 부탁하셨는데도, 뱀의 유혹으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버리고, 로마서 1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금수 버러지만도 못한 타락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성공을 했든 못했든, 인간은 무덤을 안고 태어나서 무덤을 향해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해서 만세 전에 둘도 없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셨고 그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금요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십자가상에서 세 말씀을 하시고,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태양이 빛을 잃어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때 네 말씀, 도합 일곱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세 시에 빌라도의 명령으로 십자가 상에서 주의 시신이 내려졌습니다. 성경 말씀을 볼 때에 주님은 당시 로마법이나 이스라엘 나라 법을, 더군다나 10계명을 추호도 위반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 한 분을 죽이기 위해서 당시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 장로, 유사 등 2만 4천 명의 종교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산헤드린 국회의원이 70명(의장포함 71명)이 있었습니다. 새벽 2시에 국회의원들이 소집되어 국회의장이 예수를 죽일지 살릴지를 물어 봤습니다. 그때 모두가 죽여야 한다고 가결했지만 단 한 사람이 ‘예수를 죽이면 안 된다’ 했습니다. 그를 향해 삿대질을 합니다. ‘당신도 가결하시오. 손드시오.’ ‘하나님이 두렵지 않소?’ 그러나 가결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누구냐? 겟세마네 동산에 무덤을 가지고 있던 부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누가복음 23:50-51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

열두 제자가 죽음으로 맹세했습니다. ‘죽을지언정 주를 절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창조주 생명의 주인을 부인합니까? 예수님이 형무소 가면 나도 따라가겠습니다. 어떠한 역경에 고통이 있다 해도 그 자리까지 가겠습니다.’ 제자의 대표 수제자 베드로가 맹세를 했습니다. 주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미 베드로가 부인하는 것이 예수님 눈에 보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제자들은 모두 다 도망갔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 옷을 다 벗겼습니다. 백주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죄지은 것 때문입니다. 당시 과학이 발달했습니까? 죄인 죽이는 못은 대장간에서 쇠방망이로 두드려 만들어서 사각입니다. 가장자리가 톱날같이 우둘투둘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갈 데 못 갈 데 다 간 것, 또 우리 마음으로 죄 지은 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물과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쏟으셨습니다. 머리로 죄지은 것 때문에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당시 가죽끈은 크게 세 가닥인데, 한 가닥에 작은 세 가닥씩 해서 모두 아홉 가닥입니다. 끝에는 생선 뼈 아니면 뼛조각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으로 치면 살에 팍팍 박힙니다. 또 예수님을 포승줄로 묶고 수건을 씌워서 권투하는 양 쥐어 팹니다. ‘너 앞날을 잘 알고 다 알아 맞춘다더라. 그래, 내가 너 때렸는데 내 이름이 뭐냐?’ 또 어떤 놈은 가래침을 그 하나님의 얼굴에 뱉고 발길질합니다.

부활하셨다고만해서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이 땅에 태어나 알게 모르게 지은 죄, 부모 앞에, 아내·남편 앞에, 자식 앞에, 나라와 민족 앞에 죄 지은 것 많잖아요? 우리가 그 죄를 걸머지고 갈 수는 없으니, 오늘 새벽 예수님이 만인간의 죄를 지시고 처분하시고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인류의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날입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감격, 감사, 진심으로 하나님을 그렇게 믿었습니까? 

지금의 목사격인 제사장들과 2만 4천 명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하나라도 예수 편을 든 사람이 없습니다. 하늘 아래, 그 사랑과 자비의 손으로 문둥병, 소경, 앉은뱅이, 절뚝발이, 곱사병, 12년동안 혈루증 앓은 여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호산나 찬송하던 그 무리들이 십자가 못박힐 때 와서 누구 하나 동정한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 편 들다가는 로마의 법을 위반한다고 해서 ‘내게 이롭지 못하다’며 다 도망갔습니다. 밥 많이 잡수고 기분 좋은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와 대화만 해도 교회에서 제명시키고 출교를 시키는 때요, 가다가 예수 보면 이단이라고 욕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 역시 회개 많이 해야 됩니다. 교인 빼앗기면 이단이고 자기 교단이 아니면 오만 이야기 다하는 풍토는 안됩니다. 지옥가는 겁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화투하고 골프치러 다니겠습니까. 양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시원치 않습니다. 고난주간 일주일 내내 눈물로 기도하고,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 많이 했습니다. 이 땅에 살아야 우리가 얼마나 살겠습니까? 저도 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왕들, 문인들, 용장들 다 갔습니다. 우리도 자기 갈 집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내가 이사갈 집이다’ 할 때 한번 돌아보고 ‘대비해야 되겠구나. 이 깨진 것을 뜯어내고 다시 시멘트, 콘크리트 작업해야 되겠다.’ 그렇게 말끔히 다 정리한 다음에 이사 가듯이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너희는 나그네다’ 하셨습니다. ‘우거하는 자, 붙어사는 자, 너희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 24장 15-32절 말씀을 통해서 ‘세상 나그네의 참된 동행자는 누구냐?’로 제목을 삼았습니다.

성경에 자그마치 142번이나 ‘우리 인생은 나그네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번 태어나서 낯선 세상을 살다가 지나갈 수밖에 없는 나그네들입니다. 또 ‘너희들은 안개다.’ 아궁이에 불 때면 사라지는 연기라는 것입니다. 허무하죠. 우리는 정해진 길을 걸어가는 행인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운명을 정하셨습니다. 욥기서 말씀을 볼 때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에 놓여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사람은 한 번 났다가 죽는 것이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네가 믿고 행하고 심은 대로 심판이 있을 줄을 알아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근심 걱정이 없는 그 낙원에서 추방당한 인류의 삶은 공동묘지를 향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습니다. 괴롭고 쓸쓸하고 아픔을 안은 채 저희들은 여행해 왔습니다. 저도 가고 여러분도 분명히 한 번은 갑니다. 숙명입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이 행렬에서 우리는 동행자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부부란, 죽음을 향해서 가는 가장 좋은 동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먼저 가든 아내가 먼저 가든 분명히 이 땅에 사는 순간 만큼은 동행자입니다. 우리들의 자녀가 그렇고 친구가 그렇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성도 여러분 모두가 고마운 나그네 동행자들입니다. 어디로 동행하느냐? 죽음이라고 하는 무덤 앞으로. 어떤 사람들은 죽음과 함께 헤어져야 될 텐데 헤어지기 싫어합니다. 그래도 장례식 때는 나와 상관없이 다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밝은 낮의 동행자가 있다가도 해가 지고 저녁노을이 드리울 때 얼마나 쓸쓸합니까? 밤이 됩니다. 빛이 없다면 그 동행자가 보입니까? 안 보이니 있으나마나 하잖아요? 캄캄할 때 동행 자를 만나보세요. 얼마나 좋습니까? 겁도 안 나고 의지가 됩니다. 그러나 나를 위로해 주고 도와주고 나를 사랑하는 그분도 죽습니다. 영원한 동행자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기는 가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하나씩 이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죽음의 석양 길을 걷는 순례자를 하나하나 죽음의 사자가 불러 갑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오늘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을 안 했다면 다 죽음의 동창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기 전에는 예수님이 세상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이 되었을 때 한 자리 얻을 수 있을까 따라 다니던 주님 제자들 보세요. 제 갈 길대로 갑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약 10km, 25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실망과 낙담으로 맥없이 발걸음을 걷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가는 것 보십시오! 얼굴을 보니 근심으로 어둡습니다. 둘이 얘기를 주고받는데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이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당신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습니까?’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아 당신 모르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이 의로운 사람이고 그 분이 죄가 없는데 제사장들이 잡아 죽였다’고 얘기합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이 모세부터 역대 선지자의 신구약에 기록된 말씀을 자세하게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복음 24장 25절을 보니, ‘성경을 더디 믿는 자여!’ 하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옛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 평강제일 성도 가운데 이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더디 믿는 자가 하나 둘입니까? 많은 고난을 받고 사망 권세를 깨트려서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모릅니까? 실망하고, 낙담하는 가운데 제자들이 집에 다 도착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이 일부러 그냥 지나가는 척했는데, 그들이 강권적으로 ‘선생님 우리 집에 들어갑시다’ 했습니다. 음식을 차리고 기도한 후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떡을 받고 보니 ‘예수님이네’ 했습니다. 성경말씀 볼 때 눈이 밝아졌습니다. 예수님이심을 알고 났을 때 주님이 사라졌습니다. 놀래서 밥상을 제쳐놓고 ‘가자, ‘예루살렘으로!’ 이게 분문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오늘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복음입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를 보세요. 어떠한 사업을 해도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같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부리는 사원들, 일꾼들을 보면 그냥 앞이 캄캄합니다. 그럴 때 부활하신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찾아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식이 속을 썩이고, 친척이 속을 썩이고, 나의 상관이, 나의 부하가 얼토당토않게 모략을 해서 나를 아주 곤란하게 만들 때, 실망하고 낙담해 집으로 돌아가는 엠마오에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이는 어둠의 세계입니다. 우리 원수, 사단, 마귀의 장난들입니다.

엠마오의 뜻은 ‘온천’입니다. 보이는 온천보다 예수를 만남이 진짜 온천입니다. 온천이 뜨겁듯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했습니다(눅 24:32). 보이는 표면적 온천과 보이지 않는 이면적 신앙의 온천, 은혜의 온천, 말씀의 온천, 주를 사랑하는 뜨거운 온천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참 안방에 모시지 않고 언제나 건너 방에 둔 채 급할 때만 찾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으면 땅속에 묻혀 무덤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에서 ‘시체’로 있지 않으셨습니다. 영적으로 노아 때 죽은 영들한테 가셨습니다. ‘너희들 노아가 홍수로 심판할 때 믿지 못했지? 지금은 어떠하냐? 회개하라’ 전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뜨거운 구원의 사랑을 보십시오. 자식이 다 돈을 들어먹고 회사를 망치게 해도 낳은 어미는 어미입니다. 남들이 다 죽을 놈이라 해도 낳은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듯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노아 때 죽은 영들, 예수님이 무덤 속에 가서 전도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22절 말씀 중에,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저 가만히 있다가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셨습니다. 인류를 사망과 지옥에서 천국으로 보내 주기 위해서 부활하셨지만 예수님은 그 무덤에 계실 때 전도하셨습니다.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전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면서 성경을 자세히 설명해 준 말씀이 누가복음 24장 25-2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찾아가셨는데 낯선 사람 대하듯 예수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믿고 복음을 받아들여야 예수를 알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과 영적 세계를 봤습니까? 성령을 통해서 은혜 가운데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께서 믿게 해 주시니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너희가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어떠한 역경과 고난과 어떠한 좋은 자리 있을 때에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현재 있는 자리에 밤낮 있는 것이 아니니 가난하고 어려운 자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많은 사도, 많은 사람보다 자기가 수고를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일주야 깊은 데 바다에서 지내고, 동족들의 공갈, 협박에,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헐벗고, 춥고, 배고프게 다른 사람보다 많이 일했지만 결론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맥락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에서 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부활의 아침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단단한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집을 지으려면 설계도, 청사진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오늘날까지 산 생애보다 남은 생애 동안 나라와 민족, 가정, 교회를 위해서 ‘주와 함께 무엇을 해야 하겠다’는 선한 생각과 의로운 마음으로 다짐하고 부활하신 주 앞에 서원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매년 한 번 돌아오는 그 부활절 행사, 형식에 그치면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아닙니까? 사업에 실패하고 자식 양육에 실패하고 친구 관계에 실패하고 다 실패작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엠마오 집구석에 가서 뭐 하겠습니까? 예수 만나자마자 밥상 집어치우고 어디로 갔습니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천인, 만인 가운데 진주알, 깨알같이 골라서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다시 쓰임받는 그 모습을 보십시오!

나라와 민족을 나 자신한테 맡겼으면 ‘내가 정확하게 눈치 보지 않고 공의롭게, 누가 봐도 열매로서, 빛으로서의 일을 하겠습니다.’ 이러한 각오와 결심을 주님 부활하신 아침에,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에 가장 크고 절실한 문제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가장 절실한 사건입니다. 여기에 거짓이 있을 수 없고 형식이 필요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사람이 죽음의 행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 갔지만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를 보십시오. 죽기 직전에 길가에서 주님이 찾아와서 만나 주셨으니 역사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 인생 삶이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의 동행자로서, 자기 멋대로 살다가도 ‘아이구 나 예수님의 손을 놓쳤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내 손 좀 잡아 주세요’ 하고 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신앙 가운데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했습니다(롬 8:35-37).

사도 바울은 주님의 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예수 안 만났으면 양반으로 대접받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밥상 갖다 줍니다. 육신으로 보면 예수 때문에 쫄딱 망한 사람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예수의 손목을 놓치지 않고 예수의 손목을 붙잡고 천국까지 같이 갔습니다. 그분은 다소 대학 출신으로 미국으로 말하면 하버드 대학, 한국으로 말하면 서울 대학입니다. 또 베냐민 지파로, 난 지 8일 만에 할례 받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입니다. 십계명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했습니다(빌 3:5-6). 아주 열심히 믿는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영접하고 예수님 모시는 바람에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파라고 해서 완전히 제명시키고 출교시켰습니다. 그런데도 사도바울은 기뻐했습니다. 개나리 봇짐 하나에 실, 망치 그 다음에 가위 짊어지고 천막 기우는 것이 직업이었습니다. 몇 푼 들어오면 나가 전도했습니다. 그분 곁에 식모나 여자가 있었습니까? 여러분이 주님의 제자라고 자처하지 마십시오. 사도바울의 그림자, 원숭이 모양의 흉내라도 냈습니까? 사도 바울은 직접 밥을 지어 가난한 자, 배고픈 자 먹였습니다.

그러한 분이 부활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주님이 40일 동안 계시면서 11번 나타나시고 마지막 바울까지 12번 나타났습니다. 그분의 고백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팔뜨기나 칠뜨기처럼 만삭되지 못한 나한테도 마지막에 부활의 주님이 나를 만나 주셔서 내 눈으로 보았고 체험했으니 내게 증거가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군인들이 공을 세우면 훈장을 탑니다. 사도 바울의 훈장은 뭡니까? 온몸에 매 맞은 자리가 훈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체험했습니다. 입으로, 글로 배운 예수로만 믿지 마십시오. 목사는 종 중의 종입니다, 장로님은 교인들의 종 중의 종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대접받는 자가 아닙니다. 섬김을 받는 자가 높은 게 아니라 섬기는 자가 존귀하고 높다고 주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만하고 우쭐대는 분들, 엠마오 도상에서 주님이 두 제자 만나 주신 것처럼 주님을 만나는 거룩한 부활의 아침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 13:1). 부부지간에, 자녀 양육할 때, 직장 사업체, 근무처에서 주님의 부활을 만나 보십시오! 미움이 없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3장 12-15절 말씀을 볼 때, ‘네가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느냐?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고향 사람이나 동창에게는 마음이 가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도둑놈인지 사기꾼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안 갑니다. 만약 우리가 죄인들, 변두리 인생들을 만나면 높은 분들 만난 것과 똑같이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보십시오. 자기를 죽이겠다는 사람한테도 갔습니다. 창녀에게, 세리에게, 죄인에게 가셨습니다. 앉아서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당시 거룩하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나는 병든 자 치료해 주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함은 멸망의 앞잡이입니다. 끝까지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날까지 마음 가운데 우쭐대고 남을 무시하는 것 있다면 오늘 아침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주와 같이 동행하기 원합니다. 바로 그때 과거에 알고 모르고 지은 죄가 다 얼음같이 녹아 사라집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부활의 주님과 같이 영원한 천성을 향해서 힘차게 모두가 달음박질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기도 올리겠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다음에 이 땅에 40일 동안 있으면서 11번 나타내시고, 감람산에서 500명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고, 마지막 바울까지 12번 나타나셨다고 고린도전서 1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아 계시는 주님, 아직 우리 마음 가운데 엉큼한 게 있고 회개할 것이 있습니까? 남을 싫어하고 미워하며 하나님 자리에서 심판한 그러한 과거가 있습니까? 오늘 부활하
신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 모든 죄가 다 사라지고 용서받을 줄로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그 나라 가기를 원합니다. 이제부터 부활의 주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고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교회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하는 단단한 각오와 결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원기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피차에 내 몸같이 사랑하고 아끼면서 진심으로 주께 서원하시는 많은 분의 영혼을 위해서 힘차게 주의 복음 가지고 전해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신령한 편지 배달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남은 시간도 주님의 시간입니다. 살아 계시는 주님 남은 저희들 통해서 영광 거두어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0년 4월 23일 부활주일 2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5년 4월호

원문 보기 ›

댓글 0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글쓰기
번호 제목 작성일
2970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9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8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7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6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65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64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3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2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1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0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59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58 마라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엘림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 구속사 세미나 참관기(1) 2026.09.22
2957 누구라도 쉬기 원하는 시간, 고된 봉사를 자원한 평강의 어른들 남선교회 ‘오직봉사팀’ 토요 봉사 체험기 2026.09.22
2956 추석에 관한 잔소리, 금(金)소리 2026.09.22
2955 The Rules for Spiritual Leaders – 1 Corinthians 4:1-2; Romans 15:1-2 2026.09.22
2954 Foreword 2026.09.22
2953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2026.09.01
2952 ‘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자’ 2026 하계 대성회 2026.09.01
2951 성막 화첩의 인기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 구속사 시리즈 제9권 영문판·일어판 출판 감사예배 2026.09.01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