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를 위한 기도 – 아브라함 박 도서관 개관 3주년 감사 예배 및 구속사 세미나
스코틀랜드를 위한 기도
아브라함 박 도서관 개관 3주년 감사 예배 및 구속사 세미나
스코틀랜드(Scotland)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휘선 박윤식 목사님이 낙스 신학교(Knox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신 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2년 10월 미국 낙스 신학교 교수들이 「구속사 시리즈」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저자에게 학위를 수여한 것인데요. 낙스 신학교는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존 낙스의 신학 사상을 계승하는 저명한 신학교입니다.
장로교, ‘언약도(Covenanter)’의 나라
유럽 북부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 섬의 1/3가량을 차지하는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네 연방국 중 하나로, 민족 구성과 종교 등 여러 면에서 잉글랜드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 낙스(John Knox, 1513-1572)는 16세기 종교 개혁 시기에 스코틀랜드를 장로교 국가로 확립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당시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있던 개혁자들이 성경 말씀을 순수하게 지키고 영어권 성도들의 신앙 교육에 사용하기 위해 존 칼빈(John Calvin)과 존 낙스의 지도 아래 영어 성경을 제작한 것이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입니다.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아메리카로 이주할 때 가장 귀하게 챙긴 짐이었다고 하죠.
1990년대에 미국에서 500여 년 전 종교 개혁 신앙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뉴 제네바 스터디 바이블(New Geneva Study Bible)’을 출판했는데, 그 작업을 주도한 루더 휘틀락 총장(Dr. Luder G. Whitlock, Jr)이, 편집에 참여한 세계적인 복음주의 학자들의 친필 사인을 받아 가보로 간직하고 있던 것을 휘선 박윤식 목사님께 헌정했습니다. 그 장면이 마치 500여 년 개신교 역사를 통째로 맡기면서 제2의 종교 개혁을 일으켜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2017년, ‘종교 개혁 500주년, 구속사 발간 10주년’ 특별 취재팀은 장로교의 뿌리인 스코틀랜드를 최종 목적지로 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를 통해 구속사 말씀이 선포되고 있으니 분명히 그곳에서 구속 섭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로마에서 워낙 크고 화려한 가톨릭 성당들을 보느라 지쳐서였는지, 스코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숨통이 트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소박하면서 단정하고 활력있는 에딘버러에서 존 낙스가 사역했던 장소들을 답사하며 ‘여기가 마음의 고향인가’ 할 정도로 친근함마저 느껴졌습니다.
당시 ‘언약도(Covenanter)’ 유적들을 방문한 것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언약도는 존 낙스 별세 후 개혁 사상이 폐기되고 개신교가 왕정의 탄압을 받게 되었을 때, 장로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1638년 국가 서약을 하고 항거했던 무리들을 말합니다. 수많은 언약도들이 그레이프라이어스(Greyfriars)의 ‘지붕 없는 감옥’에 갇혀서, 불과 140cm 정도밖에 안 되는 담을 뛰어넘어 나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 신앙이 오늘날까지 잘 계승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언약도들이 순교당한 마켓 광장의 처형터 표지석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자유분방함이 서글픔을 느끼게 했습니다. 종교 개혁이 몇 년 사이에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00여 년에 걸친 전쟁을 치르며 모진 박해를 이겨낸 결과인데,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하면서도 불평하며 나태했던 것을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까지 고초를 당해 본 적은 없었기에,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존경과 부끄러움, 책임감 같은 여러 감정들로 숙연해졌습니다.
존 로스 기념관 & 아브라함 박 도서관
2022년, 스코틀랜드 북쪽 인버네스(Inverness)의 작은 마을에 존 로스 기념관 & 아브라함 박 도서관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존 로스(John Ross, 1834-1915)는 최초로 한글 성경을 전한 선교사입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해외 선교부 소속으로 만주에서 선교하면서, 한국 선교에 뜻을 두고 조선인들을 만나 한글을 배워 1878년 누가복음을 시작으로 성경을 번역해서 1882년경 권서인(勸書人, colporteur. 목이나 어깨에 봇짐을 메고 물건을 운반하는 행상인. 성경책이나 전도 책자 등을 읽도록 권하는 사람)들을 통해 조선에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선교 역사상 유일하게 선교사보다 자국어 성경이 먼저 들어온 나라가 되었습니다. 권서인들은 성경을 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하루 100리씩 걸으면서 산적이나 짐승에 해를 입기도 하고 시장에서 몰매를 맞거나 추위 때문에 동상에 걸리기도 하면서,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한글을 가르쳐서라도 성경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1885년에 선교사가 처음 들어왔을 때, 이미 예수를 영접했으니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존 로스는 한글에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하였고, 영어로 된 첫 한글 문법책을 만들었는데요. 한글 성경은 기독교 전파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해서 한글을 읽게 만들어서, 일제 강점기에 한글을 지켜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스는 중국 한자가 아닌, 한국 백성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한글로 번역하는 것을 고집했습니다. 지금 한글 성경에서 쓰고 있는 중요한 용어들이 대부분 로스 선교사 때 번역되었습니다. 특히 영어의 ‘God’을 중국어의 ‘상제(上帝)’, 일본어의 ‘가미(かみ)’와 같이 단순히 ‘신(神)’이라는 뜻으로 번역하지 않고 ‘유일하신 하나님(one & only)’을 뜻하는 ‘하나님’으로 번역한 것은 한국 기독교인이라면 두고두고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존 로스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1887년 한 번이었지만 그가 훈련시킨 전도자들은 초기 한국 교회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그 중 서상륜은 황해도에 최초의 개신교회인 소래교회(장로교)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존 로스가 태어난 인버네스의 지역 커뮤니티센터 대표 모린 로스(Maureen Ross) 국장은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가 팔리게 되자, 매각되더라도 계속 복음을 위해 쓰이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중, 유럽 최대 기독교서적 출판사 크리스천 포커스(Christian Focus Publications)의 대표 윌리엄 맥킨지(William MacKenzie) 박사의 소개로 평강제일교회와 연결되어 그곳에 기념관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4월 22일에 시보드 센터(Seaboard Centre)에서 많은 현지 관계자들과 본교회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 3주년 감사예배를 드리고, 최초로 구속사 세미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앞서 윌리엄 맥킨지 박사와 알라스데어 맥컬레이(Alasdair MacAulay) 목사의 사역 보고를 통해 쇠락한 스코틀랜드 기독교계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회와 사역자들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종훈 대리회장은 ‘두 가지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 사명’과 ‘성경’이라는 선물에 대한 말씀을 통해 큰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어진 세미나에서는 구속사 시리즈 저자에 대한 소개와 제1권 「창세기의 족보」, 제2권 「잊어버렸던 만남」에 대한 강의가 이뤄졌습니다. 성경 중심적인 해석과 ‘신앙 전수’로 귀결되는 말씀에 참석자 모두는 흐트러짐 없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구속사와 관련된 영상 상영은 구속사 핵심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이후 백파이프 연주에 맞춰 기념관으로 이동하여 「구속사 시리즈 제12권上」과 한국에서 발간된 존 로스 관련 도서 등을 증정하였고, 전시실 관람 및 기념 촬영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사를 마친 후 모린 로스 국장이 지속적으로 구속사 말씀을 배울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온라인 아카데미>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성경을 중요하게 여기고 말씀에 집중하는 장로교 신앙 전통이 있어서, 구속사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존 로스 선교사의 후예들은 유럽에 상당한 네트워크가 있어 구속사 말씀 전파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존 로스 기념관 & 아브라함 박 도서관’의 규모는 작지만 바로 옆에 200-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보드 센터의 강당이 있고 커뮤니티센터 스태프들이 있어 우리 지교회가 없는 유럽에 효과적으로 구속사 말씀을 전파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살아있는 책, 살리는 말씀
“오늘날 서양 문화의 폐허가 끝에 오게 된 때, 이제 동양은 그 품갚음을 하여 서양을 건질 때가 왔다.” 1960년대에 휘선 박윤식 목사님께서 쓰신 글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500여 년 전 종교 개혁에 헌신했던 유럽의 교회들이 오늘날 거의 무너지고, 스코틀랜드도 전체 인구의 2%만이 교회에 다니고 많은 교회 건물이 매물로 나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다음 세대로의 신앙 전수가 되지 않는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이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으니 성경도 아예 찾지 못하고 자살, 마약, 폭력 등의 문제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맥컬레이 목사님께 스코틀랜드가 오늘날 이렇게 된 이유를 물으니 “백화점, 레저 시설 등이 주일에 영업을 하자 부모들이 주일을 지키지 않게 되었고 신앙을 전수하지 못했다.”라고 했습니다. 그건 또 왜 그렇게 됐냐고 물으니 “설교자들이 제대로 말씀을 가르치지 않아서 은혜를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와 영혼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구속사 말씀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습니다. 사도행전 16:9-10절에 “와서 도와달라.”라고 부르짖는 마게도냐인처럼 스코틀랜드인들의 애타는 부르짖음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어 주신 것 같습니다. 몰락 위기에 처한 스코틀랜드 교회에 구속사 말씀이 확실한 대안이 되어 목회자들부터 은혜를 받고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것이 한국 교회가 스코틀랜드를 통해 입은 은혜의 ‘품갚음’을 하는 구속사의 선한 방법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도행전 16:9-10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글, 사진_서현미 선교사
- 25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