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절과 칠칠절 – 출애굽기 23:16, 레위기 23:15-16
맥추감사절과 칠칠절
출애굽기 23:16, 레위기 23:15-16
출애굽기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레위기 23:15-16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매년 7월 첫 주 주일로 2025년 올해는 7월 6일에 지켰습니다. 성경의 절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맥추감사절과 구약의 칠칠절과 연관시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과 칠칠절 날짜를 확인해 보면 다릅니다.
구약의 칠칠절 날짜를 확인하려면 먼저 초실절부터 알아야 하는데, 초실절은 이스라엘에서 익은 첫 곡식 즉 보릿단을 하나님께 요제로 드리는 날로, 올해는 4월 2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칠칠절은 초실절로부터 50번째 되는 날이자 밀의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소제와 함께 수확의 십일조를 드리는 날(레 23:15-21)로 올해는 6월 1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과 칠칠절은 한 달가량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맥추감사절의 기원 및 의미
추수 감사를 일 년에 두 번 드리는 나라는 이스라엘과 한국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칠칠절과 초막절을 지키며, 한국은 맥추감사절과 추수 감사절을 지냅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7대 절기를 더 이상 종교적 기념일로 지키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개신교가 들어온 이래 전통적으로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주일과 더불어 맥추감사절과 추수 감사절도 함께 지켜오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기독교 교회도 맥추감사절과 추수 감사절을 따로 정하여 한국처럼 지키는 곳은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추수 감사를 일 년에 두 번이나 하는 것은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왔을 당시 한국사회의 상황이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6월 달 보리 수확과 10월 달 벼 수확 등 1년에 두 번의 농산물 수확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비슷한데, 이스라엘은 칠칠절 때 밀을 수확하기 때문에 맥추절(麥秋節)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맥(麥)은 한자로 보리나 밀을 의미할 수 있는데, 낱알의 크기에 따라 보리를 대맥(大麥), 밀을 소맥(小麥)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보리의 뿌리가 밀보다 더 길게 자라추위에도 그만큼 잘 견디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구황 작물(救荒作物)로 보리를 주로 심습니다. 거기에 보리는 재배기간이 밀보다 짧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도 밀이 다 자라기 전 먼저 보리를 수확했습니다.
성경은 칠칠절(혹은 맥추절)을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자칫 맥추절을 초실절과 헷갈리기 쉽게 만듭니다.
출애굽기 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출애굽기 34장 22절은 칠칠절의 첫 열매가 ‘보리’가 아니라 ‘밀’임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즉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라”고 한글 성경에는 애매하게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 성경을 보면 “밀의 첫 열매를 드리는 칠칠절(Feast of Weeks with the first fruits of the wheat harvest)을 지키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맥추(麥秋)가 ‘밀(חִטּ ָה; wheat)의 수확’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력(Holy Calendar; 종교력)으로 볼 때 일 년의 마지막[연종(年終)] 절기인 초막절 때 여름철에 키웠던 각종 과실을 수확하여 저장하기 때문에 수장절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출 23:16). 이스라엘에서는 봄철에 있는 칠칠절 때는 밀을 그리고 가을철에 있는 초막절 때는 과실을 수확하였습니다.
개신교가 들어왔던 당시 한국 사회가 농업 국가였던 점을 고려하면 일 년에 두 번, 즉 보리를 거두는 여름철과 벼를 거두는 가을철에 각각 맥추감사절과 추수 감사절을 지내게 된 것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추수 감사절은 10월에 수확한 벼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절기로, 미국 청교도에 의하여 만들어진 추수 감사절과 같은 날짜에 지키도록 만들어졌습니다. 1904년에 있었던 조선 장로교 총회에서 한국의 모든 교회가 추수 감사절을 지키자고 결의하였고, 구체적인 날짜는 구약의 초막절 날짜(9~10월경)가 아니라 미국의 전통을 따라 11월 셋째 주일로 결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복음이 전해진 초기의 한국 기독교 사회는 미국 전통에 따라 추수 감사절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철 보리 수확에 대한 감사를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맥추감사절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맥추감사절은 공식적으로 교회의 절기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이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지켜오고 있는 것입니다. 맥추감사절이 공식적인 절기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벼 수확에 비하여 보리 수확은 그 양이나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맥추감사절의 기원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만큼, 맥추감사절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의미에 대하여 한국 교회가 어느 정도 혼선을 겪었던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 토착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맥추감사절은 없애고 추수 감사절은 추석 혹은 추석을 전후해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요즘 많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맥추감사절을 없애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상관없이 수전절과 부림절이라는 절기를 만들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데, 예수님이 이 전통을 존중하여 수전절에 성전에 올라가신 것(요 10:22-23)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22-23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칠칠절의 구속사적 의미
맥추감사절이 밀 수확의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날에서, 지난 반 년 간 보호해 주심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날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면, 칠칠절의 신학적 의미도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의 기본 강령인 사랑을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의 사랑으로 완성하셨지만, 사랑이라는 율법의 근본정신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또 제사법의 핵심인 순종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완전한 제사로 성취되었지만, 순종이라는 제사법의 근본정신은 지금도 유효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더 이상 절기로서 지키지는 않지만 칠칠절에 담긴 정신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칠칠절의 표면적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 지켜야 할 추수 감사의 언약으로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시기적절하게 주시는 이른비와 늦은비의 은혜로 거둔 수확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비를 충분하게 내려주실 것이며(신 28:11-12),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비를 내리지 않아 하늘이 놋이 되고 땅이 철이 되는 가뭄이 일어날 것입니다(신 28:23-24).
신명기 28:11-12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12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신명기 28:23-24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4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
나아가 구속사적으로 볼 때 칠칠절에는 이런 표면적 의미 외에도 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출애굽 한 후 50일째 되는 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이 언약의 핵심입니다(출 19:5-6, 24:4-8). 따라서 이 언약이 구속사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탄생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아직 땅은 없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완벽한 ‘신정 국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칠칠절은 추수감사는 물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3요소인 주권, 국민, 국토 중에서 국토를 제외한 요소들이 시내산 언약에서 모두 충족되었던 것입니다.
칠칠절과 오순절의 관계
구약이 신약의 그림자라고 한다면 칠칠절은 오순절의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 성령이 강림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칠칠절로 인하여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탄생한 것처럼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제사장 나라’로 만들어 열방을 하나님 앞으로 모으는 사명을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예언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실절(즉 부활절)에 부활의 첫 열매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일어나셨으며 그 후 이 땅에 40일 머무신 다음 감람산 꼭대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 후 10일이 지난 다음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문도 머리 위로 불의 혀 같은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120문도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예루살렘에 최초의 지상 교회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출애굽 후 50일째 되는 날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 성령 강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칠칠절 때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형성된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 성령 강림으로 교회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구약의 칠칠절과 신약의 오순절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맥추감사절도 우리가 그 의미를 잘 이해하게 된다면 한 해의 반환점으로 삼아 우리의 신앙생활을 낭비하지 않고 좀 더 효율적으로 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하는 데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이해와 맥추감사절의 본질
성경의 절기에는 표면적 의미와 이면적 의미 2가지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표면적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때 그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고, 이면적 의미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될 구속사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절기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절기 속에도 잘 드러나 있음을 볼 때 성경 말씀은 어느 것 하나 허튼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들을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본질과 그 말씀이 적용되는 문화라는 포장 사이에 구별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참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이지만, 그 말씀이 각 시대에 적용되는 것은 문화적 환경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맥추감사절의 핵심은 감사입니다. 100년 전이든 지금이든 또 농경 사회든 산업 사회든 참된 성도라면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엡 5:20, 살전 5:18).
에베소서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류아모스 목사
- 25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