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이 민족의 해방 노래를 불러보자 – 출애굽기 15:1-18, 갈라디아서 6:2-8
1945년 8월 15일 이 민족의 해방 노래를 불러보자
출애굽기 15:1-18, 갈라디아서 6:2-8
한국 민족이 한반도에 터를 잡고 민족 공동체를 이룬 지 수천 년, 우리 민족은 선량한 백성으로 평화를 사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일제로부터 나라를 잃고, 망국 백성으로 슬프게 살기도 했습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랄 때 이렇게 살자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라가 독립되는 날, 망국의 슬픔을 생각하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고자 다짐한 선량한 백성들이 아닙니까? 얼마나 민족 해방을 기다렸고 자유를 그리워했습니까? 민족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과 순교한 하나님 종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권적인 역사로,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우리 한민족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해방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36년간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서 나라 없는 서러움 속에 모진 박해를 받아 오던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와 연합군의 승리로 말미암아 독립을 되찾고,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귀한 종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를 드리며 신사 참배를 강요하던 일본 신정 정치에 항거하다가 감옥살이하던 중에 그 무서운 폭행과 폭정에 죽었던 자가 얼마입니까?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쇠사슬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날은 눈물의 날, 감격의 날이었습니다. 8월 15일 해방의 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사랑하시되, 특별히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순교의 피를 흘린 의로운 종들을 사랑하셔서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의 선물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의로운 종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 광복
그러나 이제 그 감격의 순간도 한낱 아름다운 추억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새천 년, 8월 15일 광복 55주년이라고 하는 시간 위에 우리는 서 있는 것입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나라 안팎에서 투쟁하던 많은 애국자도, 이미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일본 정권에 아부하면서 신앙의 지조를 버리고 민족과 조국을 배신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애국자도 매국노도 가버렸습니다. 신앙을 지키던 의로운 종들도 그분들을 괴롭히던 사람들도 다 가버렸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가고 세월은 흘러도 그들이 밟고 지나간 역사의 기록만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지금도 그때의 감격과 그날의 기쁨을 되새기면서 해방의 노래를 또다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오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40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이니. 길이길이 빛내리, 길이 빛내리”
터져 나오던 감격찬 노래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8·15만 되면 이 겨레의 가슴 속에 메아리치는 것입니다. 36년간의 압제에서 해방된 민족,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들이 430년 동안 애굽의 권력 아래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는 순간의 감격과 감사와 같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닷가에서 해방의 기쁨을 마음껏 노래하던 위대한 찬양이 아니겠습니까? 3,500년이라는 기나긴 시대가 흘렀고, 이스라엘 역사가 수없이 변천했어도 애굽의 권력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던 선민의 찬양만큼은 지금도 중단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430년 전, 야곱의 70명의 가족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굽에 내려온 뒤 소외된 민족으로 갖은 학대와 서러움을 당해야 했던 하나님의 백성들! 그들에게 가해진 이방 권력의 탄압은 너무나도 가혹했습니다(출 1:6-14). 출애굽기 1장에 실려 있는 단편적인 기록만을 보더라도 그들이 받은 박해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의 국고성을 건축하는 데 강제로 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혹사를 당했습니다. 심지어 재료의 공급마저 중단되었는데, 배당된 정량의 벽돌을 구워내라고 모진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또한 자녀를 생산하는 인간 기본의 권리마저도 억압당했습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났을 때 강물에 던지라는 왕의 특명이 내려졌고, 동물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고 출애굽기 1장 15-22절에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조상들의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그 자손들이 망각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모세는 그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젊은 세대를 모아 놓고, 훈시하는 가운데 “옛날을 기억하라!”라는 말씀으로 권고하였습니다(신 32:7).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망각과 기억의 능력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마땅히 잊어야 할 일을 잊지 못하는 괴로움을 당하고, 반대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일을 잊어버림으로써 쓴잔을 마셔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서 불렀던 그 해방의 노래는 민족의 영원한 추억의 노래로 그들의 후손들에게 불렸고, 지금도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지혜, 발전을 기약하는 가장 큰 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해방의 노래는 선민의 역사를 되새기는 추억의 노래가 아니겠습니까?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노래하는 우리 민족에게도 이 추억의 교훈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기억하는 지혜는 앞날의 발전을 기약하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 가운데 해방 전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의 수가 90%나 된다고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공산당이 대한민국을 남침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6·25의 비극을 체험하지 못한 젊은이의 수가 70퍼센트 정도 된다고 합니다. 60대 미만의 사람이 일제의 만행을 알 리가 없고, 공산당의 비인도적 죄악상을 알 턱이 있겠습니까?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반드시 우리의 산 경험을 말해주고 가야만 되겠습니다. 왜 우리가 그러한 곤욕을 당했으며,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의 곤욕을 당했는지 그들의 후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역사의식의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망명 온 한 대학생이 남긴 수기에 “우리가 더욱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을 때 우리 민족은 전통적인 낮잠을 즐기고 있었고, 그때 역사는 우리를 버렸습니다.”라는 눈물의 고백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서구에서 들어온 기독교의 문화를 배척하고, 선교사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그것을 받아들여 메이지유신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죽은 송장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향불을 피우고 있을 때, 서구의 여러 나라는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새로운 인간관,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아시아 정복의 꿈을 안고 칼을 갈고 있을 때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당쟁을 일삼고, 우상 앞에서 술잔을 들고 비틀거리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 나라를 누가 망쳤습니까? 우상을 섬기는 일과 대결을 회피하고 일신의 안위만을 강조하던 유교 사상이 아니겠습니까? 일본은 한국을 정복했고, 우리 조상은 비참하게 학대당하며, 원한을 품고, 피눈물 흘리며 죽어 갔습니다. 우리의 성씨(姓氏)마저 빼앗기고 일본 사람들의 성으로 바꾸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무모하게 중국과 미, 영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을 때, 우리의 부모님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전쟁터에서 죽게 했고, 북해도, 사할린, 남양군도로 끌고 가서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지금도 그들 중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태반입니다. 우리는 그때 강냉이죽도 제대로 끓여 먹지 못했고, 등겨 죽을 끓여 먹거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소나무 껍질을 먹으며 연명했습니다. 먹는 나물인 줄 알고, 잘못된 독초를 캐 가지고 먹었다가 온 가족 8명이 죽은 일도 있었고, 나물마저 먹지 못해 온몸이 퉁퉁 부어서 죽는 이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밥그릇도 숟가락도 소도 다 전쟁을 위해 바쳐야 했고, 솜옷도 제대로 못 입었고, 짚신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탄압했습니다. 예배당의 종까지도 헌납을 강요했고, 찬송가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교회 안에 일본 국기와 귀신 패를 붙여 놓고, 예배드리기 전에 그것에게 절을 하게 했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일본 고등계 형사가 감시하였고, 신사 참배를 강제로 실시하게 했습니다. 이 모든 부당한 요구에 불응하는 수많은 목사와 교인들을 잡아다가 때리고, 죽였습니다. 한국에 위대한 신앙가, 신앙의 정절을 끝까지 지키던 주기철 목사님은 7년간의 옥고 끝에 1944년 4월 21일에 평양 감옥에서 순교당했습니다. 제암리 교회 성도들을 예배당 안에 모아 놓고, 문을 잠그고 불을 질러서 몰살시킨 일까지도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의 잔인한 만행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한국 민족이, 또 한국 교회가 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후손들이 이 역사적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이 또다시 그러한 비극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극심한 박해 가운데, 기적적인 해방
우리는 여기서 일제 말엽에 한국 교회가 겪었던 비극의 일단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지나가야만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천 년 지나온 오늘날까지도 애굽의 박해를 잊지 않고 있듯이, 우리 민족도 일본의 학정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해방의 노래는 추억의 노래요, 후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 주는 교훈의 노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을 괴롭혔던 원수들에 대한 보복의 노래가 아니었고, 해방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송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으로 엮어져 있습니다.
출애굽기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이렇게 진행되는 내용은 그 전체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충만해 있고, 430년간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기적이 인간의 노력이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고 하는 모세의 신앙과 사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탈출의 역사는, 하나님의 일괄적인 사역으로 이루어진 극적인 사건들이라고 출애굽기 12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0가지의 재앙으로 바로 왕의 권력을 제압한 뒤, 유월절의 기적으로 이스라엘 장자를 구출하고, 애굽 왕 이하 애굽의 모든 장자를 진멸했던 일은 그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 일들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홍해 바닷가에서 일어난 사건이야말로, 역사상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초자연, 초능력의 구원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광복도 그러한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중에 1945년 8월의 해방의 그날을 미리 안 자가 누가 있습니까? 조국 광복을 위해 생명을 바친 독립투사들도 그렇게까지 속히 해방의 날이 앞당겨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해방되고 난 다음에 총독부에서 비밀문서가 나왔는데 전쟁 말기, 일본의 패색이 점점 짙어져 가던 그때, 일본 정권은 1945년 8월 17일을 기해서 감옥에 있는 모든 신사 참배 반대자를 일제히 학살하고, 일본 정부에 협조 안 한 사람들을 비밀리에 잡아다가 총살해 버리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더욱, 크게 하나님의 은혜로 된 해방의 기적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해방의 날이 이틀만 늦게 왔더라도 살아남을 자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 우리 한국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해방 5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문제 많은 이 민족이 가야 할 길은 어디입니까? 그 해답을 사도 바울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인데,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각성을 몇 가지로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선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입니다. 인생의 엄숙한 원칙을 말씀하면서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조롱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곧, 인간의 허위와 형식에 속아넘어갈 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속이려는 것은 곧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민족이 맞고 있는 네 가지 위기
저는 오랫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한국 민족이 맞고 있는 위기를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좋은 씨를 심지 못했고, 그 결과 ‘네 개의 나쁜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정직성을 상실했습니다. 정직보다는 요령과 일확천금과 눈가림과 줄서기에 마음을 쓰는 의식 구조가 생겼습니다. 둘째는, 공익 정신이 말라붙어 버렸습니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시대입니다. 셋째는, 지도층, 또한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화가 나고, 흐트러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넷째는, 부유층의 사치와 낭비가 심하여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정직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기적, 개인주의에서 풀려나와 타인을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의 공동체 정신을 이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은 솔로몬 왕조의 이스라엘 민족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또한 노아 때, 소돔과 고모라와 똑같습니다. 솔로몬 왕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부패했습니다. 다윗에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된 솔로몬은 경제적 재능을 발휘하여 부강한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홍해를 통한 남방 무역을 개척했고, 또한 아라비아 객상 확대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도시들이 건설되며, 대규모 토목 사업이 이루어져 왕궁, 무역 창고, 도로, 군사 시설 등이 건설되었다고 역대하 8장과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도 잠깐뿐, 얼마 후 솔로몬 왕국은 멸망했습니다.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계속 외적의 침략에 시달리고 결국엔 보잘것없는 약소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왕국의 몰락 원인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왕 자신의 타락이요 둘째, 지도층의 부패와 사치 생활이며, 셋째, 백성을 돌보지 않고 당파 싸움만 했던 이기심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의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방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하나님의 신앙을 저버리고, 대형 건축과 토목 사업으로 백성들을 무거운 세금과 노역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이방 사신과 우상을 섬겼습니다. 과도하게 사치했고, 호의호식하는 부유층과 가난하고 한이 맺힌 서민층을 크게 갈라놓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광복절의 광복(光復)은 ‘빛을 회복했다’라는 뜻입니다. 광복 55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 한국 국민은 대각성과 정직한 회개를 통해 국민 의식의 개조가 있어야겠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욥기 4장 7절에는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냐?’ 말씀하십니다.
죄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 모두를 망하게 합니다. 죄 있는 세계는 하나님의 불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만 알고 부정 축재를 일삼던 삭개오도 해방시켜 새 사람을 만드셨고(눅 19:1-10), 부패한 국회의원 틈에서 고민하던 니고데모도 해방시켜 하신 분입니다(요 3:1-15).
양심 회복, 도덕 재무장, 사랑의 공동체 운동
이 민족이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잘 살기를 원한다면 참된 생명의 예수 복음 운동에 의한 양심 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하고, 도덕의 재무장 운동과 이웃을 돌보는 사랑의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양심 속이면 망하게 되어 있고, 정직하지 못하면, 가진 거 다 잃어버립니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라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마 3:7, 7:18-20, 12:33, 눅 6:43-44).
두 번째로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방법”이라고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생활화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지극히 단순한 한 가지로, 즉 남의 짐을 져 주는 것입니다. 나의 짐을 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내 가족의 짐을 지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의 짐을 질 수 있어야 좋은 교회, 좋은 나라, 좋은 세계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바로 남의 짐을 지신 것이었습니다. 이웃의 짐을 생각하고 인류의 죄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정신에 있어서는 “책임의 한도가 이웃에게까지” 넓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세계 아동문화 대회에 일본 대표로 강연한 시미즈 교수라는 분은 요즘 청소년 세대를 “나만의 세대, 나만이 아는 세대”라고 했습니다. 내 이름이 나고, 나만 즐기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이 일본 청소년뿐만 아니라 한국 청소년과 성인에 이르기까지 편만하고 있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린 한 책을 읽었습니다. 6·25 때 고아가 되어 혼자 자라난 아이가 10살 때 화상을 입고, 2년간 병원에 있었다고 합니다. ‘빌’이라는 미국 사람이 우연히 이 사정을 알게 되었고, 작은 봉급을 털어서 2년 동안 병원비를 감당했습니다. 그 아이는 뼈저리게 감동하여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나도 성인이 되면, 남의 짐을 져주는 사람이 되겠다.” 결심했습니다. 그는 19살 때, 작은 모자 공장을 차렸고, 40년 동안 크게 성공하여 국내외 12개 이상의 공장을 건설하는 큰 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수록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결심을 실천했습니다. 홍천에 큰 부지를 마련하고 양로원, 보육원, 교회, 병원의 순서로 건축하며 사회에 공헌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속 공익사업을 위한 시설을 짓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삶이 남의 짐을 져 줄 줄 아는 것이며,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28-30) 말씀하셨지만, 십자가가 가벼울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손이 되고, 하나님의 발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한다는 신념만 있으면, 짐은 가벼워지는 것입니다(골 1:24).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육체에 채웁시다.
셋째로 화목과 평화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께 불러 주시고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 자유를 육체의 욕망만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겨 보세요. 서로 물고 뜯다가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갈라디아서 5장 13-1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세기 동안 원수처럼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이러한 한국 민족에게 가장 적절한 예수님의 메시지는 민족의 화합과 평화의 도래이며 국토의 통일입니다. 세계에 냉전이 사라졌건만, 아직도 전쟁의 위협을 느끼며 전전긍긍하는 곳이 한반도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20세기를 종결짓는 나루터에 서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가 배운 것은 세 가지입니다. 이데올로기보다 자유가 낫다는 것이며, 자원보다 두뇌가 낫다는 것이고, 대립보다는 공존이 낫고, 싸움보다 평화가 살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자유의 구가와 인간 개발과, 평화에의 소망은 모두가 성경의 주장입니다. 인간들은 오랜 고통스러운 역사를 통하여, 성경 말씀이 인간 본연의 소망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우리 성도는 좁은 곳에서 벗어나 이 성경의 메시지를 전 민족을 향해 힘차게 외칠 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남북의 우리 한민족을 깊은 수렁에서 건져 주실 것을 믿고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정신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고맙고 감사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 사막에서 물이 흐르게 하시며 마른 막대기에서 꽃이 피고 싹이 나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 고난과 시련만을 거듭해 온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사 해방의 기쁨을 주셨사오니 진실로 감사하옵고,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 36년 동안 이 땅을 빼앗겼습니다. 어둠의 역사를 산 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져, 서로 미워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온 백성과 위정자들이 한마음이 되지 못한 우리의 죄 때문임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일제 36년을 회고해 볼 때, 더욱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속과 언어를 빼앗기고, 신앙심조차 빼앗길 뻔했던 이 민족의 아픔을 돌아보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듯 구원을 베풀어 주셨고, 오늘날 번영과 풍요로운 삶 속에 살게 하심을 생각할 때 그 사랑에 감격할 뿐입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줄을 저희는 믿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이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피와 땀과 목숨을 바쳐 투쟁하고 숨져간 수많은 성도의 영혼을 주께서 위로하시고, 그 후손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위정자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입혀 주셔서 정치 잘하는 대통령, 전 위정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반석 같은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이기주의와 욕심을 소멸시켜 주시옵소서. 나라가 요구하는 일이라면 주 안에서 생명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참된 애국자들이 많이 일어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다시는 우리 대한민국이 백성이 주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게 하시며, 종의 멍에를 매는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온 국민이 더욱 주님을 뜨겁게 사모하며 성령의 인도 속에서 축복된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에 온전한 자유와 평화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0년 8월 13일 주일 2부 예배 박아브라함 원로목사 설교
- 2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