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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충격적인 선언- 요한복음 8:51-59

2025.11.01 10:48

예수님의 충격적인 선언
요한복음 8:51-59

 

 

 

첫 번째, 죽음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과학이 발달해서 약을 통해서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거의 100살 미만에 죽습니다. 자기가 몸 관리 잘 하고 보약 먹고 시간 잘 지킨다 해도 100살을 극복하기가 힘듭니다. 예수님께서 그 선언을 했습니다.

두 번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과 몸에서 떼어낼 수 없습니다. 대포나 총, 어떤 강력한 무기로도 안 되고 어떤 공갈 협박을 한다 해도 죄는 떠나지 않습니다. 죄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붙어 다닙니다. 이성 문제, 남녀 문제를 사단이 압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도 없죠. 또한 명예, 권세를 이용해서 죄를 짓게 합니다. 죄 문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됩니다. 죽음과 죄는 뗄 수 없는 것이니 이 사실이 얼마나 두렵습니까? 롬 6:23에서 ‘죄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모릅니다. 당장 죽으면 알겠지만, 70-80살이 되도록 모르고 있다가 죽음 앞에 가면 떨리고 두려움이 생깁니다.

세 번째, 심판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을 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히 9:27). 이 세상에서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 믿는 대로 행한 대로 자기가 행동한 것이 다 나타납니다. 입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죄 지은 거 영화관 스크린에 나타나듯 다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16장 24-26절에 부자하고 거지 나사로 보세요. 부자가 유황불이 얼마나 뜨거운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명해서 손가락에 물을 찍어 내 혀에 한 번만 대어 달라”라고 요청하니 “너와 나사로 사이는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또 말하길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내가 잠깐 가족들에게 가서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말하면 우리 형제들이 죄짓지 않고 분명히 하나님을 믿을 겁니다.” 말하니 “갈 것 없다. 너보다 먼저 선지자, 예언, 율법이 있었다. 그들 말을 믿지 않았는데 죽었다가 살아서 간들 믿지 아니한다.” 답하셨습니다.

죽음 문제, 죄 문제, 심판 문제, 인간들에게는 이 세 가지가 반드시 붙어 있습니다. 세 가지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요 8:51-59).


죽음, 죄,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님의 선언

세계를 향한 참으로 충격적인 예수님의 선언,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한다’(요 8:51)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므로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할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25절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약속한 것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받은 것이므로 우리에게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기분 좋으면 교회 나오고 마음 상하면 안 나오고 그러지 마세요. 사람도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줄 때 대접받을 수 있듯 먼저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 이하 볼 때 죽음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이 영원히 침범하지 못하도록 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예전에 3년 6개월 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서 주시는 이 말씀을 깨닫고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습니다. 인류 시조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사람은 이 땅에 왔다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 말을 믿고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분이 생명 자체고 생명의 주관자이며 생명의 근원입니다. 우주 만물 창조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복인지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죽음에 대한 처방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복음 11장 25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말씀합니다. 산 소망, 복된 소망, 영원한 소망입니다.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한다.’ 말씀하셨는데 믿음이 있어야 지킬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데다, 말씀이 없다면 뭘 지킬 수 있겠습니까? 보물이 집에 있어야 지키는 게 의미가 있겠지요. 말씀을 믿으면 말씀이 나에게 와 있습니다. 내 부모, 내 자식의 유산보다 더 큰 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했고, 말씀만 있으면 우주 만물이 다 내게 있습니다. 내 말을 지키고 나를 믿는 자는 죽음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씀, 이보다 더 좋고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나사렛 목수의 아들,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은 틀림없는데, 말하는 것을 보니 땅의 말이 아니라 하늘의 말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2절에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데 하물며 내가 하늘의 일을 말하면 너희가 믿겠느냐?’ 말씀하셨듯 아무도 믿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네가 어릴 때부터 자라나는 과정을 다 봤는데 네가 하늘에서 왔다고 거짓말하느냐?” 말했고, 예수님에게 몽둥이를 들어 쫓아내려 할 때 예수님은 도망갔습니다. 모두가 귀신 들렸다고, 하는 말마다 미친 소리라며 욕했습니다(마 13:54-57, 요 8:52-53).

요한복음 8장 45-47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께 속했다면 내 말을 들었을 텐데 내 말을 무시하고 받지 않는 거 보니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 하셨고 그로 인해 매 맞아 죽을 뻔하셨습니다. 인간은 자기 생각 이상의 한계를 초월하기 참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들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시며 하나님과 동등한 지식, 동등한 능력을 갖춘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본인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보내서 온 사람이며, 하나님과 나는 하나이고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된 존재로 말씀하셨으니 그 누가 믿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 온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면 이해하지 못할까 해서 ‘하늘에 하나님에 계신데 그분이 내 아버지이시고 그분이 나를 이 땅에 보냈다’(요 1:18)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는 ‘너희 생명은 내 손에 있고 어떤 누구도 너희 생명을 내 손에서 뺏을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시간이 갈수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원어로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고, 예수님을 우리 인류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망의 세력을 없애셨고, 일생을 사망에 매여 두려움에 떠는 인생을 해방시키러 오셨다는 것입니다(히 2:14-15).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은 국회의원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의 의장(대제사장)으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는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그 어떤 세상적인 권세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당시 사람들은 “무슨 권세로 말하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땅으로부터냐?” 물으셨습니다. 제사장들이 머리 맞대고 의논하다가 도저히 답을 할 수가 없어서 “모르겠다.” 답했고, 예수님께서도 “나도 무슨 권세로 일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한 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지시하신 말씀대로 말했지 내 자의로 말한 게 없다.”라고 말씀하시니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가 대화한다고 하는데 제사장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 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평가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셨다는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고, 예수님과 대화하는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혈과 육으로는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그분을 알지 못하나 예수님은 직접 보고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8: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인간의 생각을 초월해서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인자의 임함은 노아 때처럼 분명히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나를 모르는데 너희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느냐?” 물으셨고 “나를 알아야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다.” 말씀하시니 그럴수록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귀신 들렸다고 욕했습니다. 인생은 너무 짧아서 100살을 넘기지 못하고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지 않고 산다고 할 때 순간적으로 그날, 그때가 있습니다. 마지막에 믿는 순간, 눈 한 번 떴다 감는 것보다 더 빨리 육신이 변화되는 것. 이 썩을 것이 썩지 않음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음을 입을 때, 각자 마음속에 말씀이 있으므로 사망이 다가서려다 오지 못하고 도망가게 됩니다. 그 순간에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고전 15:50-56, 살전 4:13).

어제 구속사 시리즈 8권을 쓰다가 문득 하나님께서 건강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역대 선지자 통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다고 4천 년간 예언했고, 그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을 보면 남자 없이 처녀의 몸에서 메시아가 온다는 것과 그분이 ‘임마누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땅에 왔습니다(요 1:11). 그런데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사람이 나겠느냐(요 1:46)? 예수가 다윗 자손으로 오면 당당하게 와야지. 가난하고 별로 배우지 못하고 별 볼 일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겠느냐?”라며 수군거렸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주의 구원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 던 시므온과 안나가 등장합니다. 시므온에게 “너 죽기 전에 역대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를 본다.”(눅 1:26)라고 성령님이 말씀해 주었습니다. 아셀 지파의 안나는 시집간 지 7년 만에 과부가 되었고, 과부 된 지 84년으로 최소 100살이 넘은 할머니였습니다. 그분도 예수님 만난 것을 보세요.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에 마리아가 예수 낳고 성전으로 가는데 성령님이 바로 “이 땅에 온다는 메시아가 여자가 안고 있는 저분이다!” 말씀해 주셨고, 두 노인은 눈도 어둡지만 쫓아가서 아기를 빼앗아 안고 성전을 빙빙 돌면서 “하나님 내 눈으로 주의 구원을 봤습니다.” 외치며 감사 감격하여 기도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눈으로 주의 구원을 직접 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자의 임함은 노아 때와 같고 바로 이 말씀이 이제 곧 이뤄집니다.” 하면 믿겠습니까? 내일 세상이 끝난다고 하면 ‘글쎄, 그렇게 되면 좋겠는데 그게 될까?’ 하며 긴가민가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을 볼 때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함을 받았고 의심 없이 그 말씀을 믿고 배를 지었습니다. 지금같이 과학이 발달한 때도 아니고 돌로 만든 도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노아 할아버지를 비롯한 여덟 식구는 산에 가서 나무를 잘라 방주를 짓고, 짐승들과 가족들의 1년 양식을 위해 농사를 지었습니다. 노아의 자식들은 하나님 명령대로 말씀을 지켜 홍수가 끝나고 나서야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볼 때 인간의 생각을 초월해서 하나님 말씀을 믿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노아는 보지 못한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그 말씀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심판에서 노아의 여덟 식구만큼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벧전 3:20, 벧후 2:5). 글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보통 믿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사람의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고전 2:6). 요한복음 8장 56절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이 지금부터 2000년 전 사람인데 네가 50살도 못 되었는데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어떻게 보았느냐?” 하며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고 예수님이 아브라함을 보낸 것이라는 말씀을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예수 때 될 것을 즐거워하고 기다리고 마침내 기뻐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예수님이 오셔서 뜻을 이루셔야 부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도 결단코 예수님을 앞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만득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목을 쳐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 마음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가만 두었다가는 진짜 그 아들을 칠 것 같은 순간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손대지 말아라. 이제야 네가 나를 믿는 줄 알겠다.”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창 22:11-12).

우리는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입니까? 말씀을 믿었고,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 이후를 보면 아브라함은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죄 문제 해결을 입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하나님 되는 메시아를 보내서 인류의 죄를 예수님께 넘겼습니다. 인류 죄가 예수님한테 간 것을 누가 보기나 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우리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육의 생각밖에 못 하는 것이고 그래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멸하기 위해서 우리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시켰고, 십자가에 죽게 한 것입니다(롬 8:3, 고후 5:21). 이러한 영적 문제를 알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로 인해 지옥 갈 수밖에 없고, 사망에 종노릇 하며, 사망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데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사망을 폐지하고, 다시 영생의 축복을 주셨는데 그것을 부활로써 입증한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로써 인류에게 입증한 것인데 그래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 다시 살아난 것을 누가 봤습니까? 그게 믿어지지 않으니 인간이 얼마나 악합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갈보리산에서 인류 죄를 다 담당하게 하시고 십자가 제단의 제물로 삼아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인류의 죄가 다 죽었고, 그 다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 깨뜨리고 부활했기 때문에 죄 문제, 사망 문제, 죽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사망을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인류를 향해서 선언하시기를 “내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 가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롬 8:5)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더 갈 데가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더 갈 데가 없는 무한한 사랑, 이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계산이 없습니다. 자식 길러본 부모는 알겠지만, 자식한테 용돈 주면 몇 년 몇 월 몇 시 몇 분에 얼마 줬다고 기록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백 번 죄지어도 모르는 척 지나가고, 덮어 주고 감춰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건강할 때 잘 받아서 기록하고, 자식들한테 다른 것은 유산으로 못 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그러한 부모가 되시기를 마음 뜨겁게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세세 무궁토록 변함이 없는 분이시며 예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죽음이 없으며 계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 분이시며 창조주이시고, 과거 현재를 주장하시며 아브라함 전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세계는 생각만으로도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땅에 흔한 것이 흙이라면 천국에서 흔한 것은 금 길입니다(계 21:21). 가는 곳곳마다 다이아몬드이고 반짝이는 보석들 천지입니다. 피곤치 않고, 아픔과 사망이 없는 곳입니다(계 21:4). 그 세계를 진심으로 믿으시고 지금까지 주를 위해 고생하고 애쓴 것을 은혜와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에 받을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받을 은혜가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은행에 돈을 예금하고 돈을 쌓아놓듯이, 하나님께서도 예정하시고 쌓아 두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마지막에 받을 은혜입니다. 창세기 6장 8절에는 ‘노아 때 죄악이 많고 관영하여 남자 여자가 자기 좋은 대로 행하며 죄짓고 있었는데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 성도들은 쌓아두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배급 주듯이 나눠준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받으면 세상에서 고생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늘 기도하는 삶을 통해 기도를 많이 쌓아 놓으세요. 그 기도가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큰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쌓아두신 은혜를 온전히 바라고 사모하는 자에게 산 소망이 있습니다(시 31:19, 벧전 1:3-5,13).

시편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베드로전서 1:3-5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베드로전서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과 역대 선지자들을 다 만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세상 사람들이 성도에게 와서 경배하며 우리를 기다리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아니고는 그 사람들은 온전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39-40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아니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이어달리기 할 때 바통을 전달하며 뛰고 마지막 주자가 1등으로 결승선에 들어와야 하듯이 수천만 성도가 다 뛰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의 바통을 받은 평강제일교회 성도들이 마지막으로 그 나라에 도착할 때 아벨에서부터 역대 선지자들이 모두 다 우리를 환영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니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한다니, 여러분들은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여러분은 단지 하나가 아니고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입니다.

죽음 문제, 죄 문제, 심판 문제를 완전히 해결 받고 복된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세세 무궁토록 산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천상천하에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 예수님께서 그 모든 죄를 다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과거의 죄악들은 깨끗하게 다 지워졌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알게 모르게 죄지은 것 걱정하지 말고 진심으로 마음 뜨겁게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죄 지으면 양심이 ‘이게 아닌데’ 말하게 되는데, 사람이 양심을 속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양심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양심에 가책받았던 모든 일을 주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우리가 모두 당당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밤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건강 주셨음에 새삼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은혜 가운데 우리가 지금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건강할 때 늘 감사하세요. 부인 볼 때마다, 자식 볼 때마다 친구, 직장 동료 볼 때마다 감사하세요. 병에 걸리면 보지 못합니다. 물도 넘기기 어렵습니다. 아들이나 딸이 아파서 누워있는 아버지한테 물 한 숟갈 떠 드렸는데 그 물 마시면 온 집안이 생기가 감돌고 활기찹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말씀 잘 받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완전히 죄와 사망을 멸하고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 영생을 주신 것을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마지막에 저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죽지 않는 변화의 산 소망과 은혜를 온전히 바라고 사모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에녹같이 살아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기쁨의 영광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았사오니 우리 평강제일교회 전 성도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말씀 받아도 정성을 다해 집중적으로, 찬송해도 기도해도 헌금해도 진심으로 거짓 없이 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마음속에, 저희 육신 속에 병든 자 있습니까? 이 시간에 주께서 마르지 않은 피 묻은 손으로 모든 병마를 안수해서 내쫓아 주시옵소서. 모든 병에서 자유함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감사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정마다 어둠이 틈타지 못하도록 성령의 불담으로 지켜 주시고 성령으로 모든 악의 세력을 막아 주시고 내쫓아 주시옵소서. 정신 차려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고 전도하기에 게으르지 않은 저희 되게 하시고, 은혜 가운데 말씀의 충만과 성령의 충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그 나라 갈 때까지 감사가 떠나지 않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을 빌고 원하올 때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감사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감사합니다.

 

 

2012년 8월 22일 수요 예배 휘선 박아브라함 원로목사 설교

 

 

  • 2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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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9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58 마라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엘림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 구속사 세미나 참관기(1) 2026.09.22
2957 누구라도 쉬기 원하는 시간, 고된 봉사를 자원한 평강의 어른들 남선교회 ‘오직봉사팀’ 토요 봉사 체험기 2026.09.22
2956 추석에 관한 잔소리, 금(金)소리 2026.09.22
2955 The Rules for Spiritual Leaders – 1 Corinthians 4:1-2; Romans 15:1-2 2026.09.22
2954 Foreword 2026.09.22
2953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2026.09.01
2952 ‘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자’ 2026 하계 대성회 2026.09.01
2951 성막 화첩의 인기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 구속사 시리즈 제9권 영문판·일어판 출판 감사예배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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