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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고 이 한 해를 건너가자 – 로마서 14:6-12, 시편 61:1-8, 히브리서 12:2

2026.02.03 13:30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고
이 한 해를 건너가자
로마서 14:6-12, 시편 61:1-8, 히브리서 12:2

 

 

2003년도 평강제일교회 한 해 지표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고 이 한 해를 건너가자”입니다. 이것은 “이 한 해를 천국의 소망을 두고 건너가자”라는 뜻입니다. 2003년도 중심 신앙 사상은, “오직 예수”입니다. 세월이 유수 같다고 하던 옛말이 가장 실감 나게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지금인 것 같습니다. 파란만장했던 한 해를 물결같이 흘려보내고, 하나님 앞에 단단한 각오와 결심으로, 정말 깨끗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겉과 속이 다른 거짓말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영원한 지옥입니다. 성군이라 할지라도 악령과 교만이 들어갈 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어둠의 그늘이 없는 밝고 희망찬 한 해를 살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입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린다.’ 다시 말해서, 지난날의 잘못과 생활의 어두운 면을 다 집어던져 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가 보지 못한 내일의 성취와 축복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야 할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을 볼 때 “말씀은 살아서 움직인다.”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꿈틀거리며, 산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성도는 오직 전진뿐입니다. 은혜 받았고, 말씀 받았고,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 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송장’과 같습니다. 가장 가련하고, 처참하고, 불쌍하고, 보잘것없는 폐인과도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전진뿐입니다. 하늘의 소망을 향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고 전진해야 합니다. 신앙은 쉬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쉬라!’고 하기 전까지는 늘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면 다 가짜이며 위장된 삶입니다.

오늘 새 날! 그 의미가 성도에게는 가장 중대한 2003년 정월 초하루 첫날이 밝아왔습니다. 이 지구상에 2002년이라는 그 시간은 강물같이 다 흘러가 버렸습니다. 우리의 과거도 다 흘러갔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담는 하나님의 귀한 큰 그릇이라고 했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행 9:15). 자기 생각대로 골라서 가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어느 곳이든지 불속에라도 뛰어 들어가는 분이 사도 바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해준 말씀인데, 바로 성도의 가야 할 지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1,700번 가까이 성경을 읽었지만, 항상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깨달음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깜깜할 때 랜턴을 켜면 빛으로 환해지듯이, 초점이 맞춰지면 물체가 선명하게 보이듯이 유독 간밤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습니다.


무엇을 하든 오직 주를 위하여!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롬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사업이나 직장에, 부부생활이나 자녀 양육도 모두 주를 위해야 합니다. 사위, 남편, 아내, 내 자녀들이 주를 위하여 사는 분들인가 깊이 생각해 보세요. 로마 교인 중에는 믿음이 약한 자가 있고, 강한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지 선한 양심의 원리를 좇아 행동해야 하며, 그 중심의 목적은 오직 예수라는 것이 결론적으로 일치되고 있습니다.

다윗왕은 자기 아들 압살롬한테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삼하 15-18장). 얼마나 급한지 맨발로 왕궁에서 조정 백관 신하들과 도망가는 중에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압살롬을 하나님이 죽이신 후 다시 왕위에 복귀하면서 불렀던 시가 바로 시편 61편입니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하나님이 사울 왕을 죽이셨을 때 불렀던 시는 시편 18편입니다. “나의 피난처는 만세 반석”이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 즉,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내 마음이 눌릴 때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바위는 바로 나의 숨을 만한 피난처입니다(시 61:2).

저는 시편 61편을 볼 때마다 오트만(J. Oat-man)이 지은 찬송, 543장(새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생각납니다. 2003년도에는 옛 구습을 다 벗어 버리고, 우리의 사상, 심령, 정신, 마음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지식에까지 새롭게 예수를 닮아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어둠을 감추고 거짓말로 산다면 이 땅에 나그네 인생, 고작 몇 년 살겠습니까? 못 믿어도, 잘 믿어도 70~80년이고,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 가서 그 무서운 심판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새해에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확고한 신앙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부르짖으면서, 먼저 자신이 부서지고, 십자가에 못 박아서 “내 재주, 내 힘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산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찬송가 543장 1절>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2002년을 하나님으로부터 임차했던 우리입니다. 그러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갔습니까? 교회 나와서 예배는 드렸지만, 마음을 다했습니까? 99%라도 불합격이고, 100% 마음과 정성, 뜻을 다해 하나님 앞에 경배, 예배를 드려야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는 하나님 계시는 곳, 천국, 하늘 나라인데 그곳으로 날마다 나아갔습니까?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했습니까? 사람을 더 믿고, 약과 의사를 더 믿지는 않았습니까? 성경은 그림의 떡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실체이며 사실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슬과 함께 만나가 내렸습니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전했다 해도 40년 동안 해어지지 않는 신발과 옷이 있습니까?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모세는 날마다 변함없이 나아갔습니다. 200만 명이 폭동을 일으키고 온갖 욕설을 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해도 까딱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원을 헤아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저 높은 곳’,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 예수님이 있으십니다(골 3:1, 히 12:2). 성령님이 역사해 주시므로 깨달아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묵은해를 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과 교회의 계속적인 성장과 전진을 다짐하면서, 오늘 주시는 말씀을 영생의 말씀으로 알고 놓치지 말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나의 날도,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주를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데 거기에는 오해도 불신도 없고, 좋고 싫음도 없으며 무조건 감사만이 존재합니다.

다윗은 “나보다 높은 바위 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애원하고 있습니다(시 61:2). 그 반석은 바로 예수님이고, 하나님입니다. 어려움으로 헤아릴 수 없는 현실 속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자기를 맡기고, 기도로 의탁해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솜털만큼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는 콧김보다 가벼운 유한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만족할 만한 추억을 간직하지 못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습니다.

임대 계약은 이미 끝났습니다. 오늘 정월 초하룻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임대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임대 계약할 때는 그냥 맺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어떤 목적으로 임대하려고 하는지 반드시 묻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하고 신년을 맞이했다 해도, 결심이 3일도 못 가고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높은 곳을 소망하십시오

2002년도 임대 계약을 맺었으나 그 목적에 맞게 살지 못했고, 다 날려 버렸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약하고, 힘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다 아시기 때문에 전능하신 힘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고, 다시 마음을 잡게 해 주고, 고쳐 주시면 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 밖에서는 안 되고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무리 지난날들이 실패의 연속이며,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전능자를 의지하는 가운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다윗같이 “나를 높은 바위 위에 인도해 달라” 요청하며 한 해를 살아야 합니다. 높은 곳을 소망해 보세요.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남녀 간에 연애할 때 날마다 바라보고 생각하고 마음에 두고 그리워해 보세요. 가만히 있으면 상사병에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데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있어야 하며 그에 따른 삶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높은 바위 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는 기도는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끝없는 전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는 것이며,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신앙생활이 날마다 자라며 성장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행군의 온갖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말씀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척박한 가나안 땅이 복지가 되었습니다. “반석아 입을 벌려 샘물을 나게 하라!”는 말씀 한마디에 장정만 603,550명, 전체 200만 명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샘솟아 나왔습니다. 기독교가 생긴 지 2,000년 동안 기독교 십자가 복음의 역사는 중단되거나 쉰 적이 없습니다.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뜻은 전진하고 또 전진하고 있습니다.

평강제일교회는 많은 문제와 불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 평강제일교회뿐 아니라 전국 총회 산하에 있는 교회 모두 중단되지 않고 전진하는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 또다시 여러분들을 은혜 가운데 만날 수가 있잖아요. 얼마나 좋습니까? 지금 때가 어느 때입니까? ‘목사가 싫다, 좋다.’, ‘너는 내 편인지 아닌지’ 이런 철없는 생각들은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젖이나 먹고, 죽이나 먹는 애가 아닙니다. 단단한 음식을 씹고 먹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해가 바뀌어도 우리는 날마다 전진을 계속해야 합니다. 찬송, 기도, 성경 연구, 교회 봉사와 헌신, 헌금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을 돕는 일들을 쉬지 말고 계속해야 합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기회는 사라지므로 세월을 아끼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세월이 얼마나 귀중한데 왜 놓치고만 있습니까? 내가 피곤하다고 잠깐 자고 쉬는 순간 하나님의 뜻을 놓쳐버리고, 그 뜻이 흘러가 버리는 것을 볼 때 분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강물에 낙엽 띄우면 낙엽도 물결 따라 흘러갑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가면 우리도 의지와 상관없이 가는 것입니다. 한강 물이 흘러가듯 인생의 모든 것이 알게 모르게 다 흘러갑니다.

쓸데없는 공상이나 감상 속에 갇히지 마세요. 세월은 흘러가는데 그대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는 몰락할 수밖에 없고,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늘 향상할 수 있는 자는 몰락이 찾아온다 해도 몰락당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믿고 의지하고 전진하는 자에게는 행복이 있고, 보람이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취의 역사, “복락의 강수”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시 36:8). 신앙의 여정 중 마음을 쏟지 않는 곳에 어떻게 행복이 있겠습니까? 하는 일마다 좌절, 걱정, 근심, 한숨, 바싹 말라 꼬들아지는 쭉정이, 찌꺼기밖에 남지 않습니다.


성도의 행복은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전진할 때 존재합니다.

성도의 행복이란, 믿음을 가지고 의지하면서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전진할 때 존재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만 바라보며 갈 때는 물 위를 잘 걸어갔으나 풍랑과 바람을 바라보는 순간 바로 물에 빠져들어 갔듯이 무엇을 바라보고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부부지간도 신앙이 없이 서로를 바라보면 서로 꼴 보기 싫고 ‘내가 왜 이렇게 살지?’ 한탄하며 사는 의미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니 맛있는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까?

<찬송가 543장 5절>
내 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내 주를 따라 올라가며,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예수 안에서의 삶을 뜻합니다. 기도도 예수 밖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예수의 말씀이 내 속에 있는 상태에서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실행하겠다.” 얼마나 실감 나는 말씀입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 밖에서 기도하면, 예수 안에서의 삶을 모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기독신자들이 별로 없습니다. 예수와 동행하는 삶, “임마누엘!”입니다. 공동번역 빌립보서 3장 14절에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저는 간밤에 많이 울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평강제일교회뿐만 아니라 총회 산하 모든 교회 교역자와 장로, 집사들이 이렇게 살았을까 싶어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의 반석”이십니다. 그 반석은 원자탄도 파괴할 수 없는 반석이며, 안전한 요새, 피난처입니다. 2003년도에는 만세 반석 되시는 그 위에 올라가야 하며, 거기서 살아야 합니다. 환난의 바람이 들어와도 이 바위만을 의지할 때 요동하지 않을 수 있고, 시험의 물결이 닥쳐와도 바위 위에 피한 자는 절대 ‘보호’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539장(새찬송가 488장)에서는 “이 몸의 소망은 우리 주 예수뿐”이라고 했습니다. 낡은 마음과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다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고 붙잡고 따라왔습니까? 2003년도 새해 벽두에 이러한 결심과 각오와 다짐 없이 또 간다면, 열매 없는 가을나무와 똑같습니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찬송처럼 예수님만이 우리의 반석이고, 우리는 이 반석 위에서 보호를 받아 살아왔지만, 감사가 빠진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감사치도 아니하고, 썩어질 것과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금년 한 해만큼은 반석 위에 집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2003년도 만세 반석 되시는 예수님 위에 집을 지어야 요동함이 없습니다. 내 아들딸, 남편, 아내, 며느리를 자기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맡겨 보세요. 내가 천 번을 생각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한 번만 돌아보시면 만사가 형통입니다. 온 교회가 평안해집니다. 성도는 주를 경외하며 성령의 위로를 받는 사람들입니다(행 9:31).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만세 반석 예수 앞에서 보호받으세요. 우리를 빚더미 속에서, 고전하는 속에서 건져 줍니다. 우리의 피난처,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라고 했습니다. 금년 한 해만큼은 집 지어 봤자 몇 날 안 가서 기울어지는 질퍽질퍽한 데 짓지 말고, 반석 위에 지으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543장 3절에 “의심의 안개 걷히고 근심의 구름 없는 곳 기쁘고 참된 평화가 거기만 있사옵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죽는다 해도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반드시 선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귀에만 달콤하고 감미로운 설교는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할 때 임시변통이 아니라 오늘 나의 설교가 영원한 설교가 되게 해 달라고, 변함이 없는 하나님 앞에 정직한 설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 많이 하십시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한계점에 도달한 자원의 빈곤, 오염 문제, 환경 문제, 물 문제, 핵무기의 공포, 빈부 간의 격차와 날카로운 사상의 대립 등 많은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놀랍게도 대한민국에 공산당 사상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이 나라가 특히 가난하고 어려웠던 1950년 6월 25일, 살인 집단 김일성 일당들이 선전포고도 없이 쳐들어왔습니다. 제가 당시에 개성 송화산 밑에서 첫 전투를 했던 사람입니다. 토요일 다 휴가 내보내고 아무도 없을 때 이북은 야크 전투기가 있었는데 우리는 전투기, 탱크, 대포 한 대도 없었고, 고작 연습기 12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한이 어떻게 북침할 수 있습니까? 여수 순천 사건, 제주 4·3사건을 민족 봉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떻게 민족 봉기를 하고 경찰서장을 죽일 수 있습니까? 제가 여수에 갔었는데 경찰서장을 트럭으로 깔고 지나가 눈알이 빠져서 죽었습니다. 생이빨을 송곳으로 뽑고 7살 먹은 애국자 아들을 작두에 잘라서 대나무에 걸어 대문에 매달았습니다. 내 말이 거짓말인가 그 시절을 경험하신 어른들에게 물어보세요. 이게 어떻게 민족 봉기입니까? 정신 차려야 됩니다. 이 나라가 어떻게 구한 나라입니까? 광목에다 물들여서 비 오게 되면 물 빠지는 옷에, 고무바닥이 다 꺾어지는 고무신 신고, 무기 없이 맨주먹으로 싸우다시피 했습니다. 가난하고 못살 때, 미국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반미 세력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공산당은 지구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제가 황해도 사리원에 있을 때 목격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송기남 집사를 데려다가 톱으로 머리를 썰고 숟가락으로 머리를 파는 잔인무도한 사람들입니다. “평화하자” 해놓고 뒤에서 칼로 찌르는 자들, 당과 수령을 위해서는 부모도, 자식도 없는 것이 공산당입니다. 핵무기의 공포, 전쟁의 공포, 빈부 간의 격차와 날카로운 사상의 대립! 이제 인류의 종말은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묵은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온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하나님 앞에 호소해서, 주권적인 하나님의 대능의 손이 그 마음들을 고쳐 주기 전에는 세계 평화가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 많이 하세요.

<찬송가 543장 2절>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내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찬송이 없다면, 우리 성도가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괴로움과 죄만 있는 곳에서 높은 바위, 하나님이 계시는 그 나라를 소망하면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현대주의자들은 이 찬송가를 염세주의적이라고 비난하고 무시해 버립니다. 그들처럼 데모한다고 세상에 천국이 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작정한 그날이 있고, 때와 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완전한 천국이 없고, 어디 가나 근심과 걱정만이 있습니다. 종말이 온들 누가 건져 줍니까?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만인간의 평등을 누가 가져다 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으로 화목 제물로 희생하신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화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 말씀 안에 세계 평화가 있습니다. 복음이 가는 곳에 평화가 있고, 소망이 있으며 복음이 가는 곳에 믿음이 있습니다. 천국의 복음이 빠진다면 송장과 다름없습니다.

지금까지 평강제일교회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세상 영광과 세상 부귀를 구한 적이 없으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할까 고민했습니다. 2003년, 소망 가운데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우리의 소망은 천국뿐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신구약에 기록된 생명의 말씀뿐입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흘러가지 않습니다. 믿음 앞에서는 시간도 모든 것도 다 정지합니다. “바람아, 바다야 조용하라!” 말씀하신 것도 다 정지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동안 걷지 못했던 사람도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는 딱 두 마디에 일어나 걸었습니다. 믿고 갔고 그 순간 모든 질병이, 모든 제한받는 것들이 정지당했습니다. 여호수아의 마음속에는 태양보다 뜨거운 믿음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태양까지도 정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태양을 붙잡아 놓고 자기 볼 일을 다 본 다음에 “이제는 가라!” 명령했습니다.

2003년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만세 반석 되신 예수님 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나를 세워 주소서, 나의 구원의 요새, 구원의 바위 피난처입니다.”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달려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진합시다! 힘차게 나아갑시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한 해 다시 한번 옛 습관과 옛 구습, 믿지 못하는 의심의 안개를 내쫓아 보내고, 오직 예수만이 마음 가운데 충만하여 “이 몸에 소망이 우리 주 예수뿐”이라는 신앙 고백이 2003년도 정월 초하루 이 시간부터 12월 말까지 펼쳐지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정마다 병마가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다 물러가게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가정마다 부조리, 어두운 면이 있사옵거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어둠이 물러갈지어다.
가정마다 성별하여 주시고, 교회 구석구석마다 어두운 면들을 다 내쫓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잘 모시고, 사자들은 교인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모두 하나가 돼서 2002년도 못다 한 일들 다 이루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역사하시는 거룩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시간마다 교인들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기도 쉬는 죄, 전도 쉬는 죄를 범치 않고, 전도에 힘쓰며 교회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고, 공경심을 가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수가 늘어가고 화목하고 사랑이 충만하여 더 큰 놀라우신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게 해주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여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한 대로 이루어질 줄로 확신하고 믿으면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감사합니다.

 

 

2003년 1월 1일 신년 예배 휘선 박아브라함 원로목사 설교

 

  • 2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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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7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6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65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64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3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2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1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0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59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58 마라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엘림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 구속사 세미나 참관기(1) 2026.09.22
2957 누구라도 쉬기 원하는 시간, 고된 봉사를 자원한 평강의 어른들 남선교회 ‘오직봉사팀’ 토요 봉사 체험기 2026.09.22
2956 추석에 관한 잔소리, 금(金)소리 2026.09.22
2955 The Rules for Spiritual Leaders – 1 Corinthians 4:1-2; Romans 15:1-2 2026.09.22
2954 Foreword 2026.09.22
2953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2026.09.01
2952 ‘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자’ 2026 하계 대성회 2026.09.01
2951 성막 화첩의 인기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 구속사 시리즈 제9권 영문판·일어판 출판 감사예배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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