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하면서 고향으로 가는 나그네들 – 시편 119:54-60, 마가복음 6:1-6, 야고보서 4:13-14
찬송하면서 고향으로 가는 나그네들
시편 119:54-60, 마가복음 6:1-6, 야고보서 4:13-14
며칠 있으면 큰 명절 설날입니다. 설날에 고향이 있는 분들은 자기 조상 찾으러 간다던가, 부모님 뵈러 갑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이 땅에 고향이 없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예수님은 나그네입니다. 주님 자신이 말씀했습니다. 잡혀서 모진 고초를 당하실 때, ‘내가 이 세상에 고향이 있고 세상에 속해 있으면 내 군사들이 와서 다 가만두지 않았을 테지만, 그러나 나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그런 얘기입니다.
요한복음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찬송하면서 고향으로 가는 나그네들’ 이런 제목을 잡았습니다. 고향(故鄕)의 고는 연고 고(故)자입니다. ‘그분 거기 지방에 연고가 있어’ 이렇게 말하죠. 향은 시골 향(鄕)입니다. 태어나고 자라난 곳, 또 자기 조상들이 오래 누리고 살던 곳이 고향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순례자로서 고향 본토, 사모하는 본향을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삼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도 그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살다가 갑니다. 단 1회전, 창세기 3장 19절,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 생애는 단 한 번뿐입니다. 모든 하는 일에는 연습이 있지만, 우리 삶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우리 사는 날도 짧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대 선지 선진들이 몇백 년을 살았어도, 불 땔 때 검부러기 날아가듯 신속히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화살같이 빨리 날아간다고 고백했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나그네인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늘을 본 고향으로 삼는 사람은 철두철미하게 ‘우리는 나그네다. 참된 고향은 하늘나라에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자체가 나그네 집입니다.
고향 가는 분들은 예수님의 고독과 예수님의 나그네 마음을 안고 가세요.
고향에 가는 분들은 예수님의 고독과 예수님의 나그네 마음을 안고 가세요. 그래야 죄짓지 않습니다. 고향 가도 다 마음이 편하고, 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아버님 병원에 입원했다. 큰형도 아프고, 몸이 말이 아니다.’ 그런 얘기 듣는 순간 마음이 벌써 무거워집니다. 하늘나라 고향은 요한계시록 21-22장 말씀을 볼 때 너무 편하고, 아픔도, 죽음도, 눈물도 없습니다. 세상 고향 가는 거 기뻐하지만 말고, 무엇인가 하나라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독을 가지고 가세요. 허튼짓 하려다가도 다 삼가게 됩니다. 십계명 가운데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관한 거 아닙니까? 이 땅에, 세상에 첫 계명(대인계명)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겁니다. 효도가 첫 계명이에요. 에베소서 6장 1-3절을 봐도 부모에게 효도하면 생명이 길다, 오래 산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잠깐 쉬어 갈 여관방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에 등기상으로는 내 것이고 수천억, 수조 원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네 것이 아니다!’ 했습니다. 나의 소유는 하나도 없는 겁니다. 시편 119편 54-60절에 그런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잠시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다 놓고 가야 될 나그네들입니다. 나그네는 볼 일 본 다음에 떠나야 합니다. 웅성웅성, 서성거릴 필요 없습니다. 욥이 동방 우스 땅에 큰 부자 아닙니까? 욥이 동네 나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머리를 숙입니다. 너무너무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존경받는 분입니다. 그런데 10남매가 돌풍이 불어서 하루아침에 다 죽었을 때 욥의 아내가 얼마나 입방아를 찧었습니까? 그러나 욥은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고 가져가는 것도 하나님입니다. 적신(赤身)! 벌거숭이로 왔다가 갈 때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가는 것이 인생 아니냐고 했습니다(욥 1:21).
다윗은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고 찬송했습니다
명절에 고향 가시는 분들은 다윗 왕과 같이 찬송하면서 가세요. 자동차에서 다 듣고 가세요. 시편 119편 54절에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윗 왕이 왕궁을 13년 동안 지었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 둘레가 1미터 반이 넘습니다. 그 왕궁에 시종, 군사들이 좀 많았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 앞에 나그네 집이라고 했습니다. 나그네는 소유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게 얼마나 복입니까? 우리는 소망이 있잖아요. 죽어도 부활하고, 사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 천국으로 직행이고, 믿지 않으면 죽는 순간 유황불 있는 지옥 아닙니까? 제가 말하는 게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겁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나그네라고 했어요. 찬송하고 노래 불렀습니다. 나그네 되면서 하나님의 신비를 깨달은 위대한 신앙가입니다. 하나님은 나그네 된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기뻐했어요. 인류 시조 아담부터 주님 예수 재림할 때까지 왔다 간 사람들은 다 나그네입니다.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이 땅의 것 가지고 가봤자 그 나라에서는 소용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볼 때 24문이 전부 다이아몬드이고, 금길입니다. 햇빛 달빛 별빛 필요 없다고 했어요. 어린양이 우리의 등이 되고 거긴 밤이 없다고 했습니다.
욥기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디모데전서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오늘날 믿는다 하는 현대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탐욕, 욕심입니다. 뭘 가지면 다 만족할 거 같죠. 없어도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믿겠다고 다짐하세요. 요한복음 14장 1절 말씀에 걱정하지 말라, 내가 가서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한 다음에 재림하여 데리러 오겠다 하셨습니다. 그 나라 가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향 가서 마음 상하지 말고, 마음 상하더라도 순간 마음을 바꾸어 하늘나라에 두세요.
잠언 15:27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사느니라
잠언 23: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잠언 28: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고향 갈 때, 생각하고 가세요
어떤 사람이 공원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청소부가 보니 깊은 사색에 빠져 있어요. 공원 청소부는 해가 저물죠, 빨리 서두르고 나가야 할 텐데, 청소를 마치기 위해서 다가가서 사색에 빠진 그분한테 “당신 누구요?” 그랬습니다. 그분 대답이 “글쎄요, 내가 누군 줄 몰라서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청소부가 묻습니다. “당신 어디서 왔소?”, “그것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생각 중에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 언제 어디로 갈 것입니까?”, “내가 그걸 알았으면은 내가 벌써 이 자리 떠났겠죠.”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늘 생각하고 살았답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이것은 인생이 무엇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큰 질문입니다. 고향 갈 때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처럼 좀 생각하고 가세요.
예수님도 나그네로 왔다가 나그네로 갔습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분명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이 우리 문제들입니다. 그저 생각 없이, 살아 있기 때문에 산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디로 갈 것이냐? 인생의 방향! 내 목적, 지금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 그러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인생, 자기가 누구인지 똑똑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그 길까지 가르쳐 주고 있어요.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일찍이 베드로는 사도행전 4장 12절에 천상천하에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만한 이름은 예수님밖에 없다 했습니다. 얼마나 복 있고 행복합니까?
우리 찬송가 한 곡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290장(새찬송가 479장)>
-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
광야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 너머 눈보라 재우쳐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리던 성도들 한자리 만나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애굽의 국무총리 요셉이 풍년 7년 지나고 흉년 2년째 되던 해, 앞으로 흉년 5년 남았습니다. 그때 아버지 야곱을 바로 왕 앞에 세웠습니다. 바로가 야곱한테 “지금 연세가 얼마입니까?” 물어봤습니다.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하고 말씀합니다. 야곱이 130세에 바로 왕 만나서 인사하고 17년 더 살다가 147살에 갔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지만, 자기가 살아온 세월을 나그네 세월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고, 모든 영화는 꽃과 같다고 하죠. 풀을 베고 몇 시간 지나면 바싹 말라 꼬들아집니다. 꽃이 좋다 해도 곧 시듭니다.
시편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103:15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하나님의 기업을 자랑하는 나그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과 같이 우리는 자랑하는 나그네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를 자랑하고, 성령을 자랑하고, 또 교회를 자랑하고, 건강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 자랑하고, 고향 갈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믿음으로 가는 거 자랑하고 말이죠. 하나님 내동댕이치고 그저 육신의 생각으로 부모 좋아하는 거 잔뜩 차에 실었더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 없이 가 보세요. 그럴까 걱정돼서 오늘 이 말씀하는 겁니다. 다윗은 역대상 29장 15절에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했죠. 다윗은 나이 70 돼서야 임종 직전 이 고백을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조상들을 모두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 훌륭하고 전부 다 하나님의 복 받아서 부자인데, 그거 모두 하나님 것이라고 한 것이죠. 다윗의 그런 대답을 볼 때 성경을 보면 볼수록 머리가 숙여지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자기 조상을 나그네로 보았고 나그네 조상에 대하여 긍지를 가졌습니다. 자기 조상이 기업을 물려준 거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 나의 기업은 하나님 말씀 지킨 거,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거, 이것이 나의 기업이다 얘기한 겁니다.
다윗은 살아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둘째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세 번째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고향에 갈 때 주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기업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믿으면서 지키는 것이 그 나라 가서 받을 나의 큰 상급이라는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 기자도 나그네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기 조상은 나그네라고 아주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히브리서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타향살이’. 금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에 고복수 선생님이 노래했죠. 그 노래 2절에 ‘부평(浮萍)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검부래기를 물 위에 넣으면 뜨죠. 뜰 부(浮)에 개구리밥 평(萍)입니다. 이 세상 나그네 보세요. 혼자서 기막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분들 역시 이 땅에서 나그네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계십니다. 똑같은 떠다니는 개구리밥 같은 그러한 신세들이지만, 하늘의 만나로 산 소망 가운데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망하지 않고, 없어지지 아니하는 하늘의 기업을 받는 소망으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평강제일교회가 하나님의 베개입니다
야곱이 형한테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사고, 그다음에 아버지를 속여서 형한테 갈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성경 말씀 볼 때 장자는 두 배의 상속을 받습니다(신 21:17). 창세기 27장에서 형 에서가 땅을 치고 대성통곡했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에, 자신에게 올 복까지 다 훔쳐 가지고 간 것에 분개하고 죽이려 하니 야곱은 형 에서가 무서워 도망갔습니다. 해가 저물었는데 원래 그 땅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베개가 없으니 베개 할 만한 돌을 골라 자는데 사다리가 하늘로 닿아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했지요. 하나님께서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 누운 땅을 네게 주리라. 네 자손이 먼지 티끌같이 많아진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까지 널 떠나지 아니한다.’ 하셨죠. 야곱이 꿈에서 깨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8장 16절에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했죠. 베개 하던 돌을 세워 기름을 붓고 하나님 앞에 예배,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 28:17)라고 했습니다.
고향 갈 때 믿음의 베개를 가지고 가세요
성도 여러분, 고향 갈 때 믿음의 베개를 가지고 가세요. 우리가 잘 때 발과 등은 땅에 닿습니다. 그런데 머리만큼은 베개를 베죠.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다리하고 몸은 땅에 붙지만 머리만큼은 뜹니다. 구별됩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야곱은 돌로 베개 하였던 곳이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평강제일교회가 하나님의 베개입니다. 이 교회에서 말씀 받고 기도할 때마다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고향 가도 교회 잊지 마세요. 신령한 베개, 하나님의 전이구나, 하늘의 문이구나! 얼마나 신비스러운 말씀입니까? 아무리 세상에 붙어 살다가도 주일날 교회 나오면 땅에 붙어 있던 마음이 벌써 변해서 하늘을 향하잖아요. 세상 생각은 사망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롬 8:6). 그러니 시골에 가도 고향을 가도 야곱이 베개 하던 돌을 세워서 기름을 부었던 것처럼 ‘두렵도다 이곳이여 하나님의 전이라, 하나님의 교회, 하늘의 문이로다.’ 이렇게 깨달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신비스러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오늘 떠나든 내일 떠나든 가서 우상에게 절하지 말고 괴로움이 있다 할지라도, 이내 요한계시록 21, 22장의 눈물도 없고 괴로움과 고통도 없고 아픔도 없는 천국 세계로 마음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고향 다녀와서 시험 들어 교회 안 나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올해 설 명절은 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하나님, 설 명절을 쇠러 다 고향 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심초사 늘 주무시지 않고 은혜 주심으로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많고 신앙이 성장했습니다. 사신 우상한테 절하지 않고 죄짓지 않고, 고향 가서 답답하고 슬프고 낙심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 믿음으로 하늘을 고향으로 바꿀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시는 말씀 앞에 감사하면서 불초한 종이 다 증거하지 못했지만,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 마음속에 역사해서 깨닫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늘의 소망 갖고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성도뿐 아니라 우리 평강제일교회 등록한 모든 성도의 가정마다 거룩하게 성별시켜 주시옵소서. 선물로 주신 아들딸들 볼 때마다 한숨, 걱정, 낙심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주시는 말씀으로 어둠을 물리치고 잘 될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은혜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5년 2월 6일 주일 2부 예배
휘선 박아브라함 원로목사 설교
- 2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