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 인도네시아에서 온 펠리시아 이야기
‘나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온 펠리시아 이야기
한국에 온 지 4년 된 펠리시아(Felicia Ku) 성도는 올 3월 재개원한 평강제일교회 영어선교원(PCA)의 교사가 되었다.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몰랐던 그녀지만, 이제는 평강 어린이들의 선생님이 되었다. 세계 선교의 씨앗을 심는 평강제일교회 영어선교원 교사가 되기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좌충우돌이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의 87%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인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이다. 특이하게도 펠리시아의 가족 전체는 인도네시아에서도 극소수(0.7%)인 불교를 믿는 집안이었다. 자연히 펠리시아도 불교 신자였는데, 싱가포르 유학 커뮤니티에서 만난 한 ‘언니(나디아, 현재 반둥지교회 엘런 목사님의 사모)’의 전도로 인도네시아 지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기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25살 한참 놀기 바쁠 때 인도네시아 담임 목사님이 “좋은 남자 소개 시켜주겠다”고 하셨단다.
여민수 성도가 인도네시아 지교회를 방문했을 때, 목사님께서는 그에게 펠리시아가 어떤지 물어보셨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함께 기도하자고 하였다. 펠리시아는 이 시기에 대성회, 베리트 신학원 졸업 등으로 한국을 오갔기에 여민수 성도를 이미 알고 있었다. 여민수 성도는 마음에 응답을 받고 약 8개월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 펠리시아의 부모님을 뵙기 위해 인도네시아 재방문 일정을 잡았고 펠리시아는 아직 확신이 없었기에 그가 부모님께 허락을 받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그날까지도 기도했다. ‘뜻이 아니라면 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여민수 성도는 펠리시아의 부모님을 뵙고 한국식으로 큰절을 올린 뒤 자신이 쓴 편지를 드렸다. ‘따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다’는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평소에 목사님을 존경하신 펠리시아의 부모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크게 감동을 받으시고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셨다. 목사님께서는 부모님의 허락을 바탕으로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광고를 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Congratulations!(축하해요!)”라는 덕담을 던지기도 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이후 두 사람은 3개월 만에 2015년 하계 대성회 때 다시 만날 수 있었고 펠리시아가 귀국하기 전 웨딩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 후 3개월간 전화 통화만 하다 결혼식장에 들어갔다. 사진 말고 정식으로 손을 잡았던 건 결혼식 약 1주일 전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인도네시아에서 신혼집을 꾸리고 영어로 소통하며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첫째(여디다)와 둘째(여유니게)가 자라면서 한국어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 100세에 가까우신 남편의 증고모할머니(여운초 목사)를 비롯한 어르신들을 좀 더 찾아뵙기 위해 한국행을 고민하게 됐다. ‘내가 한국에 가야 한다면 “sign(표징)”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당시 이직을 준비 중이던 남편과 펠리시아 둘 다 인도네시아의 면접 본 회사들에 불합격했다. 그렇게 펠리시아는 2022년 망설임 없이 한국에 왔다.
한국의 생활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과는 정반대였다. 뭐든지 느긋~한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달리 한국은 뭐든지 ‘빨리빨리’ 해야 했고,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편하게 대하는 본국 사람들과 달리 한국은 예의범절을 중요시했다. 또 자립을 시작한 한국에서의 생활은 말 그대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집도 차도 무엇이든 부모님이 해결해 주셨던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과 달리, 모두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국제학교도 나오고 싱가포르에 유학도 다녀온 ‘인재’였지만, 어떤 일이든 맡겨주면 열심히 하겠다’며 겸손하게 일을 했더니, 과외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17명의 학생까지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며 영어 학원 면접을 보았는데 감사하게도 두 곳에 합격하고, 출근을 기다리는 동시에 내 집 마련을 위해 집을 알아보는 중 PCA 원장님이 남편을 통해 펠리시아에게 교사직을 제의했다. 처음에는 ‘덕담’ 즈음으로 받아들였는데, 원장님의 의지가 강력했다. 펠리시아는 그때부터 기도하며 이미 면접을 보고 합격한 곳들로 출근할지, 교회의 일을 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물었다. 그렇게 답을 얻어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펠리시아는 집도 직장도 모두 취소한 뒤 지난 3월, PCA의 정식 교사가 되었다.
돌아보면 처음에는 한국의 문화도 낯설고 언어도 다르고 경제적 기반도 없어 고군분투했지만, 이제 펠리시아는 한국의 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밥도 한국인 동료들보다 빨리 먹기 때문이다. 인사할 때는 꼭 고개 숙여 예의 넘치게 인사한다. 한 번은, 고향 친구들이 놀러 와서 6시까지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6시 30분이 되어도 친구들이 약속 장소에 오지 않아 전화를 해서 ‘왜 아직도 안 오느냐’라고 물었더니, ‘무슨 소리냐 네가 일찍 나온 거다, 펠리시아 한국인 다 됐다’라며 되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결혼, 갑작스러운 해외 거주, 갑작스러운 교사 생활.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펠리시아는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몰아치듯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어느 순간 정신 차려 보니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세계 선교의 배후에서 일꾼들을 양성하는 일꾼이 된 펠리시아의 궁극적인 비전은 ‘에녹처럼’ 변화받는 것이다. 이 부부는 결혼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세웠는데, 바로 “변화(transfiguration)”였다. 또한 펠리시아는 그녀의 결혼이 자녀들을 교회의 큰 일꾼으로 세우는 통로라고 생각한다. 현재 인도네시아어와 영어, 한국어 3개 국어를 습득하고 있는 두 자녀가 장차 하나님의 말씀을 세계로 뻗어 나가게 하는 일꾼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동시에 ‘가족 전도가 우선’이라는 목표 아래 가족 전도를 위한 기도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3년 전 펠리시아의 양친은 세례를 받고 현재는 매일 기도하는 분들이 되셨지만, 아직 한국과 인도네시아에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 펠리시아는 여전히 기도의 등불을 밝힌다.
펠리시아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말 것(Never give up),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God is always with us), 상한 심령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다(He’s coming to us when we pray with broken hearts.).” 한국에 온 지 4년 된 펠리시아(Felicia Ku)는 올 3월 재개원한 평강제일교회 영어선교원(PCA)의 교사가 되었다.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몰랐던 그녀지만, 이제는 평강 어린이들의 선생님이 되었다. 세계 선교의 씨앗을 심는 평강제일교회 영어선교원 교사가 되기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좌충우돌이다.
윤은혜 기자
26년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