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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1

본문

눅 15:1-7

제 20-20호
한 마리 양에 대한 불타는 마음

눅 15:1-7


  어떤 교회에서는 교인들의 97% 이상이 대졸 출신임을 자랑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몇 명 나오고 재벌 총수들이 몇 명 나오는 것을 자랑하는 교회라면, 이는 마치 예수님 당시 종교적 특권의식과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었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가난하고 병든 자들, 죄인과 세리, 창녀와 같은 하층민들에 대해서는 상종하는 것조차 죄악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죄인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과 같은 그들에 대한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은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1. 주님께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오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수님을 보고 비난하자,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32)고 답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도 세리와 죄인들이 주님 곁에서 말씀을 듣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원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눅 15: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비유를 통해, 당신은 회개할 것 없는 아흔아홉을 위해서가 아니라 연약하고 병들고 죄인 된 한 마리 양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목자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소망이 없는 자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잃어버린 그들을 찾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여기서 100마리 양은 수학적 숫자가 아닙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본래 주님께서 작정하신 구원의 숫자입니다. 그 양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늑대와 맹수들이 우글대는 광야에 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들이 횡행하는 세대에 살고 있는 현실을 비유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처지에 있는 양들을 가리켜 “나의 잃은 양”(눅 15:6)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기득권을 가진 자들과 소외계층이 있기 마련입니다. 정치적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최소한의 생활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종교적 기득권과 특권을 누렸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형식과 외식에 얽매여 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천국 은총에 대해서는 가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특권의식만 가졌을 뿐 아니라, 세리와 죄인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그들에 맞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같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 주님께서는 한 마리 양을 천하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의 소중함을 깊이 간직하셨던 분입니다. 오늘 본문 눅 15:7 말씀에서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은 기쁨에 주인은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벌이면서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생각할 때, 잃었던 한 마리 양의 값보다 잔치를 벌이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영혼을 구원한 기쁨은 그 어떤 물질의 가치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은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는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큰 잔치를 배설하여 그 기쁨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메시지는 당시 고정관념에 찌들었던 종교 지도자들의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산술은 아흔아홉이나 하나를 똑같이 보시기 때문에, 아흔아홉도 중요했지만 잃은 한 마리 양도 그들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하나 때문에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우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체되는 현실에 분개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의 중요성보다도 숫자의 많음에 치우쳤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종교적·사회적 기득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어떤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숫자의 많고 적음에, 능력의 크고 작음에 좌우되는 그러한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리 수가 많을지라도 그 시작은 하나로부터 비롯됩니다. 따라서 하나는 전체의 시작이요, 과정이며, 마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무리 작고 미약할지라도 하나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으십니다. 아니, 하나의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한 마리 양에 대한 불타는 사랑의 마음과 은총의 결과로,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목자 되시는 주님의 품에 안겨 있는 것입니다(벧전 2:25). 


결 론 : 세상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한 마리 잃어버린 양과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사랑으로 끝까지 찾고 찾아 당신의 품에 안아 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과거의 죄악된 삶을 철두철미하게 회개하고 진정으로 주님께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구원 얻는 길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던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우리의 이웃에 관심과 사랑을 쏟아야만 하겠습니다(약 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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