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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바꾼다!”는 인생관이
“나는 나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는 고백으로
박성환 집사 뇌종양 투병 기록

 

 

젊은 날의 고생은 사서 하는, 박성환 집사는 딱 그런 사람이다. 20대~30대 전 세계 오지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영상을 제작하던 다큐멘터리 PD였다. 에콰도르에서는 6000m 넘는 침보라소(Chimborazo) 산을 올랐고, 정글에서는 온갖 벌레에 다 뜯겨 봤단다. 필리핀에서는 참치 사냥꾼들의 인생을 찍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태풍을 만나 참치 밥이 될 뻔했다. 그 시절은 ‘지구가 좁다’ 할 정도였다.

그 파란만장한 시간들은 ‘정상적인 신앙 생활은 어려운 환경’을 핑계댈 수 있도록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래도 그는 매번 살아 돌아왔고, 결혼도 하고, 쌍둥이까지 선물로 받았다. 게다가 이제는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직장까지 잘 다니고 있던 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지켜 주고 계신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갖게 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적어도 40세가 되던 2025년의 1월 어느 날까지는 그랬다.

 

 


운수 좋은 날

2025년 1월 15일 수요일, 오랜만에 아내와 점심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한 달여 전부터 계속된 어지럼증을 얘기했더니 아내가 이비인후과에 가보자고 했다. ‘이석증인가…’ 했던 것이 청신경 검사를 해 보니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늦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사는 진료 의뢰서를 써주며 신경외과를 가보라고 했다. 신경외과에서는 젊은 나이니 별 문제는 없을 거라며 “MRI 촬영을 하고 청신경 염증인 것만 확인해 오라”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담당 의사가 진료실 앞에서 빨리 들어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MRI 사진을 보여 주며 말했다. “머리 속에 100원짜리 만한(2.33cm) 뇌종양으로 보이는 것이 있네요.” 그러면서 “결혼은 하셨나요?” 물었다. 불현듯 아내와 두 아이의 얼굴이 스쳤다. ‘이제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지금 무조건 빅5 병원에 모두 예약을 하세요. 진료가 안 잡히면 응급실로라도 들어가세요. 진료도 진료지만, 수술 스케줄을 빨리 잡아야 합니다.” MRI 자료를 받아들고 병원에서 나오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응 머릿속에 뭐가 있대, 이따 다시 전화할게.”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가 집 앞에 나와 있었고 둘은 현관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아빠 왜 울어요?” 하고 묻는 두 아이들의 눈은 맑고 청량하기만 했다. 아내는 즉시 교회에 기도 제목을 올렸다.


감사하기 좋은 날과 두 가지 기적

의사의 말대로 하루빨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전화를 해 보니 단기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어찌하나 넋을 놓고 있는데, 모 대학병원에서 문자가 날아왔다. “1월 16일 오후 1시, 신경외과 000 교수님께 예약되었습니다.” 오후 6시가 되어가는 시점, 뇌종양이 발견되고 2시간여 만에 일어난 첫 번째 기적이었다. 그는 그날을 원망의 날이 아닌 감사의 하루로 기억하고 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교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이 분야 명의로 소문난 00병원의 000 교수의 진료 예약을 알아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여 지났을까, 다시 연락이 와서는 “1월 20일 아침 00 교수 앞으로 진료 예약이 되었다”고 했다. 이것도 기적이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내와 함께 00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교회의 한 성도님의 도움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아가며 진료를 마쳤는데, 뇌수막종일 가능성이 높고 보통 이런 종양은 양성종양이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종양이 숨골을 누르고 있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 뒤통수를 절개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날짜는 2월 10일쯤으로 잡혔다.

감사하게도 병원 측은 ‘산정특례’로 등록해 주겠다고 했다. 산정특례는 암, 뇌혈관, 심장, 희귀·중증 난치질환 등 고액 치료비가 드는 질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0~10%로 경감해 주는 국민건강보험 혜택이다. 산정특례 등록하려면 뇌수막종 확진 판정을 위해서 MRI를 다시 찍어야 했는데, MRI 촬영 스케줄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병원 관계자가 담당과 사람들을 협박(?)하듯 밀어붙여 잡은 게 5일 뒤. 원무과를 갔더니 진료비는 1,200원이었다. 산정특례 덕분이었다. 보통은 확진 후 산정특례 승인까지 빨라도 1~2일이 걸리고, 혜택률도 대부분 90% 선에서 책정되지만, 그에게는 95%가 적용되었다. 또 기적이다.

머릿속에 뭔가(뇌수막종)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부터 산정특례가 통과되는 기적이 일어나기까지 30시간여 걸린 것을 겪으며 하나님은 정확한 장소, 정확한 시간, 정확한 방법까지 하나하나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다음 날 새벽, 문득 잠에서 깨어났는데 왈칵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기도가 터져 나왔다. 마치 누군가 대신 소리쳐 해 주는 기도가 자신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 기도가 신앙의 동료들과 평강의 성도들의 중보 기도였다고 믿고 있다. 기도 중 찬송가 344장이 떠올랐다. 


찬송가 344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입으로는 수없이 불러왔던 찬송이지만, 문득 증거를 요구했던 자신의 무례했던 기도가 떠올랐다.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모험 같은 촬영을 떠나면서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내 생명을 지켜 주세요.’ ‘증거를 내놓으면 내가 믿겠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협박했던 기도들이다. 그날 밤, 그것이 그렇게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그 기도대로 ‘이제 나를 증거로 삼으시려고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매번 말씀으로 가장 큰 증거를 들어도, 읽어도 깨닫지 못하고, 작은 걸림돌에 매번 증거를 내놓으라 기도했던 인생이었구나” 뉘우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바꾼다’는 신념

그는 긴 시간, ‘내가 나를 바꾼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그에게는 왼팔의 절반을 덮는 커다란 붉은 점이 있는데, 그 점은 그를 어려서부터 소심하게 만들었고, 대인 관계부터 학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대학 시절 그런 자신을 인정한 척 살아도 보았지만, 붉은 점으로 인한 상처는 오래도록 고스란히 남아서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었다.

그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진취적이고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군 시절은 그 절정기였다. 그의 관물대에는 ‘내가 나를 바꾼다.’라는 결심이 적혀 있었다.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군 생활을 했고, 그렇게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갔다.

그런 삶을 지탱하다가 맞게 된 2025년 1월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 교만의 근거를 추궁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제서야 스스로의 한계가 분명히 보였다.


나의 번제

약 한 달 뒤쯤 공식적으로 뇌종양 양성 판정을 받았다. 종합적인 진단 끝에 급격히 자라는 종양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수술 날짜가 아주 시급하지는 않다고 했다.

머릿속 종양은 그의 생활을 심각하게 흔들었다. 오른쪽 눈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증세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청각에도 문제가 있었다. 영상 편집을 하면서 영상 속의 소리가 말소리인지, 소음인지, 음악인지 헷갈렸다. 걸을 때마다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증세도 나타났다.

그럼에도 절망과 낙심이 자라나지는 않았다. 수술 날짜를 받은 뒤로 고민이 많아졌지만 앞으로 어떤 방법과 마음으로 생을 이어 나갈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는 나름의 답에 근접해 가고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나는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커피가 스스로 그 맛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요. 오직 바리스타만이 커피의 맛을 결정하죠.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에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커피가 본래의 향을 내기 위해선 마치 번제처럼 뜨거운 불에 들어가 까맣게 타야 하잖아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까만 가루가 되도록 나를 갈아내야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런 맛과 향을 온전히 낼 수 있겠다. 그 검은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비로소 커피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우리의 삶이라고 다를까. 온전히 나를 바꾸는 길은 나를 다 내려놓고 까만 재만 남게 나를 잊고 나를 드릴 때 그 제사를 받으시는 유일한 분이 나를 바꾸시고 나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앞으로 나를 더 내려놓고 나를 잊고 지우며 온전한 번제로 나를 드리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그는 2025년 11월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했지만, 그의 오른쪽 눈은 왼쪽으로 쏠려 있었다. 수술 시 시신경을 건들지 않았음에도 생겨난 눈쏠림에 대해 의사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앞으로 3개월을 더 지켜보고 원래 위치로 돌아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6개월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안구를 정면으로 고정시키는 수술을 해야 한다.

병원에서 나와 다시 출근을 하면서, 이런 눈으로 해오던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회의가 생길 법도 하지만, 그는 평온해 보였다. 원망이나 불평의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참평안을 통해 “중보 기도해 주신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와 평안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공석진 전도사

 

  • 2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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