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외국인 성도들이 기억하는 박윤식 원로목사_존 데브니 주니어 목사

외국인 성도들이 기억하는
박윤식 원로목사
잘했다, 내 아들 잘했어.
| 존 데브니 주니어 목사
(Rev. John R. Dabney Jr.) |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그리고는, 아마도 시작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원로목사님을 처음 뵌 건, 1998년 뉴욕에 있는 늘푸른교회에서였습니다. 그분이 가르치신 말씀을 공부한 지 1년이 되던 무렵이었지요. 저는 ‘하나님의 성회’(미국 최대 오순절교회) 교인으로 태어나고 자랐으며, 내내 펜테코스트파(성령의 힘을 강조하는 오순절 교파)로 살아왔기에 차이가 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1년간 말씀과 치열하게 싸우고 공부하면서, 원로목사님의 목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성령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성경에 대해 뭔가 이해하고 있다는 진실한 느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직 모든 것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박 아브라함 원로목사님이야말로 제가 따르고 말씀을 배워야 할 분이라는 것만은 확신했기에, 그분의 가르침을 따랐고, 직접 뵙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1998년 어느 날, 원로목사님께서 미국에 오셨고, 뉴욕 늘푸른교회에서 설교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문 앞에서 만난 아내가 원로목사님께서 뉴욕에 계시다며 우리를 포함한 몇 사람의 일행이 그분을 만나러 뉴욕까지 어떻게 운전해 갈지에 대해 말하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당시 우리는 뉴욕까지 차로 꼬박 24시간이 걸리는 웨스턴 아칸소에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한 친구의 미니밴에 올랐고, 출발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난다는 기대감과 함께 초조하고 떨리고 들뜨기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차 안에서 우리는 각자 받은 말씀을 나누고, 또 어떻게 원로목사님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4시간의 여정도 빠르게 흘렀습니다. 뉴욕에 도착해서는 먼저 작은 모텔에 들러, 샤워를 하고 멋진 옷들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도착하고 보니 주차장은 이미 차로 가득하고 건물 입구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기찻길 뒤로 주차할 곳을 찾은 후,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교회 로비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이룬 하나의 줄은 원로목사님의 사무실로 여겨지는 곳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지요. 초조함으로 속이 다 울렁거렸는데, 당시 교회 안에 저 하나만 백인계 미국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선 줄이 사무실 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저는 원로목사님을 처음으로 뵈었습니다. 목사님은 책상에 앉아서 모든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존경을 표하며 고개를 숙이면 몇몇과는 이야기를 나누시고, 대부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이윽고 저와 제 아내의 차례가 되어서 제가 그 앞에 섰을 때를, 살아 있는 한 절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분은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위로 몸을 굽혀서 저의 손을 잡고 힘차게 악수를 하셨습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제 두 눈을 보시며 “결국 만나게 되서 정말 기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방에서 제가 그분과 이야기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만 같았습니다. 이 전에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에게서 커다란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이 원로목사님과 함께하는 제 여정의 표적이 되는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 원로목사님은 저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셨습니다. 영어로는 제가 얼마나 그분을 사랑했는지를 표현할 만한 단어가 없습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 천국에 계심을 알고 있음에도 너무나도 그리운 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다만 그의 기준에 부응하고 제게 남겨 주신 유산인, 설교하고 가르침으로 이 세상의 모든 잃어버리거나 죽은 영혼에게 다가가라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헌신하는 삶으로 그분의 뜻을 기리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언젠가는 뉴욕에서 처음 뵌 것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원로목사님과 그분의 사역으로 인해, 저는 영광의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줄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저의 희망이자 바람은 그분께서 저의 두 눈을 바라보시며, 환한 미소로, “잘했다. 내 아들, 잘했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원로목사님.